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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나의 세계
뫼비우스 지음, 장한라 옮김 / 교양인 / 2021년 12월
평점 :
워낙 낯익은 이름이라 이 작가의 작품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았다. 집에 사 놓고 묵혀 두고 있는 책 중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니 절판된 책만 보인다. 그리고 그가 삽화로 참여한 소설들이 나온다. 대부분 읽은 소설이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런 사실보다 먼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책소개가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어비스]까지 그가 직접 참여했거나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영감은 받았다고 말한다. 이 영화들을 재밌게 본 나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장 앙리 가스통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 1938~2012)는 평생 동안 ‘지르(Gir)’와 ‘뫼비우스(Moebius)’라는 두 개의 필명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뫼비우스는 조금 낯익지만 지르는 완전 낯설다. 이런 정보는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400쪽에 달하는 이 두툼한 그래픽노블은 읽기 시작하자마자 혼란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에데나의 세계>는 〈별 위에서〉, 〈에데나의 정원〉, 〈여신〉, 〈스텔〉, 〈스라〉까지 전체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그래픽노블 시리즈의 이름이고, 뒤에 다른 이야기가 몇 편 더 첨부되어 있다. 작가 자신을 그려낸 부분도 있는데 재밌게 읽지만 복잡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책을 덮은 뒤에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현실과 초현실이 교차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바이블>을 떠올리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작품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재밌는 부분은 1983년 시트로엥 사로부터 우주 이야기를 담은 6쪽짜리 홍보용 만화를 뫼비우스가 제안받아 시작한 것이다. 실제는 39쪽으로 늘어났고, 이 만화는 독점 판매권자들에게만 배포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이때 책자를 잘 보관하고 있다면 얼마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 <에데나의 정원>이 1988년에 발표되었고, 다른 작품들도 순차적으로 나왔다.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왔지만 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기분 좋은 일이다. 만약 한 편씩 읽었다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과 뭔가 찜찜한 듯한 마무리에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바뀐 주인공의 외모에 전작을 열심히 찾아보는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다.
주인공 스텔과 아탄은 아주 먼 미래에 지구가 아닌 행성 출신이다. 처음에 이 둘을 동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어진다. 스텔은 남자로, 아탄은 여자로. 이 둘이 이렇게 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에데나의 열매다. 그들이 우주선을 타고 다닐 때는 원료를 합성해서 음식물을 섭취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피라미드를 통해 이 행성에 온 이후는 자연에서 나온 열매 등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중성적인 모습이 남자와 여자의 몸매로 바뀐다. 재밌는 장면은 스텔이 아텔의 외모가 바뀌면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작은 충돌 후 둘은 헤어지고, 이 둘이 이 행성을 여행하면서 경험하고 만나는 일들이 다음 이야기에서 펼쳐진다.
에데나(Edena)의 철자를 잘 보면 성경의 에덴이 떠오르고, 중성에서 남녀로 나누어진 스텔과 아탄은 아담과 이브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르다.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서로 만나길 갈망한다. 여기에 환상이 끼어들고, 현실이 뒤틀린다. 가상 현실을 다룬 듯한 장면도 나온다. 아탄이 아타나로 불리고, 여신으로 취급받는 이야기도 나온다. 둥지에 잡혀간 아타나가 겪는 이상한 일들은 이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코쟁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이것을 얼굴이라고 부른다. 실제 사람의 얼굴이나 머리카락 등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때 나오는 이야기와 장면들은 상당히 낯익지만 가장 재밌다.
이야기 자체로 재밌지만 그림도 대단히 뛰어나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다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단순히 화려한 그림이라고 치부하기엔 세부 묘사나 구도가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시간과 공간이 혼합된다. 아주 뛰어난 연출이다. 상상을 그림으로 구현하는데 나의 인식이 모두 따라가지 못한다. 언제 다시 읽게 된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천천히 읽고, 더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언제 새로운 책이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