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인 당신 사츠오는 아내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머리를 자르게 했다.

어쩌면 아내가 원한 일일 수도 있다.

어중간하게 길어 보기 좋지 않은 남편의 머리가 걸려 잘라줘야 겠다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해준다는데 뭐 괜찮으니까 먼제 나서지 않았나 그렇게 스스로 위안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과정조차 없이 단순하게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늘 그랬듯 아내에게 무뚝둑하게 서운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아내가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순간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순간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같은 그 찰라동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뒷정리를 부탁해"라는 아내의 말이 그저 이발 이후의 뒷정리 정도였을까?

어쩌면 그땐 아차 싶었던 마음이 후에 두고두고 생각나며 당신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때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고 무엇을 보았을까?

 

친구와 여행을 갔고 아내를 존중한다는 마음에 당연히 전화연락 따위는 하지 않았고

습관처럼 (아마 그랬을거다) 애인을 불렀고 부부 침실에서 섹스를 한다.

어떤 죄책감도 끼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부재중으로 돌려놓은 전화에서 경찰의 전화통화를 듣는다.

아내가 죽었다.

시신을 확인하고 유류품을 받아오고 아내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르면서 당신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어디에나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갑작스런 사고에 화를 내는 조문객들에게도 덤덤했고 함꼐 여행을 갔던 아내의 친구의 남편 요이치를 만났을 때도 덤덤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죄책감에 찾아오는 애인에게 다시 욕구를 느낄만큼 정말 아무일도 없다는 듯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그랬다면 뜬금없이 걸려온 요치오의 전화에 대응하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불쑥 요치오의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의 매니저가 물어봤지만 당신도 왜 느닷없이 요치오의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엄마가 없는 빈자리가 큰 아이들

엄마가 없어도 화물차를 몰아야 하는 아빠는 여전히 바쁠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일상이 희생되고 뒤엉키고 포기되어야 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배려였을까

한번도 접하지 못한 아이들과의 생활이 어긋나고 삐거덕거리면서도 잘 적응되어갔다.

아이들은  당신 사츠오에게 적응하고 당신은 아이들에게 적응하고 그렇게 바쁘고 웃고 힘든 일상을 지내면서 당신은 당신 감정을 그렇게 눌렀다.

슬픔 상실 죄책감따위는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저 아래로 눌러버리고 바쁘고 즐겁고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지냈다.

 

"내가 잊으면 누가 기억하나요?" 라고 되묻는 요치오의 울음앞에서 순간 멈칫 하지만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렇게 흘려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생가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을 지탱하게 했지만 오히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몰랐을 때였으니까

매일매일을 울면서 저장된 아내의 메세지를 듣던 요치오는 의외로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나지만 애써 감추지도 않는다.

그렇게 과학관 여선생님을 만나고 세상과 연결되어 가는데

당신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아내를 애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당신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남들을 속이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기만이 아니었고 그저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슬퍼해야하는지 몰라서 당신앞에 놓은 시간을 무엇으로든 채워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뭐든 채워놓지 않으면 그대로 바람이 빠지고 쪼그라들어버릴 것만 같았을테니까

요시오 가족에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아이들이 호감을 표시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자리를 잃은 것같았다. 질투를 하고 결국 자신의 죄책감을 고백한다.

"사고가 나던 날 애인을 불러 침실에서 섹스를 했었다고."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낯설었던"당신은 아무렇게나 그러나 바쁘고 의미있다고 믿으며 채워졌던 일상이 비워지면서 "삶은 타인이다"라는 발견에 도달한다. 그리고 처음 울기 시작했다.

목놓아 울지 않고 꾸역꾸역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당신 다웠다.

 

삶이 갑작스럽게 당신앞에서 문을 닫아버렸을 때

늘 함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상대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없어져버렸을때

갑작스러운 충격은 사람의 감정을 굳게 만들어버린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울어야 하는 것인지  견뎌야 하는 것인지  그저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살아온 리듬을 유지해야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요치오처럼 모든 것을 놓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당신처럼 모든 것을 다름없이 끌고 갈 수도 있다. 누가 더 낫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들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았다면 애도를 겪어야 한다

오래오래 울거나  미치도록 원망하거나그리워하거나 미안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애도를 겪지 않으면 앞으로 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 그저 눌러놓은 감정으로 외면해버리면  늘 제자리에서 돌고 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지만 웃을 수도 있다. 배가 고플 수도 있고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대견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먹먹함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 외롭다고 느꼈나 보다.

결국 삶은 타인이었다는 당신의 문장이 슬프고 아름다웠다.

 

왜 당신의 책 제목이 (영화의 제목이) 아주 긴 변명이었을까

단순히 길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변명이라는 말

결국 살아간다는 건 계속되는 변명이 아닐까...유치하게 생각해본다.

내가 그땐 그래서 그랬고 어쩔 수 없었고 늘 생기는 결과에 입장을 변명하고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일들이 자꾸 변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요치오의 남매는 엄마가 없어도 훌쩍 자랐고

당신도 아내가 없어도 이제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쓸 수도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변명해도 괜찮다

당신의 변명을 납득하고 받아줄 테니까...누구나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뜬금없이 마지막 당신이 아내의 이발 도구를 만져보고 정리하는 장면이 슬프고 좋았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아마 당신은 도구따위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사실만 인지할 뿐 어떤 도구를 쓰고 어떤 마음으로 머리를 만지며 그 도구들이 아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생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행 떠나기 직전에도 당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아내의 모습처럼 그저 아내는 당신이 생각하고 의미하는 존재로만 여겼을 것이다.

당신이 도구들을 만지고 정리하며 아내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른 아내의 모습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많이 늦었지만 안하는 것보다 괜찮다.

 

당신의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한 번 울고 이후의 일들을 기록해서 엮어내고 그리고 아내의 물건을을 정리하고

당신의 애도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왜 그랬냐면.... 하며 긴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영화 초반 내내 당신이 너무너무 미웠는데  당신의 행동들이 가식이고 찌질하다고 욕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본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리고 나도 나의 긴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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