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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신의 카르테> 시리즈 작가다.
이 시리즈 한 권 읽고 시리즈 다른 책 읽어야지 생각한 것도 몇 년이 지났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니 재밌게 읽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가 보인다.
이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 이런 작가들이 너무 많아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쌓여간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의 제목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스피노자 때문이다.
스피노자 철학을 한 번 공부하고 싶은데 솔직히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다.
가끔 이런 철학자들의 철학을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들만 계속 들여다본다.
이런 공부는 휘발성이 너무 강해 금방 잊게 된다.
뭐 소설 내용에 대한 기억도 휘발성이 강한 것을 생각하면 마찬가지이지만.
현역 내과의사가 쓴 의료 소설이다 보니 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문 용어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 마치 데쓰로는 교토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는 내과의사다.
몇 명의 전문의가 근무하는 작은 종합병원인데 주로 말기 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데쓰로는 대학병원에서 의국장을 맡았고, 내시경 기술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의사다.
여동생이 죽으면서 남긴 조카를 돌보기 위해 마치는 대학병원을 그만 두었다.
그의 이 탁월한 기술은 그의 선배 부교수 하나가키가 애제자를 보내 배우게 할 정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부교수가 그의 도움을 받아 힘든 수술을 하고 싶어한다.
그가 대학병원에 있었다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모두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네 종합병원의 능력을 숨긴 사람 좋은 내과의사다.
대학병원이었다면 교수들의 권력투쟁, 음모 등이 난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병원은 종합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말기병의 환자들을 돌본다.
암 말기 환자들이 병실이나 집에서 의사의 왕진과 간호사의 도움으로 진료받는다.
병실에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지만 그들은 집에서 임종을 조용히 기다린다.
임종을 기다린다고 해서 무력하게 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환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면서 힘들게 돌본다.
이 힘겨운 가족 돌봄에 대해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라 울컥한다.
언제 어떻게 환자가 죽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코 절망과 우울에 빠져 있지 않다.
이것은 이 환자들을 대하는 데쓰로의 행동과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신입 의사가 볼 때는 너무한 것 같게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의 의료 세계는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의료의 현실은 제대로 반영된 것 같다.
한국도 말기 암 환자를 왕진하는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의사는 부럽다.
말기 암 환자에게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고른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의료보험의 혜택을 거부하는 환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환자의 선택을 위험보다 먼저 생각한 듯한데 그가 남긴 유언은 진한 여운을 준다.
그리고 능력을 숨긴 그가 이 능력을 잘 발휘하는 장면들을 몇 곳에서 보여준다.
이 능력 때문에 미나미가 그를 다시 보고, 그의 신중한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
만약 이 소설도 시리즈로 발전한다면 데쓰로와 미나미의 로맨스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쓰로와 스피노자를 같이 놓은 제목 때문에 철학적인 내용을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고 고민하는 모습도 나온다.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마주한 의사가 겪은 고통도 나오지 않는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도 일어난다.
대학병원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동네병원의 모습은 미나미의 시야를 넓혀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의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높아지게 된다.
환자를 완치시키는 병원과 의사가 아닌 좀더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는 의사의 모습이다.
사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병을 앓다 죽은 환자와 그를 돌본 가족에게 던진 한 마디 “고생하셨습니다.”
단순히 생색내기가 아닌 진심이 담긴 이 말이 환자가 남긴 “고맙습니다”와 같이 진한 여운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