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여섯권의 책

여섯권은 이야기중심이라기 보다 인물 중심으로 펼쳐진다.

스토리는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실 별 사건은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상투적이기도 하다.

자기만 모르는 자기의 이기심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자기만 참고 견딘다고 믿으며 소극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

지금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는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계략과 전술들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편견에 가득한 모습

내가 주고 싶은 사랑만 생각할뿐 상대가 받고 싶은사랑은 생각하지않은 것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인 삶 (두번째 봄과 자서전은 많은 부분이 겹치고 얽힌다)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 그러나 지루한 이야기

 

이야기는 지루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대단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지만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배려하는 인물

괸대지만 그 댓가를 바라는 인물

그건 내 모습이고 누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며 따라가다보면 거기에는 내가 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려는 건 성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않은 마음이 우선한 것이었고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정의감이 아니라 질투였거나 뒷담화를 하고싶었고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이 모든갈등의 원인이었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내가 그 기준값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1. 두번째 봄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었다면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걸 알 수 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집을 지켜내는 일. 어머니. 그리고 전쟁 결혼  출산과 이혼까지 자서전이 솔직했다면 이 소설도 가감없이 솔직하다.

누구나 그렇지않을까만 그녀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다.

이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떠올린다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시작한 글쓰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무심하게 흘리지 않고 꼭꼭 기억했다가 글로 풀어내리라는 은밀하고 강한 소망까지 닮아 있다. 기록하고 싶어서 기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않을 수 없어서 소설을 쓰게 된 두 사람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그 결심이 부럽다.

크리스티가 명성을 얻은 건 추리물이지만 그녀가 쓰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고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한 사람 속의 다양한 모습

작가가 되어 어쩌면 그녀는 자기의 삶을 공개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의뭉스럽게 정리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도 나오고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삶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선택이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2. 장미와주목

읽는 동안 누가 주인공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었다.삶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일테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내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 타인의 영향이 너무 커서 그를 빼 놓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볼 곳인가. 그 순간 주인공이 결정되고 이야기의 성격도 결정된다.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를 매혹시킨 상대는 게이브리얼이다.

계산적이고 냉혹하고 잔인한  그러나 더 할 수없이 솔직하고 본능적인 인물이다.

노리스의 입장에서 게이브리얼은 악인이다 그렇다면 게이브리얼이 본 노리스는 그저 불행한 장애인이었을까?

우리는 화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

결국 내가 아는 건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의 풍경뿐이다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전부를 단정짓는 일은 언제나 끔찍하고 오만한 일이다

 

" 욕심많고 이기적인 인간은 세상에 아무런해도 끼치지않아.세상에 그런 인간의 자리는 충분하지  (중략) 이상에 도취된 인물이야 말로 평범한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고 여자들을 괴롭히지 .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개의치 않네

하지만 자기 본위의 욕심이 많은 녀석은 큰 해를 끼치지 않아"

 

게이브리얼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큰 이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들다면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게이브리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그들이 어쩌면 더 큰 야망을 가졌다

자기 본위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았던 게이브리얼은 어느 순간 더 할 수 없는 악인이 되지만

그것 역시 노리스의 관점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뻔뻔한 짓을 했을 때는 명성이 높ㅇ아지고 딱 한번 발휘한 돈키호테식 기사도가 그를 주저앉히는 상황을 부른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불쌍한 여자를 동정해서도 안되고 인간을 보아서도 안되며 이상과 가치만을 부르짖어야 한다

 

"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볼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 말로 위험하니까 암흑같은 바다위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취선 같아요"

 

결국 게이브리얼은 폭력적이고 오만했지만 그들이 그를 미워하고 잊게 된건 그가 이방인이었기때문이 아닐까  선거에 이기기 위해 영입했던 사람, 이용가치가 있어 함꼐 했던 사람,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 뿐 진정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지만 반전이 충격적인건 게이브리얼을 이용할줄 알았지 알아보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뱀다리로 ... 여기 나오는 인물 밀리 버트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피해자인 동시에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린다.

남편의 폭력도 동네에 떠도는 풍문도 모두 자기 탓이다.

그러나 무엇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그녀의 죄책감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을 버리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나쁜 남자들을 반복해서 찾게 되고 동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또 다시 자책한다. 

시대는 달라도 성격유형은 다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다르지 않다.

소설속의 선거운동은 지금의 것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3.  사랑을 배우다.

 

지나친 연민은 모욕이다.

그것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연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그냥 내버려 뒤야 한다. 그를 신의 손에 맡길 뿐이다.

이야기는 지루한 편이다.

큰 흐름이 없다

완벽한 오빠가 죽고 이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던 아이는 뜻밖에 동생이 생겨버린다.

동생이 죽기를 기원했던 아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동생을 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모두 바쳐 동생을 사랑하기로..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야

 

그 사랑은 무겁다.

노라가 베푸는 사랑은 동생을 숨막히게 하고 견디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내몬다. 그게 다 노라 탓이냐고 할 수도 있다

노라도 어쩌면 불행한 희생자다

부모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떼쓰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은 옆으로 비껴서 있었고 요구를 참고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주기도 힘들다. 내가 아는 사랑이 전부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노라의 잘못도 아닌데. 노라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밖에없어서 애닮다.

 

4. 딸은 딸이다

 

가족은 가장 의지하고 가까운 관계인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이기에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받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녀를 위해 자녀는 부모를 위해 서로 자신이 가장 많이 참고 희생하고 견딘다고 믿는다. 말로 끊임없이 부담을 주는 부류도 있고 절대 드러내지 않지만 스스로의 희생을 세며  댓가를 바라기도 하고 가족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불가능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가까워야 한다 라는 명제가 모두에게 다르기에 가족은 견뎌야 하지만 견디기 쉽지 않다

 

세라와 앤은 세상에 단 둘이 남은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최우선이며 전부다 그러나 서로는 각자의 인격체이고 서로 다른 존재이며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은 서로가 자신이라고생각한다

분리되지 못한 모녀는 "상대를 위해" 간섭하고 삶에 기꺼이 끼어들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모른 척하며 사이를 벌여간다.

앤은  세라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세라는 앤을 위해 수단을 다해 위험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믿는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한 믿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는 닿지도 않으며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모른다. 알았다면 후회했을까? 아니 화를 내고 더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앤이 만난 소소한 행복이 될 재혼은 세라읭 반대로 깨어지고  세라의 결혼 선택은 앤의 무관심으로 불행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다 해주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는 충돌하고  솔직하게 미움과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결국 부딪치고 싸우고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말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왜 미워하는지 왜 미움을 받는지 알아야 고치든 설득하든 관계를 끊어내든 할게 아닌가

사랑도 숨길 수 없지만 미움도 숨길 수 없다

소설속에 꽤 괜찮은 직설적인 상담가가 등장한다

 

희생이라니 얼어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지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끝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이 훌륭해지는 순간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 않았어

 

전 세라를 위해 제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로라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모두 제 잘못이라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 내가 앤이라면 리처드를 포기한 것이 세라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마음의 평화때문이었는지 생각해 볼거야.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것 하나

아이를 위해 걱정하고 안달하고 그의 고민을 내가 끌어안고 해결해주어야 할것같은 사명감을 느끼고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오롯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게 라도 해야 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니까 이정도 희생은 이정도 부담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스스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는 희생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희생하고 힘들어하며 견디는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희생하고 참고 말잘 듣는 쉬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부담이 되지 않고 편안하고 언제나 기댈 수 있지만 언제든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 언제나 옆에 있으면 좋지만 떠나도 서운하지 않고 개운할 수도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단순하고 깔끔한 관계는 늘 부족해 보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쉽게 뭉개지고  누굴 위해서인지도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최선을 다하는 것만 남는다.

서로 피곤하다.

어쩌면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고 믿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폭력일 수도 있다.

 

5. 봄에 나는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나의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본다면 진실이 보일까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덜이 모두 거짓이고 꿈일지 모른다고  반대로 환상일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진실일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선과 허식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두 다시 구멍속으로 몰아넣어버리면 그만일까

나를 알고 내가 주었던 상처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습관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만 나의 실체를 알지못한 채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두렵다.

나를 안다는 것도 두렵고 나를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내가 잘 알아... 이말은 진실도 아니며 오만이다

나는 누구지? 이건 삶이 지속되는한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안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나를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이지면 결국은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존재이다.

단순하지만 섬뜩한 내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다.

 

6. 마음의 양식

지루하다.

타고난 천재라는 건 매력이 없다.

재능이 인간을 선택하고 그 밖에 다른 기회를 모두 막아버리는 일... 그것이 천재라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버넌의 재능은 오랬동안 스스로가  부정했고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건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행복과 상반된다.

그게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버넌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 조. 넬 그녀들이 오히려 흥미롭다.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조연으로 물러난 넬의 삶이 더 관심이 간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알겠지만 ... 재미난 스토리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삶에서 내가 선택받는 부분과 선택하는 부분..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그 시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현재에 살았다면 소설보다 드라마를 쓰지 않았을까

이야기도 좋지만 인물과 대사가 매력적이다.

추리물에서도 그랬고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고 완벽하게 선악을 나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어떤 순간에는 더 할 수 없이 선량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서는 돌변한다. 사람이 그렇지 아니한가

아수라백작처럼 달랑 선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까지 변해가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이나 더 이상 무엇을 더 첨가할 수 없는 완벽한 악이 아니라 보이는 위치에 다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처럼 다른 색깔 다른 질감 다른 농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처음 책들을 읽었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착각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읽을 수록 비슷비슷한 분위기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 읽었다는 대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었다.

그때도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뭔지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불안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책읽기도 재미없고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일들이 시시해졌다.

일상은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혼자인 시간이 되면 끝없이 가라앉아서 안자던 낮잠을 자고

먹는게 귀찮아졌고 리모컨만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 책은 끝없이 쏟아지는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책을 욕심스레 읽을 이유가 뭐가 있나 싶었고 굳이 뭔가를 읽는다는게 귀찮아졌다

소설은 어짜피 현실이 더 극적인것이고 시는 현실도피인것만 같고 사회문제나 인문학은 그저 썰만 푸는 일이거나 굳이 그렇게 콕콕 찍어주지 않아도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건 다 아는게 아닌가

그렇게 모든 게 싫고 모든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그저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싶어져서

그냥 내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있는 책.. 심각하지 않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지만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다시 읽은 아거사 크리스티는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뭐가 달라졌냐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만...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니겠니? 너만 그런것도 아니지.. 그런 소리가 들린다

뭐 흔하다면 흔한 위로지만  때로는 상투적인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매일이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한번 아래로 쪼르르 흐르고 나면 다시 뒤집어 쪼르르 모래를 흘려보내야 하는 모래시계 같은 나날이다. 뒤집어 졌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반복들 그래본들 모래만 흘려내리는 단순한 리듬에서

딱  눈 감고 모래시계를 눞혀놓은 기분  옆으로는 흐를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멈춘 시간

그렇게 가라앉아 막막하다가 그래도 다시 모래를 흘러내릴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모래 시계를 바로 세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반복이 되길,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메콧이었다가 다시 애거사 크리스티로 돌아갔듯이

그렇게 잠시 다른 멈추는 시간.

그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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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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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아니면 괜찮지 '

'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거잖아 '

아홉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점점 명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상황과 인물들이 오로지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이기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누구나 불행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걸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동적으로 본 드라마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경찰들이 등장해서 소년하나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고가는 이야기나  (소년 7의 고백)

너만 아픈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 나의 자제력, 의지, 능력의 부족-벌어지는 것처럼 몰아가는 말들 그것들이 주는 콕콕 찔러대는 불쾌하고 아프지만 말할 수없는 고통

(불행한 사람들)

내 일이 아니니까 모른 척 했던 일과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모든 비난을 뒤집어써야하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그 속에 내가 갇혀버린 상황 ( 포스트잇)

불행의 원인을 누구에게 떠밀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상황들

모든 것이 내탓은 아니가 니탓이라고 밀어버리고 싶은 본능과 아무데도 밀어낼 수 없어 구석으로 몰린 약한 아이들의  밑도끝도 없어진 수치심과 죄책감 (여진)

내가 밀려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한다는 강박

원인-결과가 아니라 결과에서 도출되는 원인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유를 붙여대는 인물의 이야기  (이형의 계절)

내게 중요한 일과 소용없는 일을 적확하게 구분하게 만드는 말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결국 몽골리안의 시력을 가지고도 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 때로는 아무것도)

모두가 일그러진 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불완전한 모습만 보는 사람들

바닷속에서 외롭게 돌아가는 소금 맷돌과  길을 막고 선 차들로 인해 아이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봐야하는 부모  나의 이기심과 뻔뻔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아이.. 세상은 기울어져 있고 일그러져 있고 느닷없다 ( 일그러진 남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배우 이야기 (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이야기 하나를 읽고 그만 덮어버릴까 ... 한참을 고민하다가

또 한 이야기를 읽고 이젠 정말 그만 읽을까 하다가 또 다시 읽기 시작했다가

그냥 내리 다 읽어버렸다.

기왕 아플거 불편할 거 그냥 내쳐 겪어내고 말자

단편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들의 나열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섬세하게 쪼개놓고 보면 그 하나하나 아귀가 맞아지기도 한다.

귀찮은 일  불행의 냄새를 풍기는 일 아파보이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이런 모습을 알지못하면 좋겠다. 나는 정의롭고 공정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싶지만 그건 내 주위가 평화롭고 안온하며 느긋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저 내가 눈감고  몸을 돌리고 담장을 침으로서 유지할 수 있는 인격이다.

내 일이 아니어서 어떤 사건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나쁜 짓을 하는 걸 번번히 목격했으므로 결국 사건의 주범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못생기고 성격이 불안하고 행실에 문제가 있기때문에 파양을 당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고  남의 가정사에는 끼어들지 않은 것이 예의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나와 하등의 상관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끔찍한 살인은 잘못이지만 공동주거생활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옳지않다고 나는 스스로 선하면서도  무심하고  냉혹한 심판관이 된다.

왜냐면 그건 나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소설을 읽고 혀를 차고 비난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나는 소설속 모든 상황과 인물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쉽게 돈을 벌수 있다면 혹할 수 밖에 없고

문제아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단하게 믿고 있고

개인의 의지가 문제이기에 하면 된다는 유행지난 구호를 믿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한다.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실대로 내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골라가며 보고 듣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다.

좋은 사람인 척  알고 있는 척 등등 누군가인척을 잘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도 할 수 있다.

사람은 악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일은 행복과 불행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사에에 무수하게 많은 유형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 다양한 감정과 기분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다만 내가 보는 것 아는 것은 일부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불편하다.

이러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는구나.

소년범죄. 젠더차별적인 것 계층의 문제 타인을 용인할 수 없는 이기심

불안과 애착의 문제가 있구나 등등  얼마든지 잘난 척 하면서 판단하고 이해하고 읽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 난 척을 할 수 있는 건 철저하게 나와 이야기를 분리할 때 뿐이다.

이야기는 나와 다르지 않다.

내가 그 이야기속에 등장인물이고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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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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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아가일은 양어머니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2년 후, 갑자기 재코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아가일 가족은 '제일 그럴듯했던 모범 답안'인 '범인 재코설'이 무너지자 가족들 가운데 여전히 살인자가 있다는 끔찍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가족들은 의심의 그림자 아래 단결했다가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다시금 뿔뿔이 흩어진다.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 후, 바로 남극 대륙으로 가는 탐험대에 합류했던 지구 물리학자 아서 캘거리는 “문제는 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헤스터 아가일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그늘에 숨어 있는 살인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살인을 계획한다.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다.

진실이 드러나므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고 무고인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누가 봐도 범인일수 밖에 없는 인물이 범인이 되어 봉합되었던 사건이 다시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자기 입장에 따라 자기가 범인으로 몰릴수 있음을 알게 된다.

부유하고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는 사실 독재자였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입양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그리고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아내의 관심에서 밀려난 남편은 어린 비서를 만나 새로운 행복을 알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남편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갖게 된 자식들

가족중 가장 비열하고 양아치스러웠던 잭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버린 후 모든것은 그저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사실 잭이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우리중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스로가 의심받을지 모를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스포가 있음

 

뭐 불안한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심리묘사가 잘 되었다는 거 인정

누구나 범인일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간 서스펜스도 인정

그런데 하필이면 외부인이며 이방인이 범인이어야 하지?

상황상 맥락상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건 작가가 그렇게 함정을 팠으니까

가족중 남편이거나 자녀이거나 혹은 남편을 사랑하게된 비서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가정이 무너질까봐?

이미 부모의 간섭과 억압이라는 폭력이 있고 자녀들은 제각각 감정을 품고 부모를 바라보고 저마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데 여기 살인이 더해지만  완전히 무너져 버릴까봐?

그래서 늘 문제는 외부에 있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될까

가족의 변호사는 아마도 외부인이 침입해서 돈을 노리고 부인을 살해했다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을 한다. 누구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차라리 그러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이렇게 가족이 무너질 수가 없다는 신념때문일까

그렇게 드러난 범인은 변호사의  어처구니없는 범인 유추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뭐... 내가 꼬아서 보는 걸 수도 있지만

늘 불행은 밖에서 들어온다고..

그래서 가족내에서는 불행이 싹틀리가 없고 늘 안전하고 화목하고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미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향수를 덧뿌리고 뿌려대며 자기들만 모른다고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진지하게 읽었지만 마지막.. 마음이 꼬여버렸다.

나는 가족에게 맺힌게 많은 모양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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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인 당신 사츠오는 아내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머리를 자르게 했다.

어쩌면 아내가 원한 일일 수도 있다.

어중간하게 길어 보기 좋지 않은 남편의 머리가 걸려 잘라줘야 겠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해준다는데 뭐 괜찮으니까 먼제 나서지 않았나 그렇게 스스로 위안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과정조차 없이 단순하게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늘 그랬듯 아내에게 무뚝둑하게 서운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아내가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순간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순간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같은 그 찰라동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뒷정리를 부탁해"라는 아내의 말이 그저 이발 이후의 뒷정리 정도였을까?

어쩌면 그땐 아차 싶었던 마음이 후에 두고두고 생각나며 당신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때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고 무엇을 보았을까?

 

친구와 여행을 갔고 아내를 존중한다는 마음에 당연히 전화연락 따위는 하지 않았고

습관처럼 (아마 그랬을거다) 애인을 불렀고 부부 침실에서 섹스를 한다.

어떤 죄책감도 끼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부재중으로 돌려놓은 전화에서 경찰의 전화통화를 듣는다.

아내가 죽었다.

시신을 확인하고 유류품을 받아오고 아내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르면서 당신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어디에나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갑작스런 사고에 화를 내는 조문객들에게도 덤덤했고 함꼐 여행을 갔던 아내의 친구의 남편 요이치를 만났을 때도 덤덤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죄책감에 찾아오는 애인에게 다시 욕구를 느낄만큼 정말 아무일도 없다는 듯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그랬다면 뜬금없이 걸려온 요치오의 전화에 대응하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불쑥 요치오의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의 매니저가 물어봤지만 당신도 왜 느닷없이 요치오의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엄마가 없는 빈자리가 큰 아이들

엄마가 없어도 화물차를 몰아야 하는 아빠는 여전히 바쁠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일상이 희생되고 뒤엉키고 포기되어야 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배려였을까

한번도 접하지 못한 아이들과의 생활이 어긋나고 삐거덕거리면서도 잘 적응되어갔다.

아이들은  당신 사츠오에게 적응하고 당신은 아이들에게 적응하고 그렇게 바쁘고 웃고 힘든 일상을 지내면서 당신은 당신 감정을 그렇게 눌렀다.

슬픔 상실 죄책감따위는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저 아래로 눌러버리고 바쁘고 즐겁고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지냈다.

 

"내가 잊으면 누가 기억하나요?" 라고 되묻는 요치오의 울음앞에서 순간 멈칫 하지만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렇게 흘려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생가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을 지탱하게 했지만 오히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몰랐을 때였으니까

매일매일을 울면서 저장된 아내의 메세지를 듣던 요치오는 의외로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나지만 애써 감추지도 않는다.

그렇게 과학관 여선생님을 만나고 세상과 연결되어 가는데

당신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아내를 애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당신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남들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기만이 아니었고 그저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슬퍼해야하는지 몰라서 당신앞에 놓은 시간을 무엇으로든 채워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뭐든 채워놓지 않으면 그대로 바람이 빠지고 쪼그라들어버릴 것만 같았을테니까

요시오 가족에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아이들이 호감을 표시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자리를 잃은 것같았다. 질투를 하고 결국 자신의 죄책감을 고백한다.

"사고가 나던 날 애인을 불러 침실에서 섹스를 했었다고."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낯설었던"당신은 아무렇게나 그러나 바쁘고 의미있다고 믿으며 채워졌던 일상이 비워지면서 "삶은 타인이다"라는 발견에 도달한다. 그리고 처음 울기 시작했다.

목놓아 울지 않고 꾸역꾸역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당신 다웠다.

 

삶이 갑작스럽게 당신앞에서 문을 닫아버렸을 때

늘 함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상대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없어져버렸을때

갑작스러운 충격은 사람의 감정을 굳게 만들어버린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울어야 하는 것인지  견뎌야 하는 것인지  그저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살아온 리듬을 유지해야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요치오처럼 모든 것을 놓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당신처럼 모든 것을 다름없이 끌고 갈 수도 있다. 누가 더 낫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들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았다면 애도를 겪어야 한다

오래오래 울거나  미치도록 원망하거나그리워하거나 미안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애도를 겪지 않으면 앞으로 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 그저 눌러놓은 감정으로 외면해버리면  늘 제자리에서 돌고 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지만 웃을 수도 있다. 배가 고플 수도 있고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대견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먹먹함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 외롭다고 느꼈나 보다.

결국 삶은 타인이었다는 당신의 문장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왜 당신의 책 제목이 (영화의 제목이) 아주 긴 변명이었을까

단순히 길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변명이라는 말

결국 살아간다는 건 계속되는 변명이 아닐까...유치하게 생각해본다.

내가 그땐 그래서 그랬고 어쩔 수 없었고 늘 생기는 결과에 입장을 변명하고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일들이 자꾸 변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요치오의 남매는 엄마가 없어도 훌쩍 자랐고

당신도 아내가 없어도 이제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쓸 수도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변명해도 괜찮다

당신의 변명을 납득하고 받아줄 테니까...누구나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뜬금없이 마지막 당신이 아내의 이발 도구를 만져보고 정리하는 장면이 슬프고 좋았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아마 당신은 도구따위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사실만 인지할 뿐 어떤 도구를 쓰고 어떤 마음으로 머리를 만지며 그 도구들이 아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생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행 떠나기 직전에도 당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아내의 모습처럼 그저 아내는 당신이 생각하고 의미하는 존재로만 여겼을 것이다.

당신이 도구들을 만지고 정리하며 아내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른 아내의 모습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많이 늦었지만 안하는 것보다 괜찮다.

 

당신의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한 번 울고 이후의 일들을 기록해서 엮어내고 그리고 아내의 물건을을 정리하고

당신의 애도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왜 그랬냐면.... 하며 긴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영화 초반 내내 당신이 너무너무 미웠는데  당신의 행동들이 가식이고 찌질하다고 욕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본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리고 나도 나의 긴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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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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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늦게 오는 아이를 마중갔다가 걸어오는 밤길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는 꼭 서운했던 일들이 튀어나온다.

동생이랑 말다툼하면 동생편만 드는 것

별 거 아닌걸로 화를 냈던 일

단 한번 먹기 싫어서 안먹겠다는데 그걸로 짜증을 내서 서운했다는 것

소소하고 시시하지만 혼자 쌓아놓기엔 억울하고 속상한 것들

아이 말을 듣다 보면 별 것도 아닌 걸가지고 그러냐고 퉁박을 주게 되고

나도 그러고 컸다는 찌질한 꼰대같은 변명만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이가 불쑥 말했다

"엄마도 서운한게 있으면 지금 할머니한테 말해. 돌아가시고나면 말도 못할텐데.."

그럴까?

한때  상담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너무너무 우울할때 나를 들여다 보니 지금 내문제가 다 자랄때 양육문제고 그때의 애착관계의 문제라고 생각되서 억울하고 화가 나서 뭐라고 퍼붓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마구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걸 표현하지 않으면 억울할거 같고

왜 나만 내버려두고 왜 혼자 잘 할거라고 제멋대로 믿었냐고 따지고 싶었고

종가집이라는 거 다 이해해도 어떻게 그렇게 남동생이랑 알게 모르게 차별 했냐고 하고 싶었으나..

나도 아이를 키우고 동동거리고 이런저런 서운한 말을 듣고 보니

그때 우리 부모는 정말 젊었구나. 지금 이렇게 나이먹어 늙은 부모하는 나도 지혜가 없고 아량이 없어서 어린 것들과 기싸움 하고 하나라도 더 이겨먹으려고 하는데

그 파릇파릇 젊었던 우리 부모도 당연히 그랬겠구나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내 자식에게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부담이고  불안이고 서운함인데 어쩌면 그때 당신들에게 그런 말과 행동과 선택이 최선이었던건 아닐까..

가난한 집 장남과 철없이 종부이 되어버려 다른 무게가 많았던 그 분들에게 자녀 양육이라는 거에 모든 걸 쏟아 부을 여력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리고 지금 너무 늙어버린 부모에게 그렇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봤자....

기억할리 없고 기억한다고 한들 아름답게 편집된 그 기억속에 나만 결국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가며 키워놨더니  뒤통수만 친다고 더 억울해하며 방방 뛰시다 안그래도 혈압도 높으신데 쓰러지기라도 하면..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매사 생각만 많고 행동으로 옮기기엔 게으른 성정도 한몫했고

뭐 나도 무던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지라 한번씩 성질나면 팍팍 쏘아주기도 했으니 그것역시 지금 엄마가 된 입장에서 자녀가 그러는게 나름 상처라면 상천데... 서로 쎔쎔이구나 싶기도 했다.

 

 

 

만화속 주인공 제니는 나중에 제대로 된 상담사에게 "정서적 방치'로 인한 트라우마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이름붙일 수 있는 병명을 가짐으로서 제니는 조금 치유받았을 것이다.

내내 스스로 느꼈던 불안과 죄책감 수치감에 모든게 내 잘못이라고만 생각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수용되지도 못했던 제니는 비로소 자기 상황과 상처에 이름을 갖게 되면서 치유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감정을 억제하라고 통제하는 것은 가장 큰 폭력이고 겁박이 된다.

슬플 때 울 수 없고  즐거워서 재잘재잘 떠들어댈 수 없고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것은 큰 고통이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억누르는 걸 먼저 익혀야 하는 건 슬프다.

제니 부모 역시 어쩌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누구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걸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상황에서 정서적 문제를 가지게 되고 결국 내가 가지지  못하고 수용받지 못한 정서는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도 없다.

억누르는 것 감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운 부모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양육이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제적 결핍도 없었고 어쩌면 남들 보기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수준있는 가족이라고 보였을 제니 가족이 속으로 그렇게 조용하게 무너지고 균열되는 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모든 가정이 자신의 가정과 같을 거라고 믿었던 제니는 우는 친구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이야기를들어주는 친구 엄마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두려워진다 울면 안되는데 울면 모두가 피해버리거나 싫어하는 짓인데 그걸 태연하게하는 친구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친구의 엄마는그런 어리광을 피우는 친구를 안아주고 달래주고이해하다니...

혼란스러운 제니는 세상이 두려워졌을 것이다

문제를 드러내면 등을 돌리는 가족들

칭찬과 관심에 인색한부모

표현하기도 전에 누르는 것을 배우고  어쩌지 못하는 감정에 드러내고 폭발시키고 나면 남는건 개운함이아니라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내가 엄마를 울게 했고 내가 아빠를 등돌리게만들었다는 마음만 남는다타인이라면 쉽게 등돌리고 다른 사람을 찾았을  수 있지만 가족이니까 계속 함께 보고 연결되고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조용히 무너지고 망가지는게 안타깝다.    누구에게도 사랑을 배우지 못한 제니는 조금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매달리고 사랑을 구걸한다 스스로 소중하고 가치있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내 속에는 사랑받지 못한 작은 아이가 아직도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는데 내가 이렇게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괜찮을까?

불안과 갈등속에서 제니는 스스로 일어서기로 하고 자신 속의 자라지 못한 어린 제니를 마주한다 괜찮다고. 니가 잘못한게 아니라고 .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어린 제니를 인지하고 마주하며 안아주면서 제니는 다시 성장한다.

결국 나를 돌아봐야 하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게 슬프기도 하다.

이미 늙었고 변하지 않은 부모에게 소리쳐도 닿지 않는다. 상처는 아직도 여기 가득한데 그때 그곳에서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주어야 했을 대상이 나를 봐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마주하고 안아줄 수 밖에 없다.슬프지만 해야할 일...

 

 

가끔 아이들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고민들을 말하거나 나는 관심이 없는 일로 흥분해서 방방거리며 이야기할때  게다가 그런 순간이 내가 지쳤거나 뭔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상황까지 겹쳐진다면 나도  사실 ... 나 좀 내버려두고.. 입을 좀 다물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닌 척 해도 기가 막히게 티가 나는지 상대는 금방 알아차린다.

지금 내말 듣기 싫어? 내가 귀찮아?

그제사 아니라고 손사래치지만 이미 정서에 작은 기스가 나고 ...한편으론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알면 조금 봐주면안될까싶기도 하고. 아 나도 정서적 방임을 하고 있었구나.... 아차 싶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말은 반박하고 싶지만 할 수없는 진리다.

내 안의 그릇이 가득 차야 누군가에게 댓가없이 나눠줄 수 있다.

상대가 아이라면  나 혼자 이만큼 주었으니 되었다. 하는 만족감은 경계할 일이다.

 

우리애는 참 순해요 참 착해요. 혼자 알아서 잘 해요

이 말이 단지 칭찬일 수는 없다는 인식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아이가 얼마나 외로운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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