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학대하라
조이 고블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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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550쪽이 넘는다. 처음 책을 쥐었을 때 언제 다 읽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 빈의 젊은 비평가들이 뽑은 청소년소설 상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비평가들이 준 상을 받은 소설들이 빠르게 읽히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힘든 책읽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은 몇 쪽을 넘기지 않아서 날아가 버렸다. 할런이 빈센트에게 쓴 편지를 지나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고 베로니카로 넘어가는 순간 빠져버렸다. 너무 속도가 나서 오히려 잠시 숨을 길게 돌려야 할 정도였다.  

 

 제목에서 알려 주듯이 이 소설은 한 천재 예술가 빈센트를 학대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 문화 예술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할런이 그 중심에서 독설을 퍼붓고, 빈센트는 그 타락한 세상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성장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빈센트 작품의 질과 창의성이 떨어지면 할런으로 대표되는 뉴르네상스의 학대가 시작된다. 이런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확실히 성장하고 질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럼 왜 이런 학대가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엄청난 미디어그룹인 IUI-글로브터너의 회장인 리포비츠가 가진 말년의 바람 때문이다. 그가 수십여 년에 걸쳐 탐욕스럽고 사악한 비즈니스로 돈을 벌면서 이룬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상업에서 예술로 전복시키고자 새로운 기획을 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뉴르네상스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의 이름이 된다. 자신들의 수많은 계열사를 통해 예술을 부흥시킬 영재 모집 광고를 내보내고, 이 영재를 가르칠 학교를 설립한다. 이때 빈센트가 회사가 내놓은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세상이 틀렸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였다. 이 답으로 합격하고 빈센트의 인생은 예술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길들여지고 가꾸어지고 학대받게 된다.  

 

 좋은 예술 작품을 내놓기 위해 뉴르네상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예술가를 학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택된 매니저가 술 때문에 퇴학당했지만 독설을 마구 내품는 할런이다. 그의 학창시절과 청소년기의 경험은 앞으로 펼쳐질 빈센트 학대의 도구가 된다. 빈센트가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경험하고,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그의 경험은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 되어 기쁨과 사랑과 우정을 찌르고, 채찍이 되어 빈센트를 학대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 속에 빈센트는 성장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하면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작품의 질은 더욱 좋아진다.   

 

 예술의 질을 위해 펼치는 학대의 기법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에는 가장 좋아했던 강아지에게 약을 먹여 죽이고, 살 곳을 없애기 위해 집을 불 지르고, 첫 사랑은 돈으로 매수하여 쫓아내고, 친구는 또 다른 사랑으로 떨어트리고, 또 다시 다가온 사랑은 술에 취하게 만들어 떠나가게 만든다. 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빈센트의 정신을 학대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빈센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인물은 바로 할런이다. 우습게도 그를 그런 상태로 몰고 간 주범인데 늘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기에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이다. 진짜 아버지를 모르는 불행한 가정사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빈센트를 학대한 결과물들은 좋은 성과를 이룬다. 음악을 만들면 일등을 하고, 드라마로 제작하면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다. 얼굴도 이름도 없던 그가 주류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게 만들지 않는다. 그가 전면에서 나서 부각되면 얻게 될 쾌락과 풍요로움과 사랑은 곧 예술가의 타락과 작품의 질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뒤로 가면서 윤리적인 문제와 상업적인 목적이 충돌하게 만들고, 예정된 결말로 나아가게 한다.   

 

 소설은 묻는다. 과연 한 천재 소년의 삶을 학대해서 수많은 소비자가 받게 될 예술적 가치가 과연 정당한가, 하고 말이다. 물론 직접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또 대부분의 좋은 음악이나 영화를 요즘이 아닌 1990년대 이전의 것으로 한정해서 표현한 부분에선 예술 그 자체가 아닌 비주얼과 상업적 목적에 의해 흘러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촌철살인같이 날카로운 시선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의 후기에서 이 책을 정말 소용이 될 독자는 이 책을 볼 일이 절대 없을 것이란 소견에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그 사람을 나타낸다. 그것은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티브이쇼, 영화 등이다. 작가는 데드 밀크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펀치 드렁크 러브다. 아쉽게도 내가 경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고,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들을 주는 책 속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의 하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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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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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악몽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지난번에 읽은 <악몽의 엘리베이터>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진 놀라운 이야기가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폭소와 스릴은 이 작가의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차분히 앉아 천천히 읽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마지막에 도달한다. 그 속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 빨라 조금씩 아껴 읽고 싶기도 하다.  

 

 전작에서 엘리베이터가 무대였다면 이번엔 관람차다. 그것도 보통 크기가 아닌 높이 112.5미터, 직경 100미터의 엄청난 크기의 관람차다.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 관람차가 최고 높이에 도달했을 때 멈추고, 유괴범인 다이지로가 폭탄을 시험적으로 터트리며 평범하고 즐거워야 할 놀이기구가 악몽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리고 네 대의 관람차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 담긴 비밀은 이 소설의 재미이자 반전을 품고 있다.  

 

 이야기는 일주일 전 야쿠자 다이지로가 무면허의사 니나를 찾아오고, 그가 돈을 빼앗아온 채무자가 큰 칼로 협박하면서 시작한다. 다이지로는 니나에게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면 데이트를 하자고 요청한다. 칼을 든 채무자를 마술의 한 동작으로 기절시키고 그녀와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조그마한 사건이 다음에 이어질 거대한 인질극의 시작일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거대한 계획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타는 관람차지만 다루어지는 곳은 네 곳이다. 17호에는 아내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온 고소공포증이 있는 겐지 가족이, 18호엔 모든 것을 계획한 다이지로와 니나가, 19호엔 전설적인 소매치기 긴지와 그의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마지막엔 이별청부업자인 여자가 타고 있다. 처음엔 이들 관람차의 상황이 묘사되고, 평범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17호 가족은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남편이 아내를 약간 떨어진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 사실을 보면 누가 그 집안에서 가장 사차원인가 알려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큰딸 유카의 대사와 행동은 읽는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괴팍하고 촌철살인 같은 대사와 반응은 아내 아사코의 숨겨진 비밀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남편 겐지의 어리숙하고 가장으로서의 자세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8호를 탄 두 남녀는 이 모든 소동의 중심이다. 니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성형외과를 가지고 있고, 10년 전 의료사고를 낸 적이 있다. 이때 의대를 다니던 딸 니나는 의사란 자격증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 그녀를 납치한 후 아버지에게 6억 엔이란 거액을 요구하는 인질극이 발생한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만약 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탄 모든 관람차 승객이 폭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6억 엔이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 속에 또 다른 사연을 담고, 트릭을 만들고, 멋지게 상황을 연출한다.  

 

 19호의 소매치기 긴지는 전설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얼치기 같은 한 남자가 그에게 소매치기 실력을 배우려고 한다. 이 둘의 이야기는 양념처럼 가미된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중반에 펼쳐지는 상황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상에서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남은 20호의 여자는 7년 사귄 남자에게 차인 후 멋지게 복수를 하고, 이때부터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이용해 이별청부업이란 직업에 뛰어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별청부를 하고 멋지게 성공한다. 그녀가 이 관람차를 타게 된 것도 바로 겐지 부부를 이별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듯한 사람들이 탄 관람차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과거로 돌아가 이 놀라운 인질극이 왜 벌어졌는지 밝혀준다. 이미 전작에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멋지게 연결되고 기발한 반전이 펼쳐진 것을 기억하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빨리 밝혀낸 사실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반전과 사실은 지난번처럼 나를 멋지게 속여 넘겼다. 그리고 곳곳에 터져 나오는 웃음은 이 악몽 같은 상황에 여유를 준다. 또 인질극을 펼치면서 몸값을 받게 되는 경우 어떻게 받을 지와 어떻게 잡히지 않고 달아날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웃음과 반전과 탈출극이 만들어내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 소설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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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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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여고생이 보여주는 대소동은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각자 강한 개성이 있고, 톡톡 튀는 대사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최근에 청소년 문학을 가끔 읽는데 생각하지 못한 재미가 있다.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살아나고,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힘겨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너무 무거워 삶에 짓눌린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젊은 혈기를 간직하고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을 볼 때면 가슴 속으로 응원하곤 한다. 이 소설도 바로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즐겁고 유쾌하다.  

 

 소설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아이는 고은비다. 이름만 보면 작고 귀엽고 예쁜 아이일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런 선입견이 고은비를 힘들게 한다. 어린 시절 아역 탤런트를 할 정도의 재능과 외모를 가졌지만 갑자기 불러나기 시작한 몸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오디션을 보러가서 이름과 다르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1, 그 아름다워야 할 시간에 그녀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연기에 대한 꿈은 흔들린다.  

 

 고은비의 별명은 고릴라다. 릴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친한 친구들만 부르는 별명이다. 그녀에겐 좋은 친구들이 있다. 꽃미남을 엄청 밝히는 지형이와 초딩처럼 작지만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소울이와 약간 부족한 지성을 가졌지만 엄청난 미모를 가진 혜지가 그들이다. 지형이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꽃미남에 둘러싸여 생활을 꿈꾸고, 소울이는 좀더 큰 키를 바란다. 혜지는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부모가 협박에 전전긍긍한다. 어느 나이가 고민이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이들에게 활기와 자신의 꿈을 불어넣어서 이야기 전체를 쾌활하게 만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이들의 관계설정과 은비의 꿈을 부각시킨다. 배우가 되고 싶지만 식탐과 그로 인해 불어나는 몸 때문에 고민하는 그녀를 둘러싼 관계를 보여준다. 각자의 목적이 맞아 혜지의 집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꿈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와중에 은비가 연극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이젠 은비가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수학에 재능이 있는 은비의 학업성적이 좋아 상위 10%만 들어간다는 모란반이다. 이 반은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니 은비가 연극 연습이나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은비의 엄마는 딸이 의사가 되기 원한다. 그녀의 오빠도 부산에 있는 의과대학에 합격을 했다. 엄마의 희망사항은 아이에겐 커다란 짐이다. 분명한 미래 희망을 가진 은비에겐 더할 수 없는 부담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녀를 연기학원에 보내고, 방송에 출연시켰던 사람이 엄마였다. 연기에 대한 꿈이 가득하지만 변한 외모 때문에 엄마는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의사가 되길 바란다. 여기엔 옆집 아줌마들의 대화 속에서 늘 등장하는 엄친아들이 있다. 이런 비교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지 못하는 그녀는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고생들의 모습일 것이다.  

 

 은비가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자 그 학교 부모라면 누구나 바랄 모란반이 장애가 된다. 이때부터 이 소녀들은 모란반을 없애려고 한다. 그 중심엔 땅꼬마 소울이 있다. 물론 이들의 작전이 쉽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과 노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고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에 닌자 가면을 쓰고 옥상에서 벌이는 시위는 그들이 펼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런데 가면까지 썼는데 너무 쉽게 밝혀진다. 이때부터 가면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현실과 부딪힌다. 그들의 주장이나 요구가 먼 훗날 하나의 추억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들의 엉뚱하고 수상하고 발칙한 대소동이 지금 이 순간에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은비야, 지형아, 소울야, 혜지야! 반갑고 즐겁다. 나는 너희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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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 못생긴 나에게 안녕을 어글리 시리즈 1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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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형 같이 예쁜 얼굴이 이 소설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예쁜이들을 잘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단 한 편의 로맨스 소설처럼 다가온다. 시리즈 삼부작 중 첫 번째고, 미래사회를 다루고 판타지 소설이란 사실을 알기 전엔 쉽게 손이 나갈 것 같지 않다. 이것이 나만의 반응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내용도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매력 있다. 그러니 괜히 표지에 트집을 잡는다.  

 

 어글리, 이것은 못난이를 나타낸다. 현재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미래사회에서 열여섯 생일이 되면 누구나 전신성형으로 예쁜이로 변한다. 예쁜이로 변한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 못난이로 남는다는 것은 큰 용기나 다른 가치관이 있기 전엔 불가능하다. 그리고 예쁜이들의 외모를 보고 그렇게 변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욕망을 가진 한 소녀 탤리의 속임수와 모험을 통해 미래사회의 모순과 환상을 보여준다.  

 

 열여섯 생일을 한 달 정도 앞둔 탤리는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 페리스가 먼저 예쁜이가 된 후 외로움에 시달린다. 자신도 빨리 예쁜이로 변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고, 먼저 예쁜이가 된 페리스가 보고 싶어 몰래 신참 예쁜이들의 맨션으로 숨어들어간다. 이 조그마한 행동이 예쁜이들을 놀라게 하고, 그녀를 뒤쫓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찾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은 곳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못난이 셰이를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놀이와 경험을 하게 된다.   

 

 탤리가 만나 셰이는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특이하다. 모두 앞으로 변할 예쁜이의 모습을 그려보는데 그녀는 거부한다. 현재의 자신이 좋다면서. 그녀는 탤리에게 보드를 가르치고, 녹슬이들의 도시로 그녀를 데리고 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점점 예쁜이로 변할 시간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충돌하게 된다. 예쁜이가 되고 싶지 않은 셰이와 그것을 갈망하는 탤리로 말이다. 그리고 성형을 받기 전 셰이는 스모크란 곳으로 달아나고, 탤리에게 암호같은 쪽지를 남겨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탤리는 그럴 마음이 없다.  

 

 탤리가 성형을 하려고 한 날 성형수술 대신 특수상황국이란 곳으로 끌려간다. 그들의 목적은 탤리가 스파이가 되어 스모크에 사는 사람들을 잡는 것이다. 셰이와의 약속 때문에 이를 거부하지만 베스트 프렌드 페리스의 감언이설과 예쁜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스파이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홀로 긴 여행을 나서게 된다. 이 과정은 그녀에게 편안하고 안락하면서 전혀 걱정이나 근심이 없던 세계에서 신기하고 놀랍고 무서우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모험세계로 그녀를 이끌어간다.   

 

 못난이와 예쁜이로 나누어진 미래 사회를 상상하면서 과연 나라면 못난이로 남을까 생각해본다. 주변의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자랐다면 쉽게 그런 반항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절대적인 미모를 지닐 수 있는데 남아서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반항아가 아니면 힘들 것이다. 한때의 혈기에 의해 일시적인 반항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열여섯이란 나이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꿈으로 가득한 시기다. 이 사회는 질풍노도와 반항의 시기를 넘기기 위해 속임수란 놀이를 퍼트려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조그마한 놀이에 만족하고 현실에 안주한다. 이것을 우리의 현재 삶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수많은 놀이와 스포츠 등의 오락거리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게 만든다.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루면서 현실을 풍자하고, 그 과정에 도전과 모험을 넣어서 긴장감을 불러온다. 예쁜이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면서 다음에 벌어질 사건을 만들고, 외모지상주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뒤표지에 나온 삼부작의 두 편 제목이 예쁜이, 특별이(?)인 것은 탤리의 모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래사회의 모습과 탤리의 모험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재미있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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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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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읽기 시작했다. 커피에 대한 예찬으로 문을 열고, 9일간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그 9일간 보여주는 것은 커피에 대한 예찬이고, 첫 날 발생한 250명이 중독된 사건은 이를 위한 하나의 초석이다. 책을 읽는 동안이나 읽은 후 좋은 커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읽는 중에 앞에 놓여있는 커피가 왠지 부족하고 내가 먹는 커피에 대한 불만이 괜스레 생긴다.  

 

 부제인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라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기이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왜냐고? 그것은 책을 읽기 전에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다.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커피에 대한 예찬으로 채워놓고, 커피와 얽힌 이야기로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커피를 하나의 문화 이상으로 그려내었는데 그것이 음모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과를 보고 나면 약간 허전한 느낌과 힘이 빠지는 부분이 생기지만 그 결말까지의 과정은 신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하루에 두 잔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 이전보다 많이 줄었기도 하고, 어느 순간보다는 많이 늘어난 분량이다. 요즘 생활에서 커피를 뺀다면 아마 많은 부분이 허전할 것이다. 약간의 중독 증세가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피곤하거나 정신이 멍할 때 진한 한 잔의 블랙커피는 좋은 각성제 역할을 한다. 속이 허할 때 우유와 설탕을 넣고 먹다보면 그 달콤한 맛에 취해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쉬워진다. 이런 커피의 이야기가 이 속에 나온다. 주인공인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는 자신이 직접 배합한 커피를 마시고 하나의 종교처럼 숭배한다. 그가 보여주는 수많은 이야기는 모두 커피와 관련이 있고, 그가 쫓는 음모도 또한 커피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중독자의 모습은 섬뜩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250명이 커피를 마시다 중독되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테러리스트도, 돈을 요구하는 범인도 이 소설엔 보이지 않는다. 결말에 가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을 보면 기이한 음모라는 부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9일간의 여정이 음모를 밝혀내지만 그 음모에 대한 정확한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작가가 커피에 대한 예찬을 위해 음모 이야기를 빌려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바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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