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여름방학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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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초등학생이 나에게 와서 ‘아빠’하고 외친다면 어떨까? 아마 엄청나게 당황하고, 허둥지둥할 것이다. 그리고 냉정을 찾은 다음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연구소로 달려가지 않을까? 검사 결과 나의 아이가 맞다면 어떤 느낌일까? 농담 삼아 다 자란 아이가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나 이 소설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엄청 복잡하고 곤란하고 어려우면서 가슴 한 곳에 고마움이 자리 잡을 것 같다.  

 

 호스트 야마토에게 한 소년이 찾아온다. 첫 말이 “아버지, 처음 뵙겠습니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아이의 엄마 이름을 듣는 순간 사실임을 직감한다. 이렇게 만난 부자는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호스트인 야마토는 전혀 호스트답지 않다. 고객에게 웃음과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줘야하는데 오히려 진실을 까발리고 손찌검까지 한다. 당장 모가지다. 바른 말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장 취미가 있는 사장 재니스의 소개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택배기사다.  

 

 허니비 택배. 이곳이 그가 앞으로 일한 직장이다. 묘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첫 날 지역을 한 번 돌고 나서 힘들어 하지만 전직 폭주족이었던 그는 차를 잘 몰 자신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그에게 배정된 것은 리어카다. 경량으로 새롭게 개조되었지만 분명히 리어카다. 지역밀착형 소형 택배사고, 배송차들의 불법주차 문제가 있다지만 놀라운 발상이다. 그런데 작가 후기를 보면 실제 일본에 이런 택배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그는 물건을 배달하면서 지역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택배 현장의 모습은 약간의 마찰이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전직 호스트의 습관과 노력으로 점점 좋아진다. 힘들지만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은 늘 택배사고를 불만스럽게 말하는 우리 현실을 보면 비교된다. 물론 우리의 현장 환경이 더 열악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가끔 정말 좋은 택배기사를 만나면 고맙고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 이 소설 속 상황은 작가가 한 부분을 강하게 미화한 점이 있기는 하다. 

 택배기사만 따뜻하고 훈훈한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이 그렇다. 호스트 유키야나 손님 나나나 사장 재니스나 직장 동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지만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렇다. 그중에서도 아들 스스무 군은 발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 없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척척 잘도 한다. 요리도, 청소도, 숙제도 모두 자신이 알아서 한다. 이 아이를 보면 나라도 어디서 이런 자식이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스스무 군의 여름방학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을 다룬다. 잔잔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다. 좋은 사람들의 일상과 두 부자의 관계 만들기는 빠르게 읽히면서 마음에 전혀 걸리는 것이 없다. 이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현실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단점이 읽는 동안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겨울 방학 이야기가 기다려질 뿐이다. 앞으로 이 부자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등장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티격태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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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클럽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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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직접 뽑은 자신의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유일한 단편집이다. 13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고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을 선보인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과 직관력은 그녀가 등장하는 소설을 볼 때마다 놀란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과 트릭이지만 책을 읽다 몰입하는 순간 잠시 가공과 현실의 경계를 잊게 된다. 이 부분이 우리가 추리를 읽고 소설 속 탐정들에게 매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3개의 사건 속에서 많은 수의 답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가 탁월한 추리력이나 관찰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어왔고 애거서 여사의 작품도 여럿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기를 보니 이 중 몇 편은 장편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니 어딘가에서 책이나 영화 등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앞의 몇 편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이전에 읽은 책이 아닌가 의심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둔한 기억력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편 한편이 보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푸른 제라륨’과 ‘크리스마스의 비극’과 ‘방갈로에서 생긴 일’이 마음에 들었다. ‘푸른 제라륨’이 마음에 든 것은 트릭 자체가 기발한 것도 있지만 인간이 가진 미신에 대한 공포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비극’의 경우 범죄가 발생할 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하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두뇌대결과 트릭이 재미있었다. ‘방갈로에서 생긴 일’은 무시무시한 살인이 아니라 범죄 계획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해설에서 ‘피 묻은 포도’는 ‘백주의 악마’로, ‘친구’는 ‘예고 살인’이라는 장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친구’의 경우 왠지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떠올려 주었고, 다른 작품들도 여기저기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가지게 한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연 이 13편의 단편 추리소설이 과연 추리소설사에 걸작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몇 편에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재미도 있지만 애거서 여사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단서 불충분과 직관에 의한 해결이 나에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추리를 추천하라고 하면 많은 책들 중 이 한편도 추천하고 싶다. 어린 시절 내가 애거서의 책과 셜록 홈즈의 책 등으로 추리에 재미를 붙인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애거서의 책을 짬짬이 읽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작가인 것은 틀림없다. 가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그 영향력을 보고 생각할 때마다 위대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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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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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힘들게 읽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바깥 세계와 내면 세계를 동시에 반영하기 위해 일반적인 문법과 서술규칙을 모조리 무시한다. 네 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일인칭과 삼인칭이 왔다 갔다 한다. 서술과 독백과 대화가 과거와 현재 시제와 뒤섞여 있다. 대단한 집중력과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그 재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사라마구와 마르케스의 칭찬을 제대로 누리기가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아구스티나다. 그녀의 남편 아길라르나 과거의 연인 미다스나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는 별개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와 직접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제목처럼 광기를 보여주는 개인은 아구스티나이고, 사회의 광기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미다스다. 이 둘을 통해 내면의 황폐화된 모습과 시대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아구스티나의 집은 부자다. 그녀는 물질적 결핍을 모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녀의 늦은 귀가와 남자 친구에 대한 아버지의 근심과 걱정은 막내인 비치에게 옮겨가면 폭력으로 발전한다. 아들이 보여주는 여성 같은 행동과 말투가 그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아버지와 소피 이모 사이의 불륜을 알고도 덮어둔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 가족이 보여주는 연극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광기에 휩싸이고, 폭발하는 장면들이 그 연원을 올라가면 이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이야기 속에서는 가족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길라르는 대학교수였다. 아내를 위해 교수직을 포기하고, 사료 배달을 한다. 물론 교수직을 포기하기 전 학교가 잠시 문은 닫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를 돌볼 시간을 더 갖기엔 사료 배달이 더 좋다. 아갈라르는 그녀의 광기를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낸다. 사랑으로 가득한 그는 이 속에서 아구스티나 가족의 역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했고,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전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느낀 편안함과 이 편안함에 취해 있을 때 나타난 아구스티나의 관심이다. 이 관심으로 사랑이 충만하고, 그녀의 광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 세탁을 하는 미다스는 부패와 폭력과 마약 거래와 살인 등의 사회적 현실을 말한다. 가난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아구스티나의 오빠 호아코를 만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는 돈의 위력을 알고, 호아코의 행동과 말을 흉내 낸다. 성장한 후 부자들과 마약상들의 돈을 세탁하고, 자신도 부를 쌓아간다. 나름대로 부를 이루고, 멋진 여자를 거느리지만 그가 가진 것은 아직 약한 기반위에 세운 모래성과 같다. 그 모래성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녀의 광기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면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독일 이민자에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의 현재와 과거를 보면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개인적, 사회적 문제만이 아닌 유전적 요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의 누나 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듣는 순간 그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이 그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역자는 원작의 문장이 주는 난해함을 어느 정도 읽기 쉽게 풀어내었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다. 절반 정도를 읽으면서 그 문장과 시제와 인칭 때문에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집중력은 약해졌다. 그런데 절반을 넘어 끝으로 가면서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도가 붙고 힘겨웠던 문장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재미도 있었다. 비록 거장들이 누린 재미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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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북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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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아주 큰 것에서 조그마한 것까지. 그 비밀을 숨기고 싶은 마음과 남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기곤 한다. 이해 당사자들에겐 숨기고 쉽고, 그 일과 전혀 관계없고 그 비밀로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 경우는 말하고 싶어 한다. 후자의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짐을 덜기 위해서다. 블랙북은 러들로가 마음의 짐인 비밀을 받아 적은 것이다. 그 비밀들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참으로 희안하다.  

 처음은 작가의 창작이 아닌 블랙북과 러들로 피치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그것을 편집해서 출간한 것으로 포장한다. 누구나 소설임을 알고 있다. 그런 후 본격적으로 러들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장면은 러들로가 악명 높은 돌팔이 의사 앞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그의 부모가 아이의 이빨을 의사에게 팔러 온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묶여 있지 않던 발로 아빠의 배를 힘껏 찬 후 달아난다. 상대들이 좇아온다. 그러다 한 마차를 타게 된다. 마차 주인은 제레미아 래체트고, 그가 사는 곳은 파구스 파르부스다. 우연히 탄 마차로 도착한 곳이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된다.  

 

 러들로는 소매치기다. 부모에 의해 소매치기로 키워졌다. 하루 동안 돈을 훔쳐 가져다주지 않으면 매가 날아온다. 부모는 그 돈을 술로 탕진한다. 그러다 아이를 팔아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다. 필사의 탈출 후 만난 사람이 조 자비두다. 그는 전당포 주인이다. 새롭게 온 마을에 전당포를 열고 사람들의 물건을 산다.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사람들의 비밀을 듣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돈을 지급한다. 가격은 비밀의 정도에 따라 조에 의해 결정된다. 왜 이렇게 비밀을 사는 것일까? FBI를 만든 후버의 경우라면 이 정보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는 결코 그런 의도를 비밀을 사는 것이 아니다.  

 

 러들로와 조가 도착한 마을은 빈곤과 빚에 허덕인다. 마을의 부자 제레미아는 자신의 돈이 떨어지면 세를 올려 받아서 충당하고, 상대방의 비밀이나 약점을 잡아서 돈을 긁어내거나 자신의 수하로 부린다. 마을 사람들의 비밀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악한 행동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이 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빚이 있다. 그러니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무리다. 자신들 속에 첩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단결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런 그에게 조의 전당포는 자신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비밀이나 집에 있던 물건들을 팔아 자신의 빚을 갚아가기 때문이다. 조에게 악의를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일반적 판타지라면 조와 제레미아의 대결로 압축되겠지만 작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조는 단지 기다릴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고, 자신들의 바람을 착각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조차도 기다린다. 인위적으로 변화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 기다림은 당사자에겐 지독하게 길고 힘든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비밀을 사고 기록하는 입장에선 다르다. 비록 제레미아가 만들어낸 악취 나고 추악한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다 하여도 중립을 지킨다. 처음 읽으면서 이해가 힘든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러들로의 회고록 기록과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시점의 변경으로 다른 관찰자를 등장시킨다. 시대 상황도 같이 보여준다. 비밀을 담은 블랙북을 둘러싸고 강한 액션도 마법도 없다. 약간은 밋밋할 것 같은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과 사람들을 짓눌렀던 비밀들로 읽는 재미를 준다. 뒤에 가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개운한 느낌을 주지 않고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군중심리는 다시금 인간 본성과 이기심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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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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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납치와 밀실 살인을 다루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상황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 기발한 설정은 소설의 재미를 보장해준다. 거대한 범죄인 비행기 납치를 한 범인들은 강한 믿음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관철하고, 그 속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살인사건은 사건 속 사건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작가의 장기인 꼼꼼하게 모든 가능성을 뒤집어 보고, 점검하고, 가설을 세우면서 한 발짝씩 진실에 다가간다.    

 

 대단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이시마네 다카시는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농담처럼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고 할 정도다. 그러면 수십만 명은 모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첫 대목에서 이 대화를 듣고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그냥 존경하는 사람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농담으로 생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마음은 아주 강하고 사실이다. 뒤로 가면서 이시마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그의 행적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시마네 본인은 정작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는 자신이 가만히 있는다 하여도 주변에서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선의에 의해서든 악의에 의해서든 말이다.  

 

 이시마네가 연 캠프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놀라운 치유력으로 현실에 복귀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그를 납치범으로 고소한다. 이 때문에 이시마네는 형사들에게 잡혀가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오키나와에 찾아온 긴 개기일식에 이벤트를 펼치지 못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바로 이 이벤트에서 시작한다. 판타지 같은 이시마네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 그 시간을 맞춰 ‘저편’으로 칭하는 세계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이 극단적인 비행기 납치를 하게 된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약간 과장된 설정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별도로 한 삽화를 넣어 설명하고 있다.   

 

 

 사토미, 가키자키, 마카베, 이 세 사람이 비행기를 납치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을 보면 상당히 공을 들인 작전 같은데 한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작가의 설명을 자세히 듣는다 하여도 조금은 과장되게 설정된 것으로 느껴진다. 가끔 이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집어넣어서 약간은 억지스런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공항 검사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몰래 가지고 온 무기로 가장 연약한 존재인 아기를 인질로 비행기 납치를 펼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행기를 납치한 범인과 경찰의 대결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진행과 달리 이 소설에선 밀실 살인을 하나 만들어낸다. 인질로 잡힌 아이의 엄마가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팔목에 상처가 있는데 자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자신들의 스승인 이시모네를 해방시키기 위해 비행기 납치를 펼친 그들 앞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에 멋진 아마추어 탐정을 등장시켜 사건을 풀어낸다. 그가 바로 자마미 군이다. 물론 그의 본명은 아니다.    

 

 자마미 군은 냉철하다. 그리고 영악하다. 마카베에 의해 이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을 풀라는 명령을 받지만 수사과정에 납치범들을 유대를 깰 수 있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또 다른 뛰어난 사람 마카베에 의해 발각되고 깨어진다. 하지만 자마미 군의 추리와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깨는 과정을 조용히 진행한다. 이 과정을 보면서 그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설정과 상황들이 다시 생각났다.   

 

 

 내부에서 자마미 군을 탐정으로 내세워 밀실 살인을 풀어간다면 외부는 내부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 단지 납치범의 신상정보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이 사태를 대응하는 방식도 전형적인 납치 사건을 참고로 진행한다. 그러니 범인이 제시한 시간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긴박함과 스릴은 적지만 이시마네가 지닌 힘과 그들의 삶을 설명해주는 역을 맡아준다.    

 

 비행기 납치한 상황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을 풀어가고, 납치범들의 목적과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풀어지는 사건의 진실과 반전은 놀라움을 주기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왠지 그 결말을 보면서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은 생략되었다면 더 강한 여운과 의문으로 재미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나저나 역자의 말처럼 자마미 군 시리즈라도 나온다면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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