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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판형이 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 힘들고, 오래 들고 있다 보면 손목이 아프기 때문이다. 가방에 넣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이 판형 정도는 되어야 한다. 왜냐고? 열두 살 천재 소년의 기록을 담기엔 일반적인 책 크기로 무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재 소년의 기묘한 여행만 담고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엔 그 소년의 삶과 취미와 관심사 등을 담은 수많은 도해와 기록과 지도 등이 실려 있다. 이런 도해 등이 풍부한 상상력과 관찰력을 돋보이게 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 이것이 티에스 스피벳의 정식 이름이다. 스패로, 즉 참새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가 태어나던 순간 참새가 주방 창에 부딪혀 죽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집안 사람들의 이름은 테쿰세와 스피벳이 항상 들어간다. 중간 이름만 다르게 바뀔 뿐이다. 이것도 그의 증조부가 테쿰세 인디언의 최후에 감명 받아 개명한 것이다. 그 가계도를 보아도 결코 평범한 집안이 아니다. 그 중 한 선조의 이야기가 액자구성처럼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선 글로 나타난다.
스패로의 부모도 상당히 특이하다.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카우보이고, 엄마는 곤충학자다. 두 사람 모두 상당히 무뚝뚝하고 자신의 일에만 파묻혀 살아간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하나와 아들 둘도 평범하지는 않다. 특히 스패로는 더욱 그렇다. 우연한 사고로 죽은 동생도 어린 나이지만 총을 들고 사격과 사냥을 한다. 더 넓은 자연 속에서 이 형제가 함께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흐뭇해진다. 그러나 총기 사고로 동생 레이턴을 잃게 되고, 그 정확한 이유는 마지막에 밝혀지기까지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사실이 드러날 때 스패로가 그때 느꼈을 아픔과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스패로는 탁월한 관찰력과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특출하다. 엄마의 동료인 욘 박사와 함께 곤충에 대해 몇 시간을 토론할 수 있고, 그가 그린 도해를 몰래 스미스소니언학회로 보내어 상을 받을 정도다. 그 상을 받으려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열두 살의 작업이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보통의 소설 같으면 부모가 나서서 이 사실을 알리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티에스는 먼저 상을 거부한다. 물론 나중에 상을 받기 위해 멀고 먼 워싱턴까지의 여행을 떠나지만 말이다.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부에서 시작하여 대륙을 횡단하고 동부 워싱턴에서 도착한 후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서부에서는 그의 현재 삶과 그가 어떤 인물인지와 집의 분위기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러다 상을 받기 위해 떠날 결심을 하고, 지나가던 화물열차를 세워 몰래 타고 떠난다. 대륙을 횡단하는 부분에서 고조 할머니를 기록한 엄마의 노트와 긴 여행에서 받게 되는 기묘한 경험들이 교차한다. 워싱턴에 도착해서는 어른도 받기 힘들다는 상을 어린 아이가 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바탕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협회 측의 모습과 비밀조직을 나란히 보여주며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소년이 숨겨왔던 사실과 소년이 미안하게 생각하던 것이 결국은 어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좀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차분히 앉아 책을 펼치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패로의 기록들에 빠지게 된다. 그의 방을 묘사한 그림에서 얼마나 많은 관찰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기록으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집중력과 통찰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 하지만 그에겐 상상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아니 아직 어린 나이다 보니 이해력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단순히 분량으로 본다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패로의 도해와 기록들을 보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와 노력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소설의 정수이자 백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