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김이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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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물농장>이란 제목만 보면 조지 오웰이 떠오른다.

실제 검색해도 조지 오웰이 소설들이 먼저 나오고, 작가 이름을 넣어야 이 책이 나온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의 소설과 같은 제목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는 <산책>으로 만난 적 있지만 아직 낯설다.

하지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번 소설로 이 작가의 다른 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책 소개를 보면 계급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시리즈 첫 소설이 영상화와 수출 계약이 되었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다.

동시에 <하인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다.


이 소설은 통쾌한 복수극이다.

마루그룹이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복수를 한다.

중심 인물은 두 명인데 강태은과 김선우이다.

이 복수극의 가장 핵심은 김선우인데 그는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안 후 진로를 바꾼다.

비행기 조종사에서 경영학과로 바꾼 후 마루기업으로 들어간다.

단순한 입사가 아닌 회장 아들의 후배이자 수족으로.

그는 내부에서 마루그룹의 허점을 파헤치고, 거액을 챙기려고 한다.

이 일을 위해 피해 입은 사람들을 모았고, 그 중 한 명이 강태은이다.

 

강태은은 집안이 몰락한 후 엄마와 필리핀에서 힘들게 살았다.

엄마가 필리핀 남자에 붙어 살았는데 딸을 겁탈하려고 하자 칼로 찔렸다.

태은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필리핀의 열악한 감옥에서 힘들게 살았다.

머리 좋은 태은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엄마가 감옥에서 풀려나 같이 살지만 지하를 벗어나려면 아직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 지하를 벗어나려고 선택한 것이 비밀도박장 매니저다.

소설 첫 부분에서 보여준 수상한 헌책방의 모습은 이 도박장과 관련 있다.

하지만 주인의 배신은 그녀를 또 다른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이때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그녀를 끌어당기는 인물이 바로 김선우다.


김선우는 최현백의 마루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 피해 입은 사람들을 모았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등을 빼앗긴 두 명의 컴퓨터 천재가 먼저 합류했다.

태은은 늦게 참여했지만 실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이 계획을 위해 태은 가족의 과거사가 흘러나오고, 둘이 어떤 인연인지 말한다.

선우는 둘째 아들 최재건의 오른팔로 있으면서 내부 핵심 정보를 얻는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최현백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동물농장이고, 그들을 이어주는 앱도 동물농장이다.

비리와 불법으로 성장한 마루그룹의 비리와 불법을 알리는 것이라면 간단할 수 있다.

이들은 마루그룹으로부터 천 억을 받아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비리와 부패, 자신도 모르게 바뀌게 되는 삶의 모습, 탐욕 등이 흘러나온다.

이 과정에 수십 억의 돈은 너무나도 쉽게 흘러간다.

탐욕은 스스럼없이 불법을 저지르고, 돈은 이것을 입막음한다.

복수의 큰 그림은 동료들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단편적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재벌의 힘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면서 위기가 생긴다.

작가가 풀어놓은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고, 생략과 비약이 일어난다.

소설 전체에서 이런 생략과 비약은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이 부분을 다루었으면 한다.

읽으면서 몇 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오갔고,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들은 왠지 비현실적이지만 이 험악한 세상에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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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뭐래 창비시선 489
정끝별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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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 이전에 다른 시집을 읽은 기억은 없다.

5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어렵고 재밌고 흥미로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1부의 시들이 어렵게 다가왔다.

표제시 <모래는 뭐래?>는 간결한 시 속에서 ‘설마 모래가 너일까?’ 묻을 때 ‘나’를 떠올린다.

모래를 비유한 글과 모래를 이용한 과학 등도 간결하게 녹아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 동물들을 가끔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보면서 읊조린 <회복기>의 한 대목은 순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제 봄이겠구나 /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 봄이 다디단 이유일 거야”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에서 가슴 아픈 사랑 하나를 만난다.

국도에 버려진 개 이야기로 시작해 끝내는 자신의 감정으로 마무리하는 그 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는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와 이미지가 겹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알래스카의 바다코키리와 열대 늪지대에 사는 브리질 악어의 처절한 몸부림이 말이다.

절박이 절벽을 부르고 / 착각이 착란을 부른다”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부분)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의 부분)


오래된 이야기로 넘어가면 다시 추억과 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너였던 내 모든>에서 이해 부족과 오해가 만들어낸 이별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청파동 눈사람>에서 “청춘이란 그렇게 / 파국을 향해 직진하는 것 / 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말한다.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갈매기의 꿈’을 둘러싼 시들이 몇 편 있다.

1974년 판권을 그대로 붙인 시를 읽다가 오래 전 떠올린다.

언니와 엄마에 대한 추억과 회상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시가 두 편 있다.

<언니야 우리는>과 <응암동엔 엄마가 산다> 등이다.

전편이 같은 여성인 가족이 겪은 지치고 힘든 감정을 잘 풀어내었다면 후편은 늙으신 엄마의 사랑이다.

여든여덟살배기 엄마가 막내딸 방귀 뀐 것을 종아라 한다.


<처용가>와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쓴 시들도 재밌다.

<시는 어디에?>에서 한-이란 친선 시 낭송으로 시작해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로 넘어간다.

<처용가>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미니교와 마니산을 엮는 상상을 한다.

<시인은 누구?>에서는 <공무도하가>를 논문으로, 노래로, 만화영화로, 소설 등으로 변주된 이야기를 한다.

이 노래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파고드는 곳에 시인의 꿈이 또한 혼란스럽게 녹아있다.

해설이나 출판사 리뷰에 애너그램을 활용한 시들이 눈에 띈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다.

입속으로 읊조리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리듬을 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일상과 추억과 애상을 파고든 감상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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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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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의 개정판이다.

출판사도 바뀌었고, 번역자도 바뀌었다.

사노 요코가 암 선고를 받은 후 잡지에 연재한 것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첫 한국 번역판은 2010년 4월에 나왔고, 작가는 동년 11월에 별세했다.

사노 요코의 책들을 몇 년 전부터 읽었지만 자주 이 사실을 까먹는다.

출간된 목록을 검색하다 보면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사후 출간된 것들이다.

이번 이 에세이를 통해 이 작가의 다른 에세이에 더 관심이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더 읽고 싶은 데 그 이유는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 때문이다.


네 살 즈음 요코가 엄마의 손을 잡았는데 엄마가 혀를 차면서 손을 뿌리쳤다.

이 경험이 두 번 다시 엄마 손을 잡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녀와 엄마 시즈코 상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도쿄대 출신 아버지, 2차 대전 당시 중국에서 유복하게 살았던 시절 이야기.

패망과 함께 귀국하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오빠와 남동생의 죽음.

오빠가 죽었을 때 망연자실한 엄마의 모습과 다른 남동생이 죽었을 때 대비되는 모습.

일곱 명을 낳았지만 네 명만 살아 남았는데 장녀가 사노 요코다.

그녀가 엄마 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가 <오싱>과 비교한 부분이다.

<오싱>의 주인공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엄마의 폭언과 폭행은 그녀가 자라는 동안 멈추지 않는다.

시골에 살 때 물통을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면 바로 구타로 이어진다.

귀환 후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도 엄마의 근검 절약하는 모습과 깔끔함은 집을 안정적이게 한다.

엄마의 뛰어난 요리 실력은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친구들이 말할 정도다.

하지만 사노 요코와 그 여동생들은 집이 한 번도 그리운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 삶이 더욱 깊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세 딸은 각자 다른 성격과 행동으로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본다.

각자의 삶 때문에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데 이때 그녀들의 눈치는 요코의 아들보다 못하다.

아니 어쩌면 딸들이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저녁에 싸우지만 속궁합이 좋았을 것이란 작가의 생각.

일곱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녀가 가장 정을 둔 오빠의 죽음과 진솔한 속내.

자라면서, 성인이 된 후에도 그녀에게 엄마는 불편하고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이런 엄마이지만 아버지 사후에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네 명을 모두 대학에 보낸다.

지금보다 더 대학가기가 어려운 시절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괴롭혀왔다.

이것이 해소되는 계기가 엄마의 치매라는 것은 재밌는 대목이다.

자기 집에서 며느리에게 쫓겨난 엄마, 자업자득이란 생각까지 한 작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튀어나온 “미안해요”란 표현과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란 엄마의 말.

그러다 갑자가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고 느끼고, 온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온화해졌다고 느낀다.

이때부터 그녀가 치매에 걸린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편해졌다고 한다.


읽다 보면 내내 시즈코상에 대한 험담으로 가득하다.

좋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허세와 거짓으로 가득한 장면들만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경험한 일들과 엄마와 엮인 이야기들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자매들이 어떻게 엄마를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들은 성격에 따라 갈린다.

유명 작가인 요코가 엄마의 비싼 요양원 비용을 내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 인상적이다.

엄마를 돈으로 버렸다는 그 말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그녀도 이미 환갑을 지났고,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이 말은 한다.

늙은 부모님과 젊지만 늙은 자식의 모습은 이제 결코 낯설지 않다.

부제인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는 극적 화해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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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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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은 낯설다.

출간된 책은 생각보다 많지만 번역은 두 권만 보인다.

부제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에 끌렸다.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게 언어는 하나의 장벽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판매 부족으로 번역되지 않을 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업무상 이메일이나 해외 여행에서도 이 어려움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저자는 무작정 프랑스 유학을 떠나 이십 년 이상 그곳에서 살고 있다.

오해와 실수로 점철된 이야기는 공감할 부분이 많고 재밌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삶이 잘 녹아 있다.


외국어는 어렵다. 쉬운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단순히 단어와 말을 알아듣고 할 수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에 담긴 문화적 의미와 상황도 알아야만 한다.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실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실수를 통해 그들의 한국어 실력이 좋아지는 것과 같이 저자도 그렇게 발전했다.

프랑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그에게 의존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의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고 일상에서도 자주 만나는 상황이다.

당연히 애정사에서도 만나게 되고, 작은 다툼의 원인이 된다.


편지에 형식적으로 쓰는 문구에 감동하는 장면은 왠지 과한 것 같다.

재밌게 표현하기 위한 것일 테지만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표현들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식적인 문구를 싫어하지만 업무상 필요에 의해 사용한다.

유학생들의 삶속에서 가끔 듣게 되는 체류연장 서류를 둘러싼 이야기는 읽다 보면 화가 난다.

프랑스의 행정이 얼마나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엉망인지는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나라에서 아직도 귀족이 있다는 사실에, 아니 높인다는 것에 놀란다.

프랑스 귀족 이야기는 소설 등에서 만나지만 이렇게 인맥 등으로 엮여 있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마지막에 프랑스의 극우세력이 점점 강해진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섬뜩하다.

또 어떤 큰 변화가 가까운 시기 안에 생길지 알 수 없다.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언어도 모르는 곳에 대학 1학년이 왔다.

대단한 열정이고, 무모한 일이면서 엄청난 용기다.

이 무모함과 용기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조금씩 깎여 나간다.

안으로 움츠러드는 대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씩 배우면서 점점 좋아진다.

서툰 언어 때문에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준다.

언어에 담긴 문화 때문에 생긴 일들과 그 말의 진의 때문에 감동하는 부분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그녀의 주치의 선생이다. 너무 환상적인 의사다.

“우리는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군요”라는 마지막 진료 때 한 말은 너무 멋진 표현이다.

이 말을 멋지게 사용할 곳이 너무 많아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외국에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살면서 겪은 일들과 솔직한 감상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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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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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시리즈 작가다.

이 시리즈 한 권 읽고 시리즈 다른 책 읽어야지 생각한 것도 몇 년이 지났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니 재밌게 읽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가 보인다.

이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 이런 작가들이 너무 많아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쌓여간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의 제목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스피노자 때문이다.

스피노자 철학을 한 번 공부하고 싶은데 솔직히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다.

가끔 이런 철학자들의 철학을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들만 계속 들여다본다.

이런 공부는 휘발성이 너무 강해 금방 잊게 된다.

뭐 소설 내용에 대한 기억도 휘발성이 강한 것을 생각하면 마찬가지이지만.


현역 내과의사가 쓴 의료 소설이다 보니 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문 용어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 마치 데쓰로는 교토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는 내과의사다.

몇 명의 전문의가 근무하는 작은 종합병원인데 주로 말기 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데쓰로는 대학병원에서 의국장을 맡았고, 내시경 기술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의사다.

여동생이 죽으면서 남긴 조카를 돌보기 위해 마치는 대학병원을 그만 두었다.

그의 이 탁월한 기술은 그의 선배 부교수 하나가키가 애제자를 보내 배우게 할 정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부교수가 그의 도움을 받아 힘든 수술을 하고 싶어한다.

그가 대학병원에 있었다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모두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네 종합병원의 능력을 숨긴 사람 좋은 내과의사다.


대학병원이었다면 교수들의 권력투쟁, 음모 등이 난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병원은 종합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말기병의 환자들을 돌본다.

암 말기 환자들이 병실이나 집에서 의사의 왕진과 간호사의 도움으로 진료받는다.

병실에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지만 그들은 집에서 임종을 조용히 기다린다.

임종을 기다린다고 해서 무력하게 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환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면서 힘들게 돌본다.

이 힘겨운 가족 돌봄에 대해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라 울컥한다.

언제 어떻게 환자가 죽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코 절망과 우울에 빠져 있지 않다.

이것은 이 환자들을 대하는 데쓰로의 행동과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신입 의사가 볼 때는 너무한 것 같게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의 의료 세계는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의료의 현실은 제대로 반영된 것 같다.

한국도 말기 암 환자를 왕진하는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의사는 부럽다.

말기 암 환자에게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고른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의료보험의 혜택을 거부하는 환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환자의 선택을 위험보다 먼저 생각한 듯한데 그가 남긴 유언은 진한 여운을 준다.

그리고 능력을 숨긴 그가 이 능력을 잘 발휘하는 장면들을 몇 곳에서 보여준다.

이 능력 때문에 미나미가 그를 다시 보고, 그의 신중한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

만약 이 소설도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데쓰로와 미나미의 로맨스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쓰로와 스피노자를 같이 놓은 제목 때문에 철학적인 내용을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고 고민하는 모습도 나온다.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마주한 의사가 겪은 고통도 나오지 않는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도 일어난다.

대학병원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동네병원의 모습은 미나미의 시야를 넓혀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의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높아지게 된다.

환자를 완치시키는 병원과 의사가 아닌 좀더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는 의사의 모습이다.

사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병을 앓다 죽은 환자와 그를 돌본 가족에게 던진 한 마디 “고생하셨습니다.”

단순히 생색내기가 아닌 진심이 담긴 이 말이 환자가 남긴 “고맙습니다”와 같이 진한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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