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1권을 읽고 다시 한참만에 2권을 읽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잘 나가던 1권에 비해,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내야 했던 불행한 말년이 담긴 2권이 더 정이 간다
가엾은 다산...
정조가 얼마나 그를 아끼고 신임했는지는 많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도 펼 수 있었을텐데,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나...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이 과연 큰 인물이구나 감탄을 했다
소외 계층이었던 남인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출사한 그는, 천주교에 잘못 연루되어 결국 머나먼 전라도 땅으로 유배를 떠난다
(당시 강진이 얼마나 시골이었으면 풍속이 비루하다고까지 했다 아마 형의 유배지인 흑산도나 거의 진배없는 벽지였을 것이다)
셋째형 정약종은 사형당하고 식솔들이 관비로 전락하면서 아들들의 과거길마저 꽉 막혀 버렸다
자신은 언제 풀려 날지 모르는 기약없는 유배형에 처해져 벽지 산골에 갖혔다
이 상황에서 한 때 가문의 기대와 국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 같으면 자포자기 하고 술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큰 학자였다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킬 기회로 여겼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역사가 그를 평가해 줄 것이라 믿었다
자신부터 학문에 몰두하고,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진 아들들에게 진정한 학문의 길을 가라고 다독인다
아버지 때문에 벼슬길이 막힌 불행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눈물겹다
지금은 노론 세상이나 그들은 공자의 본뜻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무리다
그러므로 너희는 비록 출세할 수 없다 하나, 유학의 참뜻을 배우고 닦아 실천한다면 너희야 말로 진정한 학문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노론에 대한 진짜 복수가 아니겠느냐...

그가 처음부터 은둔자 생활을 원하고 학문적 성취만 바랬다면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연암 박지원과는 달리 벼슬에 뜻을 두고 현실 정치에서 역량을 발휘하길 원했던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노론 명문가의 자제였던 연암과는 달리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 사람이었다
기득권층이었다면 권력욕이나 출세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소외된 사람은 누려보지도 못한 것을 포기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좌절감을 학문적 성취로 훌륭하게 극복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기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 진정한 학자였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문득 앤서니 라빈스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 와도, 즉 애인이 나를 차 버려도, 직장에서 ?겨나도, 파산 선고를 당해도, 그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인 것 같다

정약용은 신학문에 대한 욕구로 천주학을 접하지만 처음부터 예학을 중시한 유학자였던지라 곧 사학이라 규정하고 발을 뺀다
그러나 이 때 잠깐 접한 천주학 때문에 그는 평생을 불행하게 산다
그가 차라리 천주학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의 형 정약종처럼 구원을 받고 천주학 때문에 죽었다면 죽은 후의 영생이라도 기약하겠지만, 그는 그저 학문으로서 잠깐 접했을 뿐이다
그런 다산에게 18년의 유배형은 너무나 가혹하다
조선 사회가 얼마나 사상적으로 경직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예다

1801년은 조선 천주교 역사사 잊을 수 없는 해다
이 때 정순왕후에 의해 벌어진 신유박해는 그 규모나 잔인함 면에서 참으로 끔찍하다
정순왕후는 단순히 천주교만 엄금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를 이용해 남인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늘그막에 영조가 얻은 15세의 신부는 사도세자와 정조에 이어 순조의 발목까지 잡는다
순조는 겨우 11세에 등극한 왕이다
대비와 어린 왕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수렴청정이 정국을 안정시키겠지만 (정희왕후와 성종의 예처럼), 그 반대의 경우면 국정을 난도질 하게 된다
정순왕후는 상당히 여걸이었던 것 같다
그녀를 배경으로 사극을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
문정왕후처럼 한자를 잘 알아 더욱 국정을 좌지우지 했다
10살이나 어린 시어머니 밑에서 죽은 듯 살아야 했던 불행한 혜경궁 홍씨의 비극적 삶이 눈에 보인다
정성왕후가 오래 살았거나 영조가 일찍 죽어서, 혹은 사도세자가 조금만 더 정상적이어서 제대로 등극을 했다면 혜경궁의 삶은 누구보다 편안하고 화려했을 것이다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갔으나 그 남편이 미치광이일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정약전은 결국 흑산도에서 유배가 풀리지 않는 상태로 죽고 만다
그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흑산도의 어종을 구분한 "자산어보"를 펴냈다
유학만이 인정받던 시대에 물고기에 관한 책을 펴냈으니, 과연 실학자 답다
정약용은 주역에 몰두해 주역에 관한 여러 책을 쓴다
주역이라면 일면 점술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근본 원리로써 즉 유학의 일부로써 받아 들인다
그런 다산이었으니, 천주학에 흥미를 잃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산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들 넷과 딸 하나를 잃었던 것이다
셋은 홍역으로 세 살이 못 돼 죽었고, 딸은 태어난지 열흘만에 죽었다고 한다
유아 사망률이 이렇게 높으니 옛날 사람들이 자식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게 이해된다
특히 막내 농장은 유배지에 있을 때 죽은지라 아버지로서 자책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또 자신의 학문적 후계자로 여긴 정약적의 외아들 학초 역시 장가든 직후 사망해 그의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두 아들 보다는 조카가 낫다고 여겼으니, 아들들이 마음에 안 찼던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장수한다
그 시대에 75세를 살았다면 큰 질병 없이 천수를 누린 셈이다
그는 회혼일(결혼 60주년 기념일)에 세상을 뜬다
결혼 생활을 60년이나 할 수 있었다니, 이들 부부는 꽤나 해로한 셈이다
비록 18년을 떨어져 지냈지만 말이다
사실 정약용의 생활 방식을 살펴 보면 장수하는 게 당연한 듯 하다
연암 박지원은 꽤나 비만이었는데, 정약용의 초상화를 보면 체구가 작고 단아한 선비상이다
당연히 당뇨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은 없었을 것이다
또 술이 세지만 입술을 축일 만큼만 마시는 자제력을 보이고 아마 담배도 안 태웠던 것 같다
더구나 초의 선사를 만난 후 강진에서 차 문화를 꽃 피운 만큼 녹차를 수시로 마셨으니 고지혈증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반면 초의 선사는 술을 많이 마셔 간경화로 40에 죽는다)
육식을 못하는 정약전을 위해 개고기 요리하는 법까지 자상하게 편지로 써 보낸 걸 보면 영양에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더구나 유배지에서 많이 걷고 운동을 했을테니, 어지간한 병은 다 이겨낼 정도로 강건했음이 틀림없다

하여간 그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고 정리할 기회를 얻는다
그가 쓴 책들은 다산학이라 할 정도로 19세기 조선 학문의 경지를 높힌다
현실 정치에서 뜻을 펼쳤으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시대가 천재를 원하지 않았으니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불행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간 큰 학자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

특별한 과장이나 논리적 비약 없이 사료에 근거해 비교적 정확히 서술한 점이 마음에 든다
우리 역사에 획을 그은 덜 유명한 사람들을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 처럼, 비록 지나친 과장으로 읽기이덕일은 간혹 지나친 비약을 하는데, 이번 다산 책은 주관적인 평가는 상당히 줄고 객관적 자료 인용이 많다
 불편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역사는 이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멜리 노통의 책은 도무지 정이 안 간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걸 보면 프랑스 문학은 우리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에서도 느낀 바지만, 도대체가 플롯이랄 게 없다
그저 대화법으로 일관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그녀의 소설은 오히려 희곡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워낙 뜨는 작가라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특히 이 책은 노통의 책 치고는 긴 장편이라 뭔가 그녀만의 매력을 보여 줄 거라 기대했는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그녀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도 독특하다
프랑스 소설을 많이 안 접해서 그런가?
생소하기 그지없다
지난 번 소설에서도 "플렉튀르드"라는 기묘한 이름의 여자애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이상한 이름의 노인이 나온다
그래도 여기자의 이름인 "니나"는 마음에 든다
어쨌든 아멜리는 등장 인물의 이름이 주는 어감 만큼이나 독특하고 이상한 소설을 풀어 낸다
내 생각에 그녀의 사고 방식 역시 아주 독특할 것 같다
김영하나 배수하의 소설에서도 느끼는 바지만, 이문열류의 반듯한 문체와 구성에 익숙한 나 같은 독자는 아무래도 현대 문학을 즐기기 어려운 것 같다

타슈는 한 마디로 싸이코다
여자의 생리가 불결한 것이라면 남자의 사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자가 초경을 하듯, 남자 역시 나이가 되면 첫 사정을 경험한다
꿈 속에서 몽정을 통해 팬티를 적시는 그 지저분한 정액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자의 생리를 불결하게 본다면 당연히 남자의 사정도 역겹게 느껴야 정상이다
둘 다 혐오해야 그나마 성적 욕구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해가 간다
반면 한 쪽만, 특히 여자 쪽의 초경을 혐오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인가를 드러내는 단면일 뿐이다
바보 같은 타슈!!
사랑해 마지 않던 레오폴딘이 수영장에서 초경을 경험했다고 목졸라 죽일 때, 자기 팬티를 적시던 그 정액을 한 번이라도 생각한 걸까?
이 소설을 여자인 아멜리 노통이 쓴 걸 보면 그녀 역시 그저 관념에 치우쳐 구상을 한 것 같다
남자 작가라면 본인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구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계속 대화체로만 나간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의 특징은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전개인데 이 소설 역시 그저 통통 튀듯 문장을 써 나갈 뿐이다
타슈가 네 명의 기자들을 KO시키는 장면이나, 반대로 니나에게 KO패 당하는 과정이 전혀 통쾌하지 않다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대체 왜 그녀가 주목받는 소설가가 됐을까?
현대 문학은 이처럼 파괴성과 우연성에 기대야 뜨는 것일까?

폴 오스터의 소설과 거의 흡사한 표지 때문에 "열린책들" 에서 출간된 건 줄 알았다
"살인자의 건강법" 이라는 제목 자체는 참으로 통통 튄다
아멜리 소설의 미덕이 있다면 이처럼 톡톡 튀는 제목과 더불어 짧은 분량에 있다
그나마 읽기는 편하다

소설에는 수많은 프랑스의 작가들과 작품이 등장한다
타슈라는 캐릭터 역시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체 이렇게 특이한 작가가 있기는 있는 걸까?
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이럴 때 참 난감하다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책들은 왠만한 것은 다 알기 때문에 공감하기 쉽지만, 아무래도 서양 책과 작가에 대한 지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서재 결혼시키기" 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책과 작가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해 얼마나 지루하게 읽었던가!!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미국 작가들은 좀 더 알려진 편이다)
이 소설에서 알고 있는 작가는 기껏해야 사르트르 뿐이었다
만약 역자의 각주가 없었다면 아멜리가 창조해 낸 작가들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타슈의 캐릭터가 뚱보라는 것은 흥미롭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에서는 거식증에 걸린 발레리나를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폭식증에 걸린 뚱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음식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나는 이런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내 생각에 아멜리 역시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캐릭터를 공들여 묘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달의 궁전"에 등장하는 에핑의 아들도 끔찍한 뚱보였는데, 이 소설에서 타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금욕 생활을 하면서 먹는 게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폭식증 환자다

타슈처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라면 몸매 따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즉 아무리 뚱뚱해도 그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식욕을 굳이 억제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83세까지 생존한 걸 보면 건강에도 별 이상은 없었던 모양이다
금욕 생활까지 하는데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세상 사는 낙이 있지 않겠는가?
그는 그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반드시 직접 식료품을 사러 간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는 미식가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음식만 먹는 독한 편식가라는 점에서 나와 비슷하다
나 역시 맛있고 비싼 요리를 찾는 게 아니라, 내 입맛에 딱 맞는 일부 음식만 총애한다
특정 음식에 대한 집착이야 말로 진정으로 음식과의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타슈를 이해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버터 기름을 상당히 느끼한 것으로 표현했는데 원래 버터는 고소한 이미지 아닐까?
프랑스에서는 매우 느끼한 이미지로 통하나 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국적인 음식이 주는 좋은 이미지만 남은 것 같다
어쨌든 아주 좋아하지만 칼로리 때문에 먹지 못하는 버터를, 너무 느끼해 토할 지경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버터에 대한 애정이 꽤 식어 버렸다

고전은 제대로 읽히지 않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는 타슈의 말은 "이미지와 환상" 에서 부어스틴이 지적한 바 있다
호메로스의 시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하냐는 타슈의 비난은 일리가 있다
그는 22편의 소설을 썼지만,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 조차 제대로 자신의 책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를 인터뷰 하러 온 네 명의 기자를 쫓아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면 니나는 22편의 소설을 완벽하게, 그것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전장터에 뛰어든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공격에 타슈가 당황할 수 밖에
솔직히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인터뷰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읽었다 할지라도 느낀 바 없이 그저 줄거리 읽기에 그친다면 인터뷰 할 자격이 없다
강준만의 한탄처럼 인터뷰어가 공부를 하고 질문하면 인터뷰이도 흥이 나는 법인데 제대로 된 사전 지식도 갖추지 않은 채 수박 겉핥기 식의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날 만 하다

니나는 그의 소설들을 정독하면서 유일한 미완성 소설인 "살인자의 건강법" 이 자서전임을 직감한다
타슈는 대범하게도 소년 시절의 살인을 소설 형식을 빌어 고백한 것이다
타슈와 그의 사촌 누이 레오폴딘은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 사이로,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숲 속에서 생활한다
특히 그들은 수영장 안에서 수중 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어느 날 레오폴딘이 수영장에서 초경을 하고 만다
(이 모티브는 만화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육체적 성의 욕구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한 타슈는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 결국 그들이 살던 성도 불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그 후 타슈는 금욕주의자로 소설만 쓰면서 음식에 빠져 살아 간다

한 마디로 타슈는 정신병자다
어쩌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 노벨상까지 탔는지는 모르겠으나 명백히 그는 정신이상자다
성적 욕구를 더러운 것으로 혐오하는 것도 그렇고, 가장 사랑해 마지 않던 누이를 목졸라 죽인 것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방화까지 저지른다
그를 가족처럼 키워 준 외삼촌댁 내외가 사는 성에다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뻔뻔하게 소설로 남긴다
이런 미친 놈!!

결국 타슈가 니나의 추리에 굴복한 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정말 어안이 벙벙 했다
일단 작가의 전개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또 소설 안에서 보면 타슈는 완전히 미친 놈이다
니나는 그가 정신분열자라 판단하고 오히려 그를 죽이고 만다
목졸라 죽였으니 혈흔이 남을 것이고, 그녀는 수사 대상이 됐을텐데 소설은 논리적 설명을 거부한 채 타슈의 소설이 더욱 유명해진 것으로 끝을 맺는다
어쨌든 그 뻔뻔한 노인의 속셈을 간파하고 오히려 그에게 교살의 끔찍함을 선사한 점만은 높이 산다

아멜리 소설에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일단 성의없는 사건 전개나 개연성 없는 플롯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열심히 읽어 볼 생각이다
어쨌든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뭔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제발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폴 오스터다운 소설이다
누군가 "달의 궁전" 과 이 책이 가장 재밌다고 했는데, 확실히 재밌는 소설이다
"달의 궁전" 만큼 인상적인 건 아니지만, 꽤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그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그의 놀라운 독서력과 필력이 더해져 문학성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플롯을 구성하는 능력 하나는 확실하다
적어도 아멜리 노통처럼 말도 안 되는 즉흥적인 전개를 하지는 않는다
그가 중요한 구미 작가 중 하나라는 말이 실감난다

공중 부양이 가능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거의 100% 믿어 버렸는데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할 생각까지 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창작물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하늘을 나는 사람에 대한 꿈은 늘 있어 왔다
그는 아마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 같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우리의 주인공 월트는 나 자신을 완벽히 잊고 내 영혼을 밖으로 흘려 보낼 수 있다면, 공기보다 가벼운 자신을 느끼게 될 거라고 한다
이거야 말로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자신을 완벽히 잊어 버릴 때 오히려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다는 역설이 성립함을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완벽한 자신에로의 몰입 아닐까?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월트의 사부 예후디나 그를 사랑하는 후원자 위더스푼 부인의 특이한 이름이 마음에 든다
예후디란 이름은 전형적인 미국인이라기 보다는, 왠지 다른 곳에서 건너온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참 이상한 게 있다
예후디는 비록 그의 후견인이긴 했지만 월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반면 월트의 삼촌 슬림은 피붙이인데도 그를 죽이려 든다
피는 물 보다 진하다는 말이 항상 참이지는 않나 보다
슬림의 캐릭터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정말 외삼촌이 조카를 유괴해 돈을 뜯어 내고 죽일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렸을 때 키워 준 외삼촌이 말이다
소설의 과장인지, 아니면 실제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만약 외삼촌이 아니라 아버지라면 어떨까?
아버지라도 자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핏줄이라는 것도 실은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왜 피붙이인 외삼촌 보다 아무 관계도 없는 (비록 후견인이긴 하지만) 예후디와 더 끈끈하게 얽힐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나라면, 내가 소설가라면 내 상식에 비추어 절대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오스터 소설의 특징은 어느 순간 부자가 되고 (주로 뜻하지 않은 행운에 의해), 또 어느 순간 알거지가 되는 급작스런 변화에 있다
그는 특히 돈에 관한 문제는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갑작스런 부자, 또 그만큼 어처구니 없이 빠른 몰락
그는 주인공의 인생을 늘 들었다 놓았다 한다
사실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전 생애를 놓고 볼 때 늘 평탄한 사람은 없다
다만 워낙 긴 생을 살아 가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오스터의 소설이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어찌 보면 우연으로 점철된 것이 바로 인생임을 요즘 들어 느낀다
문제는 우리가 그 우연에 어떻게 반응하냐에 달렸다

월트가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됐을 때 예후디의 대응 방식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월트는 그런 예후디를 가르켜 밀림에서도 집처럼 편안하게 잠잘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절대 끝은 없다고 믿었다
완전한 파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이나 포기는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또다른 계획을 세우는 남자!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산다면 크게 두려워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기절할 정도로 놀랄 만한 일들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호들갑을 떨며 받아들일 뿐이다

예후디가 죽은 후 깡패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 하는 월트는 향락에 빠진다
그의 유일한 정신적 지주는 야구선수 디지 딘이었다
오스터는 여기서도 야구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보여 준다
월트는 어렸을 때부터 카디널즈 팀을 광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카디널즈를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가 바로 디지 딘이다
그런데 디지는 몇 시즌 못 가 곧 형편없는 선수로 전락한다
월트는 한 때 공중 부양의 묘기를 선보이다 땅으로 추락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를 명예롭게 은퇴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차마 그가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 옛 영광을 좀먹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디지를 은퇴시키는 방법은 놀랍게도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야구에서의 은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에서 아예 은퇴시킨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만약 그가 디지를 죽였다면 정말 미친 놈이었을 것이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당시 월트는 소비적인 삶에 젖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그는 디지의 영광이 전설에 묻히길 원했다
현실적인 추락을 지켜 볼 수 없었던 월트는 권총으로 그에게 자살을 권한다
철천지 원수인 외삼촌 슬림에게도 총을 쏘지 못한 소심하고 여린 월트가 디지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는 그저 관념론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즉 살의 그 자체는 없었다
불행히도 그 시각에 디지의 아내가 나타났고 결국 디지는 월트의 손에 죽는 대신 그를 경찰에게 넘길 수 있었다

오스터의 멋진 표현처럼 하느님 노릇을 하려고 했던 죄목으로 월트는 자신의 나이트 클럽을 처분한다
이제 그는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몰락이지만, 월트의 정신 상태를 쭉 읽어 온 독자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독자를 이해시키는 힘이야 말로 오스터의 매력이다)
오스터 주인공들의 특징은 행운에 크게 기뻐하지도 않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는 한편, 행운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도 의연하게 대처한다는데 있다
에핑의 유산을 상속하고 아름다운 여자 친구 키티를 얻는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MS가, 어느
날 그 모든 것을 잃어 버린 후 사막을 걸을 때도 떠오르는 달을 보고 행복함을 느꼈듯, 우리의 주인공 월트 역시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삶이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즉 세속적인 성공 여부는), 월트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초연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때 시카고에서 제일 큰 나이트 클럽 사장이었고, 그 보다 오래 전에는 유명한 공중 곡예사였던 월트는 제빵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에도 만족하고 살아 간다
그는 거기서 아내 몰리를 만나 30여년을 해후한다
몰리는 결코 아름답지 않고 아이도 낳지 못하지만, 또 그들이 가난했지만 월트는 몰리의 형제들과 조카들에 둘러 싸여 나름대로 만족스런 인생을 산다
그 자신이 물질적인 성공의 가치를 마음으로부터 포기했다면, 나이트 클럽 사장으로서의 삶 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경건하며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수용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소설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나간다
그 아내 몰리도 죽고 아내의 유방암 치료비로 전 재산을 탕진한 월트는 상실감 때문에 술에 의존하다 알콜 중독자 치료서까지 들어 간다
그런 방황을 보면 아직까지 그는 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아내가 죽은 것은 엄청난 정신적 상처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또 나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든 우리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높이 대우해 줄 가치있는 존재다

오스터 소설의 가장 중요한 장치인 우연이 또다시 등장한다
덴버로 직장을 구하러 가던 도중 월트는 예후디와 함께 나는 연습을 하던 위치토의 옛 집을 찾아 간다
어린 시절 예후디가 심은 묘목이 아름드리 나무가 된 모습을 지켜 보는 그 흥분감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추억 속의 장소가 40년이 지난 다음에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면 누구나 감회에 젖을 것이다
뜻밖에도 그 곳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바로 위더스푼 부인!!
예후디를 사랑했던 그녀는 이제 월트의 파트너가 된다
물론 그들은 20여년의 나이차가 나는 커플이라기 보다는 모자지간 같은 관계다
이 위더스푼 부인 역시 입체적인 캐릭터인데, 술과 섹스와 돈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분방한 여성이다
여자가 이 세 가지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정말 후회없는 인생을 살 것 같다
(남자들은 이것들의 가치를 금방 깨닫는데 여자들은 잘 모르거나 아주 늙어서야 알게 된다)

위더스푼과 월트는 서로에게 좋은 의지처가 돼 준다
결국 월트는 인생의 마지막 십 여년을 위더스푼과 보낸다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맨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만약 스무 살 무렵 위더스푼 부인을 만났을 때 그가 그녀의 사업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이 두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처음부터 행복을 찾았을까?
아니면 그 당시는 서로 너무나 젊었기 때문에 어차피 이뤄지기 힘들었을까?
인생이란 늘 알 수 없는 법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정 따위도 필요없다

KKK 단이 나타나 수 아주머니와 이솝을 화형에 처했을 때, 예후디와 월트가 느꼈을 분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대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어떤 명분이 있길래 사람을 마음대로 처형하는가?
그들이 내세우는 인종주의란 것이 실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한심한 논리인지 그 머리로는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중에 혹시 기독교인이 있을까?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히틀러도 완전히 미친 놈이지
월트가 디지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 흉내를 내고 있다
설사 죄가 있더라도 누가 그들에게 처벌할 권리를 주었는가?
인종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주장인지는,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만이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일 대학 입학 허가서를 받고서 얌전하게 대학 생활을 준비하던 가엾은 흑인 친구 이솝!!
또 어린 예후디를 거둬서 키워 준 인디언 수 아주머니!!
그들을 단지 유색이란 이유만으로 아무 원한 관계도 없이 잔인하게 살해한 KKK 단의 만행이 잊혀지지 않는다

공중부양이라는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소재를 이용해 이처럼 진지한 소설을 쓴 오스터의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확실히 이 책은 "뉴욕 3부작" 이나 "신탁의 밤" 보다는 재밌다
소설의 미덕이 재미라고 본다면 독자에게 훌륭한 보상을 한 셈이다
여전히 오스터는 매혹적이다
아무래도 그의 소설들을 더 탐색해 봐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만에 읽어 버린 책이다
300 쪽 정도 되는데 워낙 평이한 내용이라 딱 두 시간 걸렸다
솔직히 너무 평범해서 돈 주고 사서 읽기는 아깝다
그냥 가벼운 스케치 같다
혼자 수첩에 메모하는 수준?
읽기는 편하다
그녀는 한비야와 비교되는 모양인데, 자신도 인정했지만 한 수 아래다
단순히 한비야 보다 늦게 시작해서가 아니라, 글 쓰는 수준이 낮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필력이 아주 딸린다거나

그렇지만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요즘 내가 관심 갖는 게 바로 트래킹인데, 이 책은 그 트래킹에 관한 보고서다
흙길을 밟으며 자연 속을 걸을 수 있는 기쁨!!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나도 요즘 부쩍 걷기에 흥미를 느끼는데 솔직히 도심을 떠날 용기는 없다
일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막상 떠나려고 해도 심리적 저항감이 크다
혼자 길을 걷다 지치면 내 삶마저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을까?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속담일 것이다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하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제일 두려운 것은 내가 왜 걷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일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야 상관없지만 문득문득 외로움이 밀려 올 때, 내가 왜 이 곳을 걷는지 의미가 모호해지면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 올 것 같다
이번에 아빠, 엄마와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만약 여기에 혼자 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벗이 옆에 있다는 것은 때로 불편하긴 하지만, 위안을 줄 때가 더 많다
금산사 계곡에 앉아 발을 담그고 책 읽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마음이 충만해지지는 않았다
자꾸 외롭고 쓸쓸할 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아직도 홀로 설 준비가 안 된 것일까?

그녀에게 제일 부러웠던 것은 터키 대사관에 다녀서 한 달씩이나 휴가를 낼 수 있었던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휴가 제도는 정말 환상적이다
한 달 씩 유급 휴가를 주다니, 참 대단하다
무급이라도 좋으니까 쉴 시간만 주면 좋겠다
(솔직히 무급이라면 생각을 많이 해 볼 것 같기는 하다)
한 달이나 휴가가 주어지면 학생들의 방학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해외로 떠나는 건 당연한 수순 같다
그래도 외국 여행은 혼자서 잘 할 자신이 있다
일단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라도 외로울 틈이 없고, 무엇보다 유럽은 미술관이 많으니까 절대 지겹지 않을 것 같다
이것도 내 환상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는 여행 작가라는 직업을 획득한 것 같다
오마이 뉴스에 여행기를 연재하면서 그 돈으로 여행을 한다
또 이 책 역시 꽤 많이 팔렸고 앞으로도 여행기를 계속 낼 것이므로 여행이 밥벌이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런 위치를 획득하는 건 아니다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경비를 쪼개고 쪼개 여행을 한다
즉 길바닥에 돈과 시간을 뿌리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행에서 많은 것을 기대한다
늘 그렇지만 관광이나 여행이 생각만큼 큰 깨달음을 주는 건 아니다
드 보통은 여행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여행의 기술" 에서 보여 준다
(정말 드 보통다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해외 여행, 그것도 가능하면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
현재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그림이기 때문에, 미술관을 맘껏 보고 싶다
런던이나 파리는 얼마나 문화의 도시인가!!
서양 문화에 대한 내 흥미를 충족시키고 싶다
아빠가 늘 말하는 그 인문학적인 여행을 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은 너무 멀리 있고 나는 늘 바쁘다
그래서 대신 우리나라 여행을 해 보면 어떨까 싶다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는, 기왕이면 직접 걸어서 가고 싶다
그게 또 여행의 진정한 재미이기도 하다

걷기 여행을 하면 제일 좋은 건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면서 밥 두 그릇은 기본으로 해치운다
사실 요즘처럼 먹을 게 넘쳐 나는 시대에, 먹지 못하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즉 몸매를 위해 식욕을 억제해야 하는 슬픔을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나 역시 식탐이 강한 편인데 요즘은 대단히 억제하고 있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건 아니고 나름대로 생활 원칙을 세워 음식을 가려 먹긴 하지만, 어쨌든 아빠 말마따나 먹는 재미가 없으면 인생의 낙도 반은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처럼 음식이 흔하고 또 맛있는 미각의 시대에 식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자동차를 버리고 열심히 걷는 수 밖에 없다
칼로리 소비를 하지 않으면 입은 만족하더라도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남도를 걸으면서 싼값에 훌륭한 백반을 배부르게 먹는 장면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남도 백반이 얼마나 풍성하고 맛있는가!!
그 반찬과 밥을 안 남기고 싹쓰리 해도 충분히 열량을 소모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살이 하나도 안 빠졌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그 정도로 먹고 안 찌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요즘 나 같은 경우는 거의 절식에 가까울 정도로 식욕을 억제해도 충분히 배고프지 않고 살 만큼 현대인들의 칼로리 소비는 매우 낮다
그런데 배가 터지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시골 인심에 대한 그녀의 예찬은 상투적이고 표면적이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이 곳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즉 시골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면 나 역시 전형적인 생각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그들이 시골 인심이라고 말하는 부분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낯설음이 호감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본성은 엇비슷하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 표현형이 다를 뿐, 결국 본질은 다 거기서 거기다
시골이라고 뭔가 다르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길에서 잠깐 만나는 서울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후덕한 천사로 보이겠지만, 매일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들 역시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에 불과하다

그녀가 소개하는 트래킹 코스들을 꼭 한 번 답사해 보고 싶다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일단 시도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생각이 바뀔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
책과 함께 여행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은 이상, 이제 정말 떠나 보고 싶다
흙길을 따라 걸으면서 풍경 좋은 곳에서 잠시 다리를 쉬고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는 소박한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
그런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
나만큼 책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기며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물론 그런 성향의 남자라면 사회적 성공도 포기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와 소박한 삶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해결책 같다
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1
조안리 지음 / 문예당 / 1994년 8월
평점 :
품절


이런 류의 자서전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자랑을 듣는다는 건 때로 고역이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고 다양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성공에 지나치게 경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안 읽었는데, 문득 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생각나 그 대목을 보고 싶어 빌렸다
결국 못 찾았지만 한 편의 부러운 사랑 얘기는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또다른 에세이를 읽는다면 상당히 짜증이 날 것 같은데, 이 책은 남편과의 사랑 얘기만으로 일관되어 읽을 만 했다
솔직히 부럽다!!

사진으로 봐서는 예쁜 얼굴은 아니다
젊었을 적 사진을 봐도 오히려 촌스런 느낌이 난다
반면 남편 켄은 꽤 준수하다
미국인들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잘 짓는데, 켄 역시 웃는 표정이 일품이다
대체 그 미국인 사제는 조안의 어떤 면에 반한 것일까?
외모에 반하는 것은 가장 변덕스럽고 유효기간이 짧은 것이지만, 그래도 외모는 첫인상에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말하는 필이란 바로 외모를 일컫는 게 아닌가!!

책을 읽어 보니 정열적이고 지적인 면은 강한 듯 하다
공부도 잘 하고 독서열도 왕성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영어를 잘 했으니 미국인으로서는 호감이 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호감이었다면 켄이 50 평생을 부정하고 그녀에게 청혼했을까?
직접 만나 보면 뭔가 사람을 확 끄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정말 드라마틱한 사랑 얘기다

켄은 예수회 사제로써 서강대학교 초대 학장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꽤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교회 내에서도 높은 신망을 얻었다
60년대이니 미국인에 대한 우리의 호의도 그의 평판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스물 여섯이나 어린 여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천주님과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음을 나도 믿게 됐다

켄은 조안에게 영어 번역을, 조안은 켄에게 한국어 레슨을 해 주는 과정에서 그들은 매일 만나고 또 영화를 보고 등산을 가기도 한다
조안은 워낙 지적인 활동에만 몰두해서 또래 친구가 없었는데 켄이 그녀의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 준다
그런데 왜 하필 아버지 나이 뻘의, 그것도 신부였을까?
하긴 그가 신부였기 때문에, 또 워낙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우정이 지속됐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세상 사람들의 남의 일에 좀 더 관대해졌음 좋겠다
신부 교수와 여제자의 사랑이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 주면 안 될까?
권위주의 사회일수록 모든 것을 정해진 기준에만 맞추러 든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보수가 싫다
때론 숨이 막히려 든다

그녀가 당시 막 개교한 서강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꽤 공부를 잘했던 것 같은데 서울대를 놔 두고 굳이 서강대로 진학할 필요가 있었을까?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같은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켄과 그녀의 만남이 운명이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녀의 성격이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 같다
당시는 중고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갈 때인데, 전교 1등을 하던 조안이 경기여중 대신 새로 생긴 성신여중을 고집한 것도 참 특이하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운명의 남자인 켄을 만나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겠지만, 하여간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특한 여자임은 분명하다

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간다
더구나 망해 버린 집안의 공부 잘 하는 큰 딸이었으니, 그녀 부모님의 실망은 얼마나 컸을까?
만약 우리 아빠였다면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결국은 승낙했겠지만 자기 또래의 늙은 남자에게 시집 가겠다는 딸을 바라 보는 아버지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인지 책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그다지 많지 않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애착 관계가 많이 희석됐기 때문일 것이다

켄은 참 매력적인 남자로 나온다
스물 여섯이나 많은 더구나 교수님이에다 신부였으니 조안이 얼마나 우러러 봤을지는 상상이 간다
아마 모든 것이 다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비록 살을 섞고 살았지만 이미 남편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만 보이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켄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참으로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성관계만 해도 그렇다
켄은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녀와 동침하려 들지 않는다
정상적인 성욕을 가진 남자였지만 신앙적인 허락 없이는 절제하려고 애쓴다
책에서 그 부분을 일부러 누락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켄과 조안의 관계는 결혼 전까지는 명백한 플라토닉 러브였다

천주님과 당신이 내 안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게 공존하는데, 왜 세상에서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이 발언은 분명히 조안에 대한 육체적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 욕구가 강했다면 50세까지 신부로 생활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흔히 성욕을 본능이라고 하고 섹스가 사랑에 필수라고 하지만 (더 나아가 사랑하면 섹스해 달라고 하지만) 나는 명백히 자신의 욕구 충족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녀가 모두 성관계에 동의하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에게 요구되는 성관계는 명백히 이기적인 욕구일 뿐이다
켄과 조안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서 플라토닉 러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영원히 그러라는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는 서로에게 순결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다
순결이 한쪽에게만 강요되는 이중잣대가 아니라면, 지켜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피임할 필요도 없고 유산시킬 필요도 없고 모텔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하여튼 정말 부럽다
이런 운명의 남자를 만날 수 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뀔 것 같다
조안은 역시 똑똑한 여자라 미국에서도 로비스트로 성공한다
아마 그 성공기가 2부에 펼쳐질 모양이다
그녀가 49세 때 쓴 책이라면 켄은 75세인데, 일찍 죽은 것 같다
190cm의 거한으로 건강했을 것 같은데 왜 빨리 죽었을까?
사고일까?
하여튼 그녀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애틋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딸 둘을 낳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 주고 간 최고의 선물이니 외롭지 않겠지
나중에 출간된 책을 보니까 그녀 역시 아픈 것 같다
암인가?
그렇지만 뒷 얘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를 재밌게 읽은 후 후속편으로 나오는 김영희의 에세이 마다 동어 반복에 실망을 해서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방학 때 읽을 도서 목록을 정한 뒤 모두 읽어 치운 그녀의 독서열이다
사실 대학 초년생 수준에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녀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이 도서관에 출근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도서관에 책을 읽는 그 열정이 정말 부럽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내게 허락된 여유 시간 동안 무섭게 읽고 싶다
오늘 아침에 벌써 한 권을 읽었다
독서에 대한 열정은 나와 같은 것 같다
그런데 "이방인" 이 권태에 대한 항거인가?
이건 좀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