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 의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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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어렵지는 않았다
"이방인" 도 마찬가지지만 문장이나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평이한 서술이다
그 안에 숨겨진 상징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혹시 카프카는 박홍규의 말처럼 그냥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쓴 건 아닐까?
우리가 지나치게 상징을 부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재 자체는 독특하다
언젠가 이 책의 앞부분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걸 보고 꿈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어떻게 사람이 벌레로 변할 수 있겠는가?
혹은 남들은 나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는데 내가 벌레로 변했다고 주인공 혼자 착각한다고 생각했다
설마 진짜 벌레가 된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카프카는 참 독특한 설정을 한 셈이다

만약 정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벌레로 변하는 것 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을 찾자면 갑자기 장애인이 된다거나 감옥에 갇히는 등 식구들에게 짐이 되는 처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문열의 "영웅일기" 에서 빨갱이 남편을 둔 죄로 친정에서도 쫒겨나는 여자의 캐릭터가 있다
그녀는 유일한 피난처로 친정을 찾는데 아버지와 동생이 모두 그녀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가족이 등을 돌릴 정도라면 세상에 자기 편은 하나도 없단 얘기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경제 활동을 못하고 여동생은 너무 어렸다
그레고르는 자기가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그레고르의 직장은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업체다
그는 출장을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기차를 타야 하는 고달픈 일을 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에 그레고르는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장들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그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몸을 가눌 수 없고 걸을 수도 없어 배로 기어다닌다
가족들은 기겁을 하고 그를 방에 가둔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려고 하지만 말도 안 통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처지인가!!
중요한 건 식구들의 태도다
그레고르의 노동력에 기대 살던 식구들은 그를 괴물로 생각하고 가두려고만 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벌레라 생각하고 사과를 던져 치명타를 입히기도 한다
가족들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결국 하숙생들에게 그레고르의 모습을 들킨 후 그들이 집을 나가 버리자, 가족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심지어 그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던 여동생 그레테마저 저 벌레는 오빠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만약 진짜 오빠라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는데 아직도 뻔뻔하게 살아서 이 집을 돌아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 날 하숙생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그레테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하숙생들은 그레테의 바이얼린 연주를 청했으면서도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지루해 하고 그녀를 무시한다
여동생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한 그레고르는 그녀에게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다 그만 모습을 들키고 만 것이다
물론 그레고르의 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레고르는 그 날 숨을 거둔다
자살했는지 굶어 죽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죽고 나자 가족들은 죽은 벌레 대하듯 그의 시체를 치운다
그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이 단편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던 그레고르의 비극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일 정도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고 끔찍한 벌레로 변하자 가족은 그를 외면한다
대체 그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일했단 말인가?
가족이란 가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거라 믿었는데, 그것은 그저 당위일 뿐일까?
만약 장애인이 됐다면 그레고르를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가족은 기본적인 양심과 가치관을 가진 정상적인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벌레로 변한 아들을 여전히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 혐오감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벌레로 변할 만큼의 충격적이고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이것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벌레로 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버림받음으로써 가장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혹시 그는 자기 가족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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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4-11-1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면서 또 방치해둔 작가...

ㅡㅡ;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패자가 되는 카프카. 나중엔 꼭 읽어야지.

marine 2004-11-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멋진 리뷰 부탁드려요^^
 
여성 클라시커 50 11
바르바라 지히터만 지음, 안인희 옮김 / 해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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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 시리즈는 기획 의도는 좋은데 집필 내용은 수준 이하다
솔직히 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주제에 따른 50개의 다른 예를 단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커플" 읽을 때도 짜증났는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수준의 문제인가?
아니면 편집의 한계인가?
독일에서 출판되는 거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인상적인 인물들은 있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다
마리아 칼라스가 즐겨 맡은 역할인데 그녀의 정열적인 이미지와 딱 들어 맞는다
메데이아는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애인을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마저 죽인다
남편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아손을 죽이면 되지 왜 자기가 낳은 자식들마저 죽여야 했을까?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동양 신화 같으면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친자식을 죽이는 설정은 불가능 할텐데, 역시 그리스 신화답다

이집트 여왕 하쳅수트나 예카테리나 여제 등도 흥미롭다
하쳅수트는 의붓아들의 섭정 노릇을 하다가 직접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는데, 20여년을 다스렸으나 죽은 뒤 그녀의 이름은 전부 지워졌다
의붓 아들 투트모세 3세가 계모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운 것이다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고 자그만치 20년 씩이나 나라를 다스렸는데도 권력 기반이 확실하지 못했나 보다
솔직히 의붓아들을 20년 씩이나 살려 둔 것도 신기하다
그녀에게는 친딸 네페루레가 있었는데 왜 그녀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하긴 측천무후도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감금 상태로 죽고 말았다

반면에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편을 죽이고 차르에 오른 독특한 케이스다
그녀는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독일 여자였다
그녀는 권력 기반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이 그녀를 권력 파트너로 삼았을까?
아무리 남편 표트르가 멍청하다고 해도 황제 자리에서 끌어 내고 외국인 마누라를 세운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대체 그녀는 어떻게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마리 퀴리를 비롯한 여자 과학자들의 생애는 늘 감동을 준다
그녀들이 과학 분야에서는 소수였고 편견을 열정으로 이겨 낸 의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퀴리 부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지만, 리제 마이트너는 처음 알게 됐다
불행한 유태 여성 과학자였던 그녀는 나치 치하에서 연구를 중단하고 스웨덴으로 망명한다
수용소에서 안 죽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동 연구를 진행하던 오토 한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렇지만 화학 분야에서 빛나는 그녀의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 학생운동의 꽃인 소피 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겨우 스무 한 살 먹은 이 여대생은 오빠 한스와 함께 "하얀 장미" 라는 지하 조직에서 삐라를 돌린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나치 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 전복죄라니, 너무나 엄청난 죄목이라 도저히 스물 한 살 짜리 여자애와 연결이 안 된다
왜 독재 국가들은 보잘 것 없는 개인의 힘을 이토록 두려워 하는 것일까?
2차 대전 치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그녀와 오빠 한스는 재판 2개월 만에 처형된다

마돈나는 섹스의 화신으로 현대 연예 사업을 요리하는 주체성으로 대표된다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그 위력이 실감은 안 나지만, 어쨌든 모든 언론과 출판물에서 그녀는 대중 문화의 요리사로 나온다
대중 문화의 소모품이 아니라 그것을 주무르는 능동적 객체로 묘사된다
대체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대중 문화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락가수 제니스 조플린은 마약 중독에 빠져 스물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절제하지 못한 댓가일까?
마를린 먼로 역시 마약 중독으로 죽은 것을 보면 마돈나의 지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제인 오스틴은 결혼도 하지 않은 얌전한 18세기 여성이었다
목사 딸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처럼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빅토리아 시대인들의 풍속사를 잘 묘사했다
"오만과 편견" 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집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주부 작가였다
그래서 추리 소설의 공간은 집이 자주 등장한다
반드시 세상 경험이 많아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두 여성 작가만 봐도 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도 다시 읽고 싶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옷을 명품으로 승화시켰을까?
여성이 기업을 이룬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그녀의 위대함은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데 있다
그녀는 사치품을 미적 기호와 심미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처녀가 혼자의 힘으로 패션사에 길이 남을 거대 기업과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난잡한 구성과 얕은 해설이 불만이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알게 된 건 기쁘다
좀 더 깊이 있는 서술을 했더라면, 또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오페라와 문학에 대한 것도 읽을 생각이다
역시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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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사랑 - 세계문화예술기행 3
김혜순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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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중간 정도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말하자면 변방 국가다
그래서 서유럽 여행할 때 여기 가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한다
내가 스페인에 가고 싶은 이유가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듯, 이 책의 저자도 스페인이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기 위해 먼 이국 땅으로 날아 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유산인 문화임이 틀림없다

스페인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독특한 유럽 국가다
지도책을 열심히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베리아 반도가 아프리카와 가깝고 중동과도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그래서 7세기 이후 이슬람이 팽창하면서 스페인까지 진격했고 수백년 동안 이슬람 지배권 하에 있었다
16세기에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나도 왕에 의해 통일됐다
국토 회복 운동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페인도 이민족의 지배를 수 백년 동안 받은 셈인데 어떻게 르네상스 시대 때 그 많은 식민지를 거느릴 수 있었을까?
유럽 역사는 흥망성쇠가 잦아 동양사 보다 훨씬 흥미롭다
그 역동적 에너지가 그들의 발전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이슬람 서원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살아 있는 생명체나 사물을 조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아라베스크라는 기하학 무늬가 발달했다고 한다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추상형이기 때문에 시대가 달라져도 촌스럽지 않고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유럽의 동양적 풍경이라...
이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과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동서 문명이 하나로 잘 어울어져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 같다

더 관심 있었던 것은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가우디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막상 그의 건축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쩜 그렇게 형형색색의 칼라풀한 페인트칠을 했을까?
또 건축물에 자유로운 곡선을 동원할 생각을 했을까?
원형이 아니라 완전히 파도치는 곡선 모형이다
그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BR>건축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또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일 수 있음을 느꼈다
가우디에 관한 관심이 증폭된다
꼭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스페인 하면 뭐니뭐니 해도 프라도 미술관이다
다들 마드리드 가면 여기부터 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럽이 우리를 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놀라운 미술관들 덕택인 것 같다
서양사가 곧 세계사가 되버린 현대에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감상하는데 동서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프라도 미술관의 백미는 고야와 벨레스케스다
사실 고야의 그림이 왜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고흐 같은 정열적인 인상파 그림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정교한 르네상스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려운 피카소나 대충 그린 듯한 고야의 그림은 솔직히 감동이 별로다
그렇지만 두 화가 모두 미술사에 워낙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라 관심이 간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범한 후 시민 병사들을 사격하는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자주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훌륭한 평가를 받아서 그런지 내 눈에도 인상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래도 역시 친숙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다
이것은 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한다
나 같이 평범한 독자는 일단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면 좋게 인식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이 나에게도 특별해 보인다<BR>워낙 자주 언급되는 그림이라 직접 보면 가슴이 떨릴 것 같다
언젠가는 꼭 가서 직접 보고야 말리니!!

스페인 하면 생각나는 게 플라맹고와 투우, 그리고 집시다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는 금지됐고 전체적으로 사라져 가는 추세라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다 1995년도에 쓰여진 기행문인데 왜 그 유명한 투우를 안 봤을까? 저자가 동물학대라고 싫어하나?)
플라맹고와 집시는 스페인 전역에 퍼진 것 같다
어딜 가나 집시가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도둑질 하거나 동정해서 먹고 산다
또 열정적으로 플라맹고를 춘다
캐스터네츠를 치는 경우는 드물고 박수를 치면서 신들린 듯 춤을 춘다고 하다
너무 더우니까 주로 시원한 동굴에서 관람을 한다
동굴 속에 앉아 신들린 듯 격정적인 춤을 보는 즐거움!!
얼마나 신비롭고 환상적일까? 우리도 이런 전통이 잘 계승됐으면 좋겠다

집시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유태인들은 미국에서 상류층을 형성하고 돈도 많고 기어이 나라까지 건설했는데, 이 가엾은 민족은 왜 소매치기로 전락한 걸까?
민족이란 이처럼 섞이기 어려운 독특한 집단일까? 원래 집시라는 것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특성이 있나?
하여간 우리처럼 한 곳에 정착해 무려 5000년을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유랑 민족은 특이하게 보인다
저자는 집시들을 몹시 경계하는데, 이것도 결국 민족차별이라는 편견에 싸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스페인 사람들은 엄청나게 먹어댄다고 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워낙 더운 나라라 많이 먹고 푹 쉬는 게 체질화 됐다
특히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유명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상점이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오후 일을 위해 원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더운 것 같기는 한데, 우리처럼 부지런한 민족에게는 낯선 관습 같다
그래서 성당도 몇 백년 걸쳐 짓는 걸까?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엄청난 식성과 불룩 나온 배에 깜짝 놀랜다
그러고 보면 동양인들은 다들 날씬하다
나도 유럽 가서 깜짝 놀랬다
진짜 비만이란 바로 저런 거구나, 고개가 다 끄덕여질 정도였으니까

야간 열차에서 고생한 얘기는 내 얘기 같아 웃음이 나왔다
3주간 유럽 여행하면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잠자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체 나는 무슨 베짱으로 야간 열차를 많이 끼워 넣던지!!
그 놈의 열차 예약하느라 관광 포기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행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야간 열차, 생각하기도 싫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침대칸에서라도 잤다
우린 여섯 명이 들어간 그 좁은 객실에서 앉아서 밤을 보내야 했다
정말 끔찍하다
그렇게 고생하고 나면 다음 날 여행은 포기해야 한다
베네치아에 가서도 두깔레 궁전에 누워 잠만 잤고, 뮌헨 가서는 아예 호텔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유럽을 왜 갔나 몰라

물론 그 때 추억은 내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유럽을 직접 내 눈으로 체험했을 때, 역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문화적 쇼크라고 할까?
어쩜 그렇게 도시들이 문화적이고 아기자기 한지...
문화 콘텐츠가 참 풍부한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남는다
어떤 도시를 가든 책에서 볼듯한 고딕 양식들의 건물들이 서 있고 그 넓은 분수대와 광장들, 또 공원, 박물관이나 미술관!!
특히 파리나 런던은 루브르와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적어도 파리에 살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을 알고 있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엇보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저자처럼 딸을 데리고 충분한 일정을 가지고 그것도 공짜로 하는 그런 여행, 정말 부럽다
물론 그녀에게는 책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
나도 아이를 갖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꼭 해외 여행을 데리고 다니겠다
성장에 가장 큰 자극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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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의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한 말빨 한다길래 대체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대목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강준만 보다 한 수 위다
적어도 진중권은 자기 입으로 자기 논리를 얘기한다
강준만처럼 남의 얘기 가지고 책 한 권 쓰지는 않는다
다만 문장이 가끔 구어체로 흘러 가는 건 불만이다
본인은 가벼움을 추구하는 모양인데, 글을 쓸 때는 좀 진중했음 좋겠다
옛날에 유시민이 쓴 "Why not?" 에서도 거부감을 느낀 바다
글을 잘 쓰는데 가끔 너무 가볍다
그래도 글은 정제된 언어여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진중권은 마초는 아니다
일단 그건 마음에 든다
마초들의 집단 히스테리를 보면 머리가 다 아프다
한국이라는 가부장 사회에서 철저하게 남성 우월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마초들은,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물든 부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이 파시즘과 연결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병역 가산점 폐지 나왔을 때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들에게 퍼부은 그 폭언과 집단 행동을 보라!!
이런 놈들이 설마 진보 운운하지는 않겠지?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생각을 남성 우월주의와 동일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다르다" 는 것과 차별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입으로는 다르다 하면서도 인식은 똑같게 한다
이게 문제다
남녀차별은 인종차별과 똑같은 논리다
미국 가서 유색인종이라고 무시당하는 게 열 받는다면 우리 역시 흑인 무시하면 안 되고 마찬가지로 여자들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에 관한 시각은 신선했다
역시 푸코는 예리하다
그는 동성애를 새로운 인간 관계의 형태로 봤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남녀 간의 사랑이란 남성 우월주의에 기초한 관계다
동성애는 이 우월 관계를 깨뜨리고 새롭게 다시 맺는다
동성애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다는 논리는, 성을 단순히 생식의 본능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므로 동성애 뿐 아니라 피임과 매춘 등 애를 낳지 않는 모든 종류의 쾌락적 행위도 다 비판해야 한다
또 성서에서 금지했다는 말 역시, 왜 동성애만 아직까지 금기시 하는가?
공평하게 돼지고기도 안 먹어야지
동성애 차별하는 거 반대하지만 호불호 표현까지 막지 말라는 얘기도 진중권이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인터넷 같은 공적 자리에서 표현하면 이미 그 자체가 동성애자들에 상처를 주는 언어 폭력이 된다
네오 나치주의자 같은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유색 인종이나 외국인 싫어한다고 표현하면 그것 역시 우리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는가?

강준만이 지적한 것처럼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치에 설 때 더욱 잔인하다
철저하게 가해자 역할을 하므로써 피해자의 신분을 벗어 버리려고 애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문열이다
빨갱이 아니라는 거 보여 주려고 더욱 빨갱이를 욕하고 나서는 것이다
수구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내제화라고 할까?
인종 차별에 열받는 사람들은 타고난 것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나 늘 살펴 봐야 한다
내 자신이 남을 차별한다면 나 역시 또다른 사람으로부터 차별받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진중권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다
개인주의의 참뜻을 새롭에 아는 기분이다
흔히 개인주의란 서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 비슷하게 쓰이는데, 이거야 말로 개인주의나 서구 시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말이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등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구속을 넘어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애국심 같은 단어 대신 사회적 연대라는 개념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최연구가 쓴 "프랑스 문화 읽기" 에서도 발견한 개념이다
솔리디테르, 사회적 연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이념인 박애를 의미한다
개인주의는 근대 민족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는 개념이므로 탈근대적이고 세계화와 어울린다

진중권은 개인주의를 학연이나 지연, 혈연 등에 의지하지 않고 또 민족이나 인종의 테두리 안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홀로서기 할 것을 권한다
그래서 그는 선후배를 공적인 자리에서 씹는 걸 힘들어 하지 않는다
그의 인격과 공적은 구분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이 얼마나 닫힌 사회인가는 인맥의 끈끈함으로도 금방 알 수 있다
적어도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이라면 이 인맥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몸으로 실천해야 그들의 말에 귀기울일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진보를 자처한다면 집에서도 가사 분담을 당연시 해야 한다
마초적 기질과 진보는 너무나 대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수층, 아니 수구층의 이데올로기를 보면 대체 이데올로기라는 게 있나 싶을 때도 있다
신념이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가치인 법인데, 우리나라 보수층들은 가장 기본적인 병역 의무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아닌가?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안정과 질서, 애국심 등을 국민에게 강요하려면 먼저 국가의 의무를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입으로는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정작 국가의 근간이 되는 병역의무는 기피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들이 누누히 강조하는 그 국가의 이익이란 바로 수구층의 이익에 지나지 않단 말인가?

진중권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는 자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죽어가는 충신들의 숭고함을 찬양하는 이문열은 전체주의자 내지는 파시스트적이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자기가 옳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섬기는 자가 옳은 것을 위해 죽는 것은 개죽음 아닌가?
자발성과 주체성이 결여된 어떤 형태의 희생도 무가치 할 뿐이다
진중권은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의 죽음이 가미가제 특공대 보다는 더 숭고하다고 본다
일단 죽음이 숭고미를 띄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이바지 해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쪽으로 보려고 해도 가미가제나 미시마 유키오의 군국주의를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중권이 이문열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자칭 보수층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파시스트적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집단의 가치에 개인을 함몰시킨다
또 그것은 필연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억압 등과 연결된다
그러니 이문열이나 이인화 등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찬양할 수 밖에
박정희의 경제 발전 업적은 업적이고, 그의 독재는 독재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기념관까지 지어 떠받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공병호 같은 자칭 자유주의자는 극단적인 자유, 즉 완전한 규제 철폐를 원한다
시장주의자들이 작은 정부를 원하는 것은 새롭지도 않은 고전적 개념이다
공병호는 심지어 장기 매매의 합법화까지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생명까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진정한 자유란 국가나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태다
보수층이 국가의 안전을 내세워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대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경제적 규제의 철폐는 자유가 아니다

미국보다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은 서구 유럽 사회를 역할 모델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결국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우리의 의식이 성숙해져서 억압과 차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다
유시민 책을 보고도 글 참 잘 쓴다 싶었는데, 진중권도 만만치 않은 필력을 자랑한다
그가 쓴 "미학 오딧세이" 도 꼭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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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말 그대로 환상적인 책이다
여기서 환상이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책, 사라져 버린 책을 말한다
폴 오스터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혹시 "뉴욕 3부작" 의 기묘한 줄거리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책과 "달의 궁전" 을 꼭 권한다
"공중 곡예사" 도 재밌지만 이건 정말 재밌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독서, 은둔, 액자 소설 등으로 뒤덮혀 있다
주인공은 늘 독서열에 불타고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숨어 버리며 주인공의 얘기를 다른 사람이 들려 주는 화자가 꼭 존재한다
모든 소설이 다 그런 형식을 취한다
그는 문장을 참 잘 쓴다
이문열과는 다른 의미로 글을 잘 쓴다
이문열은 문체 자체가 훌륭한데 비해, 오스터는 묘사력이 뛰어나다
사물이나 풍경 묘사가 아니라 주변 정황이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쩜 이렇게 술술 잘 풀어 놓는지...
오스터의 높은 독서열이 소설의 수준을 높혀 주는 것 같다
역시 최고의 글쓰기 비법은 다독인 것일까?

이 소설의 화자인 데이비드 짐머는 "달의 궁전" 에 나오는 마르코의 친구다
마르코가 굶어 죽기 직전 집으로 데려가 숙식을 제공하고 돌봐 준 바로 그 짐머다
마르코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그를 만나는데, 그 당시 짐머는 아내가 죽었고 폐인 같이 살 때였다고 나온다
전작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두 번 인용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창작하기 보다는 기존의 인물을 변형시키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영화배우다
오스터는 또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이 강한 편인데 여기서는 무성 영화 시대의 코메디 배우가 등장한다
찰리 채플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920년대라면 오스터 역시 태어나기 전인데, 아마 과거 기록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이미 영화의 역사도 100여 년이 되기 때문에 무성 영화 시대는 이제 새로운 신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스터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 하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오스터처럼 대단한 이야기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이야기만 잘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얘기도 수준 높게 잘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안정효가 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가 떠오른다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짐머의 아내와 아이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그는 폐인이 된다
사실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괴롭긴 하겠지만 인생을 망쳐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울까?
아직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과장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브리지드가 실종된 후 그녀의 아버지가 고통을 견디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들었다
브리지드는 살아 생전 아버지와 크게 다툰 후 거의 의절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실종되자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녀를 찾아 다닌다
딸이 사라져 버렸을 때 아버지가 느껴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클까?
사이가 좋았던 딸도 아니고 잘해 준 것도 없는 딸인데 화해할 기회도 안 주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면 그 동안 잘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겠는가!!
브리지드의 아버지 오팰런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차라리 시신이라도 발견되면 포기할텐데 실종됐으므로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오팰런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딸에 대한 죄책감과 부질없는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짐머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그는 가족을 잃는 댓가로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다
돈이, 혹은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 행복이 어느 정도 본질적일까?
때로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돈이 없으면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그 돈을 가졌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혹은 물질이 생활을 안락하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보다 정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즉 최저 생계 수준만 유지할 수 있다면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오스터 소설의 은둔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락함을 제공해 주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났지만 형편없는 새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산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대부분이 책이었다
책 속에 진리가 있고 행복이 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헥터 역시 헐리우드 대스타라는 최고의 물질적인 자리를 버리고 나왔지만 (물론 어쩔 수 없긴 했다) 부둣가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그는 책을 읽으며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봤다
나는 이 설정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달라진다
행복이 충만한 자기 만족감이라면 만족에 대한 기분을 바꾸면 된다

짐머는 아내와 아이들이 죽은 후 피폐한 삶을 산다
사실 그는 대학 교수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굳이 큰 재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에 큰 가치를 주거나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큰 돈까지 안겨 준 비행기 사고가 고맙기도 하겠지만 (아마 로또 복권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짐머는 대단히 가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비행기 사고가 가져다 준 불행은 엄청난 보상금으로도 절대 회복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짐머는 보상금을 아낌없이 다른 곳에 쓴다
술과 마약 등 자신을 좀먹는 일에 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남은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쓴다
아내 헬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와 유치원에 놀이 기구를 제공한다
또 그와 헬렌의 피붙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만약 내 가족이 내가 죽는 불행을 당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돈을 얻게 된다면 우리 엄마 아빠 역시 내 이름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할 것 같다
나를 잃은 슬픔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존재들인가...
(어제 읽은 "변신" 에 나오는 가족과는 참 다르긴 하지만)

짐머가 헥터의 영화에서 위로를 얻는 장면도 공감이 간다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을 웃기는 코메디 배우에게 집중한다
아마 그 순간에는 어떤 것에라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살아갈 희망이 있어야 하니까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것일 필요는 없다
하여간 자기 마음을 의지할 수 있으면 된다
짐머는 헥터에게 빠져 그의 영화들을 모두 섭렵하고 책을 쓴다
헥터의 영화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유럽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앨머의 등장은 그를 다시 삶 속으로 끌어 들인다
여기서 삶이란 행복과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앨머는 짐머를 헥터에게 데려가기 위해 권총까지 꺼내 들고 첫 만남에서부터 섹스를 하는 좀 특이한 여자인데 결론적으로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했다
프리다가 헥터에 관한 전기를 불태우는 걸 보고 그녀를 밀친다는 게 우발적 살인이 되버린 후 죄책감과 불안감에 자살하는 장면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실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헥터의 일생을 수집하는데 7년이나 매달렸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기를 쓴 짐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으며 헥터의 아내와도 격렬하게 다퉜을 것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감정 상태였다면, 또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면 헥터나 짐머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헥터다
오스터 소설에 절대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헥터 같은 은둔자다
그들은 왜 안락한 현실을 포기하고 고통스런 익명의 삶으로 뛰어들까?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나는 현재 누리고 있는 것 보다 더 얻기 위해 늘 긴장하며 산다
혹시 내 것을 뺏기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 하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난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면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익명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은 없지만, 대신 의무감이나 구속감도 똑같이 사라진다

가장 큰 의무감이라면 물론 가족에 대한 것이리라
이런 생각하면 큰일나겠지만 가끔 가족이 없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멋대로 살아도 미안해 할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나로 인해 실망하고 속상해 할 사람이 없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내 맘대로 살 것 같다
이것도 그저 환상일 뿐일까?
가족은 내 삶의 큰 원천이지만 때로 구속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정한 길대로 따라 가라고 요구하는 그런 구속 말이다
가장이 되면 특히 그럴 것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가끔은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헥터는 헐리우드를 떠난 후 부둣가에서 거친 노동을 하면서 산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브리지드를 배신하고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 돌로레스의 손에 죽는데 도의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보속하는 마음으로 밑바닥 삶을 받아 들인다
만약 헥터가 헐리우드의 삶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돌로레스 역시 바로 은퇴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더라도 우발적인 살인 내지는 정당방위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명성을 위해 사건을 숨겼지만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그 사건이 알려지면 돌로레스나 헥터가 편안하게 사라질 수는 없었겠지만 평생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엾은 브리지드의 가족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눈에 총을 맞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암매장된 딸을 찾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 아버지 오팰런을 생각해 보라
결국 헥터의 행동은 비겁했다
그가 브리지드의 동생 노라의 구혼을 뿌리친 것은 당연하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헥터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심한 육체 노동을 하고 책을 도피처로 삼는다
사실 그는 이민자의 아들로 정규 교육을 못 받았다
더구나 연예인의 화려하고 무절제한 삶에 익숙한 헥터가 책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헥터의 기질 속에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면이 풍부했던 것은 아닐까?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수준이 형편없더라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지도 않지만 나쁠 것도 없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만 안 갖는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뭘 하든지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생활 보호 대상자를 생각해 보라 직업이 없어도 나라에서 쌀과 반찬값을 준다) 도서관에 가면 책은 널려 있다
결혼을 해서 책임질 사람이 생기면 다르지만, 혼자 몸이라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
더구나 나라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안정된 직업이 있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노라가 헥터에게 반한 걸 보면 자매간에 닮은 구석이 있나 보다
브리지드는 헥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가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것도 참아 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믿은 것이다
이 믿음은 나도 경험해 봐서 안다
비록 당신이 지금은 다른 여자들과 만나지만, 시간이 가면 내 사랑의 진실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유일한 안식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자의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한 믿음에 매달리는 가엾은 여자!!
결국 헥터가 돌로레스와 약혼까지 한 후 브리지드는 자살을 기도한다
헤어졌다고 자살까지 할 정도면 그녀가 얼마나 헥터에게 매달렸는지 알 만 하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해 봤지만 그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죽을 생각은 안 해 봤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브리지드는 헥터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안다
그리고 돌로레스에게 찾아간다
아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위협감을 느낀 돌로레스는 권총으로 위협한다는 게 그만 총을 발사하고 만다
살인 무기가 허용된 미국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돌로레스는 그 후 연예계를 은퇴하고 결혼한 뒤 곧 사고로 죽는다
그녀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는데, 혹시 그녀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암매장 당한 딸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가엾은 오펠런에 관해 알았더라면 편한 잠을 자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사고로 죽는 순간 자기 손에 죽은 브리지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헥터가 노라의 사랑을 받게 된 까닭은 일단 그가 헐리우드 배우를 할 정도로 잘 생겼다는 것과 함께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태도에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가진 것 없는 남자지만 헥터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유능했다
브리지드 가족의 집이었고 또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는 가게 일에 헌신적으로 매달린다
사실 그렇게라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헥터는 브리지드의 집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책에서 구원을 찾은 헥터는 노라에게 수업을 받으며 지적 교양을 넓혀 간다
만약 이 정도로 신실하게 사는 남자라면 (더구나 잘 생겼다면) 나도 한 번쯤 호감을 느낄 것 같다
비록 그가 객관적으로는 가진 게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노라는 진실된 여자였다
상원의원의 아들이 가진 명예와 재산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볼 줄 아는 여자!!
그래서인지 노라는 학교 선생님에서 시작해 교장까지 진급한다
비록 헥터가 떠날 때는 괴로웠겠지만 그 후 그녀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또 헥터가 자신이 언니를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걸 평생 몰랐기 때문에 더욱 다행스럽다
만약 헥터가 노라를 사랑해 그 사실을 고백했다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언니를 죽인 범인이나 다름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동생의 괴로움이라니!!
헥터는 노라에게 그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또 브리지드의 가족에게 일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결국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헥터란 남자는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소설이기 때문에 뭐든 잘 풀리는 걸까?
내가 보기에 노라와 잘 안 된 걸로 그의 운은 다한 것 같은데, 즉 그녀 곁을 떠난 후 막노동자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데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프리다를 대신해 총에 맞은 후 놀랍게도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뭐가 딱딱 들어 맞으려고 프리다는 부잣집 딸이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 한다
프리다는 왜 이 보잘 것 없는 남자에게 반했을까?
아무래도 헥터에게 큰 매력이 있나 보다
책을 읽을 때는 코메디 배우라길래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논리적으로 꿰맞추다 보니까 그가 엄청나게 잘 생겨야 (장동건이나 송승헌처럼) 여자들 마다 그에게 반한 게 설명이 된다

프리다와 헥터는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짓고 영화를 찍으며 살아 간다
둘 사이의 아들은 벌에 쏘여 일찍 죽었다
이 부부는 그 충격을 이기기 위해 영화 찍는 일에 몰입한다
사람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기 마련인데, 짐머가 헥터의 전기에 매달린 것처럼 프리다와 헥터 역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영화 촬영에 몰두한다
책에서는 헥터만 몰입하는 걸로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프리다 역시 헥터 같은 열정으로 매달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을 평생 후원했을 리 없고 그가 죽고 난 후 편집증적으로 영화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부부는 쿵짝이 잘 맞았다
아마 프리다는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와 함께 영화에 매달렸을 것이다

어쨌든 헥터가 죽은 뒤 그의 영화는 모조리 파기된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없애기 위해 찍은 영화라...
사실 일기나 다른 글들도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서 쓴다
즉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내적 만족감을 위해 쓰기도 한다
영화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만드는데 돈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기록이라면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도 가끔 일기나 유고들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는가?
헥터는 자신의 전기를 쓴 짐머에게만은 그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리다를 설득해 그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프리다는 완전무결성을 위해 첫 약속처럼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헥터가 죽기 전 날 도착한 짐머는 그와 단 5분 밖에는 얘기를 못하고 그의 단편 한 작품을 보게 된다
짐머는 프리다가 헥터를 질식사 시켰다고 추리한다

정말 프리다는 헥터가 모든 것을 발설할까 봐 두려워 그를 살해했을까?
90이 넘은, 오늘 내일 하는 노인이니 죽인다고 큰 죄책감은 없겠지만, 더구나 그녀 자신도 80이 넘은 나이니 삶에 미련 같은 것도 없겠지만, 헥터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까 봐 평생 사랑한 남편을 죽이기까지 한 걸 보면 그녀 성격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프리다는 앨머의 전기마저 불태워 버릴 정도로 집요했다
결국 그 편집증적인 태도 때문에 앨머에게 우발적이지만 죽기까지 했다
프리다는 뭐가 두려웠을까?
세상에 헥터의 작품이 알려지면 자신들이 평생 쏟아 부은 노력이 헛것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갖히기는 한다
한편 모든 것을 정리할 때이므로 너그러워지기도 하는데, 하여간 프리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꽤나 완고한 여자였을 것 같다

짐머가 본 단 하나의 단편에서도 나오듯, 헥터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를 곧 파괴하므로써 죄책감을 덜려고 한다
"프로스트의 내면적 삶" 을 보면 작가인 프로스트는 사랑하는 클레인이 죽어가자 자신의 소설을 하나씩 불태운다
클레인은 죽기 전 그 소설의 완성을 보려고 간절히 소원하는데 어느 순간 프로스트는 자신이 소설을 없애 버려야 그녀가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든,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파괴하므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헥터는 브리지드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평생을 바쳐 만든 영화를 모두 파괴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에게도 형벌을 내리는 것일테니까
프리다의 경우는 벌에 쏘여 죽은 어린 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담감을 벗기 위해서였을까?
어쨌든 자기 학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드문 경우라 하겠다

아주 재밌고 인상적인 책이다
특히 마지막 결론이 마음에 든다
짐머는 앨머의 성격상 헥터의 단편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는다
사실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헥터의 전기를 7년씩이나 쓰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전부 조사하고 다닌 앨머가, 헥터가 죽는 즉시 불타 없어질 영화들을 그대로 방치했을 리 없다
이 부부는 헥터가 죽으면 영화도 없앨 거라고 늘 공언했기 때문에 앨머는 분명히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영화는 그녀의 아버지가 촬영하고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다
말하자면 헥터와 프리다만의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짐머는 앨머가 어딘가에 그 영화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고 누군가가 영화를 발견해 내면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리라 믿는다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난 사실 앨머와 헥터의 관계를 의심했다
프리다가 앨머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거나, 앨머가 성적으로 액티브한 걸 보면 둘 사이에 뭔가 모종의 거래가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오스터는 진부한 형식을 거부한다
또 짐머 역시 평생 앨머만 그리워 하며 사는 게 아니라 (사실 둘은 겨우 8일 동안 알고 지냈을 뿐이다)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룬다
그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려 하지만 심장마비를 겪은 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 헥터처럼 죽은 후 출간하라고 유언한다
그러니까 헥터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이 책은 헥터와 앨머가 죽고 프리다가 모든 기록을 없애 버렸으므로 증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환상의 책" 이 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참 대단한 작가다
그가 비록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닐지라도 독자에게 이 정도의 재미와 생각할 꺼리를 준다면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물론 둘의 차이는 명백하지만 말이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이 독후감을 보내고 싶다
과연 그 자신은 자기 소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도 처음에는 책이 안 팔려 야구 게임을 팔러 다녔다고 하니,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글을 써야 하려나 보다
(역설적이지만 그가 훌륭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백날 글 써도 여전히 게임이나 팔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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