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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네 명의 여고생이 보여주는 대소동은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각자 강한 개성이 있고, 톡톡 튀는 대사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최근에 청소년 문학을 가끔 읽는데 생각하지 못한 재미가 있다.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살아나고,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힘겨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너무 무거워 삶에 짓눌린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젊은 혈기를 간직하고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들을 볼 때면 가슴 속으로 응원하곤 한다. 이 소설도 바로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즐겁고 유쾌하다.
소설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아이는 고은비다. 이름만 보면 작고 귀엽고 예쁜 아이일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런 선입견이 고은비를 힘들게 한다. 어린 시절 아역 탤런트를 할 정도의 재능과 외모를 가졌지만 갑자기 불러나기 시작한 몸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오디션을 보러가서 이름과 다르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1, 그 아름다워야 할 시간에 그녀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연기에 대한 꿈은 흔들린다.
고은비의 별명은 고릴라다. 릴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친한 친구들만 부르는 별명이다. 그녀에겐 좋은 친구들이 있다. 꽃미남을 엄청 밝히는 지형이와 초딩처럼 작지만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소울이와 약간 부족한 지성을 가졌지만 엄청난 미모를 가진 혜지가 그들이다. 지형이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꽃미남에 둘러싸여 생활을 꿈꾸고, 소울이는 좀더 큰 키를 바란다. 혜지는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부모가 협박에 전전긍긍한다. 어느 나이가 고민이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이들에게 활기와 자신의 꿈을 불어넣어서 이야기 전체를 쾌활하게 만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이들의 관계설정과 은비의 꿈을 부각시킨다. 배우가 되고 싶지만 식탐과 그로 인해 불어나는 몸 때문에 고민하는 그녀를 둘러싼 관계를 보여준다. 각자의 목적이 맞아 혜지의 집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꿈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와중에 은비가 연극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이젠 은비가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수학에 재능이 있는 은비의 학업성적이 좋아 상위 10%만 들어간다는 모란반이다. 이 반은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니 은비가 연극 연습이나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은비의 엄마는 딸이 의사가 되기 원한다. 그녀의 오빠도 부산에 있는 의과대학에 합격을 했다. 엄마의 희망사항은 아이에겐 커다란 짐이다. 분명한 미래 희망을 가진 은비에겐 더할 수 없는 부담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녀를 연기학원에 보내고, 방송에 출연시켰던 사람이 엄마였다. 연기에 대한 꿈이 가득하지만 변한 외모 때문에 엄마는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의사가 되길 바란다. 여기엔 옆집 아줌마들의 대화 속에서 늘 등장하는 엄친아들이 있다. 이런 비교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지 못하는 그녀는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고생들의 모습일 것이다.
은비가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자 그 학교 부모라면 누구나 바랄 모란반이 장애가 된다. 이때부터 이 소녀들은 모란반을 없애려고 한다. 그 중심엔 땅꼬마 소울이 있다. 물론 이들의 작전이 쉽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과 노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고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에 닌자 가면을 쓰고 옥상에서 벌이는 시위는 그들이 펼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런데 가면까지 썼는데 너무 쉽게 밝혀진다. 이때부터 가면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현실과 부딪힌다. 그들의 주장이나 요구가 먼 훗날 하나의 추억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들의 엉뚱하고 수상하고 발칙한 대소동이 지금 이 순간에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은비야, 지형아, 소울야, 혜지야! 반갑고 즐겁다. 나는 너희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