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셀라 부부는 아이를 잃고도 오래 살았다.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잃고 일상을 살고 웃고 먹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를 혼자 두지 말아야 했을까

뒷길에 난 거름구덩이를 이전에 메워야 했던 걸까

늙은 개를 묶어두었거나 데리고 나갔어야 했을까

그날 아이를 데리고 일을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만약에 라는 말은 일어날 일이 절대 없는 가정일 뿐이다.

아이는 죽었고 부부는 남았다.

사람들이 수군댄다는 것도 안다. 아이가 죽은 부모에게 위로를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행이 내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죽음은 사회의 것이지만 죽은 아이는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아이의 죽음으로 좀 더 내 주위를 살피고 안전을 다지고 조심하겠지만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부모 마음에서 상처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말이 없는 소녀를 맡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소녀를 맡았을지 알 수 없다.

다만 가족들이 힘겨워하는 걸 도와 주고 싶었을 것이고 소녀 하나쯤 맡아 키우는 일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상상하는 소녀는 다정하고 얌전하고 집안 일도 잘 도울 수 있는 그래서 어쩌면 단조로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을까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이를 만나고 씻기고 함께 먹으면서 부부도 처음엔 어색하고 멋쩍었을 것이다.

남의 아이 그것도 여자 아이는 도자기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긴장감도 있고 행여 아이가 보는 것들을 어디 옮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어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까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다정한 부부는 그 적절한 경계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첫 날 밤 실수를 한 소녀를 아무렇지 않게 소녀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받아주고 자연스럽게 처리를 했다.

소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하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 아이는 곧 떠날 아이고 정을 들이면 나중에 내가 힘들거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적당히 잊힐만큼만 사랑하자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이 깊은 부부는 그 잊힐만큼의 거리가 때로 가까웠고 때로 다정해서 낯선 환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를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계속 있고 싶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부부였으면 했을텐데

이웃의 수다로 아이도 부부의 상황을 알아차리게 된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친다. 말이 없는 소녀에게 그 말은 위로일 수 있고 삶의 방향등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밀이 없는 집에서 비밀을 공유하면서 소녀와 부부는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표현이나 상황은 없지만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이제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건 친밀함으로 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부부가 정해놓은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정말 내 아이가 된 것처럼 여름날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의 달리기 기록을 재고 응원하고 함께 빵을 굽고 우물을 긷고 바느질을 하고 축사를 정리하면서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늘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현실이 된다.

여름이 끝나고 소녀가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올 거라는 걸 알았지만 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간이다.

부부도 소녀도 이 시간이 영원할거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고 이제 서로 잘 알게 되었고 비밀을 함께 가지면서 비로소 가족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부부는 현실을 안다.

소녀는 내 아이가 아니고 부모가 따로 있고 언제든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아이의 짐을 정리하지만 작은 사고로 돌아가는 날이 미뤄진다.

부부에게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작은 사고

이제 부부는 그만하길 다행이야를 경험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되었다는 마음

어쩌면 그 작은 사고가 부부의 마음에 오래 묵은 짐을 조금은 덜어주지 않았을까

 

소녀를 데려다 주고 부부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 아이가 아니기에

그런 내 아이였기에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자기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게

우리는 조금씩 잊혀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한여름의 꿈처럼 좋은 시간이었음을 기억하면서

그런 부부에게 아이가 뛰어와서 안겼을 때 그 마음을 나는 모르겠다.

너무 벅차고 너무 사랑스럽고 그리고 너무 슬펐을 것이다.

너무 좋아서 슬픈 마음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고 어색한 마음을 소녀에게 선사했던 부부는

소녀에게 그 마음을 되돌려 받는다.

그것이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신 시간이었는지를

 

소녀에게 부부는 좋은 애착경험을 주었던 만큼

부부도 소녀에게 건강한 애착경험을 받았다.

서로에게 다정하고 고마운 존재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다.

그냥 다정하고 좋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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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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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마주보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애써 모른 척 하거나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이 소녀를 만나면서 어쩌면 내가 맞부딪쳤던 이름을 붙일 수 없더 감정들 상황들을 떠올린다.

무어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어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아주 나빠졌거나 내가 많이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둘러싸인 순간들

어찌어찌 그 사간들을 넘겨왔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소녀를 만나면서 다시 그때 감각이 떠오른다.

좋지만 좋다고 할 수 없는 마음 좋다고 하면 누군가에게 많이 미안해질 것 같은 마음 

낯설어서 좋은지 싫은지 미처 알아차리리 수도 없었는데 그냥 계속 그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럴ㄴ 마음들이 책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다섯명의 자녀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얼굴도 모르는 엄마쪽 먼친척에게 맡겨진다.

소녀는 이름이 없었다.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든 아무 상관없었을 것이다.

누구누구네 몇째 정도? 

그것조차 어쩌면 매번 질문을 받는 것일 수 있다? 니가 몇쨰였더라???

여름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아버지 차 뒷자속에 비스듬이 누워서 풍경을 보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설레거나 긴장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 그 마음은 상처받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미리 준비하는 단단한 껍질같다.

낯선 부부집에 내리고 아버지와 아저씨는 하나마나한 대화들을 하고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그저 말 잘들어라 라는 것밖에 남긴 게 없다. 

낯선 속에서의 생활 낯선 사람과의 식사 혼자 잠드는 밤

모든 것이 두려웠을 텐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어쩌면 이런 낯섦에 익숙했을 수 있따.

가까운 가족이라고 다정하거나 친숙한 건 아니다.

늘 새로운 낯섦을 느낄때가 있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아버지였던가? 내가 알던 어머니인가 라는 마음

내가 사랑했떠너 내 배우자였떤가 라는 낯섬들이 가까운 ㅇ들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그 낯섦은 때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툼을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설레임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물어봐서는 안되는 일, 알아차리면 안되는 일들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따.

무심하지만 다정한 부부는 소녀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함꼐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고 칭찬하는 것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고 편지통까지 달리기를 하게 하고 기록을 재는 일

우물을 길으러 가서 그 깊고 진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

함꼐 이웃의 장례식을 가고 바닷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

어쩌면 익숙한 일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떤 관계에서 내가 그 경험을 해내는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웃의 장례식에서 아이는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폭력처럼 느닷없이 알게 되는 붑의 비밀앞에서 소녀는 이 이야기는 입밖으로 꺼내면 안될 이야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어쩌면 그 말을 듣기 전에 어떤 짐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부부의 아픔을 아이 눈높이만큼 알게 된다.

그리고 아저씨와의 바닷가 산책에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잃어서 영영 돌이킬 ㅣ수 없는 상황을 알게 된다.

비밀이란 불안과 두려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 비밀은 누군가를 다정하게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핮다는 걸 소녀는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늘 했떤 일상에서 다른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이제는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안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우물을 깊으러 가고 우물에 빠진건  누구나 짐작하듯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게다. 그러나 우물에 빠진 소녀를 본 부부는 철렁했을 것이다.

거름구덩이에 빠져 잃어버린 아들 

우물에 빠져버린 소녀 

괜찮아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 라는 말이  다정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나를 다독이는 말이기도할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커버린 키만큼 이전의 소녀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거푸 묻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일 부부를 향해 달려가는 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저씨의 품에 안기는 일 그리고 아빠라는 말까지


#관심밖으로 밀려난 소녀가 생에 어떤 여름날 모든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된다.

그림자 속에서 갑자기 빛으로 나온 것처럼 눈부시고 낯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낯섫고 두려움 그래서 다시 눈을 감거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간질거리는 마음이 두려운 건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싫지 않은 것은 그 마음이 사랑임을 알기 때문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카나리아이니까

가족안에서 어던 문제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모두를 아는 것도 아니고 전후맥락을 알아차리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몸을 낯추고 모른 척해야하는 걸 안다.

애써 명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알아도 모른 척하고 들어도 듣지 않은 척 봐도 보지 않은 척을 해야할 때를 안다. 다만 아직 끈기가 약해서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서 물어보고 울어버리기는 하겠지만

감각에 예민한 아이는 입을 다물고 자신이 그 분위기에 눌리고 압도 당하고 있음을 모른다.

앙픈데가 없고 배고프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카나리아처럼 예민하게 감지하지만 정작 그 감각의 이름을 모른다.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표현되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처음 빛으로 걸어가 겨엄한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고 좋으면서 두렵고 영원히 끛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꿈이라면 어서 꺠기를 바란다. 

아이가 느낀 사랑과 정성이 아름다우면서 두렵다.

아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따.

예전과 다르... 그 다름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때  견딜 힘이 있을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어쩌면 현실은 시작이라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그 순간에 몰두하는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알게 된다. 



넷플릭스에 본 영화 칠드런 인 트레인

전쟁이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가난때문에 아이들이라도 잘 먹이기 위해 북부로 보내는 일이 많았따. 북부 공산당들이 아이들을 데령 ㅘ서 잘 먹이키워주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떤 듯하다.

주인공 아메리고의 엄마도 아메리고를 위해 북부로 보내게 되고 그 곳에서 아메리고는 자신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사랑받고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소년의 마음 변화와 함꼐 알고보니 모성이 깊었던 엄마이야기까지 나와서 조금은 한국적인 신파처럼 보이기도 하다.

아이가 집을 떠나서 비로소 사랑과 보살핌을 경험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느끼는 혼란까지 .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소녀의 이후 삶이 어떨지도 궁금하다.

이야기는 짧게 가장 절정에서 끝이 났고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지마 그 이후를 마냥 낭만적으로 기대해도 좋을지... 나는 너무 현실적인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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