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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이젠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 조 힐은 조셉 힐스트롬 킹이 본명이고, 그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스티븐 킹이다. 킹의 아들이란 것을 숨기기 위해 조 힐이란 필명을 사용하였지만 이미 그가 킹의 아들이란 사실이 널리 퍼졌다. 첫 작품에서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었겠지만 킹의 아들이란 사실은 책을 파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장편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기본 사항을 알고 책을 읽게 되면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적지 않은 열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의 수상경력도 상당히 화려하다. 브람 스토커 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런 수상경력은 나 같은 사람에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잘 모르는 작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뭐 킹의 아들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되겠지만 수상경력은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조 힐이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데뷔했다는 점이다. 킹의 아들이란 사실을 숨기고 말이다. 그러니 작품으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았다.
열다섯 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세 편이다. <신간 공포 소설>, <20세기 고스트>, <자발적 감금> 등이다. 사실 첫 작품인 <신간 공포 소설>을 읽으면서 전통적인 전개란 느낌도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들 때문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 긴장감이 최고로 달했을 때 예상된 전개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열린 결말로 여운을 남겨 두었다. 과연 그가 달아나는데 성공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소설이 주는 섬뜩함도 대단하다.
<20세기 고스트>는 공포보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영화관에 나타나는 여자 유령을 배경으로 영화관의 역사와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공포보다 향수에 젖었다. 이전에 본 영화들이 나올 때면 그 영화를 떠올려보고, 유령을 본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연대에선 이제 멀티플렉스에 밀려 문을 닫아야하는 영화관의 운명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리고 여자 유령의 존재와 그녀에 의해 영화관이나 영화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에선 20세기 가장 매력적인 것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발적 감금>은 참 당혹스럽다. 동생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동생과 그로 인한 실종을 빼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약간 자폐적인 성향이 있는 동생의 삶과 그의 작업들과 이 작업에서 비롯된 실종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고 이끌어 나간다. 이 이야기가 당혹스러운 것은 동생과 대비되는 형과 그 동생에서 비롯한 실종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박스로 만든 미로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사라지는 현실이 공포보다는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그들의 실종이 어떤 곳으로 이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만약 나도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앞에서 말한 세 편 외에도 다른 분위기로 각각의 매력을 발산한다. 공기주입식 아이란 설정이 있는 <팝아트>란 단편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하고,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하는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에선 영화 <플라이>도 같이 떠올랐다. <아브라함의 아이들>에선 흡혈귀가, <집보다 나은 곳>에서 야구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생각나고, 납치된 아이의 이야기인 <검은 전화>에선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 놀랐다. <협살 위기>는 과연 뭐가 진실인지 의문이 생기고, <마법 망토>에선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숨결>은 죽기 직전 사람의 숨결을 담아둔 박물관 이야기인데 그 허구가 그럴듯하게 다가오고, <나무의 유령>는 단 두 쪽으로 콩트 느낌을 받았다. <과부의 아침식사>는 공포도 스릴러도 판타지도 아니지만 마지막 대사가 가슴으로 강하게 파고든다. <바비 콘로이, 죽은 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는 반가운 이름과 영화가 나오고 한 남자의 질투와 사랑이 재미나다. 판타지 성격이 강한 <내 아버지의 가면>은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판타지의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킹의 영향을 곳곳에서 보았다. 물론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이끌어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킹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현대 공포 작가 중에서 킹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우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첫 작품의 강렬함이 뒤로 가면서 조금씩 퇴색되기는 했지만 조 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