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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와 함께하는 여름 ㅣ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7월
평점 :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을 재밌게 읽어 선택했다.
그런데 전작과 달리 랭보의 시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다.
호메로스의 시는 낯익은 이야기이지만 랭보는 너무 낯설다.
오래 전 선배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빌렸지만 읽은 기억이 없다.
보들레르의 시집은 한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아마 기억에 혼선이 생기면서 착각한 것 같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 역을 한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랭보나 그의 시보다 저자 풀어낸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낯선 생애, 낯선 시들은 몰입도를 전보다 떨어트렸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책은 랭보의 시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다.
2021년 초는 유럽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기였다.
아직 다른 대륙에서 비행기로 여행객들이 움직이는 시절은 아니었다.
저자는 “랭보를 읽으면 언젠가는 길 위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시는 사물의 움직임이다. 랭보는 쉬지 않고 이동하며 관점을 바꾼다. 그의 시는 발사체다.”라고 정의한다.
도입부에 나온 이 문장이 시선을 끌었지만 아직 랭보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한 문장을 읽으면서 삶의 궤적 일부를 알게 된다
“그는 방랑하는 어린 학생이, 스스로 저주한 시인이, 뒤뜰의 연인이, 열대지방 여행자가, 작업감독이,
무기 판매상이, 지도제작 탐험가가, 아르덴 지방의 돌풍 같은 아들이, 마르세유의 병든 오빠가 된다.”
천재 시인으로 불리는 그가 이런 수많은 직업을 가졌다니 현실은 무겁다.
랭보에 대해 잘 모르거나 피상적인 지식을 가진 나에게 그의 시가 가장 위상을 저자는 알려준다.
“그렇게 프랑스 시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시작한다. 파괴하고 재창조하려는 것이다.”
1873년 출간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책 속에 나온 그의 시 몇 편만으로 이런 평가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베를렌은 “경이로운 심리적 자서전”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어떤 대목 때문일까?
읽고 싶은데 난해하다는 평가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한국시도 겨우 겨우 읽는 나에게 번역시는 더 어렵다.
최근 읽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도 그랬지 않은가.
랭보가 ‘언어를 학대했다’는 표현에 고개를 갸웃한다.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행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걷기는 시의 최고 경지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은 습지, 초목, 논, 잡목, 황금 밀밭 등의 소재들이 각인된 서재 같은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한 시인이 자신의 에세이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냥 우리가 무심하게 보고 지나간 것들을 그들은 깊게 관찰해서 시 속에 활용한다.
“말을 한 마리 사서 떠나라!”라고 한 것도 랭보의 삶과 이어져 있다.
저자는 많은 논란을 불러온 랭보의 동성애적 요소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의 시와 삶이 그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지 이슈가 아니다.
살아서 성공적인 시인의 삶을 누리지 못했지만 죽은 후 그는 불멸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시집은 단 두 권밖에 없다.
랭보의 삶을 연대순으로 다루지 않는다. 아닌가?
천재 소년이 집을 가출했다가 잡혔고, 다시 가출했다.
상으로 받은 책을 팔아 기차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대단한 소년이다.
시인으로 성공하고자 했지만 그 성공은 죽은 다음에 이루어졌다.
이 부분은 인상파 화가 고흐와 어느 부분 닮았지만 작품 수는 비교 불가다.
“랭보의 불가사의는 불멸의 영예와 과작寡作에 있다.”에 눈길이 간다.
삶의 여정은 위에서 말한 다양한 직업과 많은 여행으로 나타난다.
1891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골육종암으로 그가 죽었다.
그의 삶을 고통이 시로 발현되었다고 말한다.
아직 시가 낯선 나에게 랭보의 시는 언젠가 도전할 대상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