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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2017년 9월에 한 번 읽었던 책이다.
이후 작가의 행보를 생각하면서 개정판이라고 하니 다시 읽고 싶었다.
이번 글은 이전 감상에 새롭게 다가온 부분들을 덧붙였다.
개정판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얼개를 그대로이고, 몇 곳에서 문장 등의 변화만 확인할 수 있었다.
두 판본을 모두 비교하기에는 나의 능력 밖이라 할 수도 없다.
이전에는 부제로 ‘고통을 옮기는 자’가 들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없다.
오래 전 글을 보면 시리즈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개정판이 먼저 왔다. 아쉽다.
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어서인지 많은 부분 새롭게 다가왔다.
시프트. 고통이나 병을 옮길 수 있는 전이 능력자 이야기다.
자신의 몸을 통로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질병을 자신이나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
이 전이능력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주일 뿐이다.
축복은 그 고통과 질병을 넘겨준 사람들이고, 저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이다.
실제 이런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능력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이 소설처럼 악당들에게 끌려가 돈벌이로 이용되면서 사육 당할 것이다.
부자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병을 옮기며 영생을 꿈꾸고, 누군가는 이 병으로 죽을 것이다.
소설은 두 인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한 명은 찬의 능력을 본 이창 형사고, 다른 한 명은 찬의 능력을 전이 받은 동생 란이다.
이창 형사는 누나와 같은 병에 걸린 조카를 살리기 위해 사이비종교 천령교 교주를 찾아다닌다.
자신의 누나가 교주에 의해 병이 완치된 기적을 봤기 때문이다.
교주의 능력은 가짜이지만 찬의 전이 능력은 이것을 기적으로 만든다.
이 사실은 모르는 형사는 열심히 교주만 찾을 뿐이다.
그러다 한 폐건물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그가 바로 사라진 천령교의 교주였던 한승목 목사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이야기가 들린다.
교주의 능력이 아니라 찬의 능력이란 정보다. 이제 좇는 대상이 바뀐다.
란의 이야기는 한승목 목사가 어떤 인물이고, 그가 저지른 악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찬의 능력을 이용해 사이비종교를 만들고, 그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켜 돈을 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와 그에게 기적을 바란다.
교주는 열성적인 신도에게만 기적을 펼친다.
열성도는 헌금에 달렸다. 이창의 아버지가 전재산을 바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했다.
하지만 교주의 아들로 포장된 것 때문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교단은 파괴된다.
찬의 능력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능력이 란에게 전달된 것은 아직 모른다.
란이 전이 받은 이 능력을 한 번 사용한 것을 한승목이 알기 전까지는.
한 목사의 죽음은 그의 비리와 악행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다.
거리의 아이들을 납치해 찬이에게 병을 옮기도록 했다.
이 저주받은 능력은 질병과 고통을 받을 그릇으로 연약한 아이들을 납치하게 만든다.
한 목사 일행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찬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만 죽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그는 자신이 그 질병과 고통을 안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동생 란이 있었고, 란에게 가해지는 고통 혹은 죽음이 두려웠다.
교주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아이가 납치되고, 죽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는 정말 저주받은 능력이다.
작가는 능력에 한계를 둔 채 이야기를 만들었다.
특별히 이야기를 확장하지도 않고, 그 능력을 과도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전이 능력은 상대방을 맨손을 잡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다.
이 능력의 한계가 찬과 란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공간도 작은 지방 도시로 한정한 채 많지 않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전에는 이런 설정들이 왠지 너무 가지를 쳐 앙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란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안 이창의 고민이 가슴 깊은 곳으로 와 닿지 않았다, 고 이전에 적었다.
이것은 내가 놓친 부분들 때문에 선입견이 작용했다.
이창이 왜 그런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 답 중 하나다.
손을 잡아야만 한다는 제한적인 능력은 늘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 능력을 사용해 정의로운 활동을 하고, 악당을 쳐부술 수도 없다.
누군가의 병을 고친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병을 안고 간다는 의미이다.
악당들에게 이 병을 옮겨준다면 통쾌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아 능력을 자주 사용하면 그의 존재가 더욱 알려지는 위험마저 생길 수 있다.
악당들은 개인이라고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등지거나 거대한 폭력을 동원할 수 있다.
실제 우리는 권력 등에 의해 범죄 사실이 덮이거나 사라지는 것을 현실에서 봤다.
책 소개를 보면 표현 등만 다듬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시리즈의 필요를 느낀다.
이 매력적인 능력과 캐릭터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