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읽은 책이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서 금방 읽었다
한겨례에서 펴낸 책답게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약간의 거부감도 있지만 아시아에 살면서 그들에게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반성도 든다

나는 현재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생각할 때마다 조선 시대의 명나라를 떠올린다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명을 떠받들었는데, 명이 망한 뒤에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자초할 정도로 의리를 지켰다
지금 눈으로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대주의였지만, 혹시 지금의 한국도 미국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지는 않는지 자기 검열을 해 본다
미국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앞서가는 것이며 심지어 가장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막연한 충성심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본다면 주체성을 상실한 어리석은 행동일까?
그렇다고 반미 정서 내지는 미 제국주의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다
일본 역시 세계적인 선진국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누구도 떠받들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든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데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 주게 높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 경험이 있었다지만 이렇게 높은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내제화 되버린 건 아닐까 걱정된다
미국을 배척하는 것은 곧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 흐름도 파악 못하고 멍청하게 미국을 쫒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평한 답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은 책과 언론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 간의 외교 문제는 결국 이기적이고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간의 관계와는 다르게 국가는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고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 후기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가?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이 있을 때만 우리의 우방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미국 외의 다른 나라, 특히 우리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여자의 지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선출되느냐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수록 일반 여성들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데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여성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들이 이해가 안 갔다
막연하게나마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 느낌이 맞았다
문득 박근혜가 생각난다
박근혜는 여자 당수이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등장한 정치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익 향상과는 실제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질까?
오히려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이 확고한 남자 정치인이 선출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현지 언론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 기자들이 그 나라들을 들여다 본 거라면 좁은 시야나 편견이 걱정될텐데, 그 나라 언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진단한 것이라 좀 더 믿음이 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가와티나 코리 아키노, 부토 등이 실은 가문의 후광으로 총리에 선출됐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우리 보다 훨씬 더 족벌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디에 대한 평가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간디처럼 완전무결의 성인으로 포장된 사람도 드물 거라는 인도 기자의 말이 이해된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책을 사실대로 말한다 해서 위인의 위대함이 퇴색되는 것도 아닌데, 언론은 좀 더 완벽한 그럴싸한 포장을 원한다
그래야 책도 팔리고 영화도 만들 수 있으니까
간디가 섹스를 혐오한 것은 성적 결벽성을 의미하지, 절대 그의 영혼이 고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국가의 통합을 위해 하층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인간이든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상업주의일 뿐이다

킬링 필드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접할 수 있었다
킬링 필드라면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크메르루주의 학살 전에 미군의 대학살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5년 동안 200만명을 학살했는데 이 중 절반은 미군에 의해서였다는 진실을 우리는 왜 외면하려고 들까?
이 사실을 들춰 내면 크레르루주의 잔혹함을 덮는 것이라고 공격받는다

1980년 5월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다면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에도 5월은 있었다
못 사는 나라일수록 군사 정권이 지배하는데 정치 상황이 아마 60년대 박정희 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박정희는 근대화라도 달성했는데 그 나라 지배자들은 독재 정권을 휘두를 뿐 아니라 무능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마치 전두환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 위치에 서게 된 게 자랑스럽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내전을 빨리 끝내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해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끼리 교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혈통 순결주의라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미국 가면 유색인종이라 차별 받으면서도 흑인들을 똑같이 차별하고 그래도 흑인보다는 낫다는 어처구니 없는 우월감을 갖는 게 우리 나라 사람들이다
LA 폭동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천시한다
세계화란 단순히 영어를 배우고 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을 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지구촌이라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하려면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결혼도 적극 권장할 사항이다
해외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 교류가 있어야 상대에 대한 마음도 열린다

버마의 니옹왕의 수기는 인상적이었다
의사 출신인 니옹왕은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밀림 지역에서 무장 독립 운동을 전개한다
군사 정권에 반대하여 정부의 세력이 닿지 않는 밀림으로 들어 간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학생들의 집합체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지식인이겠지만, 니옹왕이 그래도 제일 지식인층에 속한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 수준이 그 집단에서는 최고 엘리트라는 얘기다
수기를 읽다 보면 그가 의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닥터 니옹왕이라는 걸 강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의사라는 게 혁명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별 대단한 존재는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쑨원도 의사였고 체 게바라도 의사였다
일단 사회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득권층인데도 그것을 버리고 혁명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긴 하다
그러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의사라는 이유가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의사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해 달라는 의견 때문이었다
세계화란 국경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이념을 실현하는 정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버마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항쟁도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혹시 김대중 대통령도 그런 의미에서 아태 재단을 설립한 건가?
그는 아태 재단에 초대를 받은 후 우리의 민주화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경제 발전도 많이 부러워 했다
더불어 세계화의 시각에서 버마의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무장 투쟁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자각하고 정치적 투쟁도 병행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깨달음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앞으로 버마 사태가 보도되면 관심있게 지켜 볼 것 같다
더불어 니옹왕의 역할도 기대해 볼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시아를 돌아 볼 때 제 1순위로 떠오르는 문제다
솔직히 중동 평화와 이스라엘 얘기가 나오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기독교와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는 은연 중에 이스라엘 편을 든다
특히 교회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종말론을 부르짖는 교회일수록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당연시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 구원의 신비를 확신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서 뻔뻔스럽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예언의 실현이라고 설교하는 걸 보면 화가 나고 부끄럽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은 둘째 치고라도 어쩜 그렇게 잔인하고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중동 평화를 깬 사람은 명백히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적어도 개인 간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서 기쁘다
유럽만이 문명의 전부인양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지엽적이고 편협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아시아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여행도 해 보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를 탈피해야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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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세기 - 새천년을 과학으로 읽는다, 이인식 과학칼럼
이인식 지음 / 김영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컴퓨터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A.I.를 보면 가상 섹스가 등장하는데, 정말 감정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특히 뇌과학에 관심이 많다
인간의 지성과 감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신비한 존재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신경 전달 물질이 뉴런을 자극하면 뉴런이 전기적으로 흥분해 감정이 발생한다고 알려졌는데, 보다 자세한 규명이 필요하다
만약 감정이나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초능력이나 심령술 같은 사이비 과학, 혹은 과학을 넘어선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의 신비가 풀릴지도 모른다

나노 기술도 신기하다
나노는 분자를 측정하는 단위이므로 제품 관리를 분자 수준으로 하겠다는 얘기다
만약 분자 수준의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완전 무결한 제품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바닥에 빈 틈이 많다"는 파인만의 말이 실감난다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는데 여기에 딴지를 걸므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인문주의자들이 한심하다
과학의 지나친 발전이 인류를 멸망시킬 거라는 얼토당토 않는 과장법을 쓰는 사람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지적 사기"라는 책으로 공격한 앨런 소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음 좋겠다
과학자들의 말은 뭘 좀 제대로 알고나 말하라는 것이다
과학이 인류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는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 그 자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인문학은 표현 양식이 다를 뿐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관념론에 빠져 과학을 공격하는 학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사이비 과학을 부추기고 있다

저자는 반과학에 대해 좀 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마틴 가드너의 책을 읽어 보면 보다 비판적이고 확실한 태도를 갖는데, 저자는 뒤로 뺀다
공격이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자신도 확신을 못해서인가?
남녀의 차이를 진화론적으로 서술해 이대생들로부터 집단 항의를 받기도 했다는데, 왜 반과학에 대해서는 이렇게 유보적인지 모르겠다
유리 겔러의 초능력 따위를 대단하게 언급하는 자세가 마음에 안 든다
임사 체험은 뇌의 산소가 부족할 때 엔돌핀 등의 마약성 호르몬이 한꺼번에 분비되므로써 느끼는 극치감이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가 초현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실체를 규명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모짜르트의 41개 교향곡을 분석해 42번 교향곡을 만들어 낸 엠미나, 그림을 그리는 아론 같은 컴퓨터의 등장은 창의성이라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
창의력이라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 믿었는데 이제 인공 지능이 그것에도 도전을 한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입력한 결과 대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컴퓨터가 제일 어려워 하는 것은 상식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한다
상식이란 수십년에 걸쳐 쌓아 온 지식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지능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 만 하다

유전자 공학은 오늘날 과학의 대표적인 양면의 칼이다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보다 우량 형질의 동식물이 탄생되고 있다
이것이 인류에게까지 적용되면 과거 나치즘 같은 우생학이 다시 등장할까 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과연 인류의 형질을 통제할 만큼 유전학이 빠르게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체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들떠 있지만, 여전히 우주 여행은 꿈에 불과하듯, 원하는 형질의 발현을 통제한다는 것은 아직은 어려워 보인다
인문주의자들이 너무 앞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보다 완벽한 발전을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형질 전환과 유전자 삽입을 통해 우량 품종을 만들어 내는 현재의 유전 공학은 참으로 대단하다

다윈의학도 새로운 개념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 몸도 진화의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이다
고열이나 기침 등은 병균을 몰아 내기 위한 방어 시스템의 작동이고,  병균들도 우리처럼 진화한다
그런데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고 돌연변이만 유전된다고 들었는데, 다윈의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확실성의 원리도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을까?
카오스란 초기의 작은 조건이 사건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세상일이 원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은 자연이 선형 방정식 보다는 카오스 상태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뉴턴"이나 "과학 동아"  같은 과학 잡지를 자주 읽어야겠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적 사고는 필수 교양이다
과학 기술 자체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적어도 그 사고 방식은 꼭 익혀야 한다
과학적 사고란 바로 합리적인 사고를 뜻한다
항상 흥미를 유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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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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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참 잘 쓴다
"로마인 이야기"의 명성이 그냥 쌓인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유명한 책을 아직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그녀의 또다른 역작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읽으면서 필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적으로 잘 쓴 건 아니지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참 편안하게 르네상스를 설명해 준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 제국 흥망사"는 그녀의 책 보다 10배는 더 재밌다고 하니, 갑자기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대화체로 쉽게 쓰여진 이 책은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녀가 정의하는 르네상스란 호기심과 탐구심이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천년 동안 인간은 의문을 품으면 안 됐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져 보지 않고도 믿는, 그 절대성이지 않는가?
그런데 자꾸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면 올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이 라틴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 조차 막았던 모양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리인지 의심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권위는 떨어질 테니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고의 르네상스인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왕성한 호기심에 있다
다 빈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했다
그가 그린 해부도를 보면 오늘날의 인체 해부도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
얼마나 인체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으면 시체 해부를 할 생각까지 했을까?
천재란 한 분야에만 몰두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에는 워낙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되어 양쪽에 발을 걸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그에게 어떤 작업도 요구하지 않고 후원해 준 프랑수아 1세는 이 천재에게 완전히 반했음이 틀림없다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옆에 있어만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예술가를 후원한다는 것 만으로도 영광일테니까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인 라파엘로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가 그린 자화상을 보면 무척 아름답고 예민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작업하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공방을 차려 거대 기업처럼 운영했다고 하는데, 넘치는 창작욕과 함께 머리 회전도 빨랐나 보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아 죽은 후에도 신들이 묻히는 팡데옹 신전으로 갔다고 하니, 교황이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알 만 하다

미켈란젤로는 좀 더 고독하고 괴팍해 보인다
세 천재 중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조각가가 생각해서, 조각을 하지 않을 때만 다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업이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나 건축 같은 엄청난 일이었으니, 과연 그도 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 하다
로마에 갔을 때 그 유명한 "천지창조"를 보긴 봤는데 너무 높아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햇빛을 차단해 어두워서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지금 같으면 최소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도 찾으려고 애쓸텐데 말이다
사진 찍지 말라는 감시원의 눈을 피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한 도시라 우피치 미술관에는 엄청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피렌체가 일정에 없어서 못 갔던 게 너무 아쉽다
솔직히 로마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도 워낙 그림들이 자잘해서 큰 감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루브르나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들은 큼직하게 전시가 됐는데, 로마의 미술관은 그림 규모도 작고 르네상스 이전 시대부터 그림이 많아 너무 전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 보면 아마 달리 보일 것 같다
피렌체도 꼭 가 보고 싶다
책에서 본 그림들을 직접 접하면 얼마나 감동하게 될까!!
런던이나 파리, 혹은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인류 최고의 문화 유산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을까?

신을 대한 세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아예 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테오,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믿는 크레덴테, 마지막으로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라이코다
이 라이코가 중요한 개념인데, 신을 믿지만 과학이나 정치 등 다른 분야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 태도가 바로 르네상스인들의 특징이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현대인 대부분이 라이코에 속할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신의 섭리는 근본적으로는 같더라도 세세한 면까지 다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학 이외의 학문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중세는 오직 신학만이 발달했던 어둠의 시대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현실 세계에 적용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종말론을 주장한다
진화론이 신의 섭리와 배척되지 않는다는 것은, 갈릴레이가 독실한 신자이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프란채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를 꼽는다
이들은 13세기 초의 인물들인데,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직전에 여명기를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역사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학문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오노 나나미는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에게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명예를 수여한다

프란체스코는 청빈을 주창하며 수도회를 이끈 사람이다
십일조를 비롯해 온갖 부를 축적하던 당시 교회로서는, 가난을 강조한 프란체스코를 이단으로 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새 시대의 기운임을 감지한 현명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그의 수도회를 인정해 준다
교황이 비록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시대의 분위기를 역행하는 수구 반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교황은 현명하게도 교회의 취약점을 살리기 위해 프란체스코를 인정해 준다
교황은 교회의 대표이므로 화려하고 권위를 갖지만, 그를 수행하는 가장 아래 계층인 수도사들은 청빈을 지향함으로써 균형을 맞춘 것이다

이 프란체스코도 매우 똑똑한 사람인데, 그는 현실 감각과 관용을 두루 갖추었다
보통 이상주의자들은 독선에 빠지기 쉬운 법이지만,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제 3계급이라는 것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기도하러 온 사람이나 매일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나 그 믿음은 다 똑같다고 인정해 준다
평생 수도원에 몸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주일에만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즉 믿는 방식은 개인의 자유라고 인정해 준다
오히려 그는 생업에 종사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장려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번창한 이유는 바로 이 관용의 정신에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정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는 학문을 장려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 하기도 한다
또 십자군 원정 때도 이슬람의 술탄과 화친을 맺기도 한다
훌륭한 사람이란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아무리 고귀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라 할지랄도 그것 외에는 다 틀리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유명한 가문 메디치 이야기도 재밌었다
메디치 가문은 참주 수준으로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라면 예술가들의 후원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피렌체나 베네치아 등은 도시 국가 수준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능력있는 가문이 정권을 장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실 민주 정치를 실시하는 요즘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시민 의식이라는 게 없었던 중세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페리클래스가 통치하는 30년 동안 그리스 민주 정치가 꽃피웠다고 하지만, 실상은 1인 독재와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페리클래스가 패각 제도 때문에 잠시 아테네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옆에 그림이 실려서 더 재밌다
책 크기도 읽기 편하게 작은 싸이즈라 마음에 든다
더더욱 좋은 건 훌륭하고 매끄러운 번역이다

나머지 부분을 겨우 읽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방금 몇 분 만에 읽어 버렸다
작가가 책을 쓸 때도 가능하면 단기간에 써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듯, 독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시 책은 한 번에 쭉 읽어야 한다
아니면 하루에 읽을 분량을 정해서 며칠에 걸쳐 나눠 읽든지
("달의 궁전" 을 이렇게 읽어서 아주 좋았다)

르네상스가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에 비기독교 문화권인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사실 이것이 단지 서구 역사에 지나지 않다면 르네상스를 연구하는 게 우리와 무슨 상관 있겠는가?
저자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심안, 즉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과 극기, 즉 현실을 이겨내는 정신력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의 그림을 볼 때는 해설서에 의존할 게 아니라 스스로 젊은 천재가 되서 감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진정한 독서가이자 감상자임이 분명하다

또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고 애쓴 르네상스인들의 시대 정신에 초점을 맞춘 것도 마음에 든다
콜롬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미지의 바다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의 고귀한 탐험심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황금에 눈이 멀어, 혹은 인디언 문화의 파괴자들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르네상스 탐험가들의 정신을 무시하는 부당한 발언들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 안에 선악이 함께 존재한다고 믿고 악을 이기기 위해 애쓴다
그야말로 다원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선악으로 정확히 분리되는 평면적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 다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르네상스 문화가 꽃 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재밌고 유익하며 또 읽기 쉬운 책이었다
르네상스의 시대 정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한 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 수년 동안 공부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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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의 꽃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 읽고 싶던 책이었다
알라딘에서 처음 발견하고 꼭 사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있길래 어찌나 반갑던지...
불행히도 신간 도서라 대출이 안 되서 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읽는다
머리 식히기에 딱 좋은 책이다
궁녀라는 소재 자체가 가볍지만, 서술도 아주 쉽게 됐다
신명호가 쓴 "조선의 왕"은 왕이라서 그런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많았는데, 궁녀들은 원래 천한 계급이고 자료가 많이 않아서 아주 쉽게 쓰여졌다

제일 재밌는 이야기는 세종 때의 신빈 김씨였다
소헌왕후의 지밀 내인인데 승은을 입었으니, 얼핏 생각하면 왕비의 심한 질투를 받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왕비가 무척 신임하여 막내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겼다고 하는 걸 보면, 사이가 매우 좋았던 모양이다
소헌 왕후는 시아버지에 의해 친정 가문이 몰락하고 어머니는 제주의 노비로 있었던 불행한 왕비다
그런데도 세종의 사랑을 받아 10명의 아이를 낳고, 그것도 아들만 여덟을 낳았던 다복한 여인이다
친정의 몰락 때문에 몸을 낮췄던 것일까?
아니면 아들도 워낙 많고 남편의 사랑이 극진해 여유가 있었을까?
하여간 참 대단한 왕비다
이런 왕비 밑에서 후궁 노릇 하기는 좀 편했을 것 같다
세종은 정치만 잘한 줄 알았더니 집안 단속도 아주 잘 했던 것 같다
신빈 김씨도 신실한 여자 같다
세종이 죽은 후 정업원에 들어가 남편의 명복을 빌며 스님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아들이 여섯이나 있었던 그녀에게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궁녀에 관한 시각은 "대장금"에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 전에는 평생 시집도 못 가는 불행한 여자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대장금"을 통해 그녀들이 조선 시대의 유일한 여자 전문가였다는 걸 알게 됐다
수랏간 음식을 다룬다는 그 자부심과 전문가 정신이 그녀들의 위상을 높혀 줬다
실제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12시간 일하고 36시간을 쉬었을 뿐더러, 월급도 상당히 많았다
생산량이 극히 적었던 조선 시대에 밥 굶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월급을 받았으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성적 측면만 잘 해결된다면 크게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궁궐이라 풍랑도 많고 세력 다툼도 심했겠지만 말이다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는 신빈 김씨 보다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아닐까 싶다
무수리라면 나인들의 심부름꾼인 물 긷는 종인데, 감히 임금의 아이를 배다니 놀랍다!!
그것도 그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만약 숙빈이 오래 살았다면 최고의 효도를 받았을텐데 고생을 너무 해서 그랬나?
일찍 죽은 것 같다

궁녀들이 4살 때 입궁했다고 하는 건, 작가의 시각으로 보면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4살짜리는 먹이고 입히고 대소변도 받아줘야 할 나인인데 이렇게 이른 나이에 데리고 와서 챙겨 줬을 리 만무하다
기본적으로 궁녀들이 궁궐의 노동력을 담당해야 하는데 어린 애들을 키울 여력이 있었을까?
헌종비의 경우 처럼 애 못 낳은 대비나 중전이 수양딸 삼아 데려다 키운 거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입궁 나이는 아니었을 것 같다
실제로 빨라도 7세는 넘고, 10여 세는 되야 뭘 가르치고 일을 시킬 것 아닌가?

세조의 후궁 중 덕중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사저에서 아들을 낳아 소용에 봉해졌으나, 그 아들이 죽는 바람에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조의 조카인 귀성군 이준을 만난 뒤 마음을 뺏겨 그에게 연애 편지를 쓴다
참으로 대단한 여자가 아닌가!!
왕의 후궁이면서 그 조카에게 연애 편지 쓸 생각을 다 하다니...
아들이 죽지 않았으면 좀 참을 수 있으련만 남편 사랑도 못 받고 자식도 없으니 자기 감정에 더욱 솔직해진 모양이다
귀성군은 당시 제일 잘 나가는 젊은이로 궁녀들의 연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연애 편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칫 죽음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그의 아버지가 현명하게 일처리를 한다
편지를 즉시 세조에게 바친 것이다

그래도 세조는 대범하게 행동한다
처음에는 덕중의 일을 그럴 수도 있다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세 번째에는 정말로 화가 나 덕중을 사형시키고 편지를 전달한 내시들은 때려 죽인다
덕중은 어쩌자고 세 번씩이나 세조를 화나게 했을까?
사랑하는 마음이란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대단한 것일까?
왕의 아들까지 낳은 사람의 운명 치고는 참으로 기구하다 할 수 있겠다

궁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자의 성욕도 의외로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나 같으면 그깟 섹스가 뭐 그리 대단하랴 싶은데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나 보다
목숨을 담보로 내시나 별감과 사랑을 나누고 심지어 동성애까지 손대는 과감한 궁녀들이 의외로 많았다
성욕이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상궁 계환의 이야기는 참 안타까웠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형까지 가능했던 조선 시대에는 정국 안정이 목숨 부지에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광해군과 인조 시대를 산 계환은 부침을 거듭 하다가 결국 옥사하고 만다
기옥이라는 상궁도 마찬가지다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까지 간 계환은 결국 모시던 주인이 사약을 받는 바람에 옥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만약 그녀가 주인을 밀고했다면 살았을까?
솔직히 암투가 심한 구중궁궐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버티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엾은 궁녀들...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어떤 독자는 신명호답지 않게 수준이 떨어지는 책이라고 비판하지만, 역사에 근거한 괜찮은 에세이다
밝혀지지 않은 재밌는 주제들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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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를 많이 한 책인데, 별로다
아주 재미없지는 않은데, 전경린 소설이나 은희경 소설처럼 느낌이 확 오는 건 아니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문학상 후보에 올라 참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의외로 너무 싱겁다
왜 이런 소설이 문학상 후보에 오를까?
그럼 그 상 수준도 알 만 한 거 아닌가?

내가 김영하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는 그림도 수준이 되야 보듯, 글도 한글로 쓰여졌다고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그의 에세이 때문이었다
현대 미술이 난해하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막상 소설이 어렵다는 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착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시각기 좋았다
한글로 쓰여졌다고, 그래서 읽을 줄 안다고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
소설 역시 수준이 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문학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김영하의 소설은 한글만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만큼 평이하다
그나마 억지스런 플롯이 없고 그런대로 무난한게 다행일 정도다
문체의 개성도 없고 별 재미도 없다
원래 단편이라는 게 작가의 역량을 드러내기 참 어려운 분야이긴 하다
자기 문학의 뿌리인 중단편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문열의 고백은, 그래서 참으로 공감하는 바다
중단편이야 말로 작가의 수준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문열을 이 짧은 소설에서 자기 역량을 참으로 잘 드러낸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 아니겠는가?
이문열 수준의 단편 쓰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은희경도 단편은 실망스럽다

이 책의 중심 단편인 "오빠가 돌아 왔다" 는 해체 직전의 콩가루 가족 이야기를 중학교 1학년 여자애 눈으로 그린다
구청에 민원 넣어서 먹고 사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맞고 살다가 이제는 아버지를 때리는 오빠, 알콜 중독자 남편을 떠나 함바집에서 먹고 사는 엄마, 그리고 중학생인 나, 오빠가 데리고 들어 온 열 일곱 살 짜리 올케
이렇게 이뤄진 기묘한 가족이다

일단 아버지가 오빠를 때리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오빠가 아버지의 야구 방망이를 뺏어 다시 아버지를 구타하는 건 완전히 콩가루 집안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면 천인공노할 범죄지만, 아버지가 아들 죽이는 것은 그래도 심정적으로 이해를 받는 우리 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경선의 말처럼 돈과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대우받을 자격이 없다
하다못해 폐지를 나르는 인부일만 해도 자신은 아버지의 리어커를 떳떳히 밀 수 있다는 경선의 심정을 이해한다
떳떳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일명 고발꾼) 돈도 못 벌어 오니,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면 아버지 직책을 반납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에다, 심지어 딸의 속옷을 훔치기까지 한다
폭력을 휘두름은 물론이다
이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식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버리지 못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오빠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타하고 이제는 자기가 아버지를 때리는 처지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부자간의 연을 끊을 수도 없다
갈수록 약해지는 아버지를 팽개쳐 버릴 만큼 잔인한 성격은 못 된다
결국 오빠는 택배 회사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먹여 살린다
비록 아버지를 구타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함바집을 하면서 혼자 산다
어린 자식들을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남겨 두고 함바집에서 먹고 자고 한다
이 어머니도 모성이 부족한, 말하자면 교양이나 의무감이 없는 여자다
남편이 싫다면 자식이라도 데리고 나와서 교육시켜야 할 게 아닌가?
그래도 가족에 대한 소박한 꿈은 있었나 보다
아들이 데리고 온 열 일곱 살 짜리 여자애에게 옷도 사 입히고 데리고 일도 시키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들이 여자를 데리고 온 걸 계기로 어머니는 집으로 들어 온다
이혼은 했지만 한 집에서 산다

그들은 야유회를 나간다
매운탕 집에서 호기롭게 4만원을 계산하는 오빠의 모습에서 경선은 힘을 느낀다
오빠의 어린 동거녀 역시 남자 친구를 뿌듯하게 바라 본다
겨우 돈 4만원이지만,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식비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콩가루 집안에서는 대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서도 아버지는 일찌감치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진다
대체 이 아버지란 인간은 왜 이렇게도 무능할까?

어린 동겨녀는 지금은 너무 어려 콩가루 집안에서 시아버지와 싸가지 없는 시누이의 시중을 들며 살지만 과연 언제까지 참고 살까?
조금만 나이 들면 비전이 안 보이는 이 집을 박차고 나가지 않을까?
그녀와 경선이 싸우는 장면은 참 재밌다
작가는 마치 어린 여학생들 싸움을 눈으로 보고 그린 것처럼, 참 실감나게 잘 묘사했다
오빠의 여동생 경선은 이런 콩가루 집안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싸가지 없고 천방지축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이 있어도 이런 집에 들어와 살림하고 사는 여자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할텐데, 하긴 중학교 1학년 짜리가 뭘 알겠는가?
어머니만이 그 여자애의 고마움을 알고 어떻게 해서든 식이라도 올려 주려고 한다
아마 도망가는 게 걱정되서겠지

하여간 이런 우스꽝스런 가족도 가족이랍시고 어떻게 해서든 모양 갖추고 살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가족이란 아무리 허접하고 한심해도 일단 같이 모여 살면 나름의 의미가 생기는 걸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 온 어머니나, 아버지의 역할을 전혀 못하는,오히려 가족에게 해가 되는 아버지라도 모시고 살아 보려는 오빠나, 이런 거지 같은 집구석에 남자 하나 보고 따라 온 어린 동거녀 등 다들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소시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이다
오직 어린 주인공 경선만이 이 콩가루 가족의 의미를 진실로 되물을 뻔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 가족은 함께 살 이유가 전혀 없다
해체되는 게 마땅한데도 어떻게 해서든 가족의 형태를 유지해 보려는 가엾은 몸부림에 그녀는 일침을 가한다
이렇게 우스꽝스런 가족이 다 있어? 참 나...

"보물선" 이야기는 부유층의 실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정말 펀드 매니저들은 이렇게 금방 돈을 버는 걸까?
주가 조작 같은 불법적인 일을 자행해서 결국 금감원에 걸려 들긴 하지만, 돈 버는 과정이 너무 쉬워 약간 우울해졌다
자본주의 사회는 엄청난 부의 축적을 당연시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 봐도 돈 많은 사람들은 참 쉽게 돈을 번다
그들이 소비 가치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명품족들이 될 것이다
이들을 정말 양심적인 부자로 볼 수 있을까?
세이노 같은 사람은 부자에게 색안경 끼지 말라고 하지만 돈놀이 통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부자들에게 도저히 관대해지가 어렵다
의사나 변호사가 자기 직업을 통해 돈 버는 건 그래도 인정하지만, 부동산 투기해서 혹은 증권으로 돈 버는 사람들의 선명성은 인정할 수 없다
이건 자본주의의 명백한 모순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부럽긴 하다
상류층의 생활은 까발리면 부러움과 함께 분노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쉬쉬 덮는 모양이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낫지
여기 등장하는 이형식이란 인물도 참 독특하다
이순신 동상이 토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세웠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는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물선을 이용한다
이 보물선이라면 이미 신문에서 여러 차례 다뤘던 소재다
작가가 나름대로 소설로 각색한 것 같다
대체 이형식은 왜 이런 얼토당토 않은 믿음을 수 십년째 간직한 것일까?
사람마다 독특한 가치 체계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참 신기하다
결국 그는 주변 투자가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산 후 동상을 폭발시킨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평생의 소원을 성취하고 만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터미널"의 톰 행크스도 비슷한 사람이다
남이 전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째즈 연주가의 싸인 한 장을 위해 공항에서 9개월을 머물렀다
대체 그 싸인이 뭐라고...
그런데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이런 비합리적인 믿음들이 한 두 개 쯤은 꼭 있다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소용없다
혹시 나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는 건 아닐까?

"너의 의미"에서는 바람둥이 속물 감독에게 빠진 젊은 여류 소설가가 나온다
타자의 눈으로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은 너무나 진지하다
그래서 다들 안 된다고 충고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나?
객관성을 잃기란 이렇게 쉬운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나마 좀 재밌는 편이다
살인 사건이 주는 충격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이 흐른다
진숙이란 여자는 학교 다닐 때 여러 남자들의 걸레 역할을 한다
걸레, 여자를 일컫는 최악의 단어
걸레 빤다고 행주 되냐는 끔찍한 농담도 있다
남자들은 쉽게 성을 즐겨도 아무 흠이 안 되는 반면 (기껏해야 바람둥이 내지는 여자 밝힌다는 것 정도?) 여자가 섹스를 즐기면 걸레가 된다
남녀 차별이라고 강변해 봤자 그게 현실인데 어쩌랴...
진숙이란 여자는 여성 해방론자도 아니면서 왜 이 남자 저 남자의 노리개가 된 걸까?
그녀의 자췻방을 드나들던 그 세 남자는 얼마나 그녀를 우습게 봤을까?
성이란 이처럼 가볍게 생각하면 사람을 한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그런 와중에도 중권이란 남자는 진숙을 사랑하고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얼핏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다
창녀를 사랑하는 꼴이니까
즐길 때는 언제고 저만 순정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는 얘기 아니냐고 강변한다
결국 그녀에 대한 소유욕과 이혼에다 부도 난 자기 처지에 대한 한탄으로 중권은 몇 년 만에 귀국한 진숙을 죽이고 만다
아마 자기 처지에 대한 비관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자신을 성 노리개 취급한 남자들을 비웃는 진숙의 발언은 그저 트리거 역할 밖에는 안 됐을 것이다
가엾은 진숙...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에 사는 여자들은 성을 좀 더 중요하게 취급하고 아무 남자한테나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네들의 의식이 깨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를 사랑하고도"에 등장하는 유부남 보좌관의 캐릭터는 냉소적이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은희경 소설에 즐겨 등장하는 이 캐릭터는, 세상에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에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 버린다
마치 "여우와 신포도"의 우화처럼 말이다
인숙과 모텔에 들어가면서 이런 데 자주 오냐는 말에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처음이야" 라는 식으로 그녀에게 위안을 준다
보좌관이 꽤 가난하다는 것을 인숙은 금방 눈치챈다
맥주 마시고 영수증 챙기는 걸 보고 단박에 알아 버린다
이렇게 눈썰미 좋은 여자가 왜 보잘 것 없는 유부남에게 빠지는 걸까?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 보좌관에게 말이다
하긴 국회의원이면 완전히 중년 넘어선 거의 할아버지지만, 보좌관은 빽 없어도 일단 30대 아저씨잖아?

인숙은 상당히 예쁜 여자로 나온다
또 관계를 깨끗이 정리할 만큼 다부진 면도 있다
이런 애가 보잘 것 없는 남자에게 빠진 걸 보면, 그녀도 상당히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진숙은 스토킹 하는 수영 강사에게 신경 끄고 니 일이나 잘 하라고 쏘아 붙인다
나 같으면 그래도 동정심이라도 있어서 이렇게 못할 것이다
감히 너 같은 놈이 날 넘 봐? 라는 심리가 아니라면 냉정하게 끊기 힘들다
하여간 유부남이나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지면 절대 안 된다
이 놈들은 기본적으로 진정성이 없는 족속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는 신부님이 등장하고 자연 발화라는 소재를 이용해 독특했다
자연 발화는 어떤 잡지 부록에서 처음 접한 것인데, 스웨덴 직공이 몸에 불이 붙어 주변을 태우고 자신도 죽었다는 얘기였다
또 미국의 어느 마을에 살인자가 침입했는데 주인이 그를 신고해서 체포됐는데, 범인이 감옥을 탈출해 다시 가족에게 나타났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남자는 스스로 불타 죽었다고 한다
수백 마일 밖에서 살인 사건을 목격한 텔레비젼 인간과 함께 무척 인상깊던 이야기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이 단편에도 등장한다
주인공의 친구 미경의 남편이 그 자연발화로 사망한 것이다

주인공의 또다른 친구 바오로는 그 잘 생긴 얼굴로 신부가 된다
왜 그랬을까?
정작 신부가 되어서는 기계적으로 영성체를 하고 복음을 전한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실상 많은 신부들이 그러리라 본다
목사라면 그래도 가족이라도 있고 원래 교회는 좀 더 열성적이지만, 성당은 독신주의 때문에 근본적으로 외롭고 또 안정되고 정적인 분위기다
목사보다 신부가 훨씬 더 외로운 존재일 것 같다
이렇게 기계적인 성직 생활을 반복한다면 곧 우울증이 덮칠 것 같다
더구나 잘 생기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천주교 조직에서 큰 직책을 맡지 않는 이상 곧 회의주의에 빠질 것 같다

이 바로오를 사랑하는 여대생이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 나이에는 나 보다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은 누구든 대단해 보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젊은 신부라면 신자 입장에서는 더욱 존경스러울 것이다
잘 생기기까지 했다면 말 다 했지, 뭐
그런데 정작 섹스를 벌인 상대는 그 여대생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첫사랑 미경이었다
남편이 죽은 걸 알고 그녀와 우연히 술집에서 마주친 후 섹스를 치룬 것이다
아마 신부들, 이런 비밀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을, 그것도 남자의 본능을 억제한다는 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며 실패할 확률이 크다
그렇다고 성직자에게 가족을 허락하면 치부의 위험이 있고, 참 어려운 문제다

왜 바오로는 미경과 섹스를 했을까?
여대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차마 그녀에게 풀지는 못하고 대신 옛사랑에게?
남편이 죽은 그녀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렇다면 옛사랑을 농락한 꼴이 되지 않는가?
또 그는 왜 그 엄청난 도덕적 타락을 친구인 주인공에게 털어 놨을까?
원래 인간은 비밀을 간직하기 어려운 건가?

주인공의 가벼운 삶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혼자 요리를 해 먹고 글을 쓰는 단순한 삶, 기본적인 생계만 유지된다면 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왠지 인생을 가볍게 만드는 기분이다
모든 게 환상일 뿐일까?
한편으로는 미경 부부의 부유한 삶을 동경하고 질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소박한 삶을 원하는 내 이중적인 심리 구조...
진짜 원하는 삶은 그런 소박한 것인데 남과 비교되는 것 때문에, 즉 남보다 더 잘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부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것 같다
내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데도 경쟁심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쫒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내 자신의 삶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는 도서관에서 읽어야겠다
소설집을 다 읽기는 시간 낭비 같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 머리를 강타하는 책이 아니라면 시간내서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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