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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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작품이다. 고백이란 형식을 통해 한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고백의 힘에 눌렸다. 작가의 처녀작이란 점도, 이 소설의 첫 장을 단편으로 낸 후 장편으로 바꿨다는 사실도 놀랍고 대단하다. 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그 관계자들의 내면을 이렇게 멋지게 파헤친 작품이 흔하지 않다. 특히 청소년 범죄인 경우에는 더욱 말이다.  

 

 시작은 최근 일본 문학 등에서 청소년 범죄의 문제점을 다룬 것과 비슷하다. 미혼모인 여선생이 자신의 네 살 된 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 후 종업식에 고별인사를 하면서 사연을 설명한다. 자신과 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고, 왜 자신의 아이가 매주 수요일 학교로 와야 했는지, 그 아이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말한다. 여러 번 일어났던 소년 범죄의 문제점도 부각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반에 살인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지만 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복수란 칼날을 통해 잔인하게 표출한다.  

 

 1장 성직자가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새롭게 장편으로 개작하면서 덧붙여 진 것들이다. 이후 고백하는 사람들이 바뀐다. 다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담임이 흔들어 놓은 반의 그 후 상황과 새롭게 벌어진 사건들을 자신의 시선에서 이해하고 말한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제3자 입장의 고백자다. 이어서 가해자 가족 중 한 명이 일기란 형식을 통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기 주변 사항을 그려내고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엄마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전까지가 피해자나 제3자 입장이라면 제4장부터는 가해자였던 아이들의 고백이 시작한다. 왜 그런 살인사건이 벌어졌는지 각자의 고백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 설명이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했던 수많은 소설들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 청소년기에 자신들이 받았던 스트레스가 애정결핍과 그리움 등과 오해로 뒤범벅되면서 왜 그런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만나게 되는 청소년의 모습은 첫 장에서 본 잔혹하고 법의 그늘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과 전혀 다르다. 충동적이고 득의양양하지만 결국 불안감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약한 존재로 나온다. 만약 작가가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면 아쉬웠겠지만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그 뒤에 숨겨놓은 반전이 나오면서 복수와 미스터리는 완성되고, 아쉬움도 강하게 전해준다.  

 

 고백이란 형식을 통해 사건의 다양한 시선을 만난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그것을 버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고백이 진실의 조각들만 보여줄 뿐이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조각을 모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과 가해자 등을 모두 화자로 내세우면서 한 사건을 둘러싼 방사형의 관계자들 목소리를 잘 드러냈다. 덕분에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형사 처벌이 되지 않는 중학생 살인과 그 피해 가족과 가해자 가족의 입장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심리도 그려내면서 한 편의 멋진 종합선물 같은 재미를 준다. 올해 읽은 최고의 작품 중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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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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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작가상을 개인적으로 선호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변함없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 편지와 현재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진행하는데 허구와 현실을 잘 조화시켰다. 편지가 고모의 꿈이자 할머니의 꿈이라면 현재는 나 은미의 현실 마주하기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편지고, 그 속에서 우린 현실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 은미는 기자 시험에서 계속 떨어진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민이는 트랜스젠더를 꿈꾼다. 민이가 은미에게 말한다. 너는 신문사가 원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고. 이것은 다시 민이에게 적용된다. 그는 남자로 살지 못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지고 여자들을 들뜨게 했던 그지만 몸속 깊이 남자임을 거부한다. 이에 은미가 보인 반응은 더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 둘의 현실과 삶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고모의 편지는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고모의 편지를 읽으면서 느낀 첫 생각은 한국인 우주비행사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편지들은 앞의 기억들을 헛갈리게 만든다. 나의 착각인지 어색함이 느껴졌다. 물론 작가는 전문 용어와 현실적 상황으로 정밀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왠지 머리 한 구석에서 이상함을 느낀다. 이 비밀은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는데 이 모든 편지가 고모와 할머니의 꿈을 실어 나른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은미에게 고모를 만나고 오라고 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꿈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기자 시험에 계속 낙방한 은미가 민이와 함께 간 미국은 꿈과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고모를 만난 은미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의 예상과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은미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자신의 마음 깊숙이 받아들인다. 여기서 은미는 기자가 되려는 마음을 되돌아본다. 민이의 성전환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이 여행은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고, 자신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이다.  

 

 고모의 편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 저는 기념품을 챙겨다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불안하고 또 자유로워졌어요.”(11쪽) 고모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 살면서 자유로웠지만 불안하고 보고 싶은 아들이 있다. 그 감정을 숨기고 꿈을 담아 편지를 보낸 것이다. 고모를 만나러 간 미국에서 은미와 민이는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감정의 벽을 깨부순다. 은미는 기자시험의 집착에서, 민이는 성전환 수술에 대한 주저에서 벗어난다. 한국에서 멀어져 불안하였지만 자유로워진 덕분에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모는 마지막 편지에서 말한다.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이 긍정은 고모에겐 자식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고, 은미에게는 기자보다 소설가가 되는 것이고, 민이에겐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는 것이고, 찬이에겐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지극히 고전적인 남성들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할머니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환상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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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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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크기다. 외형만 보면 다른 일본소설처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처럼 보인다. 맞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작은 책에 큰 활자와 여백으로 단숨에 읽었던 일본소설과 달리 이 책은 활자의 크기도 작다. 그런데 단숨에 읽힌다. 재미 때문이다. 그 재미가 결코 유쾌하고 즐겁지 않다. 아니 어둡고 참혹하고 잔인하다. 소설 속 한 단편처럼 현실이 지옥이다. 그녀는 그 지옥을 잘 표현했다.  

 

 모두 열 편이다. 적은 편수가 아니다. 다른 단편집에서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그 이름을 꼭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억 속에 희미했던 그 이름이 이 한 권의 단편집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잔인하고 섬뜩하면서 참혹하기도 한 이 소설에 나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것이다. 이것은 장르문학을 떠나 그녀가 말했듯이 이야기의 뿌리가 그녀의 할머니에서 비롯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 단편집엔 환상과 지옥으로 가득하다. 환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판타지나 스릴러나 공포 등을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고, 지옥으로 표현한 것은 그 풍경과 현장이 실제 지옥이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장르별로 구분하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은 지금 그 분류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작은 이야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첫 문을 여는 것은 사채를 빌려 쓴 아내와 이혼한 남자 이야기다. 두 남녀가 번갈아가면서 화자가 된다. 궁지에 몰린 여자가 콜라에 모기약을 타서 먹이는 장면과 마지막에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은 시선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 놀랍고 참혹한 분위기는 벌집에 사는 사람들로 넘어가면서 희극과 비극이 교차한다. 여기서 잠시 분위기를 바꾼 다음 <안녕, 나디아>에서 잔혹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고 중편 분량이다. 첫 이야기처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각각 다른 시선이 보여주는 상황이 놀랍고 무시무시하다. 백수와 연쇄살인범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상하게 만들어서 더욱 공포스럽다.  

 

 두 동생의 목에 탯줄을 감고 태어난 화자의 이야기는 마지막 몇 단어로 작가에게 농락당한 느낌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사건에서 시작하여 현실로 넘어온 자살이 빚어내는 괴이한 상황과 반전은 놀랍다. 샴쌍둥이의 이야기에선 하나의 심장이 의미하는 바와 강한 생존 욕구가 만들어낸 비극이 섬뜩하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유일하게 죽음을 다루지 않는 책읽어주는 남자 이야기는 연애의 목적이 무엇인지 노골적이면서 극단적으로 보여주지만 과연 그 자체가 목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표제작을 읽으면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삶의 힘겨움에 짓눌려 지하철에 몸을 던진 지하철 세일즈맨의 사연은 복이 없어도 이렇게 없나 하고 동정심을 자극한다. 제목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현실이자 역설이다. 지옥을 벗어난 현실과 다시 지옥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 나의 현실이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가학성 클럽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다룬 이야기에선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죽이는 현실에서 다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일 축하합니다’를 비틀어 만든 단어로 씁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죽음을 다룬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현실을 말하고,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애잔한 마음이 들게 만들고, 그 섬뜩함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본은 죽음이다. 산 자에게 낯선 풍경이고 공포의 대상인 죽음이 이 단편집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약간은 불편하다. 넘쳐나는 죽음과 잔혹함 때문에. 그렇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면서 쉼 없이 다음 이야기로 달려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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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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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먼저 나온 작품 <삼중문>의 호평을 기억하기에 선택했다. 최근 중국소설에 재미를 들이고 있는데 이 작가도 추가해야겠다. 젊고 그 시대 젊은이의 감성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선 개인 취향과 약간 동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풍자와 사회비판은 날카롭고 유쾌하다.    

 

 나와 친구 젠수는 우연히 패싸움에 가담했다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달아난다. 상하이를 벗어나 한 도시로 들어와 불안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불난 공장을 구경하고, 자전거를 타고 오던 중 나의 외침에 젠수는 부상을 입는다. 이 부상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왕차오라는 학생이 찬 공에 넘어져 손을 다친다. 이 만남으로 세 청년이 모이게 되고, 그 도시의 외곽의 한 주택을 빌려 생활하게 된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의 생활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면서 나의 과거 속 여자를 잠깐 이야기하고 그 시대의 부조리와 부패상을 보여준다.   

 

 세 청년의 생활 속에서 빈곤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습이 반복되고, 그들이 다닌 대학에서 예쁜 여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들도 그녀들을 살짝 갈망한다. 이런 모순과 그들의 생활을 보다보면 학창시절 남자들끼리 함께 동거했던 친구나 선후배들의 추억이 떠오른다. 누군가 돈이 생기면 고기와 술을 먹고, 함께 뒹굴고, 자신들의 미래를 힘차게 외치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다. 

  

 

 이 소설에서 놀라운 장면들이 몇몇 나온다. 그중 하나가 그들이 살던 집 앞 가게가 불난 일이다. 그 집이 불타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불을 끌 생각을 않고 소방차가 와서 멋지게 끄는 광경을 볼 생각만 한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물을 들고 와서 거의 꺼져가는 불길에 물을 붓자 얼마나 화를 내었던가! 이 불로 모든 재산을 잃은 듯한 가게 주인의 안타까움이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 장면 이전에 한 공장에서 불이 났을 때 장관을 이루었던 자전거들의 질주가 있었다. 불난 공장을 더 가까이서 더 잘 보기 위해 수백 대의 자전거가 도로를 힘차게 달리는 장면이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이렇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게 되고, 남의 일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쉽게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그들에 경악한다. 이것은 또 중국소설이나 기사 속에서 자주 만나는 것들이기도 하다.  

 

 처음에 약간 적응기를 거치고 나면 속도감이 붙는다. 나의 이야기에 빠져 약간의 불안감 속에 허황된 꿈을 꾸는 그들의 삶속에 몰입한다. 급격하게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고 비판하고 풍자한다. 황당함을 극치는 역시 월마트 앞에서 벌어지는 인터뷰다. 인터넷 거품시대 이야기도 역시 한탕주의와 탐욕을 잘 나타내준다. 끝부분에 젠수가 과도한 욕심을 부려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 광고 단가를 올리는 장면도 역시 이런 연장선에 있는 일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한국의 인터넷 거품시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한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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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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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와 영화로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 장면을 보고 뭐야! 를 외쳤던 기억이 있다. 영화와 원작에 대한 정보 없이 다가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결말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부두교와 악마숭배 등의 제사의식과 감독의 현란하고 암울한 영상미였다. 이미 십 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 이미지 일부가 내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제 원작을 통해 영화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리고, 의문을 가졌던 것에 답을 찾게 되었다.  

 

 하드보일드와 오컬트 호러의 결합이란 표현, 정답이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다. 탐정 해리 엔젤에게 한 변호사가 찾아오고 한 의뢰인에게 그를 소개한다. 의뢰인 사이퍼는 2차 대전 초기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는 자니가 무명일 때 도움을 좀 주었고, 그가 사망할 경우 담보를 건 것을 몰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 계약 내용은 당연히 비밀이다. 그리고 자니가 전쟁 중에 부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병원 측의 교묘한 방해로 면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의뢰 내용은 사실 확인이다.   

 

 단순하게 자니가 그 병원에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고 시작한 조사는 단순한 미끼다. 엔젤이 병원을 찾아가서 자니의 흔적을 서류상 좇아가지만 어디에도 그 실체가 없다. 그러니 그 중심에 있던 의사를 찾아간 것은 당연하다. 그를 통해 숨겨진 과거 사실 일부를 알게 된다. 다른 정보를 더 얻기 위해 모르핀 중독자인 그를 방에 가둔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낸 후 찾아가니 자살한 것처럼 보이면서 죽어있었다. 왜? 누가? 그를 죽인 것일까?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살인의 시작일 뿐이다.  

 

 이 사건 이후 엔젤은 자니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루 일당 50불에 열흘 기간으로 500불을 선불로 받았다. 1959년 뉴욕을 배경으로 엔젤은 자니의 과거를 좇는다.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니 한때 약혼했던 여자와 악단이 나온다. 이제 과거 속에서 단서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들을 만나고, 뒤좇으면서 부두교의 의식을 보게 된다. 여기서 그의 숨겨진 비밀 한 가지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단서보다 이어지는 살인이 더 문제다. 의사처럼 그가 자니의 흔적을 뒤좇고, 하나의 단서를 찾을 때마다 살인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누굴까?   

 

 작가는 엔젤의 행동을 통해 하드보일드 형식을 보여준다면 그가 좇고 파헤치는 과정에 드러나는 살인과 의식을 통해 오컬트 분위기를 풍긴다. 이전에 본 영화 이미지와 앞부분에 나온 문장 덕분에 하나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곳곳에 흘려놓은 단서들을 무심하게 본 결과 가장 중요한 설정을 놓쳤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몇 쪽을 뒤적이니 그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마술이니 트릭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그 설정으로 모두 가능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이니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섬세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과 50년대 말 뉴욕의 풍경을 멋지게 그려낸 것은 분명히 작가의 역량이다. 빠르고 쉴 새 없이 읽어 나가게 만들고, 마지막 결말에 허탈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 영화를 다시 본다면 완전히 새롭게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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