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땀 - 여섯 살 소년의 인생 스케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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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 그림책에서 처음 만났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접했거나 소장하고 있을 <도서관>과 <리디아의 정원> 이다.

부인인 사라 스튜어트의 글에 남편이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이다

아마 아이들도 좋아하겠지만 부모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들일게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의 성장과정과 노년까지 책과 더불어 사는 삶을 따뜻하게 그린 <도서관>이 먼저 끌렸다가  건강하고 밝은 소녀의 낯선 곳에서의 성장과 뿌리내림이 담긴 <리디아의 정원>은 언제나 위로가 되고 좋은 힐링이 된다.

이후 <책 나르는 아주머니>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등을 읽었다

내 기억속의 데이비드 스몰은 환한 햇살 가득한 배경을 가진 밝고 따뜻한 그림으로 기억되었다.

 

<바늘땀>은 데이비드 스몰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이며 자기 스스로 치유의 방법으로 그려낸 자기 이야기다.

앞에 언급한 그림책들의 그림체와 다르게 어둡고 괴기하며 무섭고 두렵지만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궁금증을 가지고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한다.

성인이 된 작가의 시점이 아니라 여섯살 어린 소년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래서 철저히 그 아이의 시각이고 그 아이의 이해만큼 보여지는 가족의 풍경이며 모습이지만 그것이 설령 왜곡되고  각색되었더라고 그 분위가나 색채는 그 당시 그 아이가 고스란히 느꼈을 그 감정 그대로의 것이다.

 

도데체 왜이럴까 싶게 부모들은 무심하고 냉정하다.

우울증 혹은 다른 문제가 있는게 분명해 보이는 엄마의 말없는 폭력과 공포감 그리고 그 앞에서 침묵하고 다르게 발산해버리는 아버지의 냉정함 그리고 자기 세계로 가버린 형 사이에서 어린 소년은 스스로의 도피처를 찾아낸다.

말없는 침묵과 샌드백 두드리기 . 드럼 두들기기 사이에서 소년은 앓아눕기로 도망친다.

부비강의 문제를 가진 소년은 의사인 아버지에게 아마 당시의 치료법이었을 엑스선을 쬐는 방식으로 진료를 받아왔다.

모두가 무심하고 서로 관심이 없는 가족사이에 병약하기까지 한 소년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경험하고 혼자 판단한다.

가끔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기도 하지만 돌아보는 엄마의 표정은 무섭도록 무표정했다.

그리고열세살이 되던 해 목에 혹이 발견되지만 무심하고 무심한 부모를 그대로 방치했다가

3년 뒤에 수술을 받지만 그 수술은 두차례나 이어지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목에 선명하고 괴기스럽게 새겨진 바늘땀들

소년의 목에 새겨진 그 흉터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다  읽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이야기가 소년의 시각에서 기억되고 재생되었으니 어딘가 분명히 왜곡되고 잘못된 기억이 있지 않을까 자꾸자꾸 앞장을 들춰봤다.

설령 아이가 가진 조작된 기억속의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들이라도 왜 그런 기억밖에 남지 않았을까?

 결국은 아이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어디에도 의지 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자기 잘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엄마의 무심함을 이해하기 위해 그 가족들까지 거슬러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모든 일이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더라도 그렇게 되물림되는 것을 당연하다고는 하기 힘들다.

 

시커멓게 변할만큼 해집어놓은 상처를 얼기설기  장화 끈 졸라매듯 이어놓은 바늘땀

그건 그 소년의 관계들이다.

부모와 그리고 사회와 모든 관계가 벌어질대로 벌어졌고 헤집어지고 겨우 얼기설기이어져있을 뿐이다.  위태롭게 아슬아슬하게

 

소년은 모든 걸 통과했다.

이겼냈다거나 견뎌냈다고 말하기보다 통과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바늘땀은 여전히 흉터로 남아 잇을 것이고 냉정한 부모는 다시 돌아봐도 냉정하고 폭력적이었다. 그렇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소년이 조금 더 단단해졌고 다른 관계들을  따뜻하게 이어가는 경험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내왔다.

피하지 않고 그냥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세삼 알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멘토가 멘티에게 이리 저리 얽힌 모든 관계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에게 위로 받는다.

가까운 관계 믿고 의지해야하는 관계에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물과 음식과 공기만큼 사람 사이에서 사람은 살아갈 근원을 얻는다.

새삼스럽다.

 

조용한 나레이션이 깔리는 흑백 무성영화를 한 편 본 느낌

다음 장면에서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이제는 이제는 하며 마음졸이게 하지만 결국 가장 무서운 건 어떤 폭력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폭력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 분위기라는 걸 책은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담담한 현재로 마무리 되어 더 감동스럽다.

 

 사족           주인공 엄마의 입장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드고 싶어졌다.

                  아들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냉담하고 무심한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녀 역시 폭력에서

                  성장했다. 선천적으로 아픈 몸과 불행하고 아픈 부모 그리고 레즈비언이라는 정체

                   성까지 그녀의 삶의 이야기도 귀 귀울여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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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희망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제 서재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이 시작됩니다.
새해에는 항상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 행복한 새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생각 1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내 존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질문

내가 처한 상항이나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가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질문

내가 내 마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을 하고 들여다 봤을까

앞뒤 전후 상황 말고 그 때 그 상황에 부딪쳤을 때 혹은 그런 말을 하거나  들었을때 내 마음이 어떠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질문

 

어떤 사건이 생기고 나면 원인을 먼저 생각한다.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원인을 알아야 나중에 예방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그러나 원인을 알고 나면 모든 상황은 원인에 맞춰진다.

우울증이었대

아하. 우울증이었구나 역시

우울증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판단도 사람에게 붙는 것이라면 우울증이 모두 하나의 우울증이 아니다.

이 사람의 우울증 저 사람의 우울증 저기 멀리 있는 사람의 우울증이 다 같지 않다.

그냥 그렇게 진단이 되고나면 처방은 한결같지만 누군가는 약이 기가막히게 잘듣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슬프고 아프고 일상이 힘들다. 누군가는 아닌 척 더 밝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땅을 파고 들어가도 자꾸더 파야 할거같아진다.

어떤 상황의 원인 분석뒤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분석이 끝나면 우울증으로 카테고리가 엮이면 제각가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김모모 박땡땡 한 공공 주아무개 등등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우울증 환자 보통명사가 된다.

그리고 그냥 잊힌다. 우울증이래...

사람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내려가는 순간 더이상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살아가려고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수단이 폭력일 수 있다. 불꽃같은 폭발일 수도 있다.

 

#  생각 둘

누군가의 고통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 충고나 조겅 평가나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하고 상황만 인식할대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해버리면 상황에 대한 팩트는 대부분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그 사람을 알 수도 없고 그 상황을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 때 던지는 어떤 말도 비수가 된다.

물론 잘 되라고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 옳은 말인데 재수없는 말일 뿐이다.

 

아이가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고 힘들어할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들어주는 일이었다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은 아이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겠구나 싶을때 그런 상황이라면 이러이러한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한 번생각해보라고 내딴에는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그게 옳았다 감정적으로대응할 일도아니었고

알겠다고 방에 들어간 아이가 잠시 후 나와서 날카롭게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말은 다맞아 생각해보는 틀린 건없지 그런데 그 말이 참 재수없어"

충고조언 판단 평가가 엉뚱한 곳에서 애쓰고 있고 욕을먹는다. 

누가뭐라고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잘알고있을 것들인데

잘난 척 내가 다 아는 척 나섰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그런 일은 늘 되풀이 된다.

 

#생각 셋

 

어떤 감정이 드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감정은 모두가 옳고 필요하다.

긍정적인 감정은 옳고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다고할 수없다.

사람이 언제나 둥둥 떠서 살 수도 없다 가끔 땅을 파고 들어가 혼자만의어둠속에서 위로 받고 싶을 때도있다.

저 인간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심한 폭언과 함께 드는분노와 패배감은 가질 수 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절망을느낄 수도있다

사실  누구를 죽이고 나도죽는 일이쉽지 않고 옳지않은 것을 나도 알고 모두가 나를 미워하지는않을 것이다. ( 세상 인구가 얼만데 )  그러나 그만큼 감정이  격해진것 뿐이다.

세상에는 사람수만큼의 다양한 감정이 있다. 내가 아는 감정은 그저 내 감정을 기준값으로 하는 감정들일 뿐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감정의 결이 더 많이 존재한다.

모든 감정이 각각 이유가 있다. 그럴 수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정이 올라온다.

알아차리기도 하고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고 억지로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착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꿈틀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은 당연하다.

그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옳다

그 감정만으로도 사람은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머쓱해지며 다시 힘을 얻기도한다.

그 상황에서 그감정이 틀렸다고  지적질 해서는안된다

그감정이 말이되고 행동이 된다면 그건  다른문제지만 감정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럴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알아주면 된다.

왜 그런 감정이 올라왔는지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 들었는지

그건 이해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감정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고 한다.

감정을 눌러야 행동이 나오지 않고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한다.

감정과 행동은 별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감정을 읽어주고 알아주면 행동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을 눌러서 행동이 나올 때가 더 많다.

특히 자기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늘어지지 게으르게?

누구보라고 이렇게 징징대는걸까?

내가 더 잘 했어야 하지 않을까

화를 내야 할 일은 아니었을거야. 교양도 없어 보이고 저질스러워 보였을텐데...

자꾸 자꾸 나를 점검하고 평가하고 재단한다.

내가 나에게 가장 나쁜 사람이 된다. 나는 그랬다

 

# 생각 넷

 

공감이 여기저기서 고생이다.

아이를 양육할 때 교육을 할때 인간관계에서 상담에서 모두 입을 모아 공감을 이야기 한다

공감이 뭔가 가끔 헷갈린다.

감정적 반응 자체가 공감은 아니다. 한 존재가 또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정서적 호들갑과 공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에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조각이 자극 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사실 공감하는 과정에서도 언제나 내가 우선이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하고 먼저 튼튼해야 상대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지않고 지치지 않고 지지할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이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결합된 성숙한 공감력을 말한다.

가끔 악의는 없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있다.

나는 공감하고 또 이해해서 한 말인데 가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 잊어 이젠 충분히 시간이 되었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죽은 @@만 생각하고 있을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니가 뭔가 잘못했으니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니 행동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봐

다들 힘들고 예민할 때야 너만 그런거 아니잖아. 왜 자꾸 힘들다고 하는거야

알았어 니 말 뭔지 다 알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알았다니까

 

판단하고 충고하지 말라.

그건 본인이 가장 아프게 알고 있는 부분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야 하고 자꾸자꾸 연습해아 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래서 공감은 배워야 하고 연습해서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타고난 감수성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풍부한 감정 이입과 감수성 그건 때로는 칼과 다르지않다.

 

 

# 생각 다섯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가끔은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경계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가 허물없이 경계를 드나드는 것이 따뜻하고 좋은 관계는 아니다.

내 영역에 함부로 침입해서 조언하고 충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마찬가지로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된다.

이건 냉정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내 가족이어도 자식이어도  아랫사람이어도 함부로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를 존중하듯이 타인의 경계를 존중한다.

거기서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

이건 내가 잘 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냉정해 보일까 무심해 보일까  하는 마음

서로 허물없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관계가 불편했다.

엉큼스럽다고 내숭떤다거나 뭘 그리 감추냐고 하지만 모든게 다 양지에서 햇살을 쬐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발효되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 생각 마무리

 

상담을 공부할수록 이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것도 힘들었고 대부분은 징징대는게 아닐까 하는 판단을 끊이없이 했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일에 기가 빨리는 내향적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사람을 만난 만큼 쉬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성정이라면 상담은 맞지 않구나

자꾸  판단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눌러야 하는 게 편했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말은 반사적으로 나오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입에 붙어 있는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었다.

타고난 성정이나 감수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력의 부족... 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노력을 덜 했던 건 맞다.

내가 바싹 다가가 맞춰보고 겹쳐보려고 하기 전에 내 자리에 딱 앉아서 일루 와바바  하고 싶은 말 있으먄 해바바  뭐 그런 태도

나름 잘 듣고 해주는 건 공감이 아니고 조언이고 판단이고 총고였다는 것

충고하고 판단하는게 편하다는 건 내가 충고하고 판단당하는데 익숙했던 게 아닐까

내가 스스로 나를 공감하지 못하고 늘 판단해왔던 것

이러이러해야하는데 어쩌지

이건 아닌데 왜 이러나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하나...

스스로 조급해서 무시했던 감정들이라 나에게 감정이란 늘 낯선 대상이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에도 무디고 불편했던게 아닐까

 

다정한 전사..

다정하기만 한 게 아니라  함께 싸워주는 것 그리고 싸울 수 있게 건드려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 사족

 

사실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빌린 책이라 밑줄을 그을 수 없어 답답했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정리하고 내가 나한테 공감하는 페이퍼를 쓰고 싶었다

성별 연령 직업 위치따위 껍데기를 빼고 오롯이 인간 푸른 희망이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떤 기분인지 왜 그런 기분인지 생각하고기록하고 싶었는데

늘 먼저 튀어나오는 건 정리 사고 그리고 넣고 빠지기

음.. 그래도 사서 제대로 읽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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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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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공감할 수 있어야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내가 만들고 구속한 나일수도 있다. 울퉁불퉁하고 느리게 가는 길. 당신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그 말은 스스로 단단해진 내 안에서 나온다.
공감은 익히고 훈련되어야 하는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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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체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준비할 수도 없고 조심할 수도 없다.

모르는 사람. 낯선 상황.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불안이었다.

내가 알지못하는 모든 것이 불안이라면 내가 아는 것은 안전한 것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

불안은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들이다.

알고 있지만 피하고 싶은 것

다가 올까봐 두려운 것들

그것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알지만 명확하지 않다.

대책이 없다.

아니 아니까 그것이 얼마나 아플지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두렵다.

주사가 아프다는 걸 아는 아이는 울음을 먼저 터뜨린다.

개에게 물려봤거나 쫒겨본 경험이 개 존재만으로 불안하다.

이제 불안은 그런 것들이다

모르는 것들이 아니고 아는 것들이다. 알지만 무대책인것들 그것이 불안이다.

다가오는 것을 알지만 움직일 수 없는 것

겪어서 다 아는데 또 똑같이 되풀이 될것 같은 기분

기대가 무산될거라는 예감

내가 경험하고 익혀서 아는 질서가 흩어지고 붕괴될거라는 초조감

불안은 간절함을 요구한다.

간절하게 내 예감이 다르기를 원하게 되고 이 익숙해져 몸에 익은 질서가 흩어지지 않길 바란다

불안 그것들은 수백마리의 나비가 되어 내 뱃속에서 날개짓을 한다

약도 없다.

 

      

불안은 자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불안이 이야기를 증식시키는데 그 이야기란 맥락이 어없다.

당연하다. 불안은 논리적이지 않다.

자꾸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히지기도 하고 아주 작게 쪼그라 들기도 하면서 기승전결이라는 맥락이 없다.인물은 저마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논리도 없고 맥락도 없지만 안간힘을 다해 이야기에 매달리고 부풀려간다. 이야기속에서 뭔가 안심이 된다.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현실이 이야기처럼 될 수도 있고

내가 현실과 이야기를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눈을 뜨면 현실이 있고 나의 이야기와 현실은 자꾸 어긋나고 뭔가 부조리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야기를 버릴 수가 없다.

아는 것에서 불안이 시작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가 만들어 지지만 불안은 여전히 존재한다.

뱃속의 나비들을 어쩌면 좋을까

한꺼번에 백마리가 날아가는 소리 그 진동들

빗소리 같은 그 소리가 불안하고 미치도록 그립다.

사는 동안 불안은 계속된다.

 

<인터뷰>  그 남자의 불안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이제 꺼내고 싶어하지 않은 3년전 그 사건을 한번은 마주해야할 거 같다.

그래서 낯설지만 친절한 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믿고 바라는 일이 진실이다. 사건과 진실 얽히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를 불안하게 한다.

전이된 불안 그 결말이 정말 통쾌한 반전이다.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진기의 작품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의 그림은 그의 연하 애인이다.

진기의 애인은 푸른 코트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다

푸른 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가 진기가 아닌 다른 나이든 여자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다.  진기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옷장에서 푸른 코트를 발견한다.

푸른 코트는 진기 애인의 것이므로 남편이 진기의 애인이 된다.

나몰래 친구와 남편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모델과 작가가 되었다.

푸른 코트를 입은 남편을 따라가지만  정류장에서 잡은 그 남자는 낯선 사람이다.

그 낯선 사람은 푸른 코트를 입고 있다

그리고 쇼윈도우의 마네킹 역시 푸른 코트를 입고 있다.

논리적으로 틈이 없는데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 된다.

a가  b라면 의당 그래야 하는데  순간 a는 c 가 되는 모순을 영재는 겪는다.

내 논리에 따른 이야기가 자꾸 어긋나고 영재는 불안하다. 남편과 진기 사이가 불안한게 아니라 나의 사고가 생각이 믿을 수가 없다.

 

< 잘못 찾아오다>  좀 서늘한 이야기

내가 이사한 집이 내 집이 아닐 수도 있다?

이사한 집으로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 그들의 황망하고 불안한 표정들

그리고 몇년전 공인중계사 시험을 준비할 때 알게 된 재희와의 만남

모든 일들이 꼬리를 물며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늘 제자리다. 결국 내가 그 집의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잘못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장소에 있는 나 자신의 문제라는....

 

< 내가 그렇게 늙어보입니까?>

유치원에서 노숙자와 부딪친다. 그 노숙자는 겉보기엔 60을 넘어보였는데 나와 동갑인 마흔이다

그 일 이후 나는 점점 늙어간다.

아니 나는 전혀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움칫거리이 그걸 말해준다.

뭔가 열심히 아니라고 하고 아닌 척을 하지만 점점 나는 타인이되어간다. 오히려 그렇게 믿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 전화>

핸드폰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모두 급해졌고 참을성이 없어졌다.

언제든지 통화되고 연결될 수 있다는 편리성이  연결되지 못함을 마주하는 순간 혼란에 빠진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인데 왜 전화를 받지 않은가

사람들은 점점 성마르게 불끈거린다.

세중과 술자리에서 언쟁이 있었지만  좋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하지만 세중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술집앞에서 세중과 어떤 여자를 보고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고 수정하고 또 생각한다

그런 사이 세중은 여전히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침내 세중의 회사앞으로 찾아가 그를 보지만 차마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세중이 급하게 택시를 타고 떠난 것을 보고 전화를 하고 마침내 통화가 되지만 결국 나온 말은 "나중에 다시 할게"

언제?

성마르고 초조하게 연결되길 기다리지만 막상 연결이 되고 나면 그 이유는 대단치 않을 경우가 많다. 단순한 안부  급하지 않은 용무  문자로 해도 그만인  상황들

그러나 그런 용건도 연결이 안되는 순간 점점 부풀어 오른다.

소설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손> 이 있고 < 오년전 이거리에서>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가 있다.

이야기는 맥락이 없다.

세벽 방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보지않고 짐작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인물이 있고

돈을 빌려서 사라진 동료를 아직도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새로온 하가 하는 말들을 믿기에는 자기가 견고하게 만들어낸 이야기를 버릴 수 없다.

내 이야기가 거짓이 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라 하더라도 마주하기는 두렵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창밖의 말소리를 5명의 아이들의 놀이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모호하지만 현실적이다.

 

작가의 첫작품 <지극히 내성적인> 에서도 불안이 감지되었다.

그때의 불안은 알 수 없는 불안이었다면

이번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서의 불안은 알기에 두려운 불안이다.

아니다

첫 작품집과 지금 작풒집 사이 작가가 변한 것도 있겠지만

독자인 내가 변했다.

그때 나는 모르는 것들을 두려워했다면

지금 나는 알고 있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주사를 맞아 봤고 개에게 쫒겨봤고 아이들의 직언이 주는 뼈때리는 통증도 겪어봐서

나는 이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밤마다 복권이 당첨된다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하고 자꾸자꾸  이야기만 뭉게뭉게 피워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책은 독자에게 와서 다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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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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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입장이 아닌 사람에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바라진 않는다.. 마음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나도 사람인지라 살다 보니 나쁜 줄 알면서도 싫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티 내진 말자는 이 말이다.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진짜 싫은 상대를 위해 이 불타는 싫은 마음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   P79

 

 

진정한 믿음은 미친 상태인지 몰라요.  P88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 (박완서)

 

키득거리다 보니 다 읽었다,

간만에 화장실에서 오래오래 독서를 하게 했다.

매체에서 본 모습이랑 막 겹치면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4차원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거 같다.

참 재미있는 사람인데 동시에 낯설지 않다는게  머쓱하다.

내게도 이런 빈틈이 많고 혼자 화내고 터지지만 타인에게는 누구보다 소심한 면이 있다.

혼자서 속물이고 상투적이고 참 가식적이라는 것도 느낀다.

누구나 다르지 않구나.

<미스 홍당무>는 못봤고 <비밀은 없다>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다섯중에 하나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글 중에 아버지가 부자이거나 남편이 부자가 아니라면 영화를 하지마라는 말이 참 와닻는다.

예술을 한다는 것  프리랜서로 살아야 한다는 건 그런 든든한 동아줄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는게 새삼 씁쓸하다.

 

솔직한 글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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