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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나이가 들면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내게 점점 따뜻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는 아니, 결혼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이 주는 의미는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의미는 더욱 진하게 물들어간다. 쭈글쭈글 주름이 가득한 아빠,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된 남동생 그리고 내 곁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과 내게 웃음을 주는 아이들은 [가족]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나도 그들에게 딸, 누나, 아내와 엄마로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 거라는 자만을 가져보았다.
[너는 모른다]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는 내 가족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가? 그들의 마음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는 모른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해보았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드라마로 방영되었지만 그마저도 접해보지 못했다. 발자국 하나 없이 수북히 내린 눈길을 내가 처음 걸어가는 것처럼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녀의 글을 이전에 읽었다면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미리 짐작하고 서투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나, 책을 읽는동안 내가 가지는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는 가족의 문제를 꺼내고 들추어보게끔 부추겼기 때문이다. 곪기전에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어야 한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24일 일요일 오전 아홉시, 가족의 차가운 아침 풍경이 그려진다. 먼가 일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도는 식탁 풍경에는 이미 가족들은 서로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엇갈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김상호, 화교 출신의 새엄마 진옥영,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유지, 김상호의 아들 김혜성과 사춘기의 반항을 고수하며 혼자 살고 있는 큰 딸 김은성...이들은 서로 가족이지만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학 교과서에서 본 듯한 교집합처럼 그들은 ’가족구성원’이라는 교집합 안에서만 속해있다. 유지가 실종되면서 그 교집합조차 부서질 듯한 상황으로 곤두박질한다.
경찰에 신고를 하는 대신 탐정을 고용하는 아버지, 딸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면서도 탐정 고용에 묵묵이 순응하는 새엄마, 그리고 먼가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는 혜성과 은성은 유지의 행방불명보다는 ’너는 모른다’로 치부되었던 일들이 밝혀지는 것이 더욱 두렵다. 탐정고용으로 아무도 몰랐던 일들이 하나둘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책 분위기는 어두움으로 짙게 드리워진다. 탐정은 범인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지에 목적을 두고 가족들의 치부를 찾기에 급급하다.
사회의 추악한 일면을 보는 듯한 이들 가족의 모습 속에 교집합은 사방에 금이 가 손만 대면 깨질듯 아슬아슬하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방화로 표출하는 혜성과 장기매매로 불법 수출을 하는 아버지와 옛애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가진 새엄마 그리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반항을 다수의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풀려는 은성은 비록 작은 교집합으로 힘들게 연결된 이들이지만 가족이였다. 가족은 어려울때 단단해지는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비록 이들은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놓치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희망을 엿보게 한다.
결국 유지의 실종은 신고가 있었다면 금방 해결될 문제인 것처럼 결말지어졌다. 유지를 찾기위함보다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걱정스러웠던 아버지와 새엄마의 이기적인 발상은 결국 유지를 곤경에 빠뜨린 꼴이 된 것이다.
아이의 실종으로 눈물지으면 하루빨리 아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부모의 모습 대신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치졸하면서도 나약하게 보인다. 그러나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부조리 속에 뛰어든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모른다]는 가족간의 관심과 소통의 부재가 가지고 온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듯 하다. 아니 요즘 사회는 이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이 보도된다. 부모를 살인하고, 자식을 죽이는 처참한 가족의 모습으로 몸서리치게 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었던 아픔과 외로움과 상처를 보지 못 했을 것이고, 몰랐을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을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이 악순환 되지 않지않도록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이야기는 시체 한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었다. 어쩌면 그 시체의 모습은 가족들간의 암울한 진실이 밝혀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다.
과연 실종된 유지를 유괴한 것은 누구인가? 라는 추리가 성립되게끔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들의 비밀을 쫓아 범인을 추리해가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간다. 두꺼운 페이지가 순식간에 읽혀졌던 것은 이야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눈물 콧물 쏙 빼면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내용들과 달리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면서 추리를 통해 색다르게 전달하고 있는 [가족]의 의미는 보다 찐하게 전달되어진다.
나는 내 가족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외로움 등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상처를 나는 얼마나 보듬어주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그 속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그들의 발톱 끝에 닿을 수 있도록 혜성이 그랬듯이 나 역시도 손가락을 내밀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