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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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유명하다는 미드나 일드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드라마 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중국의 화제의 최고 인기드라마 <랑야방>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2011년 중국 온라인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끈 뒤, 독자들의 요청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동명의 54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송된 후 50개 도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드라마 웹사이트 35억 뷰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2015년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 중화TV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 갱신은 물론 국내 '중국드라마 열풍'을 몰고온 수작이라고 하니 비록 드라마는 몰라도 이 소설에 관심을 두기에는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전 3권으로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와 복수, 우정과 사랑, 인간 본성을 파헤진 무협정치사극으로 570권에 달하는 두꺼운 페이지에도 지루할 틈없이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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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대량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사기꾼 집단이라고도 불리우는 천하에 모르는 일이 없다는 랑야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랑야각에는 천하를 움직이는 인재들의 순위를 기록한 문서, 바로 랑야방이 있으며 그 중심에 이 책의 주인공인 매장소가 있다. 그는 무예를 전혀 하지 못하는 병약한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랑야각에서 발표하는 량야공자방의 서열 1위를 차지 하고 있으며, '기린기재: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뛰어난 재사이다. 사실 그는 소년 장군 '임수'였던 12년 전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이끄는 적염군을 잃게 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의 목표는 자신의 절친이자 세력이 전혀 없는 정왕을 황제로 등극시키며 명예회복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왕 소경염은 일곱째 황자로 아버지 황제의 미움을 받고 있지만 매장소의 지략으로 황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듯 통쾌한 복수극의 줄거리를 담아냄으로써 권력,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케하지만 매장소와 예황군주의 로맨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임수와 약혼한 사이였던 예황이 매장소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책을 읽는내내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할 수 있기에 다음 권이 더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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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드라마는 어떤 영상을 보여주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더욱이 표지 속 주인공의 옆모습이 또 얼마나 잘생겼는지.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싶다. (^^) 방대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흡입력있게 다가온 작품이다. 그동안 중국 소설을 많이 접해본 적이 없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였는데, 이 소설이 중국 소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준 듯 싶다. 매장소의 통쾌한 복수, 지략 그리고 로맨스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었다. 2, 3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그의 매력에 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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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랑야방 1'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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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오면
현현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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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폴리오는 네이버에서 운영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팬들의 커뮤니티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전시, 연재하며 창작자들이 대중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소통 창구라고 한다. 그중 스트로픽은 창작자들의 그림을 일정한 주제 하에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연재하는 코너인데 <<파리에 비가 오면>>은 그라폴리오의 인기 스토리픽 중 하나로 수백만 건에 이르는 조회수와 4만 회 이상의 '좋아요'를 얻은 작품으로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이 독자들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얻었단다.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작품에 대한 신뢰도도 있었고, 눈길을 끄는 책 제목과 삽화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이력이었다. 작가 현현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때 회사원으로 지냈지만 뒤늦게 그림을 시작해 늦깍이 그림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용기, 꿈에 대한 열정에 대한 부러움과 감탄이 책에 대한 호감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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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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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를 좋아하는 건

비를 통해서만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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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상에 그쳐버린 나의 옛사랑

난 늘 비를 생각한다. (본문 70p 'Walking in the Rain'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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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좀더 성숙해져가던 시기에 비는 유독 그리움을 가져다 주었고, 나를 센치하게 만들어 주었다. 회사 동기와 함께 근무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정면으로 보이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 감상에 빠져있던 때도 있었으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 이 책과 함께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비는 정말 그리움인가보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 그리움……. 낭만적인 장소 파리에 내리는 비 그리고 사계절 속에 옛 연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낸 저자는 서정적이란 이것이다, 감성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채화 풍의 삽화는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니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잠시동안 그 기억과 추억 속에 잠겨볼 수 있을 듯 싶다. 진한 밀크 커피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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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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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아직 비를 좋아하나요?

비는 내가 유일하게 그대를 만나고

맞이하는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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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이유

내가 사랑하는 이유

그대가 그림이 되는 이유처럼… (본문 37p '비가 내리는 이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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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헤어지고 혼자 남겨진 이가 옛 연인을 그리워하고 그와 함께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슬프고 어두워야 할 듯 싶지만, 정작 이야기는 모두가 위로받을 수 있어 따뜻하기만 했다. 사랑의 기억을 안고 있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다, 이별의 아픔보다는 사랑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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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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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보면 생각에 잠겨요

누군가 떠오르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속에 벅차올라 이내 감격하고 또 감동하곤 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비를 보고 있을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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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는 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어요

누군가 지어준 집도 있고 밥을 주는 사람도 여럿 있죠

비가 올 때면 그들은 늘 비를 보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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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부럽기도 해요 (본문 111p '비 구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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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시국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은 팍팍하고 사막하고 우울하다. 더욱이 이 찬 가을 날씨로 인해 더욱 쓸쓸해지는 요즘이다. 그럴 때 이 책이 단비가 되어 팍팍한 마음에 촉촉함을, 옛 기억이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기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라 권해본다. 지금의 나는 '나도 한 때 그런 열정을 가진 때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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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파리에 비가 오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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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안에 담은 것들 -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이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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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를 대동하고 아차산 둘레길을 걷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잊고 산지 오래다. 겨울이 지나 이제 걷기에 좋겠거니 했더니 금새 더워지고 더위가 가셔 이제 걸을만 하겠거니 했더니 금새 또 추워졌다. 어쩌면 이렇게 날씨 핑계를 대면서 산책이 주는 여유로움 대신 귀찮음을 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버스 정류장까지는 10여분의 시간이 걸린다. 매일 오가는 거리지만 한 번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없이 늘 바쁘게 걷고 바쁘게 지나친다. 산책이 마치 사치인 것처럼. 그러고보니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본지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문득 걸으며 바라봤던 주변이, 걸으면서 잠겼던 사색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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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걷기. 나를 벗어나는 두 발이 있다. 걸을 때 생각은 생각의 독자 노선으로 멀리 멀리 간다. 산책의 권리는 생각과 두 발이 '따로 또 같이' 갖는다. 이 분리, 이 사용법은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 또는 히든카드. (본문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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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원의 첫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은 이병률 시인의 말을 빌어 '한 시인의 산책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 하겠다. 저자 이원은 산책에 대해 '산책은 나를 간명하게 만들어준다. 간명해진 몸으로 삶 속에 머물게 하며 빛이 사라지지 않게 해준다. 산책은 희망이다. 어느 순간에도 나를 돌보는 손길을 거두지 않는 엄마처럼, 아픈 희망이다' (본문 9p)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산책에 매혹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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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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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흐르는 것이라고 믿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 것 사이. 공간: 채워지는 것과 비어 잇는 것 사이. 또는 사라지는 허공과 나타나는 허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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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는 언제 메워질까. 사이 안에 다 있다. 사이가 사라지면 시간도 공간도 욕망도 당신도 사라질 것이다. 사이가 사라지면 삶과 죽음이 바로 옆이었다는 것, 모든 언어는 하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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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사라지면 멈춘다. 그 자리에서 썩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를 꿈이라고 희망이라고 삶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사이를 결핍이라고 환영이라고 부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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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기 때문일까? 산문집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문장들이 읽는 동안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상상력을 더해주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천천히 걷는 것을 산책이라 생각했던 나의 산책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하게 되는 듯 했다. 엉킬 때, 가벼워지고 싶을 때, 종이비행기를 날리듯 어떤 것을 잊고, 잃고 싶을 때, 고요해지고 싶을 때 산책은 나를 벗어나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산책은 매일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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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와 함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가보지 못한 홍대 골목 골목이 익숙해지는 느낌처럼. 그저 걷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산책의 의미를 부여했던 나와 달리 작가는 삶과 산책을 닮을 꼴로 보며 산책 속에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산책은 그저 두 발로 걷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떠나는 가장 쉽고도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게다. 기억, 사람 등을 담아낸 '산책의 역사'와 마주하면서 나 역시 그 산책의 역사를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산책 속에 나도 기억과 사람과 그리움과 나를 담아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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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를 산책할 수 없다면 나 스스로를 산책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하여,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할 때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 너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문장대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주저앉아서, 때로는 한없이 울면서 사람을 배워간다.
오늘도 사람 속을 걸으며 사람과 이별한다. 이별하며 사람을 이해한다. (본문 169,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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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산책 안에 담은 것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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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이 가득한 책장 라임 청소년 문학 23
조 코터릴 지음, 이보미 옮김 / 라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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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나 표지에서 상큼함이 물씬 풍기는 청소년 문학입니다. 최근 읽은 청소년 소설은 왠지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이었기에 내심 발랄함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큼발랄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렇다고해서 실망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고 주인공 칼립소와 친구 메이가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어 강한 흡입력을 지닌 스토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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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소는 책을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런 칼립소에게 전학온 메이가 같이 놀자고 말했을 때 칼립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왜냐면 칼립소는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한다'는 아빠의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아빠는 늘 내면의 힘을 강조해오셨어요. 사실 칼립소와 아빠는 엄마가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뒤 사람들과 단절된 채 책 속에 빠져 지냈습니다. 칼립소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란에 '이 아이는 외톨이입니다' 혹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어도 아빠는 오히려 선생님들이 내면의 힘에 대해 고민하거나 배운 적이 없는 탓이라고 혀를 차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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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빠는 스스로 '일생일대의 걸작'이라고 부르는 <레몬의 역사>라는 제목의 원고를 쓰고 있고 칼립소는 <폴리애나>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지만 칼립소는 메이가 떠올랐지요. 그리고 다음날 영어 시간 모둠 수업 시간에 우연히도 메이와 짝이 되면서 둘은 단짝이 됩니다. 칼립소는 메이의 집에 놀러가게 되면서 메이 가족의 떠들썩한 다툼과 화해, 사랑을 느끼게 되지요. 어느 날 엄마의 작업실을 서재로 쓰고 있던 칼립소의 이야기를 들은 메이는 칼립소의 책으로 가득 찬 방을 가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 적 없었던 칼립소는 메이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고 서재를 구경시켜 주려던 칼립소는 엄마 책이 줄지어 꽉꽉 채워져 있던 서재에 책은 온데간데없고 레몬만 잔뜩 놓여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외출 후 돌아온 아빠는 레몬을 놓아둘 공간이 필요해 엄마의 일부나 다름없는 책들을 축축한 창고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화가 난 칼립소는 손에 잡히는 대로 레몬을 집어 바닥이며 벽이며 책상이며 마구 집어 던졌고, 이 모습을 보게 된 메이 엄마를 따라 메이의 집으로 가게 되지요. 이후 칼립소와 아빠는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나온 사람들과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빠는 칼립소를 보호하기 위해 칼립소가 마음에 굳건한 벽을 쌓아서 아빠처럼 상처받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지금껏 애를 써온 것임을 칼립소는 이해하게 되요. 하지만 칼립소는 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빠가 틀렸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아빠에게 칼립소가 필요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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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있으면 그 길을 더 근사하게, 또 쉽게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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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이 가득한 책장>>은 이렇게 엄마의 죽음으로 상처를 받고 마음을 굳게 닫은 아빠와 칼립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칼립소는 평범한 가정에서 밝게 살아가는 메이네 가족을 통해서 아빠와 자신의 삶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요. 그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칼립소의 성장과정은 독자들에게 타인과의 교류, 관계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칼립소와 아빠는 알지 못했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는 곪고 곪아서 더 큰 아픔을 가져오고 있었어요. 메이와의 만남을 통해 칼립소는 자신의 마음을,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고 결국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 의지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또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더욱 메말라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게 더 큰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네요. 타인과의 교류, 그 가치를 잘 알려준 의미있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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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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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 <<더 걸스>>는 초고 상태에서 36개국 판권 판매, 영화화 판권 선 판매 등 미국 현지에서 출간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뉴욕 타임스 12주 연속 베스트셀러, 영화화 예정, 언론의 극찬으로도 이 소설에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은 '성장 소설'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는 중2병에 걸린 딸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면 사춘기 시절의 내가 범한 오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 자주 찾는 장르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주저없이 선택한 책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것은 흔들리는 십 대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음에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탓에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화적 이질감을 배제하고 주인공 이비의 감정, 상처만을 본다면 좀더 쉽게 공감할 수 있었을지 않았을까? 나의 독서력을 원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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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때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내 걸음이 너무 빠른 건 아닌지 신경 쓰고,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어색하게 구는 걸 남들이 알아보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모두가 내 행동을 계속 지켜보다가 모자란 점을 알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본문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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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된 이비 보이드는 친구 댄의 아들 줄리언과 그의 여자친구 섀셔를 만나게 되는데, 줄리언은 이비를 광신 집단에 있었던 자신을 기억한다. 이비는 그들이 자신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눈길은 의외로 경외감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 피비린내를 생생히 풍기는 제목이 달리고 범죄 현장 사진이 인쇄되었던 그 사건에 이비가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그들과의 만남으로 이비는 1969년 그해 여름의 막바지였던 열네 살의 자신과 열아홉살의 수전이 있던 그 해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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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용기와 한계를 넘어 밀고 가려는 힘을 한껏 그러모았고 그 뭔지 모르는 것을 즐기려 했다. 나 자신이 내 몸 안에 갇힌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 자신이 수전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의 눈부신 흐름을 따라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으면서 그렇게 평범한 느낌이었다니. 그렇게 쉬울 수 있었다니. (본문 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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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남부 캘리포니아는 폭력과 약물, 반전운동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던 때라고 한다. 이 책이 1969년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던 소녀들이 5주에 걸쳐 몇몇 지역에서 저지른 9건의 끔찍한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하니, 그 당시 불안했던 사회를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사회 배경과 더불어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열네 살의 이비는 어느 날 공원에서 야하고 경박하게 웃고 있는 히피 소녀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비는 그 소녀들이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보며 가족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중 이비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만 야하고, 안달 나게 만드는 느낌을 가진 수전이라는 소녀에게 매혹되어 그들과 함께 버려진 목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자유와 우정을 갈망하던 이비는 그들의 일부가 되고자 했고, 수전처럼 되고자 했기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끝내 상처만 남은 그 해 여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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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는 수전에게, 세상에게, 무언가를 갈구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그리고 아마 수전도, 그 소녀들도 모두 무언가를 갈구했다. 자기 인생을 내던질 만큼 무모하게도. (본문 3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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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르고, 사회가 다르지만 혼란스러운 자아, 자유를 갈망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 유치가 있는 소녀들의 심리는 다르지 않았다. 그런 탓에 문화적, 사회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고 갈망과 상실이 존재하는 소녀의 성장과정은 충분히 눈여겨볼 만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키기며 새로운 고전이 될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소설로 인해 '찰스 맨슨' 사건 역시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로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으나 영화는 어떻게 보여질지 사뭇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할 듯 싶다. 이비의 심리, 당시의 상황을 좀더 오롯이 이해하고 싶은 책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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