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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평점 :
트라우마 치료, 고통을 말하는 자에게 듣는 자의 배려가 필요하다
- 김승섭의《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2022)
김승섭 교수는 질병에 관계된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통계 자료를 살펴보는 보건학자다. 이번에 그는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서 ‘트라우마’에 주목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PTSD에 대해 이야기했다. 흔히 PTSD는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9·11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을 경험했던 이들만 겪는 증상으로 여겨지기 쉽다. 나도 막연하게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환경에서도 겪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강간과 구타, 학대와 같은 가정 폭력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건에서 외상을 경험한 이들이 소외와 고립을 겪는 상황에 주목했다. 피해자들은 말하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홀로 감내하곤 했다. 최근에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던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저자는 실제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만나고 이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PTSD 증상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는 의학 연구자들마저 피해자의 ‘결함’을 의심했다고 한다. 군인의 경우, 나약함의 증표로까지 여겨졌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이들의 ‘내부’에서 찾았던 셈이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 결과는 PTSD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 것임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 생존자들이 겪은 트라우마 증상의 유병률이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 자료는 우리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기억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많은 피해자들은 뜻하지 않게 사회의 편견과 비난, 그리고 이로 인한 수치심까지도 마주해야 했다. 그나마 세월호 사건의 경우, 극심한 심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학생들 곁에 ‘너희들이 원할 때 상담할 수 있다’라며 곁을 지켜준 의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피해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저자는 피해자들과 심리치료 현장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주목한 현실은 PTSD를 겪는 피해자들이 홀로 맞서 싸워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보여주었다. 피해자들이 치료과정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행정절차는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고통까지 전가했다. 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내면에 받은 충격과 고통의 에너지가 언어를 통해 외부로 발화되는 과정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트라우마 치료는 고통을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신뢰 위에 양쪽이 함께 손을 잡는 과정이었다. 고통을 말하는 자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할 듯하다. 트라우마 치료는 단순히 피해자에게 손길을 내미는 행위로 끝나지 않았다. 듣는 자가 고통을 말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지도 고민하고 배려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1] "PTSD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심한 외상 경험 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인 정신과 질환이다."
[2] "강간과 구타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성폭력과 가정 폭력은 여성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의 범주 바깥에 있다." -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에서 재인용된 문장.
[3] "PTSD 치료에서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직후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험이기에, 그 회복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4] "PTSD 치료의 핵심은 생존자를 지지해주며 그가 준비되었을 때 트라우마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5]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 -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에이즈와 사유」, 167면에서 재인용된 문장.
[6] "트라우마는 예상해본 적 없는 외부 힘에 의해 자아가 손상당하는 경험이다. 삶의 통제권을 빼앗긴 기억이다."
[7]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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