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수를 한 적이 있다.

도안에 그려진 밑그림을 보고 칸 수를 세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흰천에 십자모양의 수를 채운다.

도안의 칸을 잘 세어서 흰천위에 하나둘씩 수를 채워넣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바느질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확하게 수를 세어서 틀림없이 알맞은 색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다만 지루하고 눈이 침침해질 수가 있다.

소설을 읽으며 십자수를 떠올린다.

어떤 이야기인지 전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읽는다.

더구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쳣는데 에세이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그냥 넋두리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어떤 광기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1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간병인으로 무대에서 발작을 일으켜 내려온 전직 배우가 온다. 같은 나이의 두 여자는 자매처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여자를 돌보면서 화자인 여자는 자신에거 혹은 그 여자에게 쓴 편지처럼 내용이 흘러간다. 아니 편지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여자가 배우여서일까.

모놀로그 무대위에선 배우처럼 독백하고 몸짓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그저 배경처럼 왔다가 지나간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

서로에게 닿는다는 것

본다는 것과 보여진다는 것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병원속 다양한 인물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약이 끔찍해진 같은 병실의 정옥 아줌마

전쟁통에 조카를 잃어버렸다는 비밀을 평생 간직한 노인

뇌로 전이된 암때문에 장작이 둘로 쪼개지는 아프을 느끼며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해버린 남자

한때 유도 관장이었으나 사고로 마비가 와 그의 유도관 학생이었던 물리치료사에게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노인

남편이 죽고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하는 감포 아줌마

생과 사를 함꼐 겪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주쳤다가 스쳐가고 서로를 알지못하지만 서로의 존재에는 익숙해진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읽다보면 문장이 말처럼 흐르고 리듬을 타고 흘러내리고 굽이친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더 멋질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사람들이 이 생각들이 어떻게 될까?

말이 없고 누워만 있는 여자를 돌보고 만지며 화자는 그녀가 자기인지 자기가 그녀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오로지 한사람의 대상만 바라보고 몰입하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상황이라면 둘 사이의 교감은 어쩌면 한사람의 그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는 요양소로 가게 되었을까?

능앞에서 혼자 걷기 연습을 하던 그 노인은 여전히 뚝뚝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왜 하필 그 장소가 경주였을까?

한없이 낮고 수줍고 고즈넉한 그곳이 독백과 잘 어울린다고 느낀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마침내 눈이 아리게 칸을 세고 그 칸에 맞는 숫자의 색실을 찾아 바늘을 꿰고 한땀 한땀 떠내려간  십자수는 완성이 된다.

과연 도안의 그림이 제대로 완성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저 근시안적으로 지금 당장 채워야 할 칸만 세고 색을 찾기에 급급했던 십자수는  멋진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거 였구나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손짓

누군가를 보려는 행동 보여지고 싶은 욕망

그것들이 켜켜이 알게 모르게 쌓여서 관계가 되었다.

스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었다.

그 여자. 그리고 그 곳 사람들

그속에 나는 나처럼 살고 있었다.

 

아직도 소설인지 시인지 에세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몽환적이고 긴 독백으로 이어진 한편의 극을 보고난 느낌이다.

두시간을 꼬박 어두운 극장에 있다가 나온 뒤에 느끼는 피로감이 남는다.

내가 읽으며 무대를 상상하고 소리를 상상했던 특이한 독서 경험이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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