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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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자.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살아 있는 천재’란 수식어도 있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모두 읽지 않지만 이 문학상 수상자들은 언제나 관심이 가지고 있다. 거기에 두께마저 그렇게 두툼하지 않으니 단숨에 읽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읽으면서 순식간에 깨어졌고, 나의 노안을 의심하는 표기에 ‘뭐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은 이 책에 마침표가 없다는 것이다. 쉼표가 마침표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문단의 마지막 방점을 결코 찍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선 이름과 지명과 이런 표기 때문에 살짝 곤혹스러운 대목도 있었지만 읽다보니 적응하게 되었다.

 

몰랐던 사실 중 하나는 이 작가가 극작가로 더 유명하다는 것이다. 베케트와 입센에 비견되는 현대 극작가라고 한다. 희곡을 잘 모르니 이 부분은 지나갈 수밖에 없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뭔 소린지 몰라 얼마나 어려워했던가. 그리고 그의 연작 소설 제목이 <3부작>인 것은 특이한 부분이다. 최근 발표한 연작 중편 세 편을 모아 내었는데 이 책이 2015년 북유럽 문학 최고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솔직히 첫 번째, 두 번째 중편을 읽을 때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중편을 읽으면서 조금씩 공감하게 되었다. 아마 표기법이나 문장 등에 익숙해진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 편의 중편은 이어진다. 첫 중편 <잠 못 드는 사람들>은 어린 두 연인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도시 벼리빈으로 와서 잘 방을 찾아다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가는 두 남녀의 이름은 알려주지만 나이는 표시하지 않는다. 내가 놓쳤나? 사실 이 소설들에서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는다.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는 인물도 그렇게 많지 않다. 두 연인 아슬레와 알리다와 그 가족들을 빼면 하나의 이야기에 겨우 한 두 명 정도만 이름이 붙는다. 이 익명성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름이 가진 의미와 무게를 떠올리면, 화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자면 이런 설정도 상당히 좋게 다가온다.

 

아슬레는 바이올린 연주자고, 알리다는 임신부다. 낯선 도시의 거를 배회하면서 잘 방을 구하지만 누가 흔쾌히 이 낯선 이방인을 집안으로 들이겠는가. 방황하는 이 연인들이 어떻게 만났고, 왜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조용히 알려준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시대도 상황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 둘의 불쌍한 방황을 봐야 한다. 쉽게 몰입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정보가 부족하다. 낯선 문장은 또 어떤가. 경찰을 만나 여인숙이 모여 있는 곳 소개를 받지만 그들에겐 낯설 뿐이다. 모호함 속에 갇힌 책 첫 이야기를 읽었는데 나중에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올라브의 꿈>에서 올라브는 바로 아슬레다. 아슬레와 알리다는 이름을 바꾼다. 올라브와 오스타다. 올라브는 알리다의 결혼 반지를 사기 위해 분신 같은 바이올린을 판다. 이 돈으로 반지를 사러 가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다. 길을 가는 그를 보고 아슬레라고 부르고 아는 척하는 노인이 나온다. 이 노인은 아슬레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술 한 잔에 모든 것을 잊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다 술집에서 한 남자가 연인을 위해 산 팔찌를 본다. 처음에는 이 팔찌를 보고 살인하는 올라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상점에 가서 이 팔찌를 산다. 그리고 전편에 등장한 어린 창녀가 그를 유혹한다. 연극처럼 창녀의 엄마와 아빠가 등장하고 파국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3부인 <해질 무렵>은 익숙해진 문장과 높아진 집중력으로 더 몰입했다. 알리다가 재혼해서 낳은 딸이 먼저 등장하고, 그녀가 본 죽은 엄마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딸도 할머니가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는 어떻게 알리다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는지, 그 만남 속에 아슬레의 영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알리다가 아슬레의 떠남이 영원할 것임을 알게 된 순간처럼 아슬레는 그녀 곁에 머문다. 어린 시그발의 후손들 중에 욘이란 이름이 있는 것은 왠지 작가를 떠올린다. 삶은 현실이고, 그녀의 삶은 과거와 이어진 채 현재화된다.

 

읽으면서 느낀 것보다 다 읽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더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올라브가 술 한 잔을 샀다면 교수형을 면했을까 하는 질문에 처음에는 왜 술은 사지 않았지란 단순한 답이였다면 이제는 술 한 잔이 그의 과거를 인정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너무 많이 생각한 것일까? 간결하지만 마침표 없는 문장은 익숙한 사람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은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연극 같은 연출은 상황을 다른 모습으로 보게 한다. 언젠가 다시 읽고 놓친 부분들을 찾아봐야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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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hortree85 2023-10-0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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