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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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치료고통을 말하는 자에게 듣는 자의 배려가 필요하다

- 김승섭의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2022)



 

김승섭 교수는 질병에 관계된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통계 자료를 살펴보는 보건학자다. 이번에 그는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서 트라우마에 주목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PTSD에 대해 이야기했다. 흔히 PTSD는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9·11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을 경험했던 이들만 겪는 증상으로 여겨지기 쉽다. 나도 막연하게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환경에서도 겪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강간과 구타, 학대와 같은 가정 폭력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건에서 외상을 경험한 이들이 소외와 고립을 겪는 상황에 주목했다. 피해자들은 말하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홀로 감내하곤 했다. 최근에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던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저자는 실제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만나고 이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PTSD 증상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는 의학 연구자들마저 피해자의 결함을 의심했다고 한다. 군인의 경우, 나약함의 증표로까지 여겨졌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이들의 내부에서 찾았던 셈이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 결과는 PTSD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 것임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 생존자들이 겪은 트라우마 증상의 유병률이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 자료는 우리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기억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많은 피해자들은 뜻하지 않게 사회의 편견과 비난, 그리고 이로 인한 수치심까지도 마주해야 했다. 그나마 세월호 사건의 경우, 극심한 심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학생들 곁에 너희들이 원할 때 상담할 수 있다라며 곁을 지켜준 의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피해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저자는 피해자들과 심리치료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주목한 현실은 PTSD를 겪는 피해자들이 홀로 맞서 싸워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보여주었다. 피해자들이 치료과정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행정절차는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고통까지 전가했다. 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내면에 받은 충격과 고통의 에너지가 언어를 통해 외부로 발화되는 과정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는 고통을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신뢰 위에 양쪽이 함께 손을 잡는 과정이었다. 고통을 말하는 자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할 듯하다. 트라우마 치료는 단순히 피해자에게 손길을 내미는 행위로 끝나지 않았다. 듣는 자가 고통을 말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지도 고민하고 배려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1] "PTSD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심한 외상 경험 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인 정신과 질환이다."

[2] "강간과 구타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성폭력과 가정 폭력은 여성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의 범주 바깥에 있다."
-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에서 재인용된 문장.

[3] "PTSD 치료에서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직후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험이기에, 그 회복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4] "PTSD 치료의 핵심은 생존자를 지지해주며 그가 준비되었을 때 트라우마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5]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
-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에이즈와 사유」, 167면에서 재인용된 문장.

[6] "트라우마는 예상해본 적 없는 외부 힘에 의해 자아가 손상당하는 경험이다. 삶의 통제권을 빼앗긴 기억이다."

[7]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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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프 다이어의 신간 《인간과 사진》



역자와 출판사가 바뀌어 다시 소개 된 《그러나 아름다운》《지속의 순간들》




인간과 사진

: See/Saw

제프 다이어(Geoff Dyer) |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



 

오늘 로쟈님의 포스팅을 보고 제프 다이어의 책이 이번에 세 권 더 출간된 것을 알았다. 작년에 이어 다이어의 책이 계속 소개가 될지 기대된다. 제프 다이어는 영미권 작가로는 상당히 인정을 받는 작가인 듯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제프 다이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번 기회에 신간을 비롯하여 국내에 소개되었던 책들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제프 다이어 3종 중 그러나 아름다운 (But Beautiful)지속의 순간들 (The Ongoing Moment)는 출판사와 번역자가 바뀌어 재출간된 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신간은 인간과 사진(See/Saw)이 아닐까 싶다. 앞의 두 권은 절판이 빨리되었고, 일부 '욕심 많은' 중고책 판매자들이 책의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설정해놓아 안타까웠다. 이번에 새로운 표지와 번역자로 새로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이 중 그러나 아름다운는 재즈 역사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었다. 다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아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제프 다이어는 독특한 방식으로 써나갔다. 앨범 <Koln Concert>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추천글도 보이고, 작가가 되기 전에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책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한 모양이다. 알랭 드 보통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밝힌 제프 다이어의 독특한 재즈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지속의 순간들은 사진에 관한 비평서다. 제프 다이어는 다재다능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음악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관심을 갖고 글을 써왔다. 특히 미술평론가 존 버거와의 인연이 깊다. 존 버거의 사진 비평서 사진의 이해(Understanding a Photograph)에 엮은이로 참여했고, 서문을 직접쓰기도 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제프 다이어는 사진에 관한 안내인의 역할을 했던 세 명을 언급한다. 해당 책의 저자인 존 버거(본다는 것의 의미)와 사진론에 관한 책을 써낸 롤랑 바르트(밝은 방혹은 카메라 루시다)와 수잔 손택(사진에 관하여)이었다. 제프 다이어는 사진론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던 이 세 사람의 글을 읽어 왔고,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전에 나왔던 판본으로 읽어본 기억으로는 지속의 순간들역시 이 세 사람의 맥을 있고 있으며, 작가로서 보다 대중적이고 친숙한 사진 에세이를 선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근현대 사진가와 사진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수잔 손택과 롤랑 바르트의 계보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소개한 유대계 언어철학자이자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사진론(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존 버거의 회화 및 예술에 관한 글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도 좋아할 것 같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인간과 사진지속의 순간들과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하다. 지속의 순간들의 경우, 1800년대 사진의 발명 이후부터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사진가들을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았던 시도였다. 이번에 나온 신간의 경우, 일단 목차를 참고해보면 사진 교과서에 많이 나오던 사진가들 이후의 현대 사진가들을 많이 다루었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도 나누어 본 사진가 한 명도 나와서 흥미롭다. 이 책의 2부에 정리되어 있는 글의 제목을 보면 수록된 글들이 모두 2010년대 이후의 글들이다. 지속의 순간들의 원서가 이미 2005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인간과 사진은 사진에 관해 쓴 책 이후에 저자가 사진에 대해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내가 제프 다이어를 처음 만났던 계기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에세이집이었다. 저자가 어떤 글을 써온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손에 들었던 책이다. 제목만 보면 에세이가 싱겁고 가볍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존 버거의 책을 많이 번역했던 김현우 번역가여서 장바구니에 담았을 것이다. 소설과 에세이를 모두 쓰는 작가의 경우, 나는 작가가 쓴 소설과 에세이에 대한 취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경우엔 제프 다이어의 소설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직 소설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장르별로 개인적인 취향이 잘 맞는 작가를 찾는 것도 독자의 권리 아닌가.


 

나는 무엇보다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를 읽고 매료되었고, 여전히 좋아한다. 이를 테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에서 그리스 신전이 있던 유적지를 방문한 여행에서 다이어가 폐허를 응시하며 써내려간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아직도 이 장면이 마음에 들어 기억에 남았다. 작가의 묘사가 생생했고, 그의 생각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읽고 그가 시각 예술도 하는 예술가인줄 알았다. 비평가이지만 화가이기도 했던 존 버거처럼 말이다. 그의 책을 좀 더 찾아보려 검색했더니 나온 책이 바로 지속의 순간들이었다. 그의 에세이에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이게 영국식 유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웃게 만드는 대목도 종종 나온다. 때론 가볍지만 싱겁지는 않고, 나름 진지한 매력이 있는 것이 그의 에세이가 보여주는 매력인 것 같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소설은 2권으로 알고 있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이다. 베니스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현재 품절 상태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의 경우, 몇 년 전에 읽었던 기억으로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소설의 작품성과 상관없이 당시에는 중년 남자가 20대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프 다이어는 내게 예술과 여행, 그리고 자기 탐구에 대한 매력적인 에세이를 쓰는 작가다. 그의 에세이가 계속 나온다면 독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영국 작가로서 다이어는 D. H. 로렌스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작년(2021)에 출간된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는 저자가 로렌스에 관한 연구서를 쓰겠다고 선언한 후 연구서를 쓰지 않을 온갖 종류의 변명을 해대는 재미있는 책이다. 결국 연구서를 쓰긴 했지만, 이 단계는 책이 이미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등장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끊임없이 글쓰기를 미루고 연기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독자가 보기엔 그가 그저 게으른 작가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이 과정에서 로렌스의 삶에 대해 꽤 깊은 이해와 통찰을 보여준다. 엄살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D. H. 로렌스의 삶에 다가가는 다이어의 좌충우돌 탐구과정이 담겨있다. 다만 이 책은 표지 디자인과 만듦새가 다소 아쉬웠다.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로렌스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겨서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집 귀향도 찾아 일게 되었다. 이 책은 두껍지 않지만, 글마다 로렌스의 내밀한 고민과 고통이 잘 드러난다. 다이어의 책과 함께 읽으면 흥미로울 것 같다.

 




 *[참고

아래의 사진 관련 서적들은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 관련된 책들을 추가로 정리해보았다.


[1] 낸시 쇼크로스의롤랑 바르트의 사진은 바르트의 사진론인 

밝은 방(혹은 카메라 루시다)에 대한 정밀한 읽기와 비평글이다. 영문학자의 본격적인 비평을 읽어볼 수 있다. 


[2]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사진과 시간의 현상학은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 김득환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바르트의 사진론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조망한다. 학위논문이었던 만큼, 이 책과 위의 책은 학술적인 성격을 지닌다. 


[3] 롤랑 바르트, 밝은 방은 바르트의 사진론을 10 가지 키워드로 접근한다. 미학/미술사 전공인 저자 박상우 교수의 밝은 방읽기를 일반 독자가 다가가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사진 이론에 많이 언급되지만,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책에서 '취소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박상우 교수는 이 지점에 주목한 대목이 인상깊다. 과연 이 두 개념만이 사진 이론과 읽기의 핵심일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4] 사진이란 이름의 욕망기계은 미술평론가인 장정민의 사진론을 담고 있으며, 바르트의 사진론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접할 수 있다. 사진 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들일 수 있겠지만, 사진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에게는 친숙하게 읽을 수 있겠다. 이미 익숙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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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3-04 14: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제프 다이어가 이런 책이었군요. 급관심이요!
특히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 읽고 싶네요.^^

초란공 2022-03-04 22:37   좋아요 3 | URL
지금 생각해보니 제프 다이어는 엄살왕이 아닐까 싶기도요^^;;
어떻게 연구서가 안써지는지에 대해서 책 한권을 쓸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ㅋ

레삭매냐 2022-03-04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그러나 아름다운>이
번역 문제로 시끌했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 중의 작가라는 제프 다이
어의 책들이 새롭게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초란공 2022-03-04 22:36   좋아요 2 | URL
로쟈님도 번역 문제를 살짝 언급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는 분야별로 번역을 맞긴 듯하네요. 저도 기대해봅니다^^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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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대항해 시대》 가 바다를 매개로 근대가 형성된 배경을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보는 시도라면, 《바다 인류》는 긴 호흡으로 인류 문명이 바다와 관계맺어온 역사를 조망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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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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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자유와 상상력을 품었던 공간, 이제는 우리의 바다


- 주경철의바다 인류(휴머니스트, 2022)



 

바다는 인류사의 중요한 무대다. 지구 표면의 70%가 넘는 바다는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장애물이었던 반면, 육지와 다른 장점을 갖춘 통행로이기도 했다. 이 논지는 일요일의 역사가, 대항해 시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로 대중에게 역사를 친숙하게 소개해온 주경철 교수의 신간 바다 인류(2022)의 큰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연구 분야인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경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안목으로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시리즈와 같은 주목할 만한 번역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도서는 바다와 함께 해온 인류 문명사에 대한 오랜 관심과 연구 사항을 총정리한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전작 대항해 시대역시 바다를 매개로한 역사를 면밀하게 다루었다. 다만 이 책은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준 근대의 형성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이번 작업은 인류가 바다와 상호작용해온 역사를 보다 긴 호흡으로 추적한 역작이라 볼 수 있다. 대항해 시대가 중세가 마무리되고 근대가 시작하는 인류사 시기의 여러 장면을 해양이라는 무대 속에서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본 작업이었다면, 바다 인류는 같은 맥락에서 바다를 탐험하고 도전해온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다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고고학 연구가 아닌 이상 인류의 역사는 무엇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남긴 문자기록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 시대란 이런 특성을 반영하고 여기에 의존하던 시기이므로, 문자가 등장하여 기록된 매체가 역사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현재 인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랜 문자로 수메르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들 수 있다. 이들 문자와 기록은 5000년에서 8000년 전의 인류가 이미문명을 이루고 있었고, 또 이들이 이미 바다로 나가 필요한 물자를 운송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관심을 지니고, 고대 문명이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개척했던 역사가 궁금했다. 문명 초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양으로의 진출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메소포타미아나 아프리카 고대 왕국에서 신전과 같은 건축물, 선박과 같은 목재 구조물을 짓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여 거대한 바위와 목재를 나르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최근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철학 등 고전에 대한 소개가 활발하다. 내게도 조금 익숙해진 지중해 지역(유럽과 아프리카, 근동 지역이 만나는 곳)의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주변의 문명과 인도양 지역의 문명(아프리카 북동부와 인도)이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통해 연결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흐름이 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중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해양 네트워크의 한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육상의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해양의 진주길이 만들어진 역사는 도전적이고 동시에 역동적이었다. 이 역사의 한 가운데에 목숨을 건 말레이인들의 중개무역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해석된 역사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번 독서에서 인상 깊게 주목한 부분은, 저자의 세심하고 균형감 있는 역사적 안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명에 익숙하고, 이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초기 지중해 세계가 그리스-로마의 독무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양한 민족들이 협력과 투쟁을 하며 복합적인 역사 흐름이 이어지는 곳’(69)이라고 말한다. 서양 역사가 혹은 이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역사가들의 설명을 왜곡된 설명이라 지적하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는 그 역사 흐름은 일직선의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성장·후퇴·갱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바다는 다양한 문명들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떠오르는 창조적 공간이었다”(69)라고 알려준다.



[로마제국의 지중해 점령지역]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식민지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균형 잡힌 설명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문명)그들(야만)‘간의 대립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나아가 그리스라는 문명이 일사분란하게 지중해 지역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문명을 수호했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중해 세계의 식민지화 양상을 고려할 때 흔히 적용되어 온 셈이다. 이에 저자는 단일 구조 아래 일부 주민을 내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설명은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인간이 항해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소통했고, 그 가운데 형성된 네트워크가 확대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에는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종교 및 문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지식, 물자가 유통되어 왔다는 점이 핵심이 되겠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문화 자산이 전달되는 해상네트워크의 중첩이다.”(109)


 

이처럼 지중해 네트워크는 점차 확대되어 인도양 네트워크 및 태평양 네트워크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갔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의 해양 네트워크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섬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 역시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운하와 해운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대목이었다. 중국의 수나라는 단명했지만 양쯔강과 황허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공사를 2대에 걸쳐 단행했다. 이 공사가 국가의 운명을 단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문화적으로 화려한 중세 황금기를 견인했다. 중국이 상이한 지역의 인적/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대한 땅에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역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대운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개방된 바다에 접해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통제가 훨씬 어렵고 그 역할도 미진했다. 이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지역을 통합하는 추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몰락은 이후 유럽의 역사에서 중국과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유럽 주변의 전쟁처럼, 저자는 유럽 대륙은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의 분열된 조합 양상으로 역사가 진행’(220)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던 중국의 대운하 사업이 역사에 영향을 준 유일한 부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저자는 대운하가 경제 성장을 가속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폐쇄와 내향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결국 중국과 유럽 문명이 각각 제국과 국민국가라는 상이한 길로 가게 된 이유를 통찰하면서 대운하를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학자가 주목한 주제를 저자가 직접 짚어주고 해석하는 대목과 만나는 부분이 이 책을 읽는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후 중국과 이슬람권의 역동적인 교류 및 교역이 아시아 해양 세계를 한동안 특징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팽창하게 되는 이슬람 문명이 가져온 세계사적 영향은 근대의 기원을 열어젖힌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로서 인류의 역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해양 네트워크를 매개로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통한 팽창이 제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예비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은 제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지니는 함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다에 초점을 맞춘 인류 역사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통찰하고 있다. 오늘날의 바다를 다룬 장에서는 무엇보다 현재 인류가 마주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환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및 미국과 같은 제국사이의 새로운 경쟁과 충돌 양상은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에게 지구 환경 변화의 문제, 지구적 오염 문제보다 더 큰 위기감을 주는 문제가 있을까싶다. 이 문제의 징후가 무엇보다 바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빙하가 영구적으로 사라져버리고, 공유 영역으로서의 바다는 플라스틱 오염원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 이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고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 바닥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일 뿐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는 거북이나 몸 안의 소화관에 미세 플라스틱을 지니고 있는 해양 생물 역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까. 이제 인류는 전체의 운명이 걸린 실존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바다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의 역사, 특히 문명이 바다로 진출한 역사는 자연과의 대결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모았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는 우리가 다시금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경고를 준다. 저자는 로마인들이 바다(지중해)로 나갔을 때, 바다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변화와 오염을 고려할 때, 자연 변화와 환경 오염은 특정 국가나 이들에 속한 영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구의 바다 전체가 곧 우리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지구에서 운명을 공유하는 지구인으로서 말이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인들의 인도양-태평양지역 확산 흐름]



이 책은 인류에게 바다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 물음은 태평양의 오스트로네시아족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확산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문양이 들어간 라피타(Lapita) 도자기 문화는 바다를 건너 확산되고 공유되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바다가 무한한 자유를 가진 공간이자 하나의 거대한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였을 것이다. 바다라는 세계를 마주했던 인류는 대상 세계를 해석하고 반응했다. 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지식을 개발하고 집단 지성을 이루어왔다. 이번 독서에서는 인류가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과감하게 도전하고 모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완성한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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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3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 초란공님 정리 넘 잘하신거 아닌가요 !!! 전 읽긴 읽었는데 정리가 안돼요 ㅠㅠ초란공님 👍

초란공 2022-03-03 20:35   좋아요 1 | URL
저도 방대한 양이라 관심가는 부분만 뽑은거지요 ^^;; 통나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워요!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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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의 세상 읽기

: 망각에 대한 애도와 치유를 위한 밤의 시간들


- 황현산밤이 선생이다(2013) 읽고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지리를 파악할 겸 산책할 때였다. 이 지역은 낮은 언덕과 평지가 이어지는데, 언덕에는 주로 단독주택과 재개발된 소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었다. 반면 평지에는 재래시장과 주변의 대규모 뉴타운이 인접해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단독주택 지역과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길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파트 단지는 언덕 위로 하늘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고, 높은 담이 단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한쪽 담벼락에는 도로변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아파트 단지 내의 보도를 따라 산책해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을 위한 시설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용 키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 담 주위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아파트 단지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요새처럼 보였다. 이런 구조가 주변 지역과의 분리와 단절을 불러온다고 생각되었다.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들은 황현산의 칼럼집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되살아났다.


 

해방 직전에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저자는 신안 앞바다의 한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칼럼집은 저자의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그는 이 때의 기억을 마련해준 고향 섬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삶의 준거가 되고 있다고 밝힌다. 1986년부터 2012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쓰인 글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정서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자의 외할머니는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불을 때어 얻는 화염과 햇빛에 말려 얻는 천일염 맛을 구분했던 분으로, 화염을 넣어 만든 제대로 된 오뉘죽 맛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안방의 술을 익게 하는 귀신’, 건넛방의 메주 띄우는 귀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이제 세상의 편리와 자본의 논리에 덮여 사라져 버리고 저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만 남게 되었다. 저자는 글 속에서 자신의 오랜 기억을 심심찮게, 때론 집요하게 소환해내었다.


 

저자는 무슨 까닭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사람은 태어나 언젠가는 세상을 뜨기 마련이고, 개인의 기억은 사라진다. 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된 이 과정에 한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 대수인가. 하지만 계속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하는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단의 기억까지 포함하는 듯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191)


 

유독 유행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글에서 저자가 현대인의 망각에 줄곧 저항하는 이유를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기억의 필요는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향하고 있었다. 저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집안의 여러 귀신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이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252)이었다. 우리 몸이 시간의 역사를 담고 삶을 기억하는 매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사라져버리면, 공동의 기억을 매개로 하던 사람들의 관계망 역시 콘크리트로 덮이듯 은폐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영영 잊혀 지게 된다. 우리가 관계하던 땅과 그 땅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사라진다는 의미다. ‘요새처럼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왕래가 차단된 아파트 단지를 걸을 때 내가 느꼈던 생각들과 다르지 않다. 한 지역에 거주하는 세대수는 월등히 많아졌지만,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장소와 관계 맺기를 하지 못한다면, 삶이 줄 수 있는 가능성과 상상력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화염과 천일염의 소금맛이 아니라 그저 짠맛만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달리 맞은편 주택가의 소규모 재래시장 주변에서는 꽤나 분주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요새처럼 폐쇄적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장소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의 소멸을 우려한다.


 

저자는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204)고 예술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가 말하는 기억은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상상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각인된 기억이 사라질 경우, 저자는 우리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용산 철거 시위 사건을 두고 192인의 문인들이 공동 선언을 하고 이를 글로 쓴 일은 무엇보다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선언은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기도였을 것이다. 또 집단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의 공감하는 능력을 지켜내려는 다짐이기도 했을 테다.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불러온 단절, 대규모 뉴타운의 인적 없는 거리와 임대간판이 내걸린 수많은 빈 가게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저자가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폐허’(51)라고 언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기억을 덮고 사람의 자리를 외면한 개발의 결과는 결국 사람이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는’(51)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징후를 읽고 글로 말하고 있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 기억을 지닌다는 말은 삶의 깊이를 지니고 사람과 그의 삶을 존중하는 맥락’(97)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장소와 시간의 복원을 전제한다. 인간을 획일적인 소비 대상으로 치부해버리는 무감각에 저항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확보하여 어디에나 사람이 있음’(244)을 감지하는 일이다. ‘요새와 같은 아파트 단지는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들의 기억을 차단하고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빼앗아 가버린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지, 내 안에 타인이 설 자리를 애초에 지워버린다. 따라서 시간 속에서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길이다. 저자는 이를 시를 읽을 때처럼 우리가 잠시나마 비로소 사람이 되는’(245)일 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언급한 아파트 단지의 개발 방식과 뉴타운의 모습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청계천 복개 과정을 이야기한다. 청계천 복개 후 정리 과정에서 개발 주체 및 관련자들은 상인들과 주민들을 불암산 자락으로 내몰았다. 이 관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이어졌다. 정부와 개발 주체가 주도하여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구럼비 바위와 맺어온 기억을 파괴한 셈이다. 이는 공동체에 망각을 강요한 폭력이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눈앞의 현안으로 이를 가려버릴 때, 저자가 말하는 덮어 가리기 근대화’(111)의 모습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에서 저자가 기억을 붙들고 저항하고자 했던 이유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영원히 망각해버리고, 슬픔을 함께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마저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심지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59)고 말이다. 인간이 삶에서 관계 맺은 모든 것들에 대해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 정체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 혹은 잃고 있는 대상에 대한 애도하기를 일관된 태도로 보여준다. 청계천 복개 사업이나 강정마을 미군기지 건설에서와 같이 덮어 가리기 근대화는 집단적인 망각을 초래했고, 고통과 상처를 남겨놓았다. 저자는 공동체 앞으로 다가온 망각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우리는 삶에서 늘 패배하곤 하지만, 이따금 누군가는 공동체가 떠안은 상처와 슬픔을 치유할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시에 그 희망을 걸어 보기도 한다. 삶에서 얻은 좌절과 슬픔, 분노를 시를 통해 왕성한 생명력과 더불어 기억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삶의 깊이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시는 기억술’(204)이라는 말을 믿는 이유다.


 

저자가 주목한 관점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그가 갈구하는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이 밤의 시간에 속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낮의 시간은 이성과 사회적 자아의 시간인 반면, ‘밤의 시간은 상상력과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또 밤의 시간은 낮에 발생하고 겪었던 슬픔과 상처를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치유하고 봉합하며, 새살을 돋게 하는 소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밤의 시간은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이기도 하겠다. 이미 150년 전에 보들레르는 잘 정비된 도시의 모습에서 기억이 사라지고 상상력이 소멸된 폐허의 모습을 어둠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했고, 괴테는 그보다 더 일찍 밤의 말이 지닌 힘을 간파했던 것 같다.


 

하늘 높이 머물러라

 사랑스러운 루나여,

 언제까지나 밤이도록 자비를 베풀어라

 낮이 우리를 쫓아내지 않도록!”  (*)


 

이 대목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요정 세이렌들이 에게 해의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노래하는 대목이다. 이 세이렌들처럼 저자는 독자들이 각자의 은밀한 시간을 통해 기억과 상상력을 회복하고,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며 소생해나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만 그가 떠나고 없는 이 세계는 어둠의 입을 통해 기억을 전하던 그리오 Griot한 명을 더 잃게 된 셈이다





(*) 출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2009, 318






[1]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쓰는 사람이 된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32)
-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2009) 중에서

[2]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한다."(37)
-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2010) 중에서

[3]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광장으로 바뀐 자리에서 제 삶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50)
-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2010) 중에서

[4] "강에 댐을 쌓고 하안 공사를 하고 난 후 나루터가 없어지고 나니 거기서 일하던 기억도 사라지고 말았다고 늙은 사공들은 대답했다."(60)
- 「기억과 장소」(2010) 중에서

[5] "어떤 비평가는 작가의 윤리와 작품의 윤리를 구별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윤리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훌륭한 작품을 썼기에 훌륭한 작가로 인정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 예는 적절치 않다. 발자크는 자기 안에서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기 시대 비판의 창조적 열망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였다. 반면에 친일 작가들의 친일 행위는 그들이 애초에 지녔던 창조적 열망까지도 메마르게 만들었다."(84)
- 「<고향의 봄> 앞에서」(2011) 중에서

[6]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 속의 복숭아 씨와 살구 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그 힘을 창조력의 밑받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놓은 채, 생명에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발라 둑을 쌓아둔다면, 거기 고이는 것은 창조하는 자의 사랑이 아니라 굴종하는 자의 증오일 것이다."(100)
- 「금지곡」(2010) 중에서

[7] "이 주소의 역사는 서울이 그 주변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와 관련된 서민들의 삶을 식민화한 역사와 같다."(111)
- 「덮어 가리기와 백사마을」(2011) 중, 중계동 104번지에 있던 백사마을을 언급하며

"청계천 복개는 내가 ‘덮어 가리기 근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111)

[8]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124)
- 「시대의 비천함」(2012) 중에서

[9]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152)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겨울의 개」중에서

[10]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163)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찌푸린 얼굴들」중에서

[11] "사람의 마음 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191-192)
-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2002) 중에서

[12]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204)
- 「윤리는 기억이다」(2003) 중에서

[13] "오페라 <심청>의 대본을 쓴 사람(윤이상)에게 정작 그 착상을 도와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220)
-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2003) 중에서

[14]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 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244)
-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2004) 중에서

[15] "이 신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와 함께 그 영검이 깊어졌으며, 또한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그것들은 우리와 숨결을 교환하고 냄새를 교환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의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들이며, 세상과 사랑을 나누는 내력들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의 시간들이었다."(252)
- 「귀신들 이야기」(200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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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1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현산님 글 정말 좋아요. 기억에 대한 작가님 글들 공감합니다. 초란공님 정성 가득한 서평도 👍

초란공 2022-03-01 21:06   좋아요 1 | URL
항상 관심갖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