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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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여자가 죽는다.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죽은 여자의 언니다. 그래시엘라는 심장병으로 은퇴한 전직 FBI요원이자 프로파일러인 매케일렙을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죽은 자기 동생의 사건을 다시 조사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그를 찾아온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전에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그가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른 탐정에게 사건을 넘기려는 순간 그녀는 한 장의 사진을 내민다. 모르는 여자다. 그녀가 말한다. 당신이 받은 심장의 주인이 바로 내 동생이자 희생자였다고.

그 말에 고민하고 그는 경찰이 강도 살인으로 판정한 사건에 뛰어든다. 전직 FBI요원이지만 자존심 강한 경찰들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 사건 현장 CCTV로 발생 당시 상황을 본다. 하지만 경찰들은 자료를 내줄 생각이 없다. 그래서 혹시 이것과 유사한 사건이 있는지 신문기자에게 검색을 요구한다. 비슷한 사건 하나가 더 있다. 그 사건의 담당자는 예전에 그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제이 윈스턴이다. 그녀를 통해 그는 두 사건의 자료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하나씩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다시 검토한 사건 파일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지만 이미 형사들이 조사한 것들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레이스 사건 당시 상황의 시간 순서다. 경찰들은 안일하게 이 시간을 조사하고 넘어갔다. 작가는 이 시간이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시 사건 파일과 비디오로 돌아가서 재조사한다.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조사의 결과는 그의 경험과 맞물려 하나씩 의문을 토해내고, 사건의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살인이 아니다. 이때부터 FBI가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한 여자의 죽음으로 새 삶을 얻은 매케일럽은 심장 주인을 생각한다. 그녀와 악에 대한 증오가 범인을 좇게 한다. 그는 한 사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허약한 신체와 공권력을 잃었다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다행이라면 그에게 신세진 사람이나 동료가 자료를 계속해서 제공해준다는 것 정도다.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실적은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와 함께 나아가다 보면 범인의 윤곽이 조금씩 잡힌다. 아니 그보다 먼저 발견한다. 작가는 그만이 유일하게 단서를 좇는 것이 아니라 FBI나 경찰도 발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차이라면 아주 조그마한 시간이다. FBI나 형사들이 결코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연쇄살인범을 좇는 것이라면 매케일럽과 그래시엘라의 로맨스는 부가적인 재미를 준다. 그녀의 미모가 탁월한 것이 그를 매혹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녀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의 관계는 지속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답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은 상황에서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편집자의 주를 보면 이 둘의 미래가 어떤지 알 수 있는데 빨리 그 책도 읽어야겠다.

피해자의 언니가 심장의 주인을 말할 때 예전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동명 영화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나의 참혹한 기억력으로 영화의 세부적인 것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다. 물론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앞서 기시감처럼 단서와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 반전과 상황을 알아내기엔 힘이 딸린다. 나쁜 기억력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다.

한 여자의 죽음과 그로 인한 한 남자의 생존을 기본 축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그나 그 사실을 알지만 범인을 찾고자하는 가족의 이해가 충돌한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했던가? 사실 코넬리의 작품 속에서 연쇄살인범이 잡히지 않는 적이 몇 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 반복적인 살인 과정에서 흘린 하나의 실수로 범인들은 잡히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 작가는 단서가 하나 나올 때마다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반복적인 작업에도 결코 지루하거나 질리지 않는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구성 때문이다. 또 중간에 간간히 나오는 다른 시리즈와의 관련성은 즐겁고 반가운 등장이다. 다시 한 번 더 시리즈 관계도에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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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루프의 사랑 무한카논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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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카논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3부작을 위해 작가는 7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앞의 두 작품을 읽지 않았다. 분량을 보면 이번 작품이 가장 짧다. 작가의 글을 보니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한다. 아니 친절하게도 여섯 가지 조합을 말하면서 각 작품의 독립성과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오루의 사랑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직 모두 읽지 않아 그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는 못했다. 

3부작을 모두 읽지 않아서인지 정확한 윤곽이 잡히지는 않지만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오루가 홋카이도 북쪽의 변방 섬으로 간 이유를 모른 상태로 읽다보니 처음엔 약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가 나온다. 그것은 영토 분쟁 중인 이투루프 섬에 일 년을 살게 되면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안한 사람이 친구이자 정치인인 이노다. 춥고 낯설고 회색으로 가득한 이 섬으로 온 목적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 후지코 때문이다. 그녀는 천황의 여자다. 일본에선 절대 사랑하면 안 되는 여자다. 일본 국민의 원망과 증오를 희석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이 섬에서 경험하는 것은 원래의 목적과 다르다. 일부 사람들이 그를 일본의 스파이로 생각하지만 일상 삶에서 그런 흔적은 전혀 없다. 이 의심은 사라지고 섬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진다. 이런 관계 속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섬으로 건너오기 전에 만난 니나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그레고리에브나는 샤먼이자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섬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증오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마리아의 능력은 자식들에게로 이어진다. 하지만 니나는 그 능력을 거부하면서 사라졌다. 남동생 코스챠만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가오루의 사랑에서 니나의 사랑으로 옮겨간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 아픈 과거가 나오고, 초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 샤먼으로 미래를 볼 수 있고, 그것을 물리치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우리의 무당 신내림과 비슷하다. 다만 그 능력을 운명과 결부시키고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투루프의 환경을 황천에 비유하면서 죽음과 부활을 위한 공간으로 표현한다. 이 속엔 유명한 가수였던 과거와 발기불능의 현실을 담고 있는 동시에 재생의 대지임을 보여준다. 비록 완전한 부활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이투루프의 풍경이 먼저 다가왔다. 예전에 본 황량하고 거친 동토의 대지가 떠올랐다. 이 척박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가오루가 만난 사람들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물론 니나의 가족은 다르다. 그것은 니나의 가족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돌아보고, 사랑을 되돌아보고,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앞의 두 편이 궁금해졌다. 어떤 이유로 결별하고, 왜 그렇게 위협을 받는지, 그들의 사랑은 이제 사라졌는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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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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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여행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쓴 소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소설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인공 유석과 쇼타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각자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도 그 여행이 근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닐지는 몰랐을 것이다. 실제 작가가 힘겹게 여행한 경험을 이야기 속에 녹여낸 탓인지 그 힘겨움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지치고 힘들고 가난한 여행이지만 보면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유석의 아버지 야마는 유명한 화가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유석은 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원형탈모증이 생긴다. 아버지의 유산은 거의 없고, 믿고 있던 <야마 자화상>은 위작으로 판명나면서 쫄딱 망한다. 대입에 떨어진 그가 간 곳은 아버지의 한때 연인이었던 최 교수의 집이다. 그 집에서 기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재수를 준비한다. 왠지 모르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영감을 받아서 그렸다고 생각한 그림이 최 교수에게 혹평을 받는다. 분노가 치밀어 최 교수의 고양이를 죽이고, 쇼타의 집으로 도망간다.

쇼타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다. 일본드라마 자막의 오타 때문에 둘이 만났다. 그런데 쇼타가 <야마 자하상>을 가지고 있다. 유석은 단번에 위작임을 안다. 진품이 있다면 당장 50억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쇼타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형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형에게 이탈리아의 한 곳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 <야마 자화상>을 둘러싼 의문은 유석을 자극하고, 진실을 알고자 한다. 최 교수에게 약간의 정보를 얻고, 쇼타를 충동질해 둘은 함께 런던을 향해 날아간다. 자화상은 긴 세계여행 속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고, 미스터리 분위기를 풍긴다. 

이 둘이 함께 떠난 여행은 가난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경비로 이들은 여행을 떠난다. 히치하이킹은 기본이고, 친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에게 빈대 붙어 살기도 한다. 유석의 목적은 <야마 자화상>의 진품을, 쇼타는 사라진 형을 찾는 것이다. 물주인 쇼타의 형을 찾기 위해 먼저 움직이면서 그의 흔적을 좇아간다. 그 흔적은 흐리지만 끊어지지는 않는다. 자화상을 좇는 유석의 결과는 통 시원치가 않다. 긴 여행 도중에 쇼타의 그림을 노리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혹시 유석이 위작임을 확인한 그 작품이 진품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야마 자화상>, 쇼타의 형을 찾는 과정은 사실 두 사람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전 세계를 돌면서 그 흔적을 좇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고, 경험하고,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밑거름이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겪는 어려움과 현지의 모습과 숙소에서 길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어울림은 갇혀있던 그들의 생각과 자아를 풀어놓게 만든다. 실제 작가의 경험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저런 고생을 왜 하나, 할 정도의 것을 겪으면서 그들은 찾고자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그 의지와 집념과 열정은 각국의 다양한 삶과 풍경 속에서 조용히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가난한 여행자의 기록은 간접경험의 즐거움을 주면서 책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작가는 39개국 여행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여행 경비를 위해 집필했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석의 성장과 그의 경험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유석의 여행길에 예술에 대한 생각과 이론을 풀어내는데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약간 관념적이기는 하다. 유석이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발견한 빈 캔버스로부터 받은 충격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여행이 어떤 것일까 살짝 내비쳐주는 역할을 한다. ‘눈 오는 아프리카’로 이름 붙이고, 자신이 그 그림에 집착하고, 결국은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무너진다. 긴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들이 아프리카와 인도인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긴 여행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자신만의 예술관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세계시민으로 부쩍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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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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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책이 된 남자 이야기다. 어느 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훔친 책 때문에 책이 된 남자의 오디세이다. 그의 변신과 긴 여행은 책에 대한 애정 그 자체다. 그가 겪은 모험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섬뜩함을 느끼고, 감정이입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과연 책을 좋아하는 지 자신에게 묻길 바란다.

비블리 씨는 우연히 한 책을 훔친다. 그 과정을 보면 너무 자연스럽다. 그의 과거를 보면 책과 함께 한 인생임을 알 수 있다. 글을 모를 때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까지 책을 늘 옆에 두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니 대충 짐작이 간다. 그가 죽은 자 옆에 있던 그 책을 훔쳐 집에 왔을 때만 하여도 앞으로 펼쳐질 괴상하고 기이한 모험을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책’을 단숨에 읽지만 마지막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린다. 엄청난 고통에 빠지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 책과 멀어지고자 하지만 운명처럼 그를 따라온다. 그 책을 위해 평생 모아온 책을 싼 값에 팔기도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권, 바로 그 책이다. 악몽과 몸의 이상을 어느 정도 극복한 그에게 다시 고통이 생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참다 참다 아주 강렬한 비명을 지른다. 옆집 사람들이 경찰과 함께 그의 방에 들어온다. 그가 없다.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책으로 변해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다.

책으로 변한 그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으로 변한 그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그 집을 청소하기 위해 온 청소부다. 그녀는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온다. 딸이 책을 펼쳐 읽는데 책의 생각들이 아이의 머릿속으로 옮겨간다. 아이가 느낀 의문을 엄마는 대답해줄 수 없다. 아이에게 내침을 당한 책은 도서관 사서의 책상으로 간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이란 짐작을 한다. 하지만 작가는 괴상하고 고약한 취미를 가진 도서관장을 등장시키고 새로운 모험을 준비한다. 이 관장에게 나쁜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책의 일부를 도려내어 보관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가진 책이 분노하여 관장을 공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미움을 받은 책을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아마추어 작가였던 도서관장이 자기 책 출판을 바라고 원고와 함께 그 책을 보낸다. 출판사 편집자는 아마추어 작가에겐 관심이 없다. 그 책을 들고 집으로 간다. 인기작가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는데 인기작가가 책의 내용을 보고 비평을 가한다. 책은 분노한다. 다행이 아내가 그를 말려 멈춘다. 하지만 편집자는 그 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이에 그 책은 분노한다. 나체로 잠자던 그녀를 그 책은 공격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운 일인가! 그녀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책은 다시 출판사로 간다.

여기서 다시 인기작가였지만 최근 두 작품 판매실적이 좋지 않았던 작가를 등장시킨다. 밤에 몰래 출판사에 들어와 혼자 이짓 저짓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원고를 불태우고, 그 책을 품고 사장실에서 뛰어내린다. 죽음이다. 책은 당연히 문제없다. 다만 지나가던 개의 오줌이 묻었을 뿐이다. 이렇게 내동댕이쳐진 책이 가는 곳은 헌책방이다. 여기서 책은 유명 비평가의 손에 들어간다. 비평가의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비평은 비블리 씨를 분노하게 한다. 다시 그 책은 비평가를 공격한다. 그 책의 공격에 비평가는 죽는다. 다시 그 책은 헌책방으로 흘러간다. 

비블리 씨는 헌책방에 손상당한 외형을 고친다. 잘 빠졌다. 한 신사가 와서 고가에 그 책을 구입한다. 책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 비블리 씨는 만족한다. 그런데 그는 책을 모아두기만 할 뿐 읽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모셔두기만 하는 책보다 읽은 사람의 흔적이 남은 책이 되고 싶은 비블리 씨는 책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트린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책의 공격과 헌책방으로의 귀환이 이어진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의 모험을 통해 작가는 책에 대해 말한다. 책에 대한 애정과 비평가에 대한 날선 시선과 편집자들의 속물근성과 읽기보다 수집하기를 더 좋아하는 장서가 등을 등장시켜 이를 날카롭게 비틀고 비판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헌책방이다. 책에 생기를 불어넣고, 주인을 찾아주고, 그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지도 못하면서 사놓기만 한 책과 가끔 찾아가는 헌책방에 꽃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 속에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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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왕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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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읽은 소설이 아니다. 제목에서 느낀 분위기와 도시 판타지라는 것에 혹해 보았다. 책 뒤표지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단어를 굳건하게 드러내었지만 읽는 도중에야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가끔 나의 이런 무신경과 허술한 선택적 단어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지만 기대한 정도의 소설은 아니었다. 아마 도시 판타지라는 단어에서 예전에 본 ‘네버웨어’와 비슷한 분위기를 생각한 것 같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서 만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참 멋졌다. 하나의 피리로 그 무시무시한 쥐떼를 해치우는 것을 보며 그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것엔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대단한 능력에 비해 그가 보여준 인간성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작가는 ‘쥐의 왕’이라는 소설을 자신의 정치색과 함께 판타지로 풀어내고 있다. 그 정치성은 처음부터 드러나지만 완전히 그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명확해진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고, 집에 돌아온 그가 잠에서 깨어나니 아버지가 떨어져 죽어있었다. 경찰에 연행되어 범인으로 의심을 받고 여기서 쥐의 왕을 만난다. 그리고 밝혀지는 놀라운 출생의 비밀. 그것은 쥐와 사람의 피가 섞인 새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존재의 성립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고, 이것이 마지막 갈등과 새로운 세상을 풀어내는 원인이 된다. 

사울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존재가 7백 년 전 동화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임을 알게 되지만 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나이에게 당한 왕들이 뭉쳐 물리치려고 하지만 그의 피리 소리에 그들은 너무 무력하게 넘어간다. 여기에 작가는 자신의 음악적 이해를 풀어놓은데 생소한 음악이기 때문인지 쉽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냥 무협소설의 음공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으려나? 

이야기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파생되었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전개를 보면 굉장히 영상 중심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 피트와의 결투 장면이나 마지막 전투 장면 등에서 잔혹하면서도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내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사실 이 장면들이 소설의 백미다. 보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생각하고, 이전에 나온 영화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며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속도감과 몰입도가 높아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후반으로 가면서 붙는 속도감과 재미는 대단하지만 역시 입체적인 느낌을 전체적으로 살려낸 것은 아니다. 인간이나 다른 존재들이 피트의 음악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이나 사울의 갈등이 조금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나 크롤리 형사의 역할이 뒤로 가면서 너무 없어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영화 속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들로 자신만의 개성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낯익은 장면들과 익숙한 동화를 차용한 이야기가 새롭게 각색되고 재미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난 때문이다. 비록 상상력을 완전한 모습으로 표현하기에 약간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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