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생의 일인 라이프. 솔직히 처음에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요즘 세대들의 삶을 한 번 보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목차에 나오는 조금 자극적인 제목인 ‘자위하세요?’란 제목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어떤 글에서는 동생과 자취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어떤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였기에, 다른 시대를 살았기에 알 수 없는 경험들도 많이 나왔다. 간결한 문장과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글은 가독성도 좋고 재미있었다.

 

여성 혼자 집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심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동생과 살 때 동생이 이사할 집을 구하러 몇 번 다녔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여성이 살면서 느끼는 공포는 잘 안다. 주변에서 늦은 시간 혼자 다니다가 당한 사건이나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이 있는 것처럼 꾸민 설정 등은 예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인 나는 이것을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않았다. 늦은 밤 귀가하는데 내 앞에 여성이 홀로 갈 때 그녀가 느낀 무서움보다 왜 나를 두려워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으니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 늘 마주하게 되는 것이 예산이다. 이 예산이 넉넉하면 쉽게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중개인이 보여주는 집들은 언제나 뭔가가 부족하다. 예산을 생각하면 위치와 집 상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선유도 근처 원룸을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 생각들이 교차했다. 현대인에게 출근 시간은 가격에 반비례한다. 교통이 편하고, 거리가 가까운 직장이 도시 외곽이라면 비용이 낮겠지만 대부분 도심에 사무실에 있다보니 비용은 올라간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도는 올라간다. 하지만 가깝고 비싸다고 환경이 모두 좋지는 않다. 옆방에서 뀐 방귀소리가 들리고, 옆집 출근 시간이 모닝콜이라면 말 다하지 않았는가.

 

혼자 살기 이야기에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것은 여성 문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선택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녀 친구의 결혼식은 놀랍고 신선했다. 최근 아내에게 내가 듣는 말들은 집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에서 그것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저자는 이런 부분이 아주 불편하다. 남동생이 대학 때문에 올라왔을 때 엄마가 기대한 바를 따르지 않는 이유를 보면 혼자 사는 삶의 편리함과 동생 뒤치다꺼리를 할 마음이 없음이 잘 드러난다. 그래도 동생이 살 집은 같이 찾아주는데 이때도 여성이 느끼는 불편함이 많이 보인다.

 

법적 보호자에 대해 쓴 글에서 강한 문제를 느꼈다. 아무나 법적 보호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친구나 동거자라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장에 공감했다. 이런 공감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할머니, 엄마, 딸의 몫이었던 일들에서 각각 다른 느낌으로 공감했다. 요가 예찬에 나의 뒤틀린 몸 상태가 떠올라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을 백패킹을 떠난 모습에 괜히 부러웠다. 장기간 배낭여행을 해보지 않은 나이고, 차의 편리함에 빠져 사는 나이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핑계를 댄다.

 

나를 지켜보는 것이 공포일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불편하다는 것은 여러 번 느꼈고 들었지만 말이다. 소개팅남 이야기는 그가 보통의 대한민국 남성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남성 사회에서 남자들의 행동은 남자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 혹은 과한 반응이란 말로 덮는다. 자위 이야기는 자극적인 물음과 달리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자는 내용이다. 생각보다 이것을 잘 모르는 여성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생리컵은 아주 낯설다. 혼자살기에 덜 부담스럽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행동도 많다. 자위도 그 중 하나다. 이 에세이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뒤섞여 있다. 살아온,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르니 당연한 일일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현병이란 병명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전 있었던 범죄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이름인 정신분열병은 아주 낯익다. 솔직히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이 이것을 부채질했다. 이전에 본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이런 환자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를 다루었다. 이런 간접 경험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을 결코 좋은 쪽으로 돌려놓지 못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자를 무서워하고, 일부의 사람들은 격리 등을 말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두 아들 모두 조현병을 앓았고, 그 중 한 명이 자살한 퓰리처상 수상작가 론 파워스가 이 병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2005년 7월 3일 둘째 케빈이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3년이나 조현병에 걸려 있었는데 극단적 결정을 한 것이다. 5년쯤 뒤 첫째 딘마저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 부모 입장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일 것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아니 자신의 개인적 가족 이야기를 쓸 마음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쓸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상처받길 바란다. 솔직히 말해 상처보다는 내가 알고 있던 정신 질환을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는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고,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 알려준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앞에 놓으면서 결말에 대한 호기심을 차단했다.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하나는 작가의 아이들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 처방, 치료 등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읽기 편한 것은 아이들 이야기지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실들이다. 아이들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남녀가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평범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둘째 케빈이 기타에 재능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같은 나이 또래 전국 경연에서 우승하고, 좋은 대학도 들어간다. 부모 입장에서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신질환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첫째 딘은 약간의 음주와 운전 미숙으로 여자 친구를 크게 다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이 여자 친구 부모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음주운전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양이지만 언론 등은 음주 사고로 확대했다. 여친의 부모는 딘을 용서하지도 않고 소송까지 건다. 열여섯 소년은 작은 마을에서 음주운전 사고자로 낙인찍힌다. 판사는 집행유예라는 판결을 내렸고, 아이는 평생 이 굴레를 쓰고 있어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공포와 더불어 말이다. 그는 매력적이고, 정치적 활동을 잘 해 정치인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면서 부모를 걱정과 공포 속으로 밀어넣었다.

 

조현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유전적인 것부터 외부환경적인 것까지. 현대는 정신질환자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작가는 이 정신질환자를 사회가 어떻게 다루었는지 다양한 사실들로 보여준다.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 시설의 설립과 이 시설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것이 현대에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알려준다. 우생학에 대한 글에서는 결코 나치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학자와 지식이 이것을 얼마나 환영했는지 말한다. 우생학의 파편들이 우리 삶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불편한 사실이다.

 

프로이트에서 시작한 정신의학은 어느 순간부터 항정신병 약으로 대체되었다. 나 자신도 이 약들 이름 몇 가지는 알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이제는 이 약을 처방하는 기계처럼 변했다는 말과 함께 이 약들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지 알려줄 때 이 부분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약들의 한계와 부작용 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몇 가지 시술은 끔찍할 정도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 시술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이런 약들이나 시술 등이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 관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란 느낌을 강하게 던져준다.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다.

 

점점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세금 지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 돈의 많은 부분이 제약회사로 흘러들어간다. 이들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상태가 악화된 부분적 이유로 사법제도 자체의 불안정성을 말한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서로 상충하는 주장에 의해, 정신증에 걸린 사람의 고통 경감보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유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과도하게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흔들려왔다는 대목이다. 이 글의 몇몇 단어만 바꾸면 우리 사회의 많은 이야기에 적용 가능하다는 사실에 읽으면서 놀랐다.

 

원제목은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지만 번역되면서 병명과 부모의 감정을 더 부각시켰다. 사실 이 말은 경찰이 한 말이기도 하다. 경찰들이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다루고,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작가는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 늘 미국의 경찰 대응을 볼 때면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작가가 버몬트주에 살게 되어 다행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도 경찰과 관련된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누군가는 미친 사람에게 신경을 쓴다’고 하면서 약과 격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치료하는 노력을 소개한다. 묵직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나의 인식을 새롭게 만들었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드키는 모든 대여금고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의미한다. 만약 대여금고의 마스터키가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시스템으로 이 마스터키 사용을 억제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악용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소설은 데드키가 존재했던 시절 이 열쇠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 사람들과 이 열쇠 때문에 위험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20년이란 시간을 두고 펼쳐지게 만들어 인간의 탐욕이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이 두 시간대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들이고, 나이도 환경도 다르다.

 

1978년과 1998년이란 두 시간대 속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이 두 시간대를 결코 합치지 않는다. 1978년의 주인공은 겨우 열여섯 살 소녀 베아트리스고, 1998년 주인공은 건축회사 인턴인 23살의 아이리스다. 내 기준에서 본다면 둘 다 아직 사회의 이면을 잘 모를 나이다. 그리고 두 여성은 사회적으로 상대적 약자다. 이모 도리스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위조하고 겨우 취직한 베아트리스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 직원에 취직된다. 멋진 미녀인 맥스란 동료도 만난다. 반면 이 은행이 문을 닫은 후 20년 만에 건물 실사를 위해 온 인물이 아이리스다.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는 자신들도 모르게 데드키와 그 정체가 의심스러운 547 대여금고에 다가간다. 작가는 이 둘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기 전 그들의 일상을 차분히 보여준다. 평범한 직장 여성들의 모습이다. 그녀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이 은행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주 암시한다. 베아트리스는 FBI수사 소문이 있고, 아이리스는 한 시점에서 사람만 사라진 사무실 공간이 남겨져 있다. 베아트리스의 시간은 그 은행이 문을 닫게 되는 이유와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아이리스의 시간은 박제된 공간 속에서 의문의 상황을 불러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오래 전에는 신분증 위조가 쉬웠다. 전산자료가 없다보니 대조할 자료가 없으면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전 소설에는 이런 신분증 위조 이야기가 많다. 물론 요즘도 신분증 위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공문서 위조들도 프로그램으로 얼마나 멋지게 해내는가. 이런 시절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열쇠를 이용한 대여금고는 아직 유효하다. 사실 집밖에 중요한 물건을 놓아두기에 대여금고만큼 좋은 것은 없다. 많은 소설들이 이 대여금고를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대여금고는 부패의 온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라가 저질러진다.

 

은행이 넘어갔다면 대여금고 주인들이 나타나 모두 찾아가야 정상이다. 통지가 늦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주인이 죽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한 사건은 한 여성이 자신의 대여금고 속 자산이 사라졌다고 말했고, 그 얼마 후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아주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폐쇄된 은행의 대여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절차도 복잡하다. 열쇠가 없다면 드릴로 뚫어야 한다. 20년 동안 몇 번 열린 적이 있지만 많은 수의 대여금고는 잠긴 채 있었다. 이유는 데드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열쇠를 우연히 아이리스가 발견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가치를 알지 못하면 보물이 아니다. 아이리스도 베아트리스도 대여금고의 열쇠가 지닌 가치를 잘 모른다. 사건은 언제나 이 두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베아트리스는 도리스 이모의 병과 맥스의 실종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아이리스는 은행 건물을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다 시체의 발견으로 급진전한다. 이 상황들 속에 밝혀지는 사실들은 부패, 비리, 탈세, 살인 등 돈을 위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일들이다. 그리고 거대한 탐욕은 결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그 보물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끝난 시점도 1998년에 머물고 있는데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 과연 작가는 이 후일담으로 이 의문을 풀어낼지는 의문이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 가독성이 나쁘지 않다. 두 시간대를 교차하면서 비밀을 풀어내고 엮는다. 1998년보다 1978년도에 비밀이 더 많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왜 이모가 베아트리스를 데리고 사는지, 왜 은행에 힘들게 취직을 시켰는지 알려준다. 몇 가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부패한 집단에게 자신들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할 일이다. 돈의 가진 자들이 권력과 함께 할 때 그 힘은 더욱 거대해진다. 열여섯 소녀가 혼자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20년이 지나도 그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베아트리스의 현재를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 킬 - 이재량 장편소설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란 잠수함>을 재밌게 읽은 기억 때문에 선택했다. 바퀴벌레를 모두 죽이려는 한 남자의 의지가 눈길을 끌었다. 실제 예상한 것과 전개된 이야기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관심을 둔 부분은 블랙코미디였는데 읽다보니 엽기와 공포가 먼저 다가온다. 주인공 고광남의 일생은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그의 강박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나아가고, 다양한 변주가 일어난다. 제목인 올 킬은 고광남이 바퀴벌레를 모두 죽이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벌레를 제거하는 회사의 이름이다.

 

3부로 나누어져 이야기가 펼쳐진다. 1부는 고광남이 왜 이렇게 청결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바퀴벌레의 등장과 그 싸움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으면서 자란 광남이 결혼까지 하게 된 사연과 시골로 내려와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등장하면서 바뀐다. 읍내에서 해충 구제 전문회사 ㈜올 킬의 광고를 발견하고 연락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거구의 여성인 안희수 대리다. 그녀는 아주 멋지게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기와 강한 소독약으로 집안의 바퀴벌레를 청소한다. 며칠 동안은 평온한 잠을 잔다. 하지만 이 일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어진다.

 

광남의 옆집은 유명 건축가와 살림 연구가 부부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이 부부가 이사 온 후 집의 고요함을 깨어졌다. 환경 잡지에 이 집이 실리고, 친환경 마을 조성을 위해 이 부부는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먹은 쓰레기는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산짐승들이 내려와 쓰레기 봉투를 파헤칠 정도다. 이 집에 초대를 받아 집 내부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만 그는 불편하다. 그가 바라는 삶은 청결하고 고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은 광남의 집에 다시 바퀴벌레가 등장하게 만든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안희수 대리는 무료로 옆집 바퀴벌레를 치워주겠다고 했지만 이 부부는 거절한다. 안 대리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브이아이피 고객 가입과 프리미엄 서비스 신청을 권유한다. 바퀴벌레가 없어지길 바란 광남은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나름 거액으로 가입한다. 그 다음 날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옆집의 음식물 쓰레기와 옆집 사람들과 짐까지 모두 사라진다. 남겨진 것은 전축과 말러 교향곡 앨범뿐이다. 그리고 돼지를 키우는 양 씨 집에 엄청난 양의 간 고기가 택배로 배달된다. 무언가 서늘한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은 책을 덮을 때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부에서는 3개월 후 한일 국제결혼 부부가 이사온다. 이전 주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간단한 이야기가 나오고, 심장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시골로 내려온 남편의 희생 등이 먼저 펼쳐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남편의 숨겨진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된다. 안팎이 다른 인물이란 사실이 나중에야 알려진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의 결혼생활 이면에는 욕망이 충돌하고 억압과 남들 시선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다시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문제는 남편이 올 킬에 브이아이피 고객 가입과 프리미엄 서비스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의 의미를 아는 광남은 공포에 짓눌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처음 결벽증 환자의 고군분투 정도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감춰진 공포와 환각으로 이어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3부에서 광남의 아들 배식이 나타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작가는 반복되는 상황의 변주를 통해 바퀴벌레와의 대결을 그려낸다. 안 대리가 바퀴벌레를 두고 하는 말도 상황에 따라 바뀐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생겨도 금방 번식하고 쉽게 죽지 않으니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는 논리였다면 나중에는 그냥 참고 살라고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에 잠식된 정신은 이것을 거부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역겨울 정도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왠지 모르게 귓속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이즌 아티스트
조너선 무어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면서 처음에는 최근에 읽었던 한 작품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마지막에 도달할 즈음에는 오래전에 읽었던 한 작품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제목들을 말하면 그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여기서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작품들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마무리는 다르다. 주인공의 직업이나 공간적 배경도 다른데 이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왠지 모르게 몇몇 부분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내 몸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이야기만 만들어내는 분위기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케일럽이 여자친구 브리짓과 싸운 후 술은 마시며 돌아다니는 장면과 그를 매혹시킨 한 여성의 등장은 모호하게 다가왔다. 화가인 브리짓과 케일럽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가진 듯한 이 둘이 싸우고, 상처 입힌 후 밤을 돌아다니게 된 이유가 나중에 나오지만 이 때문에 이 상황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매혹적인 여성의 흔적을 뒤쫓고, 그녀가 권한 술 압생트가 등장할 때 미로 속 상황은 더 모호하게 다가왔다. 한때 예술가들이 사랑했지만 문제가 많았던 술이 아닌가.

 

케일럽의 방황 속에 친구 헨리가 찾아온다. 그는 법의학자다. 의문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이 시체가 의문의 독에 중독된 후 오랫동안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일럽은 샌프란스시코의 UCSF 메디컬 센터에서 독성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지원금을 받으려는 연구는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의 연구소는 독 등에 대한 최고의 분석 기계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헨리가 그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의학센터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했기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체가 계속 발견된다.

 

브리짓과 싸운 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에멀린에게 매혹된다. 그녀가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짧은 만남을 가진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에멀린을 손으로 그려서 그녀가 나타날 것 같은 바에 연락처와 함께 남겼기 때문이다. 에멀린에게 빠진 그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출근이 불안정하고 그에게 온 메일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그녀가 연락해서 요리를 해달라고 하고, 요리 재료를 손보고, 그녀에게 이끌려 집밖 어딘가로 간다. 오래된 건물 속에서 그녀에게 요리를 해준다. 행복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이후 만남도 비현실적으로 흘러간다.

 

이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그를 찾아온다. 특히 캐넌 형사는 왠지 모르게 그를 의심하고 계속 뒤좇는다. 그의 알리바이를 묻고,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의 연구소의 프로그램은 누가 만든 것인지 등도 묻는다. 그가 연구하는 주제만 놓고 보면 그의 연구소 누군가가 이런 사건을 저질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광기의 과학자들은 언제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독성학 연구소의 소장이다. 그가 가진 약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비롭고 매혹적인 여성 에멀린이 있지 않은가. 그녀라면 가능하다. 작가는 이 상황을 일반적인 스릴러로 풀어내지 않는다. 내가 처음 말한 두 작품이 떠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앞부분에 한 남자를 찾는 전단지를 등장시키고, 마지막에 또 이와 비슷한 전단지를 등장시켜 두 사건을 엮는다. 처음 실종된 남자가 나중에 중독된 상태에서 고문당한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떠올리면 이 살인자가 어떻게 시체를 처리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케일럽의 과거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그녀의 정체를 밝히면 될 텐데 남자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려고 한다. 당연히 사건은 더 꼬인다. 물론 이것도 뒤로 가면 밝혀지지만 사실들이 충돌하면서 경계가 모호해진다. 예상한 반전이다. 만약 비슷한 반전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다른 재미를 누렸을 것 같은 작은 아쉬움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