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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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요노스케는 넉살 좋고 투박하고 타이밍 잘 맞추지 못하고 어리버리하다.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요노스케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처음 도쿄에 올라온 날부터 그의 평생 직업이 된 카메라를 만나게 된 순간까지를 다룬다. 물론 이 사이사이에 작가는 요노스케와 관계있는 사람들의 현재 삶을 보여주면서 살짝 그를 등장시킨다. 처음 이 현재가 낯설고 불편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은근히 그들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요노스케의 미래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여덟 청춘, 대학 일학년. 하고 싶은 것은 많고 할 줄 아는 것은 없는 시절이다. 처음 도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그는 촌티가 줄줄 난다. 충분한 용돈이 없어 변두리 아파트에 에어컨도 없이 살고, 넉살 좋게 친구 집에서 에어컨을 맞으면서 여름을 보낸다. 입학식에서 만난 친구 때문에 삼바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만난 선배 덕분에 시급이 좋은 호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 시간은 흘러가고 새로운 만남은 이어진다.  

 

 첫 학교 친구인 구라모치는 동급생 여자 친구와의 연애로 아이가 생기고, 학교를 포기하고 결혼을 한다. 처음엔 중심인물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비중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는 가장 먼저 나온다. 나이 어린 딸의 사랑 이야기로 고민을 하고, 고통 받는 역할이다. 처음 이야기가 바뀌면서 놀랐고, 짜증도 났는데 이 구성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요노스케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미래가 궁금해지고 재미있었다.  

 

 고향 친구가 데리고 간 파티에서 연상의 여자에게 그는 필이 확 꽂힌다. 이 여자 때문에 아파하고 운전을 배울 결심을 한다. 이때 그의 주변에 가토가 나타난다. 운전면허를 따는데 같이 가면 5% 할인된다는 정보로 그와 연결된다. 그와 친해진 후 가토의 집은 그의 휴식처가 된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에어컨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가토는 동성애자다. 하지만 요노스케는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운전면허 연습장에서 쇼코를 만난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가 평생 가지게 될 직업으로 이어지기 위한 준비 단계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엄청난 부자를 부모로 둔 그녀의 생활방식에 놀라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쇼코에게 빠지는 그를 보면서 그 순수함과 어리버리함에 놀란다. 그녀와의 만남 속에 다시 등장한 연상의 여인 지하루는 그에겐 환상의 여인이다. 그녀를 통해 아파하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요노스케를 중심에 두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밝고 얼렁뚱땅하고 소란스런 요노스케의 일 년을 보면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즐거움과 유쾌함이 전해진다. 특히 마지막에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찍은 사진을 설명하는 장면에선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20년 전 약속으로 밀봉된 채 과거의 연인에게 전해진 그 사진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숙하고 둔하고 욕심 없는 모습에선 청춘의 열정과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든 현실에서 과거의 요노스케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 장면들이 책을 덮고 난 지금 더 가슴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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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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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쪽이 되지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보통사람이란 제목을 달고 나왔다. 그의 삶이 보통사람과 같은가 하고 묻는다면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 개개인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도 또한 보통사람과 같은 길을 간다. 그것은 죽음이다. 혈관에 문제가 있어 7년 연속으로 수술을 해야 할 정도지만 마지막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병으로 죽는다. 그것이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무덤가에서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를 추도하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형의 추도사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가득하고, 그의 어린 시절로 시간을 잠시 되돌려 놓는다. 그 시절과 젊은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것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청춘은 반짝이는 불꽃같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우리가 흔히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면서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다. 첫 이혼으로 두 아들에게 미움을 받고, 두 번째 결혼은 자신의 바람과 거짓으로 깨어진다. 하지만 이 결혼으로 얻은 딸 낸시는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선물이다. 그의 두 아들과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이렇게 착하고 긍정적인 딸이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자 축복이다. 그의 장례식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도 바로 낸시다. 말년에 매일 아침 전화를 해 그를 기쁘게 하고, 외로움에 빠지지 않게 하고, 그의 그림을 칭찬한 사람 또한 낸시다. 그녀의 존재는 어쩌면 모든 부모가 갖고 싶어하던 자식일 것이다.  

 

 작가는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쪽)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작가의 통찰력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전직 광고맨이자 세 번의 이혼을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죽음을 긍정하게 만든 것이다. 아니 긍정이란 표현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은 언제 어떤 사고로 죽을지 모르고, 나이든 사람들은 언제 무슨 병으로 혹은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면 그 모든 사람이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는 말과 일통상맥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은 추억과 후회와 그리움과 희망과 미래 등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면 어떨까? 희망보다 추억과 후회와 그리움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아내 피비의 뇌졸중으로 친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감정은 더욱 강하게 느낀다. 또 남자로서의 욕망이 멈추지 않아 지나가는 젊은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에서 지나온 그의 삶이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니면 남자란 동물이 지닌 본성일까?  

 그는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단지 그로, 아버지로, 동생으로, 남편으로, 노인으로 나올 뿐이다. 이 인칭대명사 속에 그의 삶이 들어있다. 그와 관련된 사람과의 관계가 말해지지만 그의 삶 자체가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노년의 삶이 비록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감상에 빠지거나 쇠락한 삶을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거리를 두고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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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을 부탁해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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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시다 이라의 책을 읽는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가 누군지 보고, 책소개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관심이 갔다. 아마 선택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일곱 청춘의 취업 도전기와 언론사 준비라는 문구다. 학창시절 언론 고시라고 하면서 열공에 빠진 친구와 선후배를 보았기에 일본의 취업 현실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이 모인 언론사 취업동아리가 결성된 날 한 명이 지각을 한다. 그 한 명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치하루다. 작가는 치하루의 취업 도전기를 통해 아주 실감나게,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하는가 하고 놀랄 정도로 그려낸다. 그 동아리의 목표는 전원 합격이다.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실패와 성공을 경험할지 예상하는 것이 처음 만나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피어나는 사랑도 무시할 수 없다.  

 

 작가는 자기소개서와 인턴과 토의 등을 통해 취업준비생이 갖춰야 할 것을 풀어낸다. 예전에 비교적 쉽게 취직을 한 나의 과거를 생각하면 이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언론고시를 준비한 친구 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평범한 기업을 지원했던 나로서는 역시 놀랍다. 그리고 치하루가 그렇게 많은 취업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한 것을 보면서 과연 저런 것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의 약간은 쉬웠던 입사 경험이 그녀의 다사다난했던 경험과 맞질 않은 모양이다. 뭐 한 동안 이직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면접은 본 과거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대단한 몰입도를 불러온다. 가볍게 몇 장을 읽고 잠들려고 했다가 백 쪽 이상을 읽고, 다음 날을 위해 참아야 했다. 속도가 붙고, 치하루의 경험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빠져든다. 인턴으로 민영방송에서 일할 때 그녀가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나 동아리 친구이자 공주로 불리던 에리코가 타고난 미모로 아나운서 추천을 받아 입사하는 한 느끼는 질투의 감정은 솔직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선배들을 만나 회사 생활을 묻는 부분에선 각 경력별로 자신의 일에 대해 느끼는 솔직함이 잘 드러나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인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보면서 역시 나의 지나간 과거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천성 탓인지 아니면 지나간 과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받은 것 같지는 않아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지닌 뚜렷한 목표 의식을 생각하면 고개를 주억이게 된다.  

 

 일본 대학생의 취업 도전기란 점도 관심을 끌지만 가장 깊게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역시 치하루다. 그녀의 낙천성과 솔직함과 노력과 끈기는 읽는 내내 감탄하고 웃음을 짓게 한다. 가장 큰 민방 최종 면담에서 가볍게 넘어가면 합격할 것을 울음을 터트려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 은둔형 외톨이로 변해가는 친구를 달래는 모습에선 감동한다. 또 재미난 것은 방송과 출판사 양쪽에 지원을 하고, 이 둘 모두 꼭 합격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장면에선 그녀의 미래가 궁금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그녀의 실패와 성공, 울음과 웃음, 좌절과 노력이 가슴과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시중에 나온 수많은 취업시험 관련 자료들이 대부분 실용성이 없고, 알맹이도 없고, 한심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입사서류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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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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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먹으로 검은 빛을 표현한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빛 광(光)을 쓴 것이다. 빛은 원래 제목이기도 하다. 왜 작가는 빛이란 제목을 사용했을까? 빛이 주는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소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도 원제가 주는 빛의 이미지는 없다. 오히려 출판사가 붙인 검은 빛의 어둡고 칙칙하며 온몸을 감아 도는 무력함과 건조함과 섬뜩함만 가득하다.   

 

 미우라 시온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평을 생각하면 이번 작품은 상당히 다르다.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다른 소설들이 밝은 느낌을 주는데 이 소설은 표지부터 어둡다. 책 소개에 나온 글을 읽고 상당히 어둡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 느낌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어둡고 검은 느낌보다 황량하고 건조하다. 번갈아 가면서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과 내면은 일상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그들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을 모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동시에 무시하면서 그들의 내면은 점점 메말라간다.   

 

 좋아하던 미카와의 섹스를 기대하던 중학생 노부유키가 첫 번째 중심인물이다. 그의 곁엔 아버지에게 늘 구타당하던 다스쿠가 있다. 이 세 명은 다스쿠의 아버지와 등대지기 영감을 제외하곤 유일한 섬의 생존자들이다. 섬사람들 대부분이 쓰나미에 실종되거나 죽었다. 이들이 섬을 떠나기 전날 밤 미카를 강간(?)하던 내지 사람이 노부유키에 의해 살해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 둘과 다스쿠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을 벗어나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간다.  

 

 다음으로 노부유키의 아내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녀는 한 남자와 바람을 핀다. 남편에게 불만이 특별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딸이 있고, 그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신만의 벽을 쌓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꺼려한다. 평온한 남편을 만나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남편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천이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불륜의 대상이 다스쿠다. 그녀의 이야기에선 그를 암시할 뿐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으로 다스쿠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  

 

 다스쿠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두워진다. 그의 삶보다 내면이, 그를 둘러싼 가정환경과 아버지의 폭력이 검은 빛을 품어낸다. 이미 노쇠한 아버지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무력하게 그 권위와 폭력 앞에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노부유키가 미카를 위해 한 살인행위가 하나의 구원처럼 느껴진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작가는 짙은 회색의 내면을 그려낸다. 다스쿠의 행동과 심리묘사를 통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어느 정도 암시한다. 남의 약점을 쥐고 이를 이용해 부를 이룰 생각도, 간악한 마음으로 남을 조정할 생각도 그는 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어린 시절 섬을 집어 삼켰던 쓰나미처럼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불행과 어둠을 모두 덮어줄 노부유키의 구원이다.   

 

 세 사람을 번갈아 중심에 세우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노부유키를 제외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부친의 폭력을 경험하였고, 노부유키는 살인을 했다. 이 세 사람의 내면 묘사에 들어가면 작가는 정말 건조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연기한다. 아내의 불륜을 알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불만을 덜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남편의 비밀을 알고 자신의 평온한 삶이나 미래를 위해 덮어둔 채 자신을 관리하는 그녀의 삶은 끔찍하고 엄청나게 이기적이다.  

 

 

 노부유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살인의 비밀이다. 이 비밀이 완전히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죽음으로써만 비밀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349쪽)란 말처럼 노부유키와 미카 등이 살아있는 이상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노부유키와 그의 아내의 반응이 엇갈린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연기하는 삶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는 그와 이 연기를 좀더 지속하고 싶은 아내의 마음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작가는 공백으로 남겨 놓았다. 표지의 이미지와 노부유키의 내면이 강하게 부딪히며 깊은 심연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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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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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작품이다. 고백이란 형식을 통해 한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고백의 힘에 눌렸다. 작가의 처녀작이란 점도, 이 소설의 첫 장을 단편으로 낸 후 장편으로 바꿨다는 사실도 놀랍고 대단하다. 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그 관계자들의 내면을 이렇게 멋지게 파헤친 작품이 흔하지 않다. 특히 청소년 범죄인 경우에는 더욱 말이다.  

 

 시작은 최근 일본 문학 등에서 청소년 범죄의 문제점을 다룬 것과 비슷하다. 미혼모인 여선생이 자신의 네 살 된 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 후 종업식에 고별인사를 하면서 사연을 설명한다. 자신과 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고, 왜 자신의 아이가 매주 수요일 학교로 와야 했는지, 그 아이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말한다. 여러 번 일어났던 소년 범죄의 문제점도 부각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반에 살인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지만 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복수란 칼날을 통해 잔인하게 표출한다.  

 

 1장 성직자가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새롭게 장편으로 개작하면서 덧붙여 진 것들이다. 이후 고백하는 사람들이 바뀐다. 다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담임이 흔들어 놓은 반의 그 후 상황과 새롭게 벌어진 사건들을 자신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말한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제3자 입장의 고백자다. 이어서 가해자 가족 중 한 명이 일기란 형식을 통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기 주변 사항을 그려내고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엄마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전까지가 피해자나 제3자 입장이라면 제4장부터는 가해자였던 아이들의 고백이 시작한다. 왜 그런 살인사건이 벌어졌는지 각자의 고백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 설명이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했던 수많은 소설들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 청소년기에 자신들이 받았던 스트레스가 애정결핍과 그리움 등과 오해로 뒤범벅되면서 왜 그런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만나게 되는 청소년의 모습은 첫 장에서 본 잔혹하고 법의 그늘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과 전혀 다르다. 충동적이고 득의양양하지만 결국 불안감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약한 존재로 나온다. 만약 작가가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면 아쉬웠겠지만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그 뒤에 숨겨놓은 반전이 나오면서 복수와 미스터리는 완성되고, 아쉬움도 강하게 전해준다.  

 

 고백이란 형식을 통해 사건의 다양한 시선을 만난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버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고백이 진실의 조각들만 보여줄 뿐이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각을 모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과 가해자 등을 모두 화자로 내세우면서 한 사건을 둘러싼 방사형의 관계자들 목소리를 잘 드러냈다. 덕분에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형사 처벌이 되지 않는 중학생 살인과 그 피해 가족과 가해자 가족의 입장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심리도 그려내면서 한 편의 멋진 종합선물 같은 재미를 준다. 올해 읽은 최고의 작품 중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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