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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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6월 16일, 서로 관련 없던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한 가족이 찰스턴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성 유다 고아원 정문 앞으로 두 명의 고아가 도착하고, 러틀레지-배닛 저택에서 마약단속이 있은 것이다. 열여덟 살인 화자 레오 킹 인생에서 이 날처럼 의미 있는 날은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날 그는 평생을 같이 할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변화를 이루게 된다.

레오, 그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두 살 많았고, 아름다웠고, 뛰어난 운동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보호해주던 형 스티브가 열 살 때 자살을 했다. 이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퇴원 후 학교 스타의 부탁을 들어준 덕분에 마약 소지죄로 잡혔고, 3년간 보호관찰을 받았다. 이 시기가 우울하고 힘들어야 했겠지만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새벽이면 신문 배달을 하고, 봉사 명령에 따라 캐논 씨를 돌봐야 했다. 이 힘든 일을 통해 사회를 보게 되고,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그 날의 만남을 통해 한층 발전하고 도약한다.

그의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아름다운 쌍둥이 시바와 트레버, 산골소년과 소녀로 불리는 성 유다 고아원의 두 남매 나일즈와 스텔라, 레오처럼 마약 소지죄로 퇴학 당한 후 전학 온 찰스턴 귀족들 채드와 몰리,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에 의해 흑인 학교에서 전학온 아이크와 베티가 그들이다. 이들은 레오의 삶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평생 우정을 간직한 친구들이다. 이 책은 바로 레오의 삶과 이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두 가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그 미스터리는 스티브 형이 왜 자살을 했느냐 하는 것과 옆집에 이사 온 쌍둥이를 평생 괴롭혀 온 아버지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만약 작가가 이 두 사건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아마도 멋진 스릴러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집중함으로서 깊은 감동과 강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비록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이 엄청나게 놀랍고, 추악하고, 잔인하고, 충격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1969년 6월 16일은 블룸스데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 날이자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레오의 어머니는 뛰어난 조이스 연구자이자 마니아다. 레오란 이름도 그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지엽적인 사실을 뒤로 하고, 이 날 레오가 만난 친구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강한 유대를 가지면서 연결되어 있다. 젊은 날의 그들은 충돌하고, 화해하고, 우정을 쌓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성장하고, 살아간다.

소설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이 바로 그들의 만남과 충돌과 성장을 다룬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흑백이 한 학교에 다니면서 생기는 문제와 각각 가슴 속에 아픔을 묻고 살던 사람들이 레오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두 번째는 이제는 세계적인 여배우로 변한 시바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여신으로 군림하지만 아직도 학창시절 친구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찾아 온 것은 그녀의 쌍둥이 오빠 트레버를 찾기 위해서다. 그는 게이고,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에이즈 중독자다. 과거 속에서 현재로 시제는 바뀌고, 시대의 변화를 통해 각자의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 세 번째는 친구들이 그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간다. 이 과정에서 시바 남매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고, 그 시대 최악의 상황과 만난다. 에이즈로 인한 위험과 참혹함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 소년이 죽은 후 그의 부모들이 보여준 반응을 통해 부모의 사랑과 허세가 강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힘겹게 그를 찾는다. 

네 번째 부분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순간들이 나오고, 우정은 점점 자라나고, 가끔 충돌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평생 사랑할 반려자를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젊은 열기가 읽는 동안 전해지고, 그들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실 하나와 죽음 하나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트레버를 데리고 찰스턴으로 온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사실 그냥 읽기가 힘들다. 비극과 참혹함과 놀람과 추악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정과 사랑과 용기도 함께 있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한 평에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사우스 브로드가 어디 붙어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상상력을 통해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모습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태풍으로 반쯤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력과 용기와 열정은 그 길을 걷고 싶게 만든다. 이 긴 소설에서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시에 가장 강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평생 유머와 위트로 대화를 이어갔고, 신문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은 그를 정확하게 아는 순간이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지 않는 한, 배우는 ‘진짜 삶’을 경험할 수 없다.”(2권 446쪽)는 문장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멋진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을 덮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우스 브로드의 풍경과 레오와 그의 친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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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살인마 밀리언셀러 클럽 103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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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어설픈 느낌이 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루 포드의 행동에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을 연상한 것이고, 다른 이유는 현대 스릴러 문법에 익숙한 탓이다. 영화 속에서 그 악당이 보여준 치밀한 준비와 실행은 얼마나 섬뜩했던가. 이에 비해 루가 보여주는 행동은 CSI에 익숙해진 나에게 허점투성이로 보인다. 물론 현대 작품이라 하여도 더 어설프고 허술한 경우가 많다. 

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노볼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처음 의도한 것을 넘어서 점점 커져가는 살인행위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만난 루의 모습은 친절하고 예절바르고 잘 생긴 남자다. 부 보안관으로 마을에서 신뢰를 얻고 있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폭력이 아닌 대화 등으로 그 일을 좋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큰 신망을 얻었던 의사였다. 하지만 이런 외면과 다르게 그에겐 남모를 아픔과 괴로움이 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을 따라가면 어릴 때로 돌아간다. 신망을 받고 있던 아버지의 예상외의 모습과 자신이 저지른 묻혀버린 폭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수면 밑으로 숨어 있었다. 언제 수면 위로 올라올지 몰랐는데 기회가 왔다. 그것은 마을에 들어온 창녀 조이스다. 처음 보안관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마을에서 몰아낼 지 아니면 그대로 둘 지를 결정하기 위해 찾아갔다. 첫 눈에 반한다. 그녀와의 섹스에서 폭력성이 드러난다. 그녀가 이것을 잘 받아준다. 그렇게 그녀에게 빠진다.

그에겐 입양된 형이 한 명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저지른 죄를 형 마이클이 뒤집어썼다. 마이클이 한 공사현장에서 죽었다.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마을 유력자 콘웨이의 살인임을 알고 있다. 이유는 콘웨이의 비리를 밝혀내었기 때문이다. 가슴 한 곳에 이 사실을 묻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복수의 기회가 왔다. 콘웨이의 아들 엘머가 조이스에게 빠진 것이다. 콘웨이가 마을의 해결사 루에게 그녀를 좇아내 달라고 부탁한다. 거액 만 불을 지불하고, 그녀는 떠나고, 엘머는 제자리를 찾는다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는 큰 착각을 했다. 루의 마음속에 있던 살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루가 보여주는 살인 행위는 간결하고 주저함이 없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하나의 상황을 만든다. 그것은 루이스를 때려죽이고, 엘머가 그 도중에 총을 맞아 죽는 것이다. 갑작스런 폭력으로 그녀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고, 그녀를 찾아온 엘머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다시 콘웨이와 그 현장으로 돌아와 처참한 현장을 돌아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만들어졌고,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여자를 죽이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콘웨이는 겨우 목숨만 유지하던 그녀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펼친다.

일이 처음 꼬인 것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은 그가 엘머에게 받은 돈을 무심코 조니에게 주었는데 그 돈에 표시가 되어 있은 것이다. 살인현장에서 사라진 돈을 조니가 사용하다 잡혀온 것이다. 그 돈의 출처를 말하면 루가 살인자임을 알 수 있다. 검사와 보안관은 조니를 잘 알고, 심문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루에게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 대담함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 후로 계속 상황이 꼬이고,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주변 의심은 점점 심해진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 살인자의 심리묘사에 있다. 연인 에이미를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음을 말하고, 한 번 터진 살의가 넘실거리며 주저함도 사라진다. 한 번 꼬인 상황은 점점 루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냉혹함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그 모든 상황을 예측한 그의 대결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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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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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를 어느 순간부터 한 권씩 읽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대부분의 여행서가 정보 전달과 피상적 감상에 빠져 있는 것에 비해 그의 책은 깊은 사색이 돋보인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행서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반면에 그의 책은 읽으면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경험하고, 그 속에서 생각한 것들이 나의 직접 간접 경험과 충동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약간 더딜 뿐이다. 동시에 공부해야 할 것을 던져준다. 그냥 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기엔 나의 머리가 너무 컸다.

이번 아메리카 여행에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모터홈이다. 쉽게 말해 주거 가능한 자동차다. 그는 이것을 서부개척기 포장마차의 현대판으로 생각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음에도 힘들게 이런 도구를 선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 안의 시점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서나 숙박이 가능하다는 편리성 때문이다. 후자는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모터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터홈만의 교통법규와 모터홈 주차장을 대부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착각을 통해 긴 여행을 한 그가 모토홈으로 일주일이라도 미국을 여행해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많은 도움과 신선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60마일쯤 남쪽 바다를 따라 이어진 라구노 비치의 호텔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낯선 곳에서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일주일을 머문 후 한 노부인이 중년의 백인여성과 같이 걸어오다 말을 한다. 이 말을 받아 그가 대답한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같은 날 밤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가 바로 루스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작가를 보고 그녀는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미국 가정 속 일면을 들여다보고, 그녀와 함께 사는 자클린느를 통해 할리우드에서의 삶을 되짚어본다. 

긴 여행을 통해 작가는 미국의 한 가지 특성을 말한다. 그것은 짧은 역사를 가진 다인종 다민족 국가란 것이다. 미국인의 연설에 유머가 들어가는 것과 모두가 알고 있는 우상을 똑같이 부러워하는 감정으로 동경하고 있다는 연대감이 미국이란 국가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이벤트를 본 후 느낀 그의 감상은 고개를 주억이게 한다. 하지만 다시 열광적인 분위기 뒤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미국식 ‘고독한 군중’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여자를 통해 더욱 가슴으로 와 닿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 가장 소중한 양식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7개월간 약 2만 킬로미터 여행이다. 사람이 밀집한 공간도 있지만 로키산맥의 바위투성이나 사막을 만나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그의 사색은 멈추지 않는다. 차로 달리면서 변하는 주변풍경은 풍요에서 불모로, 생명의 합성지대에서 죽음의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느낀 것은 한 단어로 표현된다. 애쉬(ash). 재다. 이것은 다시 달을 다녀온 두 우주인 이야기로 나누어지고, 각각 다른 반응을 묘사하면서 결국 재로 돌아온다.

뉴욕에서 여자를 Man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각한다. 이것을 다민족이라는 환경이 낳은 하나의 소산이라는 인식에 이르는 순간 다시금 그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다민족 다인종 국가란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 앞에 패밀리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과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면서 애완견으로 미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하는데 이 부분도 역시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재미난 에피소드는 역시 맥도날드와 관련이 있다. 일본 발음상 맥도날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 맥도날드임을 생각하면 그 상황들이 묘하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한때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맥노날드고, 이 경험으로 미국 식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면서도 가로젓게 한다. 가슴 짠한 멕시코 소년의 에피소드는 모토홈의 가재도구가 소란을 피우게 만들 정도로 그를 흔들어놓았다. 긴 여행에서 그의 감정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20년 전 여행기지만 그가 경험한 것들과 생각들은 아직도 펄떡펄떡 뛴다. 다민족 다인종이란 현실에서 시작하여 그 눈으로 바라본 미국이지만 결국은 그가 본 것은 미국이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자기 안의 또 다른 뿌리를 그곳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다시 나와 우리의 뿌리와 현실이 그곳에 닿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 여행기라기보다 현대문명에 대한 고찰이란 역자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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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
도시마 이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강호원 해제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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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가까이는 돌반지 등 선물이나 장식용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금값이 개인 생활과 관련을 가지는 것은 바로 돌 반지나 금반지 등을 살 때다. 그 외는 사실 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뉴스에 금값이 올라 온스 당 1천불이 넘었다는 등의 소식이 있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돌 반지 한 돈에 얼마다 하면 아! 많이 올랐네, 하고 금방 이해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금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선배 한 분이 세금을 절약하고, 안전한 투자 목적으로 금괴를 산 주변 사람 이야기를 해줬다. 예전에 비해 금값이 거의 두 배 뛰었는데 농담 삼아 돈 버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엔 결과론적인 상황이 담겨 있다. 금값이 떨어졌으면 아마 다른 자산을 샀다면 더 벌었을 텐데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략한 이야기 속에 금 가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금이 지닌 안정성과 희소성 등이다.  

 

 

 저자는 “황금을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금시장에는 전 세계의 정치․경제의 동향이 응축되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의 조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4쪽)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문제 역시 금시장이 다른 시장보다 앞서서 민감하게 조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4쪽)라고 말한다. 이런 위기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그 원점은 1971년 닉슨이 달러와 금의 고정환율로 고정하는 대신 변동환율 제도로 이행한 때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금을 통화의 자리에서 몰아낸 것이 통화 투기를 낳았고, 그것이 먼 원인이 되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한다. 옵션과 스왑, 인덱스 투자나 증권화 상품 등의 낯선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현재 말해지고 있다.  

 

 모두 6장으로 나누어 황금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금 가격이 상승하게 된 배경을 미국발 금융위기와 금시장과의 관계나 금본위제의 안전성 등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2천년 역사를 가진 통화로서 금의 가치를 주목하고, 금시장을 뒤흔드는 금 메이저와 투기 자금의 실태를 보여준다. 간략하게 일본에서의 금 거래를 설명한 후 금시장을 움직이는 나라들을 설명한다. 현물거래 중심지인 런던, 100년 이상 금 생산량 1위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장 많이 금을 소비하는 인도, 이제 세계최대 금 생산국이자 2위의 소비국인 중국, 금리를 낳지 않는 금을 장점으로 생각하는 중동국가 등으로 옮겨간다. 마지막 장에선 앞으로 벌어질 금시장을 변수들을 되짚어본다.  

 

 황금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실을 담고 있다. 금을 통해 세계경제의 한 면을 보게 된다. 유사 이래 채굴된 금의 양이 약 16만 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나 IMF 외환위기에 우리가 판 금의 양이 200톤이란 정보는 금의 희소성과 가치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딜러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사고 뉴스로 판다’는 상투적인 수단은 유사시 금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것은 유사시에 금을 팔아 급한 상황을 넘기라는 뜻인데 한국과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금을 팔아 경제위기를 넘긴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현재 각국의 금 보유량과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게 되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이 보유한 금 보유량은 2008년 9월 현재 8,134톤이고, 외환보유액 비중은 78.2%다. 이에 반해 중국은 600톤에 1%다. 이런 불균형은 미국과 중국이 공생관계를 앞으로도 어느 기간 동안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후 중국은 금 보유량을 계속 늘이고 있다. 중국은 현재 위안화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시간에 이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중국을 예측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전체적으로 금을 통해 세계 경제를 풀어본 책이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통계 수치와 금 보유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금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알려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장식물이나 예물로서 황금을 바라본다. 원화나 달러나 위안화 등이 단순히 각국이 써준 차용증임을 생각할 때 실물자산이자 궁극의 통화인 금의 존재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역시 경제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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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를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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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은 무섭다. 자신도 모르게 생활 속에 그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귀여운 여인 이자벨이 한 남자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직업병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이 사립수사관이 아니었고, 그녀가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이번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건은 바로 옆집 남자이자 그녀의 열한 번째 남자 친구인 존 브라운을 뒷조사하는 일이다. 멋진 외모에 예절까지 갖추었지만 조금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았고, 조사를 넘어선 집착으로 발전하여 체포까지 된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녀가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로 시작한다.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라니 조금 이상하다. 이런 애매한 표현을 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금 이상한 그녀 가족과 생활 속에 존 브라운이 나타나면서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펼쳐진다. 하지만 존 브라운을 둘러싼 의문보다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 그녀의 동생 레이와 경찰 헨리의 이상한 관계, 어머니의 늦은 밤 외출,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변화,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결혼한 오빠의 갑작스런 우울과 변화 등이 재미있고 유쾌하며 즐겁게 펼쳐진다.  

 

 전작 <네 가족을 믿지 말라>를 보지 않아 앞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만 높아졌다. 이렇게 만든 첫 째 공신은 역시 이자벨이다. 그녀의 좌충우돌하는 활약을 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전 남자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우울해 하고, 여동생 레이 때문에 고생하는 헨리를 방문하여 습관처럼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녹음한다. 이런 것들을 시간 순으로 하나의 파일처럼 엮어서 소설을 만들었는데 한 편의 영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존 브라운에 대한 집착은 핵심 줄거리인데 무섭거나 집요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코믹하다. 몰래 들어가려는 이자벨과 꼭꼭 숨기려는 존 브라운의 대결은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고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역시 이 이상한 가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을 읽었다면 적응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나니 엽기적이다. 직업병으로만 이 모든 사항을 치부하기엔 너무 치밀하고 때로는 유치하다. 이자벨이 의문을 가진 것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일반적인 가족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일들이다. 바로 이 점이 이 가족의 이야기에 빠져 웃고 즐기게 하는 매력이기는 하다. 그리고 부록의 전 남자친구 리스트에 나오는 헤어질 때 한 말들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추론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것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집안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찰 헨리는 정말 대단하다. 운전교습 중 자신을 친 레이를 결코 좇아내지 못하고, 이제는 집을 잃은 이자벨 마저 자신의 집에 살게 한다. 이런 보면서 앞으로 펼쳐질지  모를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한다. 그리고 왜 레이가 그렇게 헨리에게 집착하는 지 살짝 의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싫어하면서도 받아주는 헨리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도 역시 궁금하다. 이것은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는 내내 웃게 되고, 기발한 착상과 유머 있는 대사에 킥킥거린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자벨의 집착이 만들어내는 상황들과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유쾌한 탐정극이자 상황극이다. 존 브라운의 비밀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면서 미스터리는 약해진다. 하지만 정말 멋진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이 다음에 벌어질 사고나 사건을 기대하게 만든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이 가족을 보면서 입가에 계속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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