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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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이 꼭꼭 눌러쓴 듯이 마음에 남았다.

초등학생의 제야. 중학생이 된 제야 열일곱살이 된 제야가 어른들을 보면서 대하면서 혹은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들 그건 그 나이때의 나의 감정과 겹쳐진다.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막연함

재야는 그 감정들을 적확하게 포착해낸다.

 

"이상하게 꼭 사과를 할 사람은 사과를 하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사과하고 그런다."

 

"아저씨가 이렇게 비싼 선물을 사줬으니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좀 불편하다. 앞으로 아저씨를 보면 핸드폰이 생각날 거고 아저씨의 말을 잘 들어야 하ㅏㄹ 거 같고 억지로 빚을 진 것 같다."

 

"어른스럽다고 말하면 더 어른스러워야 할 거 같았다."

 

"글 잘 쓰는 제니도 부러웠지만 '싫어요'라고 말하는 제니가 더 부러웠다."

 

"어른한테 싫다고 말하는 건 왠지 무례한 것같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건데 아지씨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자주 그런다. 거절인 줄 모르고 같은 말을 계속하고 괜찮다고 대답하다보면 나는 점점 안 괜찮아지고 마음이 이상하게 상해버렸다'

 

아이라서 모르니까

아이라서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

아니라서 질문을 하면 안되고 몰라도 되는 일이 많지만 정작 아무것도 모른다면 왜 모르냐고 질문받고 추궁항할 수 밖에 없는 나이

어른에게 어떻게 대하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 관계가 모호하고 일방적이어서 뭐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안될거 같은 상황들의 반복들

아예 버르장머리 없는 용감한 아이가 되거나 말 듣고 어른스러운 견디는 아이가 되거나

 

제야의 문장들이 슬며시 스며들었다.

한문장 두문장 하나씩 문장들이 늘어날 때마다 그 글들이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어떤 부피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윽 스며들어 어떤 부피도 느껴지지 않는데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따끔거렸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은데.. 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제야는 자꾸 나보다 먼저 참고 견디고 어른스럽게 행하고 있었다.

참아내는 제야.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제야 어색한 제야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제야

생각이 복잡한 제야가   아프다.

사실 지금 나라고 다를까

제냐의 부모와 다를까 동네 사람이나 친척들과 다를까

제니나 승호와 다를까

아니 내가 제냐였더라도 역시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을 것이다.

샅샅이 뒤지고 마음 이구석 저구석을 뒤져서 탈탈 털어내고 내 한 귀퉁이 어딘가 있던 불온한 생각들 순간적인 행동들을 비판하고 따져들며 내탓을 했을 것이다.

제냐의 부모였다면 부끄럽게도 남의 이목을 먼저 떠올리며 내 아이의 허물을 감추는데 급급햇을 테고 제니나 승호라면 분하고 억울해서 팔짝 뛰다가도 끝없이 베풀어야 하는 위로와 수용에 내가 먼저 지쳐 화를 냈을 것이다.

내가 제냐의 이웃이라면 ...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에 맞춰 잘잘못을 따졌을 것이다. 그들과 다르지 않게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제냐의 문장이 내 속에 스며들어 아프고 아파서 계속 같은 문장을 읽을 수밖에 없음에도

그 일이 현실이라면 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것은 참 힘들다.

더구나 친족 성폭력이라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판단 전데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로 먼저 인식된다.가족사이에서 일어난 사적인 영역 어떤 사회적인 기준이나 판단 대신에 감정과 관계와 대의가 먼저 따르는 사건이다.

그렇게 점잖고 능력있고 권력을 가진 꽤 괜챃은 평판의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저지르겠는가.. 그들의 생각 역시 그랬다.

그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얼마나 믿음이 깊은 사람인데.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더구나 그 집에 얼마나 잘해주고 그 아이들을 얼마나 이뻐했는데

내가 더 잘 알고 내가 더 믿고 내게 더 이익이 되는 사람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고 목격자가 없다.

그 비오는 밤에 여자아이가 겁도 없이 외딴 곳 컨테이너에 갔다는 것 자율학습을 빼먹었다는 것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는 것

평소에도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웃으며 응했다는 것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카톡에 답을 하고 이모티콘을 써가며 대화를 했다는 것

그런 험한 일을 당했는데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병원에 가서 증거를 찾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것.

모든 것이 제야에게는 불리한 일이다.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런 증거도 손에 쥐지 않은 열일곱은 그냥 그렇게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은 늘 그렇듯 비슷비슷하게 흘러간다.

부모는 제야를 보호하는 일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잊는 거라고 믿었고

사회는 제야를 먼저 의심하고 탓했고

그 남자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소설 후반부 길고 긴 묘사로 드러나는 그의 품성은 아무런 의심을 할 수 없다.

사람좋고 점잖고 매너있고 이전에 단 둘이 있을 경우가 많았음에도 늘 깔끔하게 거리를 두고 대했던 경험들 말들 행동들  그는 무서운 괴물은 아니었다.

친절한 당숙이고 능력있는 친적이고 누구에게나 매너와 호의를 베풀줄 아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 비오는 날이 그에게는 순간적인 실수일 것이다.

아니 평소 제냐에게 느낀 호감이 그날 더 크게 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이고 그 일을 해서는 안되는 거라는 걸 그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변명을 하든 그가 받은 피해보다 제냐가 받은 피해와 고통이 더 크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그도 주위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고 하지 않았다.

남자라면 한 번 쯤 그럴 수 있는 일

먼저 꼬리친 여학생이 잘못한 거고  지금 와서 잘잘못을 가려서 누가 더 손해를 볼거냐는 가벼운 그러나 날카로운 말들

괴물을 늘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걸  드러내도 괜찮은 상황에 아무렇지 않게 그 얼굴을 드러낼 뿐이다.

그건 남자의 본성이 될 수도 있고 순간 나만 느끼는 애정일 수도 있고 흔히 일어나는 남자들의 실수같은 거라고 말해지기도 하지만 괴물의 얼굴은 피해자에게 두려움과 수치심을 줄 뿐이다.

결국 피해자가 떠나는 것 도망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제냐는 자기가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게 망가졌다고 하지만

늘 더 아래는 있다. 더 망가질 수 있었고 더 처참해질 수 있었다.

그건 아직 그에게 희망이 있고 괜찮아 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참아오고 견뎌오는 시간을 버티면서 제야는 조금씩 일어선다.

지금도 일어서고 있을 것이다.

 

다른 상황도 마찬가지지만 친밀한 관계의 성폭력이 힘든 건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괴물도 짐승도 아니었고 친절하고 상냥한 어른 남자였다.

그래서 나는 괴롭고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빠르게 대응했더라면 내가 들뜨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일이 있고서 아무렇지 않은 상대를 보게 된다면 더 혼란스럽다.

이게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인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만 가만 있으면 괜찮을까

제야도 그렇게 고민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한다.

가만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이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도 당할 수 있다. 고통은 또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때 나는 아팠고 두려웠고 부끄러웠고 그가 잘못한게 맞다.

그렇다면 말해야 하고 알려야 한다고 제야는 생각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다시 그 짓을 하면서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 어쩌면 제니가 아프고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이 제냐를 움직이게 했고 더 힘들게 했고 견디게 했다.

늘 그렇듯 이차 가해는 첫 가해 못지 않게  아프고 무섭다.

세상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이다.

 

제야는 애쓰는 사람이 될거라고 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너무 쉽게 괴물이라고 짐승이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쉽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더 편하고 쉬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노력하는 사람 애쓰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일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장인데 슬픈 성장이다.

 

 

"부끄럽더라 어른이면서 어른 아닌 척 살아온 나한테 실망했고 어른인 척 어른 답지 못한 인간들 한테도 많이 실망했어 부끄러웠어. 정말 부끄럽더라.

 어른으로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겐 눈과 귀가 하나씩 더 생겼구나. 남들에게는 없는 조직이 뇌에 하나 더 생겼나보다. 눈과 기와 뇌조직이 하나씩 더 생겨서이제 다른 사람처럼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은 가해자의 언어와 피해자의 언어를 함께 들려준다.

늘 뻔하게 들어왔던 그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다시 들으며 섬뜩하고 두렵다.

쉽게  생각하고 뱉어내는 말들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되는지  내가 본다.

힘겹게 내뱉는 그들의 말들 그들이 견디는 시간들을 들어다 보면 쉽게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고 힘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모르면서 뿌려대는 격려가 오히려 비수가 된다.

그냥 옆에서 함께 견디며 있어주는 것  그것말고 뭘 더 할 수 있을까

 

꾹꾹 눌러쓴 문장들이 서서히 스며든다. 조금씩 물들어간다.

책장을 덮어도 자꾸 제야가 생각난다.

잘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그런 상투적인 말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그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마음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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