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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200쪽이 되지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보통사람이란 제목을 달고 나왔다. 그의 삶이 보통사람과 같은가 하고 묻는다면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 개개인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도 또한 보통사람과 같은 길을 간다. 그것은 죽음이다. 혈관에 문제가 있어 7년 연속으로 수술을 해야 할 정도지만 마지막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병으로 죽는다. 그것이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무덤가에서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를 추도하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형의 추도사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가득하고, 그의 어린 시절로 시간을 잠시 되돌려 놓는다. 그 시절과 젊은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것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청춘은 반짝이는 불꽃같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우리가 흔히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면서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다. 첫 이혼으로 두 아들에게 미움을 받고, 두 번째 결혼은 자신의 바람과 거짓으로 깨어진다. 하지만 이 결혼으로 얻은 딸 낸시는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선물이다. 그의 두 아들과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이렇게 착하고 긍정적인 딸이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자 축복이다. 그의 장례식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도 바로 낸시다. 말년에 매일 아침 전화를 해 그를 기쁘게 하고, 외로움에 빠지지 않게 하고, 그의 그림을 칭찬한 사람 또한 낸시다. 그녀의 존재는 어쩌면 모든 부모가 갖고 싶어하던 자식일 것이다.
작가는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쪽)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작가의 통찰력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전직 광고맨이자 세 번의 이혼을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죽음을 긍정하게 만든 것이다. 아니 긍정이란 표현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은 언제 어떤 사고로 죽을지 모르고, 나이든 사람들은 언제 무슨 병으로 혹은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면 그 모든 사람이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는 말과 일통상맥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은 추억과 후회와 그리움과 희망과 미래 등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면 어떨까? 희망보다 추억과 후회와 그리움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아내 피비의 뇌졸중으로 친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감정은 더욱 강하게 느낀다. 또 남자로서의 욕망이 멈추지 않아 지나가는 젊은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에서 지나온 그의 삶이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니면 남자란 동물이 지닌 본성일까?
그는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단지 그로, 아버지로, 동생으로, 남편으로, 노인으로 나올 뿐이다. 이 인칭대명사 속에 그의 삶이 들어있다. 그와 관련된 사람과의 관계가 말해지지만 그의 삶 자체가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노년의 삶이 비록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감상에 빠지거나 쇠락한 삶을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거리를 두고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