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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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이야기다.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란 뜻인데 작가의 장기가 잘 발휘되었다. 이번 소설에선 모두 일곱 편이 담겨 있다. 그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다. 일본 고전 설화를 이용해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는 그 자체가 부럽고 대단하다. 설화의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욕망과 탐욕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첫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요괴들에 대한 사람들의 백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줄 알았다. 비가 오는 개울에서 건너지 못한 사람들이 낡은 오두막에 모여 괴담을 할 때만 해도 말이다. 한 명씩 이야기를 하는데 상당히 기이하다. 그런데 이 기담에 깜짝 놀라는 스님이 있다. 그리고 이 기담을 수집하여 책으로 출판하려는 서생 모모스께도 있다. 열심히 이야기를 받아 적는 와중에 한 이야기가 끝나고 밖에서 팥을 씻는 소리가 나자 스님이 놀라 달아난다. 아침이 될 때까지 스님은 돌아오지 않고, 냇가에 넘어져 죽어 있다. 왜 그는 팥 씻는 소리에 놀라 달아났을까? 귀신은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순간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살인과 허상과 죄의식에 짓눌린 사람의 공포가 뒤섞여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기본 전개 방식은 비슷하다. 먼저 가장 앞에 설화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그 밑에 그림의 해석이 나오고,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실의 삶이 새롭게 해석되고 그려진다. 설화가 현실로 나오는 순간 그것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처음 오두막에 있던 사람들이다. 잔머리 모사꾼으로 어행사 노릇을 하는 마타이치와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인형사 오긴과 신탁자 지헤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여기에 모모스께가 빠질 수 없다. 이들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사건들은 결코 귀신 이야기가 아니다. 그 뒤에는 사람들의 추악하고 잔인하며 멈출 수 없는 욕망과 살인과 탐욕이 숨겨져 있다.   

 

 교고쿠의 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괴담들은 결국 사람들의 탐욕이나 욕망으로 귀결하게 된다. 괴이하고 무서운 이야기 속에 진실을 꾀뚫어 보는 능력자가 항상 등장한다. 공포와 미신이 만들어내는 허상 속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숨겨진 사연과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선 자신들을 소악당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현대판 해결사요 탐정이다. 항상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 괴담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고 움직이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전통적인 추리소설 방식으로 보여준다. 기묘하고 괴이한 사건과 이를 해결하는 탐정 역을 등장시킨 후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들을 하나씩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고 감탄을 자아내며 다음 이야기에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쉽지 않은 번역임을 알지만 좀더 자세하였으면 한다. 각 이야기의 제목이 일본어를 한글로 쓴 것인데 한자가 병행되거나 간략한 주석이 달렸으면 어땠을까 한다. 그리고 읽다 보면 한자를 그대로 사용한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을 한글로 풀었다면 한자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조금 더 쉽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시리즈로 나온 것으로 아는데 빨리 번역되길 바라고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란 제목처럼 꼭 백 편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교고쿠의 팬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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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소시지 - 27일 간의 달콤한 거짓말 풀빛 청소년 문학 6
우베 팀 지음, 김지선 옮김 / 풀빛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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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문화이자 추억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핫도그는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것이다. 좋지 않는 기름에 소시지는 조금 들어있고 밀가루도 많지 않던 그 핫도그가 지금도 그립다. 가끔 시내에 나가 노점상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먹으면 늘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 맛이 아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지금 것이 더 맛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보다 풍족하고 더 맛있는 음식이 많은 현실에서 그 맛은 과거의 것을 결코 넘을 수 없다.   

 

 왠 핫도그 타령이냐고?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카레소시지가 한 여성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음식을 통해 한 여성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빠져 들어가고,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2차 대전의 말기 독일 패망 바로 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브뤼커 아주머니에게 우연히 찾아온 행복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부제로 나오는 27일간의 달콤한 거짓말이란 제목처럼 이 속엔 결코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사랑이 거짓말로 이어진다.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사랑 이야기 말이다.  

 

 시작은 카레소시지를 처음 만든 브뤼커 아주머니를 기억하는 화자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에서 비롯한다. 어린 시절 그는 카레소시지를 즐겨 먹었다. 하지만 무슨 음식이던지 길거리에서 시작한 경우 그 정확한 유래를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는 기억한다. 브뤼커 아주머니가 노점에서 만들어 팔 든 것을 말이다. 기억을 좇아 이제는 노구에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브뤼커 아주머니를 찾아온다. 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카레소시지 발명자에게. 그리고 묻는다. 어떻게 이 음식을 만들게 되었는지 하고. 그렇지만 그녀는 카레소시지가 아닌 그 요리가 탄생하기 전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시기부터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그녀보다 20살 정도 어린 탈영병 브레머와의 만남이다.  

 

 처음에 브레머도 탈영할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우연히 영화관에서 그녀와 함께 방공호로 대피하고, 그녀의 집으로 오면서 눌러 앉게 되었다. 해군으로 복무하던 그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대전차병으로 차출된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불리한 전황이 그를 이전까지 생각지도 못한 탈영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브뤼커 아주머니와 함께 동거하면서 그녀가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남들이 살이 빠질 때 살이 찌는 행운을 누린다. 외형적 평온함 이면엔 언제 탈영병으로 잡혀 총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자리 잡고 있다.  

 

 브레머의 불안은 탈영병으로 잡혀가는 것이다. 히틀러가 죽고 연합군에게 이미 항복하고 이제 무사히 돌아다닐 수 있는 현실을 그가 알고 집밖으로 나가 떠나는 것이 브뤼커 아주머니의 불안이다. 브레머가 창밖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지만 그 모습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라디오를 듣기 위해 진공관을 구해 달라,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줄 리가 없다. 이 두 불안감의 조화와 충돌 속에서 서로가 탐닉하고 빠져들고 위로하면서 시간은 흘러간다. 

  

 

 화자가 궁금한 것은 이런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카레소시지가 만들어졌는지 하는 것뿐이다. 그 비밀을 쥐고 있는 브뤼커 아주머니는 추억을 회상하는 즐거움과 그 기쁨을 남에게 알려주는 행복을 멈추지 않는다. 이 과정 속에 패망 전후의 독일 사회 풍경과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런 환경이 그들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환경 속에서 생동하는 사회와 사람들을 보여주고, 또 다른 우연의 산물인 카레소시지의 탄생을 알려준다. 사실 이 부분에선 큰 의미도 감동도 없다. 단지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에필로그처럼 다루어진 이야기 속에서 이 카레소시지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닌 한 사람의 입맛을 돌려놓고, 한 여자의 가장 찬란한 시간임을 알려주면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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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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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판형이 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들고 다니면서 읽기 힘들고, 오래 들고 있다 보면 손목이 아프기 때문이다. 가방에 넣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이 판형 정도는 되어야 한다. 왜냐고? 열두 살 천재 소년의 기록을 담기엔 일반적인 책 크기로 무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재 소년의 기묘한 여행만 담고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엔 그 소년의 삶과 취미와 관심사 등을 담은 수많은 도해와 기록과 지도 등이 실려 있다. 이런 도해 등이 풍부한 상상력과 관찰력을 돋보이게 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 이것이 티에스 스피벳의 정식 이름이다. 스패로, 즉 참새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가 태어나던 순간 참새가 주방 창에 부딪혀 죽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집안 사람들의 이름은 테쿰세와 스피벳이 항상 들어간다. 중간 이름만 다르게 바뀔 뿐이다. 이것도 그의 증조부가 테쿰세 인디언의 최후에 감명 받아 개명한 것이다. 그 가계도를 보아도 결코 평범한 집안이 아니다. 그 중 한 선조의 이야기가 액자구성처럼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선 글로 나타난다.  

 

 스패로의 부모도 상당히 특이하다. 목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카우보이고, 엄마는 곤충학자다. 두 사람 모두 상당히 무뚝뚝하고 자신의 일에만 파묻혀 살아간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하나와 아들 둘도 평범하지는 않다. 특히 스패로는 더욱 그렇다. 우연한 사고로 죽은 동생도 어린 나이지만 총을 들고 사격과 사냥을 한다. 더 넓은 자연 속에서 이 형제가 함께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흐뭇해진다. 그러나 총기 사고로 동생 레이턴을 잃게 되고, 그 정확한 이유는 마지막에 밝혀지기까지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사실이 드러날 때 스패로가 그때 느꼈을 아픔과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스패로는 탁월한 관찰력과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특출하다. 엄마의 동료인 욘 박사와 함께 곤충에 대해 몇 시간을 토론할 수 있고, 그가 그린 도해를 몰래 스미스소니언학회로 보내어 상을 받을 정도다. 그 상을 받으려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열두 살의 작업이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보통의 소설 같으면 부모가 나서서 이 사실을 알리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티에스는 먼저 상을 거부한다. 물론 나중에 상을 받기 위해 멀고 먼 워싱턴까지의 여행을 떠나지만 말이다.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부에서 시작하여 대륙을 횡단하고 동부 워싱턴에서 도착한 후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서부에서는 그의 현재 삶과 그가 어떤 인물인지와 집의 분위기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러다 상을 받기 위해 떠날 결심을 하고, 지나가던 화물열차를 세워 몰래 타고 떠난다. 대륙을 횡단하는 부분에서 고조 할머니를 기록한 엄마의 노트와 긴 여행에서 받게 되는 기묘한 경험들이 교차한다. 워싱턴에 도착해서는 어른도 받기 힘들다는 상을 어린 아이가 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바탕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협회 측의 모습과 비밀조직을 나란히 보여주며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소년이 숨겨왔던 사실과 소년이 미안하게 생각하던 것이 결국은 어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좀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차분히 앉아 책을 펼치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패로의 기록들에 빠지게 된다. 그의 방을 묘사한 그림에서 얼마나 많은 관찰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기록으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집중력과 통찰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 하지만 그에겐 상상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아니 아직 어린 나이다 보니 이해력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단순히 분량으로 본다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패로의 도해와 기록들을 보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와 노력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소설의 정수이자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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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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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물이 아니었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 푹 빠졌고, 최고의 작품으로 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대한 홍보나 평을 보니 독창적이란 것과 앤 라이스의 작품과 비교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12살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이라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나오는 소녀가 떠오르기도 했다. 약간은 큰 기대 없이 읽었지만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독창적이란 평에 동의를 한다. 단순한 뱀파이어 호러물이나 액션물이 아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간다.   

 

 주인공 오스카르는 열두 살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존재다. 그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상점에서 도둑질을 하고, 나무를 상대방으로 상상하면서 칼질을 하면서 푼다. 취미로 신문에 나온 연쇄살인범들의 기사를 스크랩한다. 강한 상대에게 나약한 존재이자 가슴속에서 삐뚤어진 환상이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린 아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계속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뱀파이어인 엘리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게 만든다.  

 

 엘리는 참 매력적이면서 불쌍한 존재다. 오스카르와의 키스를 통해 과거의 기억 중 단편이 흘러나오지만 그녀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고 200년 이상의 시간을 살아왔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현재 그녀는 나약한 외피 속에 강한 흡혈의 욕구와 누구보다 강한 힘이 숨겨져 있다. 동시에 피를 마셔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에 고민도 가지지만 생존의 충동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오스카르와의 우정 혹은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절제와 인내는 본능을 넘어선 것이다.  

 

 그 외 엘리를 위해 살인을 하고 피를 모아오는 소아성애자 호칸이나 10대의 방황 속에 살아가는 톰미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라케의 모습은 그들의 존재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같이 비추어주면서 시대의 어둠을 그려낸다. 생존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인을 하는 호칸은 인간이 지닌 욕망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것도 본능에 의한 충동이라고 한다면 다른 문제가 될 수는 있다. 그리고 라케를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은 복지국가 스웨덴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생존을 나라에서 돌봐주니 그들의 삶이 퇴보를 하는 것이다. 강력한 복지정책의 부작용 중 하나다. 하지만 당장 실직을 하면 앞날이 깜깜해지고, 일가족이 함께 자살의 길을 가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부럽기만 하다.  

 

소설에서 눈길이 가는 것이 두 개 있다. 일단 하나는 엘리가 죽은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뱀파이어물에서 가끔은 생존을 위해 동물들의 피를 마시는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어색하다. 이것이 아마도 엘리 등의 생존을 위한 살인을 강하게 부각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읽다가 어떤 때는 왜 혈액은행 등의 수혈된 피를 마시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 잠기기도 했다. 다른 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결손 가정이란 것이다. 물론 아닌 가정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오스카르나 톰미나 욘니 등의 중심인물들이 모두 그렇다. 이것이 그 시대의 현실인지 아니면 소설 장치를 위한 설정인지 궁금하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 분위기에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낯선 지명과 이름들뿐만 아니라 열두 살 어린이가 주인공이란 점이 선입견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엘리와 그녀를 통해 감염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단순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에 붙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와 삶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사랑의 의미도 되새겨보게 된다. 특히 엘리가 “들어가도 돼”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들은 후 들어가는 장면에선 아직 자신이 지닌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비록 피에 대한 갈증과 생존 욕구에 굴복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음 이야기도 있다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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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데이즈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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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여성살인클럽 시리즈를 읽었다. 이 시리즈의 첫 권과 두 번째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처음엔 조금 아쉬웠지만 다음 권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특징이자 강점인 영상 이미지 구성이나 빠르게 읽히는 매력은 변함없지만 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거나 치밀한 구성으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다. 단지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입력 있는 구성과 문장이 그 힘을 발휘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간만 허락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이번엔 적의 규모를 많이 키웠다. 한 명씩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려는 테러리스트가 그 적이다. 처음에 그들의 주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세계화가 이룬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켜 의외란 느낌을 주었다. 패터슨이 이 주제와 소재를 과연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중의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행적들이 비록 그 수단의 과격함과 부적당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자아내었고 약간은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다. 작가는 단지 이 소재를 장르의 문법 속에 녹여내었을 뿐이다. 더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고, 피상적인 인용과 단어들의 나열로 딱 그곳에서 멈췄다. 아쉬운 대목이자 어쩔 수 없는 상업 작가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부터 화려한 폭발로 문을 연다. 린지 박서 부서장이 친구 질과 조깅을 하는데 한 집이 폭발한다. 그 현장에 뛰어들어 한 소년을 구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이 상황이 너무나도 테러와 유사하다. 차분하면서도 정확하게 주변을 살핀다. 이상한 가방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전문가들이 가방을 연다. 그 속엔 이 사건을 만들어낸 ‘오거스트 스파이스’ 조직의 경고문이 들어있다. 자신들의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사건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난 후 의료보험업계의 거물이 독극물에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8 회의 개최 취소를 명령하면서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 사건은 한 지역의 연쇄살인범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로 접어든 것이다.   

 

 경찰을 비롯한 국가 공권력과 테러리스트의 대립이란 구조 속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빠르게 읽히지만 긴장감은 사실 많지 않다. 빠른 장면 전환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이 너무 피상적으로 드러나면서 아쉬움을 준다. 그리고 전반에 펼쳐 놓은 사건과 복선들이 뒤로 가면서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것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아주 빠르게 읽히는 속도도 물론 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여성살인클럽이란 시리즈처럼 이 소설 속 각 분야의 전문가 네 명은 강한 유대감과 각자의 역할로 사건을 풀어내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검시관 클레어를 제외하면 이 클럽은 각자의 이익을 위한 최상의 조합이기도 하다. 단순한 이익만을 위해 모였다면 삭막하겠지만 그들의 강한 우정으로 엮여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사라지고 발견되었을 때 보여준 모습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들이 화면 위에 움직이는 배우처럼 보이고 한 명의 개성 강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에 비해 아쉬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이것은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를 먼저 읽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이번 소설보다 시리즈 다음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고 한다. 머리가 무겁고, 즐겁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정말 적당한 책이다. 속도감과 단순한 재미가 주는 매력이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한다. 아직까지는 작가에게 질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언제 시드니 셀던 처럼 손을 놓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이 시리즈를 모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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