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를 보면 파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연과 어깨동무를 한 두 아이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묻어나온다.결코 평화롭지많은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556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는 쉴새 없이 넘어갔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그래서 어쩌면 너무 짧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프카니스탄의 전쟁과 한 아이의 심한 성장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두 가지의 큰 주제를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쟁과 계급사회로 인해 겪게되는 우정과 배신 그리고 후회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두 남자의 인생이 너무나 슬프고도 눈물겹다.

책을 읽은 느낌을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행복감, 따뜻함, 감동, 슬픔, 아픔, 안타까움 등의 많은 생각들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에 어떻다는 말을 표현하기에는 내 글솜씨가 너무 아쉽기만 하다. 다만 다 읽고 난후, <<연을 쫓는 아이>>에 대한 느낌이 내 마음속에 작은 방을 만들어 자리잡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읽고도 며칠동안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주제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느낌이 표지하고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면 맞을까?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파쉬투인과 하자라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듯 싶다. 쉽게 말해서 파쉬투인은 주인이고 하자라인은 하인이다.
파쉬투인과 하자라인이 바로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파쉬투인으로 부자집 아들이였고 한살 어린 하산과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엄마는 아미르를 낳으면서 돌아가셨기에 아미르는 아빠와 하산, 알리와 지냈으나, 늘 무뚝뚝하고 냉정한 아빠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는 소심하고 연약한 아이였다. 하산과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으나, 아미르는 하산을 자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하자라인인 하산을 낳은 엄마는 며칠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도망을 갔기때문에 아미르처럼 엄마가 없이 지냈다. 허나 자상한 아빠가 있고 자신을 잘 보살펴주는 주인어른이 있었음에 감사하는 아이였다.  총명하고 운동신경도 좋았으며 부지런하고 아미르를 끔찍하게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아미르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믿는 아이다. 하산은 새총을 아주 잘 쏘는 아이기도 했는데, 그 새총이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를 크게 전환시켜놓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미르의 아빠 바바는 아미르의 성격을 불평했고,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사람이였지만, "남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였다.
하산의 아빠 알리는 바바와 40년동안 친구처럼 지내는 하인이였고, 늘 열심히 일했으며 하산과 아미르를 잘 챙겨주는 자상한 사람이였다.
마지막으로 ’귀 뜯어먹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세프..아미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로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난폭하고 강철 놋쇠 장갑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다.

여느 때처럼 하산과 아미르를 "우리 나무" 에 가고 있었으나, 운이 나쁘게도 아세프를 만나게 되었다. 하자라인을 못 살게 구는 아세프는 하산을 모욕적인 말로 다가와 괴롭히려 했지만, 하필 그 불똥이 늘 겁에 질려있고 소심한 아미르에게 돌아갔다. 아세프가 강철 놋쇠 장갑을 꺼내 아미르를 때리려고 하는 순간  "제발 우리를 내버려두세요. 도련님"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하산은 새총으로 아세프에게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미르를 위해서...겁이 났지만 단지 아미르를 위해서 말이다. 아미르는 주인이기전에 하산의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새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저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도련님 별명이 ’귀 뜯어먹는 아세프’에서 ’외눈박이 아세프’로 바뀔걸요. 제가 지금 도련님 왼쪽 눈에 이 돌덩이를 조준하고 있으니까요."

이 사건이 얽힌 실타래의 출발이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주인공 아미르가 생각하는 사건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실타래가 얽히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이 있지 않았다면, 하산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하산의 치욕을 목격한 아미르는 하산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감과 자책감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같지 않았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미르를 친구로 생각하고 사랑했던 하산, 뒤늦게 하산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던 아미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자책감을 씻기위해 치뤄야했던 고통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산이 주었던 믿음과 사랑 때문이였으리라.
결국 두 사람의 실타래는 하산의 아들 바바를 통해서 풀어졌다. 바바의 새총과 하산의 새총이 교차되면서 서서히 얽히고 섥혔던 실타래의 실마리가 보인다.

배신을 하고 그 믿음을 깨트리고 난 후 오는 절망감과 자괴감이 주는 고통은 당하는 사람에게도 배신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법이다.그 배신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배신보다 몇 배나 더 아픈 고통의 값을 치루어야 한다. 배신을 버리고 그 자리에 믿음을 채워넣기까지는 더 많은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아미르와 바바를 보면서 깨달아 간다.

아프카니스탄에 찾아온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과 슬픔들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감정을 복받치게 한다. 단지 그것뿐이 아니다. 아미르를 통해서 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비겁함, 비열함이 고통속에 짖눌려져 있는 초라한 내 모습. 아미르는 그 고통을 감내하였으나, 나는 그 죄책감을 씻기위해 고통을 감내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미르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하산은, 아미르를 이미 아주 오래전에 용서했을 것이다. 스스로의 고통속에서 허우적댔던 아미르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두 말속에서는 믿음과 사랑이 강하게 존재한다. 그 사람을 한없이 사랑하고 신뢰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닐까?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사랑과 믿음...그리고 용기를 봤다. 그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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