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클라시커 50 11
바르바라 지히터만 지음, 안인희 옮김 / 해냄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클라시커 시리즈는 기획 의도는 좋은데 집필 내용은 수준 이하다
솔직히 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주제에 따른 50개의 다른 예를 단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커플" 읽을 때도 짜증났는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수준의 문제인가?
아니면 편집의 한계인가?
독일에서 출판되는 거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인상적인 인물들은 있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다
마리아 칼라스가 즐겨 맡은 역할인데 그녀의 정열적인 이미지와 딱 들어 맞는다
메데이아는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애인을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마저 죽인다
남편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아손을 죽이면 되지 왜 자기가 낳은 자식들마저 죽여야 했을까?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동양 신화 같으면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친자식을 죽이는 설정은 불가능 할텐데, 역시 그리스 신화답다

이집트 여왕 하쳅수트나 예카테리나 여제 등도 흥미롭다
하쳅수트는 의붓아들의 섭정 노릇을 하다가 직접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는데, 20여년을 다스렸으나 죽은 뒤 그녀의 이름은 전부 지워졌다
의붓 아들 투트모세 3세가 계모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운 것이다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고 자그만치 20년 씩이나 나라를 다스렸는데도 권력 기반이 확실하지 못했나 보다
솔직히 의붓아들을 20년 씩이나 살려 둔 것도 신기하다
그녀에게는 친딸 네페루레가 있었는데 왜 그녀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하긴 측천무후도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감금 상태로 죽고 말았다

반면에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편을 죽이고 차르에 오른 독특한 케이스다
그녀는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독일 여자였다
그녀는 권력 기반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이 그녀를 권력 파트너로 삼았을까?
아무리 남편 표트르가 멍청하다고 해도 황제 자리에서 끌어 내고 외국인 마누라를 세운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대체 그녀는 어떻게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마리 퀴리를 비롯한 여자 과학자들의 생애는 늘 감동을 준다
그녀들이 과학 분야에서는 소수였고 편견을 열정으로 이겨 낸 의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퀴리 부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지만, 리제 마이트너는 처음 알게 됐다
불행한 유태 여성 과학자였던 그녀는 나치 치하에서 연구를 중단하고 스웨덴으로 망명한다
수용소에서 안 죽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동 연구를 진행하던 오토 한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렇지만 화학 분야에서 빛나는 그녀의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 학생운동의 꽃인 소피 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겨우 스무 한 살 먹은 이 여대생은 오빠 한스와 함께 "하얀 장미" 라는 지하 조직에서 삐라를 돌린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나치 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 전복죄라니, 너무나 엄청난 죄목이라 도저히 스물 한 살 짜리 여자애와 연결이 안 된다
왜 독재 국가들은 보잘 것 없는 개인의 힘을 이토록 두려워 하는 것일까?
2차 대전 치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그녀와 오빠 한스는 재판 2개월 만에 처형된다

마돈나는 섹스의 화신으로 현대 연예 사업을 요리하는 주체성으로 대표된다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그 위력이 실감은 안 나지만, 어쨌든 모든 언론과 출판물에서 그녀는 대중 문화의 요리사로 나온다
대중 문화의 소모품이 아니라 그것을 주무르는 능동적 객체로 묘사된다
대체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대중 문화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락가수 제니스 조플린은 마약 중독에 빠져 스물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절제하지 못한 댓가일까?
마를린 먼로 역시 마약 중독으로 죽은 것을 보면 마돈나의 지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제인 오스틴은 결혼도 하지 않은 얌전한 18세기 여성이었다
목사 딸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처럼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빅토리아 시대인들의 풍속사를 잘 묘사했다
"오만과 편견" 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집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주부 작가였다
그래서 추리 소설의 공간은 집이 자주 등장한다
반드시 세상 경험이 많아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두 여성 작가만 봐도 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도 다시 읽고 싶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옷을 명품으로 승화시켰을까?
여성이 기업을 이룬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그녀의 위대함은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데 있다
그녀는 사치품을 미적 기호와 심미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처녀가 혼자의 힘으로 패션사에 길이 남을 거대 기업과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난잡한 구성과 얕은 해설이 불만이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알게 된 건 기쁘다
좀 더 깊이 있는 서술을 했더라면, 또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오페라와 문학에 대한 것도 읽을 생각이다
역시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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