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학대하라
조이 고블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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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550쪽이 넘는다. 처음 책을 쥐었을 때 언제 다 읽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 빈의 젊은 비평가들이 뽑은 청소년소설 상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비평가들이 준 상을 받은 소설들이 빠르게 읽히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힘든 책읽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은 몇 쪽을 넘기지 않아서 날아가 버렸다. 할런이 빈센트에게 쓴 편지를 지나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고 베로니카로 넘어가는 순간 빠져버렸다. 너무 속도가 나서 오히려 잠시 숨을 길게 돌려야 할 정도였다.  

 

 제목에서 알려 주듯이 이 소설은 한 천재 예술가 빈센트를 학대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 문화 예술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할런이 그 중심에서 독설을 퍼붓고, 빈센트는 그 타락한 세상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성장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빈센트 작품의 질과 창의성이 떨어지면 할런으로 대표되는 뉴르네상스의 학대가 시작된다. 이런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확실히 성장하고 질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럼 왜 이런 학대가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엄청난 미디어그룹인 IUI-글로브터너의 회장인 리포비츠가 가진 말년의 바람 때문이다. 그가 수십여 년에 걸쳐 탐욕스럽고 사악한 비즈니스로 돈을 벌면서 이룬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상업에서 예술로 전복시키고자 새로운 기획을 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뉴르네상스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의 이름이 된다. 자신들의 수많은 계열사를 통해 예술을 부흥시킬 영재 모집 광고를 내보내고, 이 영재를 가르칠 학교를 설립한다. 이때 빈센트가 회사가 내놓은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세상이 틀렸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였다. 이 답으로 합격하고 빈센트의 인생은 예술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길들여지고 가꾸어지고 학대받게 된다.  

 

 좋은 예술 작품을 내놓기 위해 뉴르네상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예술가를 학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택된 매니저가 술 때문에 퇴학당했지만 독설을 마구 내품는 할런이다. 그의 학창시절과 청소년기의 경험은 앞으로 펼쳐질 빈센트 학대의 도구가 된다. 빈센트가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경험하고,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그의 경험은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 되어 기쁨과 사랑과 우정을 찌르고, 채찍이 되어 빈센트를 학대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 속에 빈센트는 성장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하면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작품의 질은 더욱 좋아진다.   

 

 예술의 질을 위해 펼치는 학대의 기법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에는 가장 좋아했던 강아지에게 약을 먹여 죽이고, 살 곳을 없애기 위해 집을 불 지르고, 첫 사랑은 돈으로 매수하여 쫓아내고, 친구는 또 다른 사랑으로 떨어트리고, 또 다시 다가온 사랑은 술에 취하게 만들어 떠나가게 만든다. 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빈센트의 정신을 학대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빈센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인물은 바로 할런이다. 우습게도 그를 그런 상태로 몰고 간 주범인데 늘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기에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이다. 진짜 아버지를 모르는 불행한 가정사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빈센트를 학대한 결과물들은 좋은 성과를 이룬다. 음악을 만들면 일등을 하고, 드라마로 제작하면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다. 얼굴도 이름도 없던 그가 주류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게 만들지 않는다. 그가 전면에서 나서 부각되면 얻게 될 쾌락과 풍요로움과 사랑은 곧 예술가의 타락과 작품의 질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뒤로 가면서 윤리적인 문제와 상업적인 목적이 충돌하게 만들고, 예정된 결말로 나아가게 한다.   

 

 소설은 묻는다. 과연 한 천재 소년의 삶을 학대해서 수많은 소비자가 받게 될 예술적 가치가 과연 정당한가, 하고 말이다. 물론 직접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또 대부분의 좋은 음악이나 영화를 요즘이 아닌 1990년대 이전의 것으로 한정해서 표현한 부분에선 예술 그 자체가 아닌 비주얼과 상업적 목적에 의해 흘러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촌철살인같이 날카로운 시선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의 후기에서 이 책을 정말 소용이 될 독자는 이 책을 볼 일이 절대 없을 것이란 소견에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그 사람을 나타낸다. 그것은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티브이쇼, 영화 등이다. 작가는 데드 밀크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펀치 드렁크 러브다. 아쉽게도 내가 경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고,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들을 주는 책 속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의 하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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