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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작가는 2021년 CWA 대거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책은 이 책이 현재는 유일하다. 출간 이력이 상당히 흥미롭다. 2009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영국은 그 이후다. 프랑스 등에서도 이미 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루이스 섬’ 3부작 중 첫 권이다. 개인적 바람은 나머지 두 권이 출간되는 것인데 내가 기대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이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기대할 수 없다. 루이스 섬을 지도에서 보면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다. 작은 섬도 아니다. 작가가 그려낸 섬의 풍경은 황량하지만 매력적이고, 아주 낯설다. 읽는 내내 왠지 모르는 강한 바람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18년 전 섬을 떠난 형사 핀 매클라우드다. 그는 현재 아이가 죽은 것 때문에 휴직 중이다. 그의 상사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하면서 그가 조사하던 수사와 비슷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루이스 섬으로 출장을 보낸다. 그가 집을 떠나기 전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만약 섬으로 간다면 다시는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그는 고향 섬으로 간다. 이후 펼쳐지는 서늘하고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이 부부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주 잠깐 아내를 떠올리고, 아이가 죽게 된 사건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생략된 채 끝까지 간다. 이후 시리즈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부부의 삶이 나올지 의문이다.
섬에서 죽은 이는 에인절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핀의 어린 시절 많은 아이들을 괴롭힌 악동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많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닌 모양이다. 그는 아주 참혹하게 죽었고, 이 시체는 섬의 연인들이 발견했다. 경찰의 정보기술시스템 홈즈가 게일어를 할 줄 아는 형사 핀을 선택했다. 그가 이 섬에 온 것은 프로그램의 선택이다. 섬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그가 떠난 후 잊고자 했던 과거들이다. 섬의 경찰서장은 그를 반기지 않는다. 그가 이 섬에서 할 일은 이 사건이 그가 이전에 수사하던 살인사건과 같은 인물이 저지른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맞다면 연쇄살인이다. 시체 부검을 위해 다른 법의학자가 불려오고, 유력한 용의자들을 만나야 한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과거는 학교에 처음 들어간 날부터 시작한다. 영어를 몰랐던 그때 그에게 다가온 마샬리, 천식을 앓던 아슈타르 등이 그의 친구가 된다. 스코틀랜드 섬에서 살기에 영어를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학교에서는 공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는 영어를 배운다. 그리고 아슈타르의 아버지 도움을 받아 학업 성적이 좋아진다. 대학을 가야만 섬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더 쉽게 생긴다. 학창 시절 좌충우돌하는 약간은 평범한 일상이 처음에는 나온다. 하지만 그가 자라면서 그가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하나씩 생긴다. 작가는 이 어둠을 마지막까지 꼭꼭 숨겨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둠에 크게 한방 맞는다.
어린 시절 그와 친구들을 괴롭혔던 에인절.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결코 좋지 않다. 그를 죽일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1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서로 변한 친구들을 만난다. 이 만남은 그를 잠시 과거로 데리고 간다. 누가 에인절을 죽였을까? 그가 이전 살인도 저지른 것일까? 연쇄살인일까? 모방살인일까? 이런 의문들이 깔린 채 현실의 수사는 천천히 진행된다. 핀이 변한만큼 친구들도 변했다. 세월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핀처럼 섬을 떠나지 않은 친구들은 그 섬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그 삶의 모습들은 결코 풍족하지 않다. 제1용의자인 환경론자는 에인절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폭행을 본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이유도 나중에 밝혀지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다.
춥고 어둡고 묵직하다. 앞부분에 조금 분위기와 섬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이야기 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엮이고, 꼬인 관계와 생각도 못한 새로운 관계 때문이다. 바닷새를 사냥하는 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섬에만 머문다. 그 잔혹한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거짓과 위선, 사랑과 욕망, 보이는 삶과 숨겨진 삶 등이 하나씩 기억 위로 떠오르면서 그가 섬을 떠난 이유를 밝힌다. 그리고 그를 불러온 살인사건이 있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닷새를 사냥하는 섬에 있다. 진실을 묻어두어야 하는 곳. 잔혹한 학살이 있는 곳. 생존을 위한 사냥이 전통이 된 곳. 일 년에 한 번 그 섬에 머물면서 학살하는 장면은 잔혹하다. 하지만 그 맛에는 입맛을 다신다. 모순된 감정들. 책 마지막 문장을 읽고 이 기억이 완전히 퇴색하기 전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느낀다.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