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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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은유 지음 | [유유]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읽기와 쓰기

 


이번에 쓰기의 말들을 통해 은유 작가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글 자체가 내게 불쾌감을 주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들춰놓고, 내 안의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경험을 주기 때문이었다. 항상 결핍에만 주목하던 내가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지니고 누려온 사람임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글 쓰는 노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삶의 현장에서 글을 쓰며 사유의 근력을 키워온 작가였다. 어쩌면 무의미한 반복에 가까워 보이는 글쓰기 노동자로 일하며 유의미한 사유를 캐냈던 사람이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이라고 언급하며 각자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삶을 끌어와 한 줄씩 써보라고 조언한다.


쓰기의 말들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구조에 따라 쓰인 글쓰기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서 길어낸 깨달음을 차곡차곡 모아둔 글쓰기 도움말 상자 같다. 혹은 작가의 영업 비밀과도 같은 말들을 모아 펼쳐 놓은 책에 가깝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엇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 부끄러워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솔직함에 한계가 보이는 글들을 쓰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 대상이나 주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만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삶과 다소간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의도했던 모양이다. 그럼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울분을 과감 없이 다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해본다. 대신 저자는 줄곧 자기 삶의 맥락을 만드는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읽기와 쓰기는 삶의 맥락 만들기로서의 공부였다.


따라서 작가가 글쓰기를 할 때면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이 과정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하는 시도로 나아간다. 이 때 저자는 자신의 지각과 감성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나 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게 된다’(221)고 일러주었다.


작가의 글이 그의 몸에서 나와 내게 스며든 느낌이다. 쓰기의 말들은 얇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삶에서 끌어 올려 팔딱팔딱 뛰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머리 아프게 고민하기를 피해왔던 문제들을 저자는 독자의 사유를 갱신하는 글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어느덧 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지식을 많이 습득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는 쓰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1]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49)

[2]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75)

[3]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말"(90)
- 정약용이 언급한 표현

[4]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진 의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109)

[5]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167)

[6] "하고 싶은 일이면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든다." (181)

[7]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어조, 억양,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187)

[8] "굳어버린 지각과 감성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과 울분이 사유를 갱신하는 글을 낳는다."(211)

[9]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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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1-11-05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기의 말들. 단단하고 치열한 책이죠?^^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란 ˝쓰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비결˝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지금 은유 작가의 < 글쓰기의 최전선> 읽고 있는데요. 글쓰는 이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쓰기의 말들.가슴에 새기고픈 글귀가 많아 좋아요^^

초란공 2021-11-05 01:03   좋아요 0 | URL
처음에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더 좋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저도 줄치고 싶은 곳이 많아서 다시 보려구요~
 
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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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 종교의 역할을 묻다

 


몇 년 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있는 어느 언덕에 올라 분리장벽 너머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바라본 적이 있다. 장벽 너머에서는 검은 연기가 무언가를 태우며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독수리 떼는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며 장벽 너머를 바라보는데, 돌연히 총격이 시작되었다. 대응사격이 시작되며 한동안 총소리가 이어졌다. 이들은 공통의 신을 섬기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었나. 외모로 서로를 구분하기 힘든 이들이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향해 공허한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세계다. 인류는 과학 혁명으로 미신을 극복했고, 이성에 힘입어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여전히 확장하고 있다. 반면,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와 신앙은 긴장감이 감돌던 가자 지구처럼 현실 세계에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면서도 그 입지는 점점 감소했다. 언뜻 보기에 과학과 종교는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동일 교수는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 종교적인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신앙과 종교가 인간과 맺어온 관계를 살피고, 종교와 신앙의 역할을 묻고 있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던 뱀은 인간의 분별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리분별은 인간과 세계의 모든 것을 구분하고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은 공동체의 규범과 관습을 만들고 법을 제정하여, 수치심과 죄를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초기의 종교는 삶의 조건을 형성한 사회장치 중에서 법, 의학, 과학과 같이 분별이 담긴 산물마저 통합한 형태로 인간의 삶을 규정했다. 오늘날 종교의 입지가 감소한 현상은 초기 종교의 역할이 점차 세분화되며 축소된 것으로 이해된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순간부터 종교의 입지 감소는 필연적으로 예견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사례는 서구 유럽의 정교 분리 현상과 같은 세속주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자 지구에서 보았던 평화로운 풍경과 돌연한 총격의 장면, 저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리조치로 엄마를 만나지 못해 울던 아이를 바라본 경험에 존재하는 모순을 비로소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조리한 인간이야말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신을 필요로 했고, 부조리한 신을 만들어 이를 숭배했던 장본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이 드러내는 부조리함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본질적이기도 하다. 이는 종교가 오랜 시간 세속의 힘과 권위를 욕망하고 여기에 의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서구 유럽의 세속주의 흐름은 종교가 현실에서 힘과 권위를 하나씩 내려놓게 된 과정이었다.


 

저자는 종교와 신앙이 인간의 삶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우리의 믿음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서구 유럽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지배했다. 여기에서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이해를 토대로 생겨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오랜 지혜가 축적된 유산이자 공동체 유지 시스템이기도 했던 셈이다. 따라서 종교가 바라보는 인간은 그 자체로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종교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관용을 사람들에게 제의하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불교의 자비심, 기독교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같은 가르침은 종교가 인류에게 제시한 가장 중요한 지혜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는 신 혹은 절대자의 말을 경청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요구했다. 이제 세속적인 권력과 힘을 내려놓은 종교가 신앙이 옅어진 현대인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 이 깨달음이 종교가 제공하는 인간과 공동체 이해의 핵심이 아닐까. 삶의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다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를 소외시키는 유무형의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얼굴을 마주하고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자는 바로 내 앞의 존재에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고 경청할 때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지혜를 일러주었다. 그러면 지금의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인류의 오랜 지혜를 환기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1] "인간이 그토록 전쟁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이 결국 동일한 신에 대한 믿음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 비애가 있습니다." (41)

[2]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42)
- 이스라엘 십자가의 길 초입에 있는 예수가 했다는 말의 라틴어 글귀

[3] "타인을 바라보는 만큼 더 절실히 주의를 기울여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해 연구하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 내면을 바라보는 눈앞에 등불을 켜서 들어야 합니다." (43)

[4] "오늘날 우리는 미래 세대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락한 삶을 사는 법만 강요할 뿐,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일어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65)

[5] "저는 누군가의 아픔, 실수와 실패가 불명예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이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나 공동체가 불명예스럽다고 느꼈습니다." (84)

[6]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136)
- 마태오 12:7에서 재인용한 예수의 가르침.

[7]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자유에만 큰 방점을 찍고 행동한다면 사회나 이웃과 불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을 믿고 그 뜻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 나와 내가 속한 종교 공동체의 행동이 이웃에게 고통을 주거나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더 나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137)

[8]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단 하나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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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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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 Vie de David Hockney

카트린 퀴세 지음 |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

 



‘우리는 삶의 열정적인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프랑스 작가가 현존한 화가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은 작가가 모든 사건을 사실적인 기록에 의존하되, 구체적인 대화나 인물의 생각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을 일찍부터 보여준 화가. 동시에 성소수자로서 삶을 살았던 호크니의 다이내믹한 삶을 흡입력 있게 담아냈다. 이 점이 작가 카트린 퀴세의 연구와 글쓰기 스타일에 주목하게 한다. 오죽하면 이 책을 읽어본 호크니가 퀴세에게 이 책의 나는 나와 똑같아라는 답장을 해주었을까 싶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한 번도 호크니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작가는 작가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들어 화가를 재구성했다.


외국 위인들에 대한 평전과 국내 위인들에 대한 평전이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작가와 대상과의 거리감이 아닐까 한다. 우선 국내 인물에 대한 평전은 대체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그려지는 것 같다. 도덕적으로 흠결하나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물로서, 고난을 겪지만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내는 인간상으로서 말이다. 읽다 보면 찬양일색인 작업들이 많아 금세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이 책을 비롯하여 여러 외국 위인들의 평전은 대상의 성적정체성을 비롯하여, 내밀한 사생활, 좌충우돌하며 문제를 일으켰던 일 등 사회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지탄받을 만한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생활 정보를 일일이 노출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솔직하게 묘사된 인물을 만나고 싶은 독자의 욕심이랄까. 이런 솔직함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을 구성할 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문화적 차이, 혹은 정서의 차이므로 모든 독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찬양으로 일관하는 인물 평전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반영된 작업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호크니의 삶을 꽤나 솔직하게 반영한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었다면 호크니 혹은 화가의 가족들이 소송을 걸고 출판을 막았을 것 같다. 인물에 대해 신뢰와 균형감을 보여주는 평전은 작가가 대상이 되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은, 나약한 인간이기도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럼에도결점을 끌어안고 살아갔던 인물을 과감 없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인물이 자신의 결함을 발판삼아 이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업적을 이루어냈을 때 독자는 대상에 대해 더욱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자신에게 거짓이 없이 살고자 했던 호크니의 삶을 작가 역시 과감 없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다른 특징은 화가의 삶을 다루면서도 책에 그림 한 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작가의 의도로 보였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대학생 시절부터 평생 유명세를 탄 화가이기도 하고, 그의 많은 그림들이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기 때문이었을까. 호크니의 그림에 익숙한 독자들은 작가의 설명만으로도 기억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가 해당 그림을 작업했던 배경에 주목하게 한다. 그의 작품을 모르는 독자도 그림으로 산만해지지 않고 화가의 삶으로 줄곧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느 쪽이든 저자는 그림 한 점 없는 이 책에서 화가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수 년 전에 호크니의 전시도 관람했기에, 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을 참고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참고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은 마르코 리빙스턴(Marco Livingstone)이 지은 David Hockney라는 책에 거의 다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퀴세는 이 책을 쓸 때 참고하기도 했다.


호크니의 전시회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책에서 호크니의 작업을 언급한 부분 중 호크니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이 흥미로웠다. 지인이 놓고 간 대량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보고 호크니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곧바로 떠올렸다.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만 나오는 고정적이고 전통적인 회화의 시점에서 탈피하여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 경우 호크니는 사진 한 장, 그리고 다음 한 장을 찍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 혹은 움직임을 자신의 작업에 추가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화가의 폴라로이드 작업이 회화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진이 순간을 포착하고 정지하는 작업이라면, 회화는 시간의 흐름이 작업에 축적된다. 호크니는 카트린 퀴세의 표현대로 사진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동시에 촬영자의 시선이 이동된 상태에서 여러 장을 찍어,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회화의 문법도 탈피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퀴세는 호크니의 사진 작업을 사진 그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호크니가 화가의 입장에서 사진을 활용했지만, 이 작업이 나올만한 씨앗은 이미 호크니가 평생 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에서 지인이 다이빙을 한 직후의 장면을 그린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을 보자. 노란 색의 다이빙대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면 파란 수영장 표면에 입수 후 물이 어지럽게 튄 장면과 만난다. 퀴세는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60) 이 대목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과 시간성이 반영되는 회화의 차이점과 특징을 어느 이론보다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이 책은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단숨에 읽도록 한다. 작가는 호크니의 삶에서 파악한 삶의 본질을 명민하게 관통한다. 화가의 그림과 창작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 호크니의 삶에 독자가 더욱 다가가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거짓 없이 살고자 했던 화가. 호크니는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고, 세상에 감탄하며, 금지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이다. 화가 호크니는 우리가 회화와 사진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아가 인간 호크니는 삶과 예술을 어떻게 즐겼는지 보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호크니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삶을 보다 열정적으로 탐험하라고 주문한다. 


 

 


 


[1]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 (60)

[2] "마흔다섯 살에도 삶은 여전히 당신에게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 즐겁게 지내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도전하면 된다. 즐거움과 두려움의 비명을 용기 내여 지르고, 디즈니랜드를 사랑한다고 씩씩하게 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솜사탕을 먹고,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완성한 결과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놀고, 어른이라서 스스로 금지했던 일을 하라.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 (134)


[3] "30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조합한 작품은 한순간만 고정하는 단 한 장의 사진과 달리 관객의 공간과 시간을 따라 한 장 한 장 지나가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은 사진이라기보다 ‘사진 그림’이었다. (...) 그는 시간과 움직임을 집어넣어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137)


[4]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탐험합니다." (155)

: 피카소의 말

[5] "처음부터 그는 삼차원의 세상 앞에서 그가 느낀 감탄을 이차원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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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1-02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년도에 ‘데이비드 호크니‘전에 다녀왔는데 그림을 보자마자 뭔가 특이하고 산뜻해 넘 마음을 뺏겨 열심히 관람한 기억이 나요. 한국 전시회인데 그림의 갯수가 많은 것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그 그림들이 팔리는 액수에 또 한번 기함했어요. 어떤 작품은 왜그리 비싼가에 대헤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호크니의 작품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초란공 2021-11-03 00:14   좋아요 1 | URL
저도 아내따라 관람했지요. ^^; 도대체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한 사람이 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이패드까지 쓰시는 분이라 ㅋㅋ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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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우연한 인연에서 재발견하는 나눔의 가치

 


나는 자타공인 집돌이. 물론 일단 집을 나와 어딘가에 가게 되면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사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그저 한 곳에서 평생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시에서, 그것도 집을 마련하느라 빚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 장소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았던 에세이 몇 편을 읽다보니 무엇보다 사람들(저자들)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집돌이의 대리만족인 것일까. 특히 저자가 자신의 글에서 소개하는 우연한 만남이 시간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무뚝뚝한 내가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내 생애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법한 이야기들. 저자가 만난 인연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신기하다.


에세이스트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하정 작가의 에세이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인연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이야기다. 여행에서 덴마크인 쥴리와 대화하게 되면서 서로를 친근하게 여기게 되고, 그 여성이 저자를 초대하면서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 저자는 쥴리의 집에 가서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이어서 그는 어머니이자 평생 금속세공을 했던 디자이너 아네뜨를 저자에게 소개한다. 우연한 만남과 스몰 토크로 시작된 순간은 타인이 나누어주는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덴마크 가족의 집에서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특징은 오랜 기억이 집안 곳곳에 묻어 있다는 점이다. 몇 대 조상부터 써오던 가구, 책상과 책꽂이, 식기류 등이 집 안에 가득하고, 물건 하나하나에는 추억이 있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가 덴마크에 가서 살게 되면 아무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그런 소품들,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쉽사리 정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가족이 내게 말도 없이 그런 물건을 내다 버린다면 내겐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또 물건에 스며든 가족의 추억과 이야기는 가족의 의식으로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 아네뜨 할머니의 아버지 어위(Aage)는 꽤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어위의 직업적인 정체성보다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어디를 가든 딸에게 엽서를 써보냈다는 점이다. 가까운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고 나서도 어위는 그날의 감상을 엽서에 써서 딸에게 보냈다. 해외여행을 가서는 물론이다. 이렇게 평생 모인 아버지의 엽서는 아네뜨 할머니가 평생 간직해온 소중한 보물이었다. 가족의 작고 사소한 의식,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을 담은 메시지가 시간과 함께 가족 공동의 기억이 되고 유산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볼 때, 가족 내에서 이러한 무형의 의식이 소중한 유산이 되는 일. 우리가 주식과 부동산 얘기가 끝나면 공허해지는 것은 소중한 것을 나누는 일이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타인의 에세이에서 내가 관심 있게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은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구성원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특별한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가정 밖에서 타인에게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디선가 읽은 폴 발레리의 선문답 같이 낯선 문장이 친근하게 보인다.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내게는 이 문장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망치 같은 문장으로 다가온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타인을 만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인연이 이 책에 있다. 집돌이인 내게는 아마도 남은 인생에서 만들기 힘든 인연의 이야기다. 우연한 인연이 이어져 놀라운 이야기를 소유하게 된 저자는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일 테다.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많은 사람은 삶에서 허기지지 않을 것 같고, 메마르고 힘겨운 인생에서 다시 일어날 기운을, 언제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이처럼 삶에서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이들이 부럽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관계하는 이들과 소중한 것을 만들어나가고 이걸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1] "여기에서 나는 어릴 때 가지지 못한 장난감을 가지고 안전하게 놀고 있다. 같은 놀이를 좋아하고, 서로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133)

[2]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181)

[3]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감사하는 바입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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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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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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