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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 김갑수의 세상읽기
김갑수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실망하는 책 모음의 카테고리에 넣게 되어 아쉽다.
김갑수씨의 전작,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는 나름대로 재밌게 읽었고 그 책을 통해 한쪽 눈이 의안인 이 열정적인 아저씨를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한쪽 눈 실명을 계기로 헤어졌으며, 뜻밖에도 자신을 치료해 주던 여의사와 결혼했다는 기막힌 러브 스토리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음악에 대한 그 열정이 너무 멋지게 보여, 그 후에도 TV 나 라디오에 김갑수씨가 나오면 주의깊게 보곤 했다.
연기를 잘해서 좋아하는 배우와도 이름이 같아, 이래저래 호감이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것을, 이번에 읽게 된 신작은 영 기대치에 못 미친다.
일부러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읽은 책인데 예상했던 내용과 너무 달라 실망스러웠다.
시사비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새삼 느낀다.
누구나 자기의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다.
아마도 그의 전문 분야는 책과 음악 세계가 아닐까 싶다.
훌륭한 에세이스트라고 생각했던 고종석도, "신성 동맹과 함께 살기" 에서 어설픈 시사평론을 한 바 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도 더 수준이 떨어진다.
누가 시시비평을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사람은 어설프다.
차라리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쓴 2부가 훨씬 와 닿았다.
책에 대한 마니아적인 기질을 공유해서인지, 레코드판과 오디오 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큰 집을 사고 비싼 자동차를 굴리는 대신, 레코드판과 훌륭한 소리를 잡아내는 오디오 속에 파묻혀 사는, 얼핏보면 매우 미련하기까지 한 그 고집스러운 애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작인 음악 에세이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학생 때 돈만 생기면 음반을 사는 바람에 화장실의 휴지 살 돈도 없어, 샤워기로 뒷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 음악에 집착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 정도로까지 소유욕이 강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읽고자 하는 인식욕은 그 못지 않다.
음반에 깔려 압사하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나도 책 속에 파묻혀 질식사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물론 진짜로 죽고 싶지는 않다.)
표정훈씨 책을 읽을 때는 서재 이야기나, 한 달에 책을 얼만큼만 사야 하는지 등등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아 참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력이 글을 술술 읽히게 만들어 편했다.
김갑수씨도 자시의 진짜 장기인 음악 이야기나 책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