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생각보다 재미없는 책이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준 숨막히는 우연의 일치들은, "신탁의 밤"에서 그 힘을 잃고 길을 헤매는 기분이다

작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동어 반복인데, 폴 오스터는 워낙 개성이 뚜렷해서인지 어떤 책을 읽어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탁의 밤"이라는 제목은 참 독특하고 매혹적이다

분위기로 봐서 뭔가 예언적인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의미였다

글을 쓰는 것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 준 세 가지 액자 소설을 여기서도 차용한다

시드니 오어는 소설을 쓰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 닉 보언은 편집자이며, 소설 속에서 그는 르뮈엘 플래그가 등장하는 "신탁의 밤"을 읽는다

르뮈엘 플래그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결혼하는 날 밤 사랑하는 신부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미리 보고, 아직은 아무 죄도 없는 그녀를 버릴 수 없어 자신이 목을 매고 만다

미래를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예다

 

"달의 궁전"에 등장한 "문 팰리스"라는 레스토랑처럼, "신탁의 밤"에서는 "페이퍼 팰리스"라는 문구점이 등장한다

이 곳 주인은 중국인 장인데, 시드니를 친구로 생각하고 자신이 투자하는 창녀촌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장을 부도덕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그가 소개해 준 프랑스 미녀 마틴과 섹스를 한다

시드니는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빠져 섹스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며, 장에게 인사도 없이 창녀촌을 떠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서로 보면 술집에서 섹스한 것이 도덕적 괴로움을 주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남자의 본능을 내세우며 스트레스를 푼다든지, 접대 받았다다는 식으로 전혀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보면 웃을 일이다

더구나 장은 창녀촌에 투자하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정작 시드니 자신은 창녀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그와의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여자를 소개만 받고 즐기기만 할 뿐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인가?

바니 클럽에 가면 그녀들의 몸매를 눈으로 즐길 수는 있으나, 직접적인 관계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칭 도덕적이고 보수적이라는 한국에서는 버젓이 자행되는 매매춘이 문란하고 타락한 미국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요구하는 일인지, 참 아이러니컬 하다

우리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성 구조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했다

 

시드니의 아내 그레이스와, 그녀의 후원자 존 트레즈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결론은 모호하다

존은 잘 나가는 소설가로 그레이스의 삼촌 같은 사람이고, 그녀와 결혼한 시드니에게도 무척 잘 대해 준다

시드니는 선배 작가로서 존을 존경한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임신한 후 낙태 여부에 대해 고민하자, 존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존 역시 그레이스가 낙태하길 원했던 것이다

또한 존의 아들 제이콥은 그레이스를 매우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 탓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레이스는 존과 시드니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누구 아이인지 확실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시드니는 자기 소설 속의 소설인 "신탁의 밤"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며, 혹시 이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게(자신과 그레이스의 파멸 같은) 될까 봐 찢어 버린다

궁핍으로부터 구원해 줄 소설이라고 열과 성을 다해 쓰던 소설을 말이다

 

시드니의 예감처럼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경우도 있을까?

흔히 불길한 일에 대한 직감이나 육감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불길한 느낌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드니는 존과 그레이스의 관계를 의심하고, 결정적으로 존의 아들 제이콥이 그레이스를 폭행해 유산까지 시키지만 그레이스가 문제 삼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겠다고 다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배우자의 부정에 대해, 남자 쪽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데 시드니의 경우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사실이 밝혀지면 낫겠지만, 의심은 현실보다 훨씬 더 끔찍한 상상을 낳기 때문에 더 괴로운 법이다

그런데도 불길한 일을 막기 위해 공들이던 소설을 찢어 버리고, 모든 것을 묻기로 결심한 시드니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만 하다

 

그의 소설에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우연적인 사건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시드니 소설의 주인공 닉이 돌벼락을 맞고 죽을 뻔 한 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나는 대목이다

이거야 말로 "달의 궁전"에서 에핑이 사막에서 죽을 뻔 한 후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닉은 전화 번호부 모으는 일을 하는 흑인 운전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그가 미치광이가 아닐까 염려하면서도 이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새로운 인생이란 없고, 차라리 뉴욕으로 돌아가 옛날 그대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뉴욕에서 돌벼락 맞은 사건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안 끼친 게 된 셈이므로 그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사건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주인공들은, 우연을 강조하는 오스터의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달의 궁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식상할 것이고, 오스터를 처음 접한 독자라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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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ian 2004-08-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궁전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우연은 아닌 듯.
 
영화마을 언어학교 - 영화보다 재미있는 언어학 강의
강범모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여러 추천들과는 다르게 다소 실망스럽다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평이하고 뻔한 내용들이라 굳이
"언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차라리 언어학자의 영화 읽기 정도라고 명칭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명화와 의학의 만남"이 단지 의사가 감상하는 그림 이야기였듯, 이 책 역시 언어학자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서술했을 뿐이다

진정한 언어학과 영화의 접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영화라는 쉬운 소재를 택한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는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여러 문제들 중 번역의 어려움은 낯설지 않다

"마이 페어 레이다"는 하층민 여자에게 대학 교수가 상류층의 언어를 가르치는 내용인데,  하층민과 상류층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는 외국인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충청도 방언을 하층민 언어로 사용했다는데, 번역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명백한 잘못이다

저자도 밝힌바 대로, 방언은 표준어에 비해 품위가 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고 속어도 아니다

차라리 사투리 대신 속어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긴 유명한 번역가라는 안정효도 "뿌리"의 흑인 노예 언어를 번역할 때 충청도 방언을 차용했다고 바람직한 번역의 예로 밝히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 "사투리=품위가 떨어지는 말"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진 모양이다

"풀 몬티"에서도 영국 방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번역을 통해 관객들이 진짜 의미를 전달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같다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외계어를 실제로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무척 새로웠다

단순히 영화에 삽입하려고 꾸며낸 언어인 줄 알았는데,  실제 그 언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만큼 정교한 문법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두 영화 모두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기로 유명한데, 저자가 새로운 외계어를 창조할 정도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외계어의 생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저자 역시 언어학자로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4천개가 넘는 언어에 비해 문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자가 얼마나 어려운 발명품인가를 느낄 수 있다

한글의 위대함은 우리의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데서도 충분히 알게 된다

세계 문맹 인구가 10억에 이르는데, 이 중 50%가 인도와 중국에 분포한다고 한다

한자가 얼마나 어려운 언어인지, 새삼스레 알게 된다

마오쩌둥은 위대한 서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대신 알파벳을 쓰자는 주장을 했을 정도로 중국의 문맹은 심각한 일이다

한글이 발명됐다는 건 나라 발전에도 중요한 일이고, 계급 평등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 하다

"중앙역"이라는 브라질의 한 영화에서 보여주듯, 글자를 몰라 글을 아는 타인에게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불러 줘야 하는 가엾은 여인의 모습을,  한국에서는 쉽게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저자는 우리말의 조어 구조를 밝히기 위한 한문 공부는 찬성하나, 한자 병용 표기는 반대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주장에 동의한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새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됐으며,  인터넷 시대에 한자는 불필요하고 복잡한 과정을 의미한다

일본과 중국 여행을 위한 외국어로서의 한자 역시 큰 의미를 못 갖는다고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쉽게 쓰기 위해 간자체가 개발되어 우리가 쓰는 한자와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일본 역시 이자체가 많아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어로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은 실정이다

한자는 국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는 수준에서 공부해야 하고, 한글 전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다

 

영화를 소재로 해서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언어학적인 지식이 빈약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수준을 떨어뜨린 건지 모르겠으나, 언어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영화를 소재로, 언어학 지식들을 쉽게 풀어 쓴 (그리고 어설픈 영화 감상 등은 가능하면 삼가한) 좋은 언어학 책을 발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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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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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에 "과학 콘서트"를 읽은 적이 있다

쉬운 과학 교양 도서를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인데,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밌고 유익했다

그래서 저자의 또다른 책을 집어 들게 됐다

21세기는 과학의 시대인데, 그 시대 정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게 한심해서 과학 에세이를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의외로 대중을 위해 쉽게 써진 책을 발견하기 힘들다

앞으로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쌓고, 더 나아가 과학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

 

솔직히 평하자면, "과학 콘서트"에 비해 좀 떨어진다

1999년에 쓴 책이니까 벌써 5년 전이고, 현재는 고려대 교수지만 당시는 박사 과정에 있었으니 약간의 수준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무척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영화에서 소재를 얻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마겟돈"의 비현실성은 다른 칼럼에서도 자주 지적되는데, 굴착기 기사를 우주로 보낸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다

굴착기 기사를 우주로 보내느니, 우주 비행사에게 굴착기 기술을 가르치는 게 낫다는 저자의 일갈이 통쾌하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오류가 보이는데, 근본적으로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과학 인식이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일인데, 과학의 원리에 대해 너무 모른 상태에서 상상력을 펴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웃 브레이크"는 과학적인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했는데 가히 에이즈에 걸맞는 무서운 바이러스다

다행히 공기 중으로 전파되지 않아 심하게 유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제인 구달과 다이언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등의 유인원 연구 이야기는 무척 감명 깊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 박사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녀가 겨우 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는 (나중에 캠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만) 사실은 미처 몰랐다

다이언 포시는 어린이 행동 치료사였는데 고릴라를 연구하러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밀렵꾼들과 싸우다가 살해당한다

비루테 갈디카스는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하는데, 그녀 역시 남편이 아들의 유모와 결혼하는 불행을 겪는다

이 세 학자들의 특징은 대학 교수 같은 지식인이 아니지만 직접 밀림에 들어가 수십년 동안 연구를 했고,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지만 그들이 연구하는 유인원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밀렵을 막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다

 

동물이 사람의 언어를 따라하지는 못해도 수화로 얘기할 수는 있다고 한다

"침팬지 폴리틱스"에서도 본 내용인데, 침팬지들도 수화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영리한 침팬지였던 "타잔"의 주인공 치타 역시 언어를 정말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흉내내는 것에 불과했다고 하니, 언어는 확실히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 외에도 타임머신을 타고 절대 과거로 갈 수 없는 이유나, 사이버 보그가 인간의 똑같은 복제품이 될 수 없는 이유, 홍채 인식 시스템 등 다양하고 흥미있는 주제들이 쉽게 기술됐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에세이들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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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책 읽기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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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읽은 책 에세이 중 상당히 수준있는, 괜찮은 책이다

보통 책 에세이라면 개인의 취향이나 책에 얽힌 경험담을 위주로 하는데, 이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 같은 느낌이다

"테마가 있는 책 읽기"라는 제목에 충실한 셈이다

 

여기 소개된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신영복의 "엽서"다

이른바 옥중서신인데 기다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데,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한 양심수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다음 번에 읽을 책은 당연히 "엽서"다

이 책은 저자가 언급한 옥중서신 중 가장 뛰어나고 또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자본론이나 사회과학 서적 등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필수 교양 도서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변한 탓일까?

대학 앞 사회과학 서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영상 매체나 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 형식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왠지 쓸쓸해지는 건 사실이다

 

환경 문제나 의료 개혁, 인디언, 아나키즘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책들이 소개되는데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들이 많다

특히 박홍규의 책을 꼭 읽고 싶다

그는 까뮈나 카프카 등에 관한 전기를 썼는데, 까뮈는 식민 치하 조선에 살면서도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일본 지식인에 비유하거나, 카프카는 식민지 치하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밤에만 글을 쓰는 가엾은 젊은이로 묘사한다

카프카는 자기와 출신이 비슷해서 쉽게 읽히는데, 카프카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이 어려워졌다고 논평한다

그 말을 들으니, "변신"이나 "성" 등이 읽고 싶어진다

또 "얼어 있는 강을 도끼로 내리치는 정도로 우리 머리를 강타하는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라는 카프카의 과격한 독서론을 인용한다

나도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저자는 고종석의 전작주의자인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면 그 작가와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조셉 켐벨은 한 수 위로, 그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방법은 좋은 작가를 정한 뒤, 작가의 책은 물론,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어 버리라는데, 쉽게 실천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라면 시도해 볼 만 하다

 

아나키즘이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무권력주의라는 저자의 해석도 마음에 들고, 환경 에세이를 내면서 정작 비환경적인 종이로 출판하는 위선을 꼬집는 것도 시원했다

또 산을 타는 사람들과, 바다를 소개하는 책도 무척 흥미로웠다

등산이란 예술과 과학과 스포츠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니, 산 타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인다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등산이다

걷기나 오래 달리기 같은 건 잘 하고 좋아하는데, 계단 오르기나 등산은 정말 싫어하고 또 못한다

풍선 하나를 다 불지 못하는 작은 폐활량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오를까, 그 심리가 궁금했는데 산악인들이 등산을 예술로 생각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고,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이득 없이도 매달리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주 드문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었는데, 칼 세이건은 절대 재밌게 혹은 쉽게 읽히는 작가가 아니다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증에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과학의 정신을 밝히는 그의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비록 지루하고 어렵게 읽은 책이지만, 기술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정신으로서의 과학을 얻게 된 좋은 책이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코스모스"를 읽어 보고 싶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출판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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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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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 서서 후딱 읽어 버린 책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저자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200쪽도 안 되는 작은 분량에다 판본 크기도 작고 글씨도 띄엄띄엄 쓰여져 1시간 여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고 넘어 갈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속독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라 책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잘못된 태도인지도 모른다

편견에 사로잡혀 저자의 약력만으로 미리 평가를 하면,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비전공자들의 역사학서를 볼 때마다, 혹은 유명인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 통속 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수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역시 이 쪽 전공자가 아닌 탓에 그저 그런 일반론적인 에세이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 혹은 남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독서론과는 명백한 수준 차이가 보인다

 

어쩌면 내 독서 경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교적 속독을 하는 편이다

아주 빠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빨리 읽는 축에 낀다

가벼운 책은 한 시간에 100페이지, 어려운 책은 50페이지 (이를테면 "의료개혁과 의료권력", "빈 서판" 등등), 흥미있는 주제나 고전 등은 한 시간에 7-80 페이지를 읽는다

그래서 한가하면 하루에 한 권 정도 읽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속독을 하면,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없고 줄거리에 치우치게 된다는데 물론 어느 정도 동의한다

빨리 읽다 보면 세심하게 문장 자체를 음미하며 볼 수는 없다

또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내용이 어려우면 정리가 잘 안 되서 두 번 읽어야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독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책 한 권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어려운 책은 두 번씩 읽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책 수준이 내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정도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 지루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결국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의 지적 수준을 높히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을 100%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80% 정도로 만족하고, 또 다른 책에서 지식과 감동을 얻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여기 소개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독은 유명하다

저자는 남독이라고까지 비판하지만, 책을 읽는데 지나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책 읽고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다치바나는 인문과학서의 경우 10여 분 동안 가볍게 목차와 전반적인 내용을 훑어 본 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읽은 책의 수를 늘리려는 과시욕이라고 하지만, 다치바나 정도의 수준이라면 반드시 1페이지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본인 능력이 되면, 가볍게 발췌독 해도 충분히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치바나는 필요없는 책은 과감하게 읽기를 중단하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은 못하고 있다

책을 감별할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다 싶어도 일단 끝까지 읽으면 뭔가 건질 게 있을 것 같아 한 번 잡은 책은 꼼꼼하게 다 읽는 편이다

 

저자는 또 생활의 모든 시간을 독서로 바치는 것도 나쁘다고 말한다

저자가 예로 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책 중독 수준인데, 읽고 쓰기를 본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비판할 것은 못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독서가 본업이 아닌 경우, 어느 정도의 절제는 필요할 것이다

나 역시 지나치게 독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는 시간을 따로 배정하고 있다

저자처럼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바쁠 때는 그 정도만 읽어도 아주 훌륭하다

1년이면 52권을 읽는 셈이니까

(나는 요즘 TV를 안 보는 대신 한 주에 세 권 정도 읽고 있다)

 

독서법의 정도가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원하는 방법대로 읽으면 된다

수준이 낮은 책이라도 본인에게 감동을 주면, 제일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독서의 생활화라고 본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것도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서가의 고백처럼, 비록 나는 열심히 책을 읽지만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반드시 독서만이 마음의 양식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바다)

한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면 무식하다는 소릴 들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독서가 취미라고 밝혀도 좋은 시대 같다

그만큼 독서가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반증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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