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가오리.유카리 지음, 박선형 옮김, 하라다 스스무 감수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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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라는 책 제목이 오해를 살 법하지만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살자는 이야기가 아닌 침울한 마음, 흐트러진 감정, 고민 등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하자는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 고민, 우울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침울한 감정은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타인 또는 나를 탓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거나, 완벽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자책 등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지요.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무겁고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를 해도 되며, 반드시 잘 해내야 하는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러한 마음을 덜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마음 속 무거운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거예요.

 

어서오세요, 마음 안경을 닦는 가게입니다.

고민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휘둘리지 않기.

걸핏하면 짜증을 내거나 작은 일에 집착하고 고민한다면 '마음 안경'을 닦아보세요. 인생이 환해집니다. (표지 中)

 

이 책의 저자 가오리, 유카리는 쌍둥이 자매 작가로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자는 신조로 전문적인 주제를 글과 그림으로 쉽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미국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앨버트 엘리스의 임상심리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지요. 이 책의 주인공은 구두 닦는 일을 하는 다람쥐 엘리스입니다. 구두를 닦는 동안 손님들은 엘리스에게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손님들이 이야기를 다 하면 엘리스는 마음 안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답니다. 이 책은 바로 엘리스의 마음 안경에 대한 이야기지요.

 

우리 가게는 여러분의 고민을 듣고 어떻게 해결하라고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는 초초, 불안, 침울이라는 '나쁜 감정'을 여러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소소한 이야기를 할 뿐이죠. 바로 '마음 안경'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11p)

 

같은 사건이라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다르고, 같은 시각으로 봐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다릅니다. 그 사건과 감정 사이에는 '마음 안경'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정해지는 것이죠. 의식이나 규칙, 고정관념이나 가치관, 신념이나 소신 등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감정'의 차이가 생깁니다. 결국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도 생각을 바꾸면 쓸데없는 고민이 사라집니다.

 

"인간의 마음은 일어나는 일에 따라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흐트러지는 것이다." (본문 57p)

 

또한 이치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이며 집착적이어서 자신의 행복이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사고, 즉 비이성적인 사고를 가지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구두 닦는 가게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엘리스처럼 말이죠. 마음 안경 렌즈에 묵직하게 달라붙은 묵은 때 즉,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점점 옭아매는 집착 혹은 신념을 가지면 이성적인 사고가 어렵습니다.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이 습관이 되면 마음의 불행을 초래하게 되지요. 이런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묵은 때를 미련 없이 그냥 버리기만 한다면 누구나 침울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에 엘리스는 마음 안경을 닦는 여섯 단계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마음 안경을 닦는 일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바로 그런 일입니다. (본문 221p)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거나 혹은 나 자신을 질책하는 일이 있었나요? 자기 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면서 이불킥을 해본 적은 있나요?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을 반복하지는 않았나요? 아마 누구나 경험해 본 일일 것이고 항상 반복해온 일들일 겝니다. 마음을 바꾸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낀 얼룩을 제거하는 일이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동안 남탓을 하며 그릇된 마음을 많이 가졌던 거 같아요. 마음 안경 렌즈에 얼룩이 잔뜩 덮혀있었네요.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참 차분해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침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힘겹다면 이 책을 추천해봅니다. 어두움이 서서히 걷히는 걸 느낄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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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전쟁 라임 청소년 문학 34
뤽 블랑빌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라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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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이 책이 게임 중독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습니다. 최근 게임 중독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만큼 게임 중독에 대한 문제점도 그만큼 크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물론 그만큼 신선한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게임 중독인 주인공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아낸 뻔~한 스토리라는 생각에 사실 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늘 게임에 접속해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을 물론 가족 이야기와 첫사랑 이야기를 더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어 기대이상이었습니다.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에 유머를 더해 밝게 담아낸 것도 좋았던 거 같아요.

 

간혹 게임 중독에 빠져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컴퓨터와 핸드폰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터넷, 게임, SNS 등과 동떨어져 살아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게임 전쟁》의 주인공 토마를 통해서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컴퓨터 하면 토마, 토마하면 컴퓨터 할 정도로 토마는 게임, 인터넷 중독입니다. 오랫동안 그저 행복한 게임 덕후로 살아왔죠. 하지만 에스테르 카뮈조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모든 일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어요. 토마의 변화를 바로 눈치챈 건 동생 폴린이었고, 빚을 독촉하듯 물어보는 폴린에게서 빠져나갈 구멍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었죠. 폴린은 에스테르와 페북 친구일 뿐만 아니라 승마 카페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어요. 폴린 덕분에 토마는 에스테르 집에 초대를 받게 되고 에스테르가 내는 아주 어려운 시험을 치루게 됩니다. 바로 한 달간 컴퓨터를 끊는 것이었죠. 에스테르는 현실의 삶을 피하지 말라며 태블릿 PC나 휴대폰도 안 되고, 컴퓨터도 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종류의 게임도 할 수 없다네요. 이 시험을 통과하면 에스테르와 사귈 수 있어요. 감시자는 폴린이었죠.

 

라트레유는 친구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최악의 남자아이입니다. 그 레이더망에 토마가 걸리고 말았어요. 레트레유는 토마를 보면 시비를 걸곤 합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모범생인 라트레유는 천하무적이었죠. 그 라트레유가 국어 선생님의 치마 속을 몰래 찍어 반 아이들에게 전송하는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유력한 용의자는 컴퓨터를 잘하는 토마였지요. 라트레유는 토마에게 선생님에게 이르면 폴린을 괴롭힌다는 협박까지 했답니다. 설상가상 게임 덕후였던 토마가 게임을 안하는 이유가 에스테르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에스테르와의 관계까지 나빠지게 됩니다.

 

토마는 정말로 자기가 컴퓨터, 태블릿 PC, 휴대폰을 붙잡고 살아서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된 게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와이파이가 가족들의 뇌에 영향을 미친 걸까? (본문 31p)

 

반면 가족 식사 분위기의 변화된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 토마는 엄마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토마는 폴린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잘 하는 컴퓨터를 통해서 말이죠.

 

이렇게 토마에게는 여러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찾아옵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에서 도망쳐 게임 속으로 도망치는 토마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행이 토마는 이 문제들과 마주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지요. 그 과정에서 토마는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토마가 게임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요. 학교문제, 가족문제, 첫사랑 이야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무겁지 않게 담겨져 있지요. 토마의 이런 모습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야무지고 똑소리나는 폴린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얼마전 TV프로그램에서 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것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한 패널은 중독은 몰입과 닮아 있다고 했어요. 누구나 중독되어 있는 건 하나씩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현실이 파괴되면 중독이 되는 것이고, 현실이 유지되면 몰입이 되는거죠. 몰입과 중독의 경계에서 우리는 그 일에 있어 중독이 아닌 몰입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토마는 그 경계를 지키는 방법을 일깨워 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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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리커버) - 개정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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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는《등 뒤의 기억》《기억 깨물기》《우는 어른》《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저물 듯 저물지 않는》《개와 하모니카》등으로 내게는 꽤나 익숙한 작가이다. 지금까지 느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굉장히 섬세하고 잔잔하며 담담했으며 때로는 난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자꾸 끌리는 매려적인 작품들이었기에 그녀의 작품은 꼭 찾아 읽어보게 된다. 이번 작품 《홀리가든》은 한국 출간 기념 10주년을 맞아 출간된 리커버 개정판이다. 소녀 감성이 담긴 일러스트의 책표지가 눈길을 끄는 이 소설은 소꿉친구 가호와 시즈에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이다.

 

어른임을 잊지 않기 위해 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가호.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삶, 올 라잇.

늘 올 라잇한 인생을 살아온 시즈에.

 

함께한 시간만큼 많은 금기를 지닌 그녀들의 평화롭고도 위태로운 하루를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감성으로 한 장면, 한 장면 사랑스럽게 포착한 장편소설 (뒷표지 中)

 

가호와 시즈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20년 친구 사이로 이 소설에서는 시즈에와 가호의 각각의 시점이 반복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가호는 5년 전에 끝난 쓰쿠이와의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사를 할 때마다 비스킷 깡통과 차마 깨뜨리지 못한 파란 장미 무늬 홍차 잔이 담긴 머스캣 상자를 가지고 다닌다. 반면 시즈에는 아내와 19살짜리 딸이 있는 남자와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그 사람과 있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지만,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나면, 혹은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나면 가호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과거의 기억에 매달리는 가호, 오직 현재를 즐기는 시즈에,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기에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시간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친구 관계를 지속한다.

 

그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대부분은 클라이맥스가 없이 진행되곤 했는데 이 소설 역시 큰 사건이나 클라이맥스가 없지만 캐릭터만으로도 작품이 완성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그녀만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가 빛을 발하는 듯하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만으로도 이 소설은 재미를 주고 있는 이는 우리들의 일상의 풍경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야기 곳곳에 담겨진 현실적인 내용들은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담겨져 있다. 특히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들은 독자 개개인에 따라 공감하는 부분이 달라질 듯 한데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을 성 싶다.

 

25년지기 친구와의 관계가 문득 생각난다. 다르지만 서로의 삶에 뒤섞여있는 가호와 시즈에를 보면서 같으면서도 다른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관계 유지를 위해 서로간의 선을 넘지않는 친구 사이, 그 오묘함과 끈끈함. 그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마다 느꼈던 그녀의 섬세함과 단아함, 그리고 담담함이 이 소설에서 정말 잘 어울리는 듯 했다. 과거, 현재, 그리고 일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섬세함이 매력적인 작품 《홀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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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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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처럼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공포,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소설이 인기를 끕니다. 소담에서 이 여름에 걸맞는 사이코패스 범죄 스릴러가 출간되었습니다. 아마존 스릴러, 서스펜스 소설 베스트셀러 1위, 2016년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호러 소설 부문 후보작, 아마존 서평 14,458건, 평균 별점 4.9/5, 전미 200만 부 이상 판매, 전 세계 22개국 판권 판매 ,2019 영화화 예정되었으며 2016년 6월에 미국에서 출간 당시 아마존 스릴러, 서스펜스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그해 여름을 강타했다고 하니 꽤나 믿음직한 소설입니다.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치는 무서운 흡입력 때문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기에는 딱!인거 같아요.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호러 소설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나비 정원》은 FBI 특별수사관 빅터 하노베리언과 마야라 불리던 한 소녀의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한 사유지의 정원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생존자로 소년 13명과 크게 다친 남자 3명이 발견됩니다. 심문실에 있는 소녀는 FBI는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를 듯한 태도를 보이지요. 이름을 물을 때마다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고, 사람들이 찾아낸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표정을 짓는 소녀를 보며 일부에선 피해자가 맞는지 의심들게 합니다.

 

"그 사람이 정원사예요."

아저씨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포심이나 존경심 때문에, 혹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붙인 별명도 아니고요. 그곳은 무엇이든 그렇듯, 정원사란 이름 역시 완전히 꾸며낸 거예요. 일종의 실용주의 같아요. 사랑스럽고 따듯한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고, 나머지는 실용주의에 빠지고, 양쪽을 비교한다면, 나는 실용주의 쪽이에요. (본문 20, 21p)

 

소녀들은 납치된 후 오랫동안 감금당해왔습니다. 그들이 감금당한 곳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에 유리 지붕이 덮인 거대한 정원이었지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높은 절벽과 폭포, 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가득차 있는 공원에서 소녀들은 등에 나비 문신이 그려짐으로써 '나비'가 되었고, 이들을 돌보고 가꾸자가 바로 '정원사'였습니다. 정원사는 열여섯 살의 나이 어리고 아름다운 소녀를 납치해 유린하고 강간하고, 화려한 나비로 만들어 정원 안에서 살아가게 했지요. 만약 질서를 어기거나 가치를 잃게 되면 소녀들에게 남는 건 죽음뿐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문신을 새기나요?"

"정원엔 나비가 있어야 하니까." (본문 32p)


빅터 하노베리언은 마야에게 질문을 던지고, 마야의 내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마야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스토리에 점점 빠져들게 하는 놀라운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녀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를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긴장감을 놓을수가 없는거죠. 더욱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터뷰 식으로 진행되는 구성은 신선한 느낌을 주고 있네요. 저자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놀라운 반전이 압도적인 작품, 그 영화화 역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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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보낸 하루 라임 틴틴 스쿨 11
김향금 지음 / 라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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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100년 전 사진과 그림을 통해 팔십 여 년 전 국제 기차역이었던 '경성역'에서 출발하는 역사 교양서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를 하루 동안 산책하는 당일치기 여행서이기도 하지요. 독자들이 살펴보는 경성은 1934년쯤의 어느 봄날로 거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카페에서, 경성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접하면서 현대의 우리를 비추는 '역사의 거울'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미스터 션사인》이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를 담은 《시카고 타자기》등에서 마주했던 경성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을거 같아 기대가 됩니다.

 

1930년대는 우리가 사는 현대 생활의 거대한 뿌리이다. 특히 규율과 폭력과 통제의 시작점이다.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학교와 사회, 가정에서의 '비'민주적인 면면을, 경성의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일은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작가의 말 中)

 

이 책은 1 식민지 경성에 가다,  2 북촌 한옥 단지의 대저택, 3 계동 저택의 아침 풍경, 4 식민지 시대의 살벌한 학교 생활, 5 하늘에서 본 경성의 봄, 6 구보와 함께 경성을 거닐다, 7 서대문형무소의 독립 운동가들, 8 선은전 광장의 눈부신 번화가, 9 경성의 핫플레이스, 본정에 가다, 10 한밤중 계동 저택에서, 11 무르익은 봄밤, 정동 야행로 나뉘어 집니다. 11장으로 나뉜 여행지를 따라가다보면 식민 지배와 저항, 친일과 독립, 전통과 근대라는 여러 가지 얼굴이 섞여 있는 일제 강점기의 정치, 경제, 사회를 만날 수 있으며, 학교와 빨래터, 백화점과 카페, 요릿집과 전차역 등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는 근,현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답니다.

 

 

경성에서 경의선 철도를 타면 신의주까지 가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만주로, 중국 대륙으로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던, 그야말로 경성역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창구였다고 하네요. 일본의 통행 규칙에 따라 1921년부터 우리나라도 전면 실시 되었던 좌측통행,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 되었던 수돗물과 우물물, '시간 엄수'와 '복장과 용모에 대한 규율'이 가장 엄격했던 학교 규율, 지금 겪고 있는 성적 위주의 교육, 사교육 만능주의 , 입시 지옥의 뿌리가 발견되는 일제 강점기의 학교 모습, 여학생에게 강조되었던 현모양처 교육, 도로를 닦으면서 사라진 한양의 구불구불하고 정겨운 골목길, 조선의 한양보다 현대의 서울을 더 닮은 공중에서 본 경성의 모습 등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경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서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 지배 방식 등이 보여지고 있네요.

 

 

각 장이 끝나면 '근,현대 돋보기'를 통해 대한 제국과 고종, 20세기 전반의 세계정세, 일제의 무단 통치, 일제의 문화 통치, 일제의 식민지 미화 정책,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예술,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 항일 시위에 나선 학생들, 근대 소비문화의 발달과 확산, 일제강점기, 여성의 사회 진출, 병참 기지화 정책과 8.15광복 등 일제 강점기의 정치사와 문화사까지 정리해주고 있어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까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고 있답니다.

 

단 하루 동안 경성에서 보내는 역사 여행을 담은《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이렇듯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답니다. 현대의 많은 모습들이 경성의 모습에서 비롯되어 있음을 보면서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 여행서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진과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일제 강점기 경성 사람들의 생활, 문화, 의식주를 체험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어요. 책을 읽는동안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문화와 의식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알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네요. 정말 뜻깊은 여행이었네요.

 

(이미지출처: '경성에서 보낸 하루'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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