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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무한한 자유와 상상력을 품었던 공간, 이제는 ‘우리의 바다’로
- 주경철의《바다 인류》(휴머니스트, 2022)
바다는 인류사의 중요한 무대다. 지구 표면의 70%가 넘는 바다는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장애물이었던 반면, 육지와 다른 장점을 갖춘 통행로이기도 했다. 이 논지는 《일요일의 역사가》, 《대항해 시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로 대중에게 역사를 친숙하게 소개해온 주경철 교수의 신간 《바다 인류》(2022)의 큰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연구 분야인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경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안목으로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시리즈와 같은 주목할 만한 번역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도서는 바다와 함께 해온 인류 문명사에 대한 오랜 관심과 연구 사항을 총정리한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전작 《대항해 시대》 역시 바다를 매개로한 역사를 면밀하게 다루었다. 다만 이 책은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준 근대의 형성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이번 작업은 인류가 바다와 상호작용해온 역사를 보다 긴 호흡으로 추적한 역작이라 볼 수 있다. 《대항해 시대》 가 중세가 마무리되고 근대가 시작하는 인류사 시기의 여러 장면을 해양이라는 무대 속에서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본 작업이었다면, 《바다 인류》는 같은 맥락에서 바다를 탐험하고 도전해온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다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고고학 연구가 아닌 이상 인류의 역사는 무엇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남긴 문자기록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 시대’란 이런 특성을 반영하고 여기에 의존하던 시기이므로, 문자가 등장하여 기록된 매체가 역사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현재 인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랜 문자로 수메르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들 수 있다. 이들 문자와 기록은 5000년에서 8000년 전의 인류가 ‘이미’ 문명을 이루고 있었고, 또 이들이 이미 바다로 나가 필요한 물자를 운송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관심을 지니고, 고대 문명이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개척했던 역사가 궁금했다. 문명 초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양으로의 진출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메소포타미아나 아프리카 고대 왕국에서 신전과 같은 건축물, 선박과 같은 목재 구조물을 짓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여 거대한 바위와 목재를 나르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최근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철학 등 고전에 대한 소개가 활발하다. 내게도 조금 익숙해진 지중해 지역(유럽과 아프리카, 근동 지역이 만나는 곳)의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주변의 문명과 인도양 지역의 문명(아프리카 북동부와 인도)이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통해 연결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흐름이 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중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해양 네트워크의 한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육상의 ‘실크로드’ 뿐만 아니라 해양의 ‘진주길’이 만들어진 역사는 도전적이고 동시에 역동적이었다. 이 역사의 한 가운데에 목숨을 건 말레이인들의 중개무역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해석된 역사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번 독서에서 인상 깊게 주목한 부분은, 저자의 세심하고 균형감 있는 역사적 안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명에 익숙하고, 이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초기 지중해 세계가 그리스-로마의 독무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양한 민족들이 협력과 투쟁을 하며 복합적인 역사 흐름이 이어지는 곳’(69)이라고 말한다. 서양 역사가 혹은 이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역사가들의 설명을 왜곡된 설명이라 지적하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는 “그 역사 흐름은 일직선의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성장·후퇴·갱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바다는 다양한 문명들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떠오르는 창조적 공간이었다”(69)라고 알려준다.
[로마제국의 지중해 점령지역]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식민지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균형 잡힌 설명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문명)와 ’그들(야만)‘간의 대립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나아가 그리스라는 문명이 일사분란하게 지중해 지역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문명을 수호했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중해 세계의 식민지화 양상을 고려할 때 흔히 적용되어 온 셈이다. 이에 저자는 ‘단일 구조 아래 일부 주민을 내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설명은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인간이 항해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소통했고, 그 가운데 형성된 ‘네트워크’가 확대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에는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종교 및 문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지식, 물자가 유통되어 왔다는 점이 핵심이 되겠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문화 자산이 전달되는 해상네트워크의 중첩이다.”(109)
이처럼 지중해 네트워크는 점차 확대되어 인도양 네트워크 및 태평양 네트워크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갔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의 해양 네트워크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섬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 역시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운하와 해운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대목이었다. 중국의 수나라는 단명했지만 양쯔강과 황허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공사를 2대에 걸쳐 단행했다. 이 공사가 국가의 운명을 단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문화적으로 화려한 중세 황금기를 견인했다. 중국이 상이한 지역의 인적/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대한 땅에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역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대운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개방된 바다에 접해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통제가 훨씬 어렵고 그 역할도 미진했다. 이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지역을 통합하는 추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몰락은 이후 유럽의 역사에서 중국과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유럽 주변의 전쟁처럼, 저자는 ‘유럽 대륙은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의 분열된 조합 양상으로 역사가 진행’(220)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던 중국의 대운하 사업이 역사에 영향을 준 유일한 부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저자는 대운하가 경제 성장을 가속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폐쇄와 내향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결국 중국과 유럽 문명이 각각 제국과 국민국가라는 상이한 길로 가게 된 이유를 통찰하면서 ‘대운하’를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학자가 주목한 주제를 저자가 직접 짚어주고 해석하는 대목과 만나는 부분이 이 책을 읽는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후 중국과 이슬람권의 역동적인 교류 및 교역이 아시아 해양 세계를 한동안 특징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팽창하게 되는 이슬람 문명이 가져온 세계사적 영향은 근대의 기원을 열어젖힌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로서 인류의 역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해양 네트워크를 매개로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통한 팽창이 ‘제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예비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은 제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지니는 함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다에 초점을 맞춘 인류 역사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통찰하고 있다. 오늘날의 바다를 다룬 장에서는 무엇보다 현재 인류가 마주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환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및 미국과 같은 ‘제국’ 사이의 새로운 경쟁과 충돌 양상은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에게 지구 환경 변화의 문제, 지구적 오염 문제보다 더 큰 위기감을 주는 문제가 있을까싶다. 이 문제의 징후가 무엇보다 바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빙하가 영구적으로 사라져버리고, 공유 영역으로서의 바다는 플라스틱 오염원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 이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고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 바닥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일 뿐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는 거북이나 몸 안의 소화관에 미세 플라스틱을 지니고 있는 해양 생물 역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까. 이제 인류는 전체의 운명이 걸린 실존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바다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의 역사, 특히 문명이 바다로 진출한 역사는 자연과의 대결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모았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는 우리가 다시금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경고를 준다. 저자는 로마인들이 바다(지중해)로 나갔을 때, 바다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변화와 오염을 고려할 때, 자연 변화와 환경 오염은 특정 국가나 이들에 속한 영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구의 바다 전체가 곧 ’우리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지구에서 운명을 공유하는 ‘지구인’으로서 말이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인들의 인도양-태평양지역 확산 흐름]
이 책은 ‘인류에게 바다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 물음은 태평양의 오스트로네시아족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확산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문양이 들어간 라피타(Lapita) 도자기 문화는 바다를 건너 확산되고 공유되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바다가 무한한 자유를 가진 공간이자 하나의 거대한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였을 것이다. 바다라는 세계를 마주했던 인류는 대상 세계를 해석하고 반응했다. 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지식을 개발하고 집단 지성을 이루어왔다. 이번 독서에서는 인류가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과감하게 도전하고 모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완성한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