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초승달문고 21
고재은 지음, 윤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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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리차가 싫어!><2학년 3반 이주희><내 이름은 김신데렐라><희철 선인장> 이 속에는 엄마인 내 모습이 담겨져 있다.
세상에 엄마처럼 제멋대로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마는 되지만 아이들은 안되는 엄마 맘대로의 법을 정해서 엄마의 기분에 따라 아이들은 우왕좌왕 갈 길을 잃는다.
아이들의 마음이나 개성보다는 엄마의 마음과 세상의 이목이 더 중요한 쓸데없는 법으로 아이들은 엄마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만들어 놓은 잣대에 끼워맞추기 위해 아이들의 마음과 개성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가장 무서운 악법이다. 엄마라는 법은..

킹파워 딱지가 갖고 싶은 인섭이는 심부름값으로 받은 이천원을 들고 가다가 하얀 사람을 만난다. 이천원은 잃어버렸지만, 킹파워 딱지를 주운 인섭이는 너무 행복하다. 돈을 잃어버렸다고 잔소리를 들었지만 말이다. 킹파워 딱지가 옷과 함께 세탁기 속에서 빨아지기 전까지는 인섭이는 행복했지만, 하얀 사람의 이야기를 전혀 믿어주지 않는 엄마의 회초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엄마는 하얀 사람을 만나 고기 대신 예쁜 블라우스를 들고 있었다. 

’2학년 3반 이주희’ 방과 물건 곳곳에 이름을 적어 놓는 주희는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다. 열 시가 넘어서야 일을 끝내고 들어온 엄마는 낙서투성이 방에 화가 났지만, 주희의 마음을 이해할 여유가 없다. 연필과 매직을 빼앗긴 주희는 바람에 손끝으로 이름을 적는다. 피곤함에 자고 있는 엄마의 등에도 적어 본다. ’2학년 3반 이주희’

"이제 엄마는 아무 데도 못 가. 아빠처럼 도망 못가." (본문 51p)

"물건에 이름을 써 두면 잃어버리지 않는단다."
선생님이 분명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본문 53p)

바람에 적힌 주희의 이름이 집 나간 아빠의 등에 찰싹 붙었다. 주희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부모님은 주희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작은 바램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

신데렐라를 알게 된 후부터 공주를 좋아하게 된 진우. 진우는 신데렐라가 되고 싶어하고, 분홍색 마법천사 씽크 가방을 사고 싶어하지만, 엄마는 로봇이 그려진 남색 가방을 사주었고, 공주 그림을 그리지 못 하도록 한다. 학교에 입학하고 만나게 된 장유미는 진우와는 반대로 늠름한 왕자를 좋아하고, 로봇이 그려진 남색 가방을 메고 있다.

딸을 낳고 예쁘게 키우고 싶었던 나의 바램과 다르게, 덜렁대고 걸쭉한 목소리를 가진 딸아이.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나는 진우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엄마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한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희철이를 타박하는 엄마와 선생님 속에도 내가 있다. 점점 응어리가 쌓여 가시가 되어버리는 희철이는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험기간이면 어김없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내 모습이 그 속에서 보인다.

아이들의 개성과 옳곧은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학교 성적이 내 아이를 판단하는 잣대는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숫자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듯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나는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학창시절 성적표와 나를 동일시하는 어른들의 눈초리가 싫어, 어른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이제 내 아이가 나를 보면 꿈꿀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 성적표로 혼내는 엄마가 되지 않을테야..’ 라고...

책 속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아이들은 그들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할 것이다.
그리고 모순된 어른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조금 나은 부모로서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린시절의 내 모습과 내 아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는 그렇게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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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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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날이 아닐까? 아침부터 잠 들때까지 엄마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번쯤은 잔소리 없는 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 어린시절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잔소리 없는 날’을 꿈꿔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결코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가 되리라 결심했지만, 결국 내 아이에게는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어버렸고, 내 딸 역시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제목을 보니, 어린시절의 그 결심이 떠오른다. 엄마가 되고서야 그때 엄마의 잔소리가 내게 큰 약이 되었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딸도 나중에 엄마가 되고서야 나의 잔소리가 약이였음을 알게 되겠지?
그것보다는 지금 내아이가 나의 잔소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잔소리 없는 날>> 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책 제목만으로도 환하게 웃음짓는 아이를 보자니, 그동안 나의 잔소리가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했었는지를 느낀다. 
왠지 이 책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듯, 아이를 이해하라고 재촉하는 듯 하다.


주인공 푸셀은 부모님에게 잔소리없는 딱 하루를 요청하여 부여받게 된다. 주인공이 어떻게 했을 것이다는 아마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술 취한 낯선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오는 등 푸셀은 잔소리 없는 하루를 마음껏 즐긴다. 보통때는 상상도 못하는 공원에서 텐트치고 자는 일까지도 말이다. 
오늘 하루가 다행스럽게 끝난 것을 축하하면서 건배하는 가족이 모습은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가족일 것이다.
한번쯤은 나도 푸셀처럼 잔소리 없는 날이 있었으면 하고 더욱 바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푸셀은 혼자 살아간 하루 동안 세상엔 위험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잔소리가 위험으로부터 지켜지는 최소한의 규칙이였다는 것도 알게 될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부모님의 잔소리도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지만, 주인공의 엉뚱한 행동이 너무 재미있게 쓰여져, 아이들이 잔소리를 사랑의 표현이며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장치였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에 있어 조금은 좀 미약하지 않았나 싶다. 
허나, 부모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 상당했다. 주인공에게 잔소리없는 날을 부여한 점,  하루를 아이를 위해서 참아내는 부모의 인내심이 그러했으며, 그런 아이의 행동을 존중해주는 부모의 행동들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 아이가 나에게 잔소리 없는 날을 요청해 온다면 나는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내 아이를 안전으로부터 지키고, 더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잔소리하는 나에 대한 변명일지라도...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아가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 또한 스스로의 선택 뒤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직접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가는 시간도 중요하다. 
내 아이가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잔소리보다는 아이를 기다려줄 줄 아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이 ’잔소리 없는 날’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최선의 방법이므로...

 

(사진출처: ’잔소리 없는 날’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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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아동용,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1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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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금이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그녀의 책을 자주 읽는 편이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아이들이 마음을 다독이고, 어른들을 질책하는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다.
<유진과 유진><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이 그렇다. 그리고 이 책 <너도 하늘말나리야> 역시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보이면서 함께 치유하고, 다독인다.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3명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아픔은 내가 우리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곧 성장통을 앓게 될 아이의 치료제 역할이 된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혼가정, 편부모가정 등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문제는 어른들이 벌여놓은 일들로 인해 아이들이 더 많이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해결 방안이 급급한 나머지, 아이들은 상처 속에 방치되어 가고 있다. 어른들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혹 자신때문에 그런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서야할 자리를 찾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곧잘 잊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속에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아가는 3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인해 엄마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미르는 시골구석으로 이사오는 것조차도 너무 화가 나 있다. 미르를 달래주려 애쓰는 엄마의 마음을 미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희는 미르의 닫혀진 마음을 이해하며 다가가려고 애쓴다. 허나 소희 역시 부모없는 아픔으로 상처를 가슴에 안고사는 아이이다.
아빠와 살고 있는 바우는 엄마의 죽음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엄마의 죽음이 바우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 말조차 하지않게 되었고, 컴컴한 동굴 같은 아빠의 눈은 바우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만나게 된 세 아이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서로를 보듬고 상처를 이겨내며 한발자국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인 나에게도 감동으로 전해진다.

행복이란 내가 가진 욕심이나 자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가야 얻는 것인가 보다. 아무런 욕심도 바람도 없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신은 어떤 것도 그냥 주거나 가져가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할 뿐이지.
(본문 97p)

할머니의 죽음으로 두 아이를 떠나게 되는 소희에게 바우는 하늘말라니를 그린 도화지를 내민다. 

하늘 말나리. 소희ㅇㅇ를 닮은 꽃.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다른 나리꽃들은 땅을 보면서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보면서 피어. 소희, 너를 닮았어"
(본문 223p)

결손 가정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 세 아이는 어른들에게 받은 고통을 스스로가 감내하며 살아간다. 떼를 쓰는 미르, 상처 속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소희, ’선택적 함구증’ 인 바우. 모두 각기 다른 방법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게 되고, 그로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를 바라보게 되며,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아이들은 비로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책도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세상은 나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세상과 연결되어 간다. 세상과의 소통이 쉽지많은 않다. 그러나 친구가, 부모가, 그리고 책이 그 버팀목으로서 존재한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그들에게 세상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며,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혹은 실패 속에서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배우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 모두가 하늘을 향해 성장하는 "하늘말나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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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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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이금이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도, 책을 읽다가 아픔에 많이 울게 된 것도 이 책 때문이였다.
얼마전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이 나라가 들썩거렸다. 뉴스를 보면서 많이 화냈고, 많이 울었고, 많이 안타까웠던 사건이였다. 우리나라의 법이 안타까웠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커졌고, 법에 대한 실망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도 안타까워 뉴스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범인은 죄값이 치루고 나오면 그만이겠지만, 그 아이는 평생을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해줄 수 없는 것이,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사건.
이런 사건들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더 화가 난다.

’유진’ 그리고 ’유진’ 두 아이는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 그리고 두 유진은 똑같이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두 아이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유진으로 자라났다. 고등학교에서 다시 재회한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같은 이름과 같은 사고를 당했지만, 전혀 다른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전교 1등의 모범생이지만 외로운 아이 작은 유진과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명랑하고 발랄한 큰 유진으로 다시 만난 두 아이.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유진 때문에 큰 유진은 어린 시절의 기억상자를 꺼내든다. 

"사랑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유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본문 73p)

엄마의 사랑과 위로를 받았던 큰 유진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일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은 여전히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자랐다.

때밀이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거칠게 미는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울자 그 여자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엄마는 왜 날 때렸을까?
살갗을 벗겨내는 것처럼 아팠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 걸 보면 실제 있었던 일 같다.
(본문 129p)

세상의 눈을 무서워하는 시부모님의 뜻을 쫓아, 아이와 도망치듯 사건에서 빠져버린 작은 유진의 엄마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이 단지 이것 뿐이였으리라. 때밀이 수건으로 밀어주면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쩌면 작은 유진의 엄마는 아이의 기억보다는 자신의 기억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작은 유진에게는 사건보다는 엄마에게 받은 고통이 커서 그 사건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보는 싸늘한 엄마의 눈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자신 혼자 짊어져야 할 고통이 커서 잊고 싶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성추행, 성폭행의 사건이 일어나면 여자가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여자를 탓하는 일이 많았었다. 사람들의 곱지않은 시선이 더욱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것으로 무마되곤 하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사건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범인을 질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그들은 점점 고통속으로 몰아 넣는다.

작은 유진이 그 피해자인 셈이다. 세상 눈이 무서운 할아버지 때문에,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더 큰 상처를 받아야 했던 작은 유진은 비로서 자신을 곱지않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다.
무서운 할아버지, 냉랭한 할머니, 바쁜 아빠와 그림자 같기만 한 엄마.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마냥, 상처에 상처 그리고 또 다른 상처를 갖게 된 작은 유진은 세상의 이목으로 인한 피해자인 셈이다.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은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다 알고,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본문 162p)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상처는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은 채, 몇 해가 지나도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난 후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이 득이 되고, 실이 되는 것은 상처를 바라보는 자신에게 결정지어지는 듯 하다.
상처가 두려워서 꼭꼭 숨기고 살아갈 것인가? 상처를 치유하고 남은 흉터를 보며 이겨내고 힘을 내어 전진할 것인가?

"용서해 줘, 유진아. 엄마가 널 끝가지 지켜 주었어야 했는데. 그래. 널 위해서 그 일에서 빠지고,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건 거짓말이야. 날 위해서였어. 내 딸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널 윽박질러서, 네 기억을 빼앗았어." (본문 274p)

엄마로서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하지만 그것이 잘 못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엄마로서 따뜻한 가슴을 품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셈이다.
<<유진과 유진>>을 읽으면서 부모로서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할 것이다. 그 상처를 덮어버리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상처를 이겨내고 아물어 딱지가 생기는 과정을 지켜봐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은 아닐까?
나의 울타리가 내 아이의 상처를 이겨내는 큰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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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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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면 파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연과 어깨동무를 한 두 아이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묻어나온다.결코 평화롭지많은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556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는 쉴새 없이 넘어갔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그래서 어쩌면 너무 짧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프카니스탄의 전쟁과 한 아이의 심한 성장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두 가지의 큰 주제를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쟁과 계급사회로 인해 겪게되는 우정과 배신 그리고 후회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두 남자의 인생이 너무나 슬프고도 눈물겹다.

책을 읽은 느낌을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행복감, 따뜻함, 감동, 슬픔, 아픔, 안타까움 등의 많은 생각들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에 어떻다는 말을 표현하기에는 내 글솜씨가 너무 아쉽기만 하다. 다만 다 읽고 난후, <<연을 쫓는 아이>>에 대한 느낌이 내 마음속에 작은 방을 만들어 자리잡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읽고도 며칠동안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주제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느낌이 표지하고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면 맞을까?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파쉬투인과 하자라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듯 싶다. 쉽게 말해서 파쉬투인은 주인이고 하자라인은 하인이다.
파쉬투인과 하자라인이 바로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파쉬투인으로 부자집 아들이였고 한살 어린 하산과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엄마는 아미르를 낳으면서 돌아가셨기에 아미르는 아빠와 하산, 알리와 지냈으나, 늘 무뚝뚝하고 냉정한 아빠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는 소심하고 연약한 아이였다. 하산과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으나, 아미르는 하산을 자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하자라인인 하산을 낳은 엄마는 며칠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도망을 갔기때문에 아미르처럼 엄마가 없이 지냈다. 허나 자상한 아빠가 있고 자신을 잘 보살펴주는 주인어른이 있었음에 감사하는 아이였다.  총명하고 운동신경도 좋았으며 부지런하고 아미르를 끔찍하게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아미르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믿는 아이다. 하산은 새총을 아주 잘 쏘는 아이기도 했는데, 그 새총이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를 크게 전환시켜놓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미르의 아빠 바바는 아미르의 성격을 불평했고,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사람이였지만, "남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였다.
하산의 아빠 알리는 바바와 40년동안 친구처럼 지내는 하인이였고, 늘 열심히 일했으며 하산과 아미르를 잘 챙겨주는 자상한 사람이였다.
마지막으로 ’귀 뜯어먹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세프..아미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로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난폭하고 강철 놋쇠 장갑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다.

여느 때처럼 하산과 아미르를 "우리 나무" 에 가고 있었으나, 운이 나쁘게도 아세프를 만나게 되었다. 하자라인을 못 살게 구는 아세프는 하산을 모욕적인 말로 다가와 괴롭히려 했지만, 하필 그 불똥이 늘 겁에 질려있고 소심한 아미르에게 돌아갔다. 아세프가 강철 놋쇠 장갑을 꺼내 아미르를 때리려고 하는 순간  "제발 우리를 내버려두세요. 도련님"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하산은 새총으로 아세프에게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미르를 위해서...겁이 났지만 단지 아미르를 위해서 말이다. 아미르는 주인이기전에 하산의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새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저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도련님 별명이 ’귀 뜯어먹는 아세프’에서 ’외눈박이 아세프’로 바뀔걸요. 제가 지금 도련님 왼쪽 눈에 이 돌덩이를 조준하고 있으니까요."

이 사건이 얽힌 실타래의 출발이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주인공 아미르가 생각하는 사건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실타래가 얽히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이 있지 않았다면, 하산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하산의 치욕을 목격한 아미르는 하산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감과 자책감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같지 않았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미르를 친구로 생각하고 사랑했던 하산, 뒤늦게 하산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던 아미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자책감을 씻기위해 치뤄야했던 고통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산이 주었던 믿음과 사랑 때문이였으리라.
결국 두 사람의 실타래는 하산의 아들 바바를 통해서 풀어졌다. 바바의 새총과 하산의 새총이 교차되면서 서서히 얽히고 섥혔던 실타래의 실마리가 보인다.

배신을 하고 그 믿음을 깨트리고 난 후 오는 절망감과 자괴감이 주는 고통은 당하는 사람에게도 배신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법이다.그 배신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배신보다 몇 배나 더 아픈 고통의 값을 치루어야 한다. 배신을 버리고 그 자리에 믿음을 채워넣기까지는 더 많은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아미르와 바바를 보면서 깨달아 간다.

아프카니스탄에 찾아온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과 슬픔들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감정을 복받치게 한다. 단지 그것뿐이 아니다. 아미르를 통해서 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비겁함, 비열함이 고통속에 짖눌려져 있는 초라한 내 모습. 아미르는 그 고통을 감내하였으나, 나는 그 죄책감을 씻기위해 고통을 감내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미르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하산은, 아미르를 이미 아주 오래전에 용서했을 것이다. 스스로의 고통속에서 허우적댔던 아미르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두 말속에서는 믿음과 사랑이 강하게 존재한다. 그 사람을 한없이 사랑하고 신뢰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닐까?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사랑과 믿음...그리고 용기를 봤다. 그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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