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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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위치한 계급과 경제력 학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조건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이해하는 범위내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타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배워서 되는 일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나도 넓은 세상의 아주 사소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지하고,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꾸 되물어보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기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판단이나 조언없이 그저 들리는대로 들어주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자꾸 개입하고 싶은 나 자신을 눌러야 하면서 그 마음에 이입하고 동시에 다시 나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게 하는 힘 그게 필요하다,

 

가정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는다,

폭력에 노출되어 계속 반복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그 되풀이되는 폭력에 익숙해진다고 생각했고  왜 여성들이 그 지옥같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가를 의아해했을 뿐이다,

나 역시 어쩌면 세상에서 운 좋게 양지만을 밟아 오면서 모든 세상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 유사 남성일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양한 연령과 학력 계급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다,

여러 사례에서 피해 여성들은 다양하다

단순하게 학력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여려움이 있는 여성들이 주로 폭력에 시달릴 거라는 편견

적어도 배웠고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여성이라면 폭력에서 벗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남편의 문제( 외도나 폭력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에서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떠도는 말인데 남편의 연봉이 얼마 이상이라면 그냥 참고 살아라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라는 거다.,

세상은 이혼녀에게 더 각박하고 험난한 곳이라는 말도 늘 곁들여진다,

물론 그런 조언이 시도때도 없이 맞고 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왠만하면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그놈이 그놈이고 세상은 혼자 사는 그것도 다시 혼자 살게 되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쉽게 보거나 실패한 인생으로 보는 게 전부이므로 새로운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그게 꼭 현실적인 조언인마냥 돌아다닌다,

 

또 하나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간혹 이혼을 고민하면서

아직 경제적 자립도 힘드니 아이는 두고 나오면 어떨까 하는 고민글에

빠지지 않고 붙는 댓글이 이것이다,

얼마나 독하면 자식도 버리고 나오려고 하느냐

돈이 없어도 파출부를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렇게 악마같은 남편이 자식인들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줄 아느냐 아이를 버리고 나오느니 차라리 참고 살아라

 

결혼한 여자는 이미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다,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며 딸일 뿐이다,

남들은 참고 사는데 그걸 못참고 뛰쳐나오려고 하느냐

아이 생각하지도 않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냐

시부모는 언젠가 늙고 죽는다, 조금만 버텨라

친정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느냐

어떤 선택이든 그 곳에 나는 없다, 주위의 눈만 바글바글 존재하고 책임없는 훈수들만 존재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 중에는 아이만 다 키우면 다 혼인시키고 나면 이혼하겠다고 결심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있을 거다 많이...)

결국 아이에게 결손가정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 오롯한 자식에 대한 책임을 여자는 짊어지고 있다,

학령기 아이를 애비없는 자식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애미없는 자식)

사춘가 아이가 혹시나 남들고 다른 부족한 가정형편으로 삐뚤어질까봐

행여 취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혼인에서  손가락질 받거나  꺼려지게 될까봐

나아가서는 혼인 후에는 사돈보기 남사스럽고

이미 살아온거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라고 그럴까 하는 마음에

결국 모든 선택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만하면 나쁘지 않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세상이 바뀌어 여성상위시대라고들 했다,

알파걸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남녀공학의 남학생은 여학생들을 위해 깔아준다고들 하고 여성의 대학진학율이 높아지고 상위 성적을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사법고시등등에서 여성 합격율이 높아지고  있다, 교실에서도 여자애들은 만만하지 않다, 일단 말싸움에서 남자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은 논리와 표현력과 단결력까지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주먹이 날아가면 결국 폭력을 택한 남자아이는 야단을 맞는다,

부모들은 말한다, 여자애가 남자애를 자꾸 살살긁어대니까 그런거라고

결국 남자애들이란 단순하니 감정이 앞서서 때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결국 매를 벌는 짓을 하고는 여우같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때린 너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말로 놀렸거나 다그친 너도 잘한게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다,

여자는 대꾸하거나 말대답을 하거나 논리를 앞세우며 남자에게 대척하는 순간 나대는게 되고 매를 버는 일이 된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아들들에게 딸들가 상대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나대는 여자애들이랑 사귀지 말라고 하고 여자에게 나서지 말라고 하고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족속이라고  말하고 여자보다 성욕이 강한 존재이니 그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살랑거리지 말라고 하고... 남자는 남자는  어찌어찌해서 여자가 조심해야한다,

결국 당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조심해야할 일들뿐이다,

그러게 조심했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을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느냐고 안그래도 상처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에게 또다시 소금을 확 뿌리는 꼴이다,

 

그런 모든 일들은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는 그대로 다시 재현될 뿐이다,

니가 살림을 하지 않았고 게을렀고 내 말에 대꾸했고 무시했고 나보다 돈을 잘 벌고 나보다 더 배경이 좋으니 맞아도 된다고.. 그렇게 합리화된다,

 

 

책에서 가장 무릎을 치는 부분은 가족은 사회의 영역이 아니고 사적인 영역이라는 말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문맥 가족이란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라는 명제 그게 참 무서운 거였다,

가정  즉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로서의 존재이지 사회는 아니다,

가족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이고  그곳은 가부장적인 힘을 가진 남성 가장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격영역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알력이나 갈등은 그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사회에서 개입해야 할 곳은 아니다,

그저 사생활이라는 말로 외면받는 치외법권지역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를 맞아도 그건 부부사이의 일이고 부부싸움이란 타인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영역일 뿐이다,

누구나 알지만 눈을 감는다, 가족은 타인의 성역이고 사사로운 일이므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서로 에티켓이되어버린다,

 

가족폭력방지법이라는 것조차 매맞는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폭력으로 깨어진 가족을 어떻게든 다시 끼워맞추어서 행복하고 화목한 사회의 기본구성으로 되돌리는 것뿐이다,

여성의 고통을 드려다 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 와중에 여성들 또한 가족을 꺠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게 결국 여성의 역할로 완성되는 기괴한 구성이다보니

여성이 가족에서  도망치거나 독립해버린 순간 그것은 가족이 아니게  된다,

온간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가고 모든 비난은 여성이 감당한다,

아직 어린 혹은 예민한 아이들을 위해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남편을 위해

남들에게 우세스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그러진 자존심때문에 그저 모든 문제를 끌어 안고 가려고 하고 그 러기 위해 택하는 선택은 모든 것이 내탓이다,,, 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애교가 있지 않아서 내가 게을러서 내가 그때 한눈을 팔아서

저 사람은 순간 욱해서 너무 화가 나서 자존심에 기스가 나서,

그렇게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고 어쨌든 금이 간 가정을 부둥켜 안는다,

그 날카롭게 깨어진 모서리에 가슴을 베이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내 폭력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들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두 정치적이고 권력문제라고 본다면 폭력을 당연할 수도 있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신뢰로운 관게여야할 부부사이에도 권력이 존재해서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왜 부부사이의 폭력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아니라고 다들 믿어버리는 것이가가 문제이다,

아내 폭력이 사회속으로 나와서 이것은 더이상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할 때  불편해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 역시 불편하고 힘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내가 글로 배운 세상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 알게되는 도끼로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일이었다,

 

안서니 부라운의 <돼지책>에서 돌아온 엄마는 변한 아버지와 아들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평안하게 가정일을 분담이 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시 구타속으로 돌아가고 가족을 버린 모진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게되고 그녀를 믿지 못해 화가 난 남편의 행동에는 정당성을 얻게 되고 그녀는 점점 더 의무감만 늘어갈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 그녀조차 이혼녀라는 이름으로 쉬운 여자라는  편견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책이 나온지도 꽤 되지만  지금껏 변한 것은 여전히 없다,

념편의 폭력은 가정사이고 여자의 반응은 계획적인 범죄가 되고 

가정의 행복은 여전히 사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은 차라리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읽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일이다,

꺠닫고 실천하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몰랐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런 저속한 짐승같은 남편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남성들도 자기를 무얼 모르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스스로 누리고 있는 평온과 행복 뒤에 누군가의 눈물이 있는건 아닌지 누군가의 억울함이 숨은 건 아니지 말이다,

 

책이 도끼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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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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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동네 서점을 열고 운영해 가는동안 일기로 쓴 글이다,

일기라 개인적인 감상도 있고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엿볼 수도 있었다.

이제 책을 읽지 않은 시대에 서점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고집도 있고 그럼에도 이것이 삶을 지탱하는 일이므로 영업과 매출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서점이 마을문화사업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이어진다,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그래서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

서점을 열고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간판을 달고

오래 살았던 동네에서 서점을 열면서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고객이 되고

내가 읽었던 책을 선택하는 누군가와의 인연을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들 ....

현실인 동시에 낭만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도 동네서점을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나름 중형서점이 두개 있는 동네지만 왠만하면 알라딘에서 구입하게 되고

아이들 참고서나 문제집 간혹 사는 주간지 정도만 구입할 뿐이다,

동네 서점을 이용해야지 하는 마음은 먹지만 10퍼센트 할인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중고책을 사고 팔아도 조금은 삭막하고 간편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더 편하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 중고서점도 가까이 있다)

하나 둘 문을 닫는 서점이 늘어나면서

간혹  낯선 동네를 걷다가 서점이 보이면 반갑기도 하고 왠지 애틋하고 짠한 마음도 든다,

영업은 잘 되려나  뭐가 잘 팔리나....

 

한때 철없이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세상 가장 한가로워보이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도 있고

적어도 책을 사러 오는 고객이라면 예의와 상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만은 아니다,

책을 통해 이웃을 만나고 만남의 장이 되고 문화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숨기좋은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나중에 내가 내 책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온다면 온라인 중고매장말고 여기에 내 책을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고

나도 일기를 써서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저렇게 작고 가까운 서점에서 조금은 낯설고 다정한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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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3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그만 동네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정말 책 좋아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적 드문 서점이 마음에 들거예요. ^^
 
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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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맘에 든다,

일단 두께가 부담이 없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펼쳐 읽기 편하며 어디든 펼쳐지는 부분에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나의 책읽기 단계는 어디쯤일까

적어도 초급은 지났다고 할 수 있고 중급도 조금 지나지 않았을까 하고 과감하게 생각한다

고급이라고 하기엔 아직 독서력이 단단하지 않고 어려운 책은 조금씩 피하고 있는 중이니까

중급이긴한테 조금 연차가 된 중급? (이게 무슨 말인지,,,,)

한때 ebs 초금 영어회화를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왠만하게 초급은 넘어가도 될 상황이라고 판단했지만 중급은 초급보다 조금 더 어려운게 아니라 많이 어려워보였다,  한달 중급을 듣다가 다시 초급으로 계속했다,

뭐 영어라는게 언어니까 초급만 열심히 해도 문제 없지 않냐고 스스로 중급을 신포도로 만들면서

그 단계를 넘기질 못했다,

무언가를 배울때도 사실 시작은 잘 하는데 어는 순간 한 과정을 넘어가는 순간에 늘 머뭇한다,

충분히 자기 능력을 믿고 저질러야 하는데 그게 늘 힘들다,

누구나 10을 모두 가지고 앞으로 나가지는 않아요 4 밖에 없어도 10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10은 아니어도 5 6  7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라고 충고도 들었지만

늘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서 늘 나를 채워내지 않은 채 단계를 넘어가거나 남앞에 선다는 건 일종의 사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책읽기에 대한 책 리뷰를 써야하는데,, 자꾸 옆으로 이야기가 세고 있다,

이 책에서 책 읽기에 대한  충고들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다,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실 책읽기에 어떤 정해진 모범 담안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수가 인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있다,

좋아하는 책부터 읽고 조금 어려운 책도 도전하고 다양하게 읽도록 해서 지식이나 정서상의 편중을 피해야 한다든가,,

 

책에도 나오지만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세상에 내가 아는 건 얼마나 적은 부분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고 내가 모르는 작가도 많고 내가 모르는 분야도 많다는 걸 알아가는 것 결국 나는 이 우주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겸손함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양가적 감정인지 몰라도 조금만 읽어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를 인간은 읽는 인간이기만 해서 읽을 수록 점점 움츠려 들기도 하고 어쩌다 이러아러하지 않을까요 하고 언급했다가 와` 하는 눈빛들을 보는 순간 아! 실수~~ 하는 감정이 훅 하고 들어온다

읽는 건 잘하는데 그걸 안다고 드러내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읽었다고 아는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동시에 읽어도 모른다는 건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야기한다,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펼져야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움츠려드는 이유

내가 모른다는 걸 자꾸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게... 좋은 걸까? 좋지 않을까?

 

책을 읽어 겸손해진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알게 된 지식이라면 지식   정서라면 정서 자기성철이라면 성찰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니까 내가 알게 된 것 깨닫게 된것이 당연히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이정도도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누군가를 대할때 한없이 가혹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모를까? 하는 답답함을 느끼는게

항상 기준에 내가 되어버려서일것이다,

사람에 따라 어떤 부분은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월등하기도 하다,

누구나 균형있는 게 아닐 것이다,

어느 부분은 넘치지만 어느부분은 모자라는 것이 사람일진데

늘 나는 내가 가진 부분을 기준으로 넘치는 사람에게는 와~ 하며 기가 죽고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아니 이럴수가 ~ 하며 놀라고 화가 난다,

책을 읽어도 인간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이

적어도 몰라서 잘못하는 일들을 줄이는데는 도움되었으면 한다,

남의 감정을 몰라서 남의 상황을 몰라서 타인이라고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상황들

그래서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줄여나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서 모든 사람에게 적확한 대응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면서 아 이런 감정도 있겠구나 이런 상황도 있는거구나 알아가면서

그럴 때 내가 조심하고 도움은 아니더라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알아서 남주는 건 아니어도 알아서 남에게 상처 입히는 것만은 아니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책에서도 함께 읽는 모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오래 독서모임을 했지만  책에 대한 지식이나 그런 것을 더 많이 얻은 것은 아니다,

자꾸 삼천포로 빠져서 짜증나는 순간도 많았고

내가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누군가가 단정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의 욱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경험도 했고 너무 시시한 책을 선책하는 것이 한숨도 쉬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느끼는것 생각하는게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의 상황이나 성장과정 성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는 걸 늘 지나고 나서 꺠닫는다,

그렇게 꺠닫고도 다음 시간에 가면 또 열을 받고 짜증을 참고 잘난척을 누르지 못한다,

그리고 지나고 또 깨닫지만.. 늘 되풀이다,

그래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나 스스로 위안을 한다,

 

어떤 책이 내게 왔으르 때도 나의 상황에 따라 그 책이 다르게 읽히듯이

서로 다른 타인들이 같은 책을 읽는다고 같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끔찍하지 않을까

 

나는 아마  앞으로도 책을 계속 읽을 것이고

조금 변화되기도 하고 전혀 바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터무니 없이 너그러워질 수도 있고 찌질하고 통속적으로 질투하고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앞으로 두걸음 뒤로 한걸음 해가며 조금씩은 나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죽을 무렵에는 그래도 태어났을 무렵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되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책 읽는 거라는 건 변함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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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의 진짜 목적은 ‘뒷풀이’입니다. 사실 뒷풀이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독서모임에 출석했어요. 뒷풀이 시간에도 책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ㅎㅎㅎ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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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매력적으로 시작해 치정극이 되고
사이코패스지만 왠지 응원하게되는 주인공이 자꾸 평범한 미친년이된다.
작가가 여자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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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나는 그동안 독후감을 써왔구나..

뭐 서평이라고 쓴건 아니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도 해본다,

알라딘 서재에는 리뷰가 있는 거지 서평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내성적인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야매로 검사한 애니어그램의 5번 유형은 사교성이 없다, (절대 사회성이 없는게 아니다)

자기 원칙에 엄격하고 감정적인 발산을 자제하며 머리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머리를 쓴다고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바로 연관시키면 곤란하다,

그냥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행동이 굼뜨고 쉽게 지쳐버린다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내가 말을 걸 때만 나에게 다가온다,

먼저 다가와 나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책은 내파 펼쳐 들어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해주지만 필요이상 친근하게 굴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침묵할 뿐이고 나에게 질문하지도 않는다,

책은 가장 좋은 도피처이고 가장  행복한 해방구이다,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멀어지게도 만든다,

잘난척 하느라 책만 보고 사람은 무시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잘나서 책만 보는 사람이 끔찍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구보다 내가 잘나지 않은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그렇게 말한 당사자도 내가 잘나서 책이나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냥 감정적으로 뱉은 말일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외롭지 않고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하고 책을 읽는 동안은 의미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싫지는 않았지만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온 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지쳤다, 그저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울때 느끼는 만족감이 변태처럼 좋았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

한권만으로 불안한 적도 있어서 차려입은 것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가방으로 비스듬한 어깨짓을 한 채 외출하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심지어 업무시간에도 틈틈히 책을 보는게 좋았다,

뭐 그래서 대단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많이 읽었던 아이가 많이 읽는 어른이 된 것 뿐이다,

 

지금 나는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 대신 친구랑 노는게 더 좋고 친구랑 떠드는게 더 좋다면 그걸 해도 된다도 생각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빠져서 하루종일 그 오빠만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도피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 내가 책으로 도망갔듯이 아이가 무언가로 도망치기 위해 열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요샌 너무 안읽어서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책읽기 = 지식이라는 공식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책많이 읽어서 대가리만 기괴하게 커진 괴물보다는

읽지 않아도 원칙을 알고 도리를 아는 게 더 낫다고 믿는다,

 

나는 왜 읽을까

내게 독서는 도피처였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너무 힘들고 불안할때 내 앞에 쌓인 숙제가 너무 많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며칠을 계속 책만 보고 싶다,

책만 보고 또 보다가 어느 순간 기록을 남긴다,

셔평이란건 생각치도 않았다,

그냥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내 감정 내 성찰 정도였다고 할까

책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게 고작이었다,

남들의 서재를 보면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는  글들을 좋아했지만

막상 나는 나에게로 향하는 길 이외에는 알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내 속엔 내가 꽉 들어차서 다른 곳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어도 결국 머리만 커지고 아무것도 아닌 어른인 나는

그렇게 아직도 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왜 읽을까

적어도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픈 사람 악한 사람 대책없는 사람 어이없는 사람 순한 사람 악만 남은 사람  후회하는 사람 불안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

나처럼 대책없이 비관적인 사람,,,,

조금씩 만남을 넓혀가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것도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없다는 걸 배운다,

누구나 옳고 누구나 귀하다,

제각각이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시간을 가지고 그만큼의 관계들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 그들 누구도 뭉뚱거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타인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걸 공감이라고해도 될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입장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쓰담쓰담해주는 것을 배운다,

책속의 누구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속의 누군가를 닮은  내 곁의 누군가를 본다,

이 사람은 그때 그 이야기속의 누군가를 닮았구나

진짜 이런 유형도 있구나 ...

나는 거꾸로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역시 나는 서평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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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7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제가 쓴 글인양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0   좋아요 0 | URL
여기 서재엔 서로 닮은 부분을 가진 분들이 많을거같아요. 그 중 님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아무개 2017-02-07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좋아요 열번 누르고 갑니다 *^^*

푸른희망 2017-02-07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님도 은근 소심하신가요?^^

cyrus 2017-02-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목적이 개개인마다 다르더라도 저는 리뷰, 서평, 독후감을 단순하게 같은 의미로 보고 싶습니다. 세 가지 용어를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릅니다. 굳이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면서까지 리뷰는 어떻고, 독후감은 이런 글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3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을 읽으며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떠올랐어요 딱 서평이라고 할만한.....님의 리뷰를 보면 제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책이 끌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