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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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오히려 더 좋았던 책. 그만큼 밀도가 높은 글이다.
글을 쓰고싶은 사람이 문맹이라는 아이러니.
문맹이어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탄생한다.가난한 언어에서 생명력과 감동이 나온다.
나는 읽는다. 이건 질병과 같다.
읽는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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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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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영업비밀을 풀어낸다는 말에 혹했다.

누군가의 비법을 알아낸다는 건 늘 짜릿한 일이다.

비법을 안다면 누구나 정유정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요새 챙겨보는 프로그램중에 "골목식당"이 있다.

알다시피 조금 부족한 골목의 식당들에게 백종원이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미션을 주고 그 미션을 해내면 솔루션을 주며 함께 상황을 해쳐나가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식당 영업을 잘 알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백종원은 각각의 식당에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한다.음식의 맛이 부족한 가게에는 아낌없이 레시피를 제공하고 영업에 문제가 있는 가게에는 손님 응대나 재료 보관 등등을 알려준다.

식당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음식맛이 있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솜씨면 식당을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내 가족이나 손님들을 먹이는 음식과 식당의 음식은 다르다.

내가 돈을 내고 사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누구나 바라는 기대치가 있다.

적어도 돈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데 그 돈 값이라는 것에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맛이 있어야 하고 위생적이어야 하고 손님으로 대우도 받아야 겠고 분위기도 좋고 어디 가서 자랑할만한 곳이어야 할 것도 있고... 사람의 마음은 제각각이고 간사하다.

파는 음식이란 그런 모둔 소비자의 욕구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

돈을 내가 파는 음식 아닌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음식이 아니다

백종원은 각가 필요한 솔루션을 준다. 어쩌면 그가 가진 영업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백종원의 비법을 알았다고 모든 식당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게 주인의 태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비법을 가졌다고 모두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 비법을 제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비법을 비법인지 모르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비법이 비법이 아니게 되는 묘한 비법을 가진 꽝손들도 있다.

결국 비법이 비법인 것은 그 비법을 가진 이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꾸준함이다.

 

정유정이라는 작가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단하고 치열하고 악착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니...

나는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7년의 밤'과 "28"을 읽었을 뿐이다.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

크고 단단한 이야기의 구조와  저마다 개성과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 그리고 인간의 추악함을 끝까지 파고 내려가는 집요함까지 읽다가 지치고 이젠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두권으로 독서를 그만 둔 것도 어쩌면 도서관에서 빌리기 너무 힘들다는 점도 있지만

다 읽ㄱ 나면 내가 기운이 뿍 빠지는 그 체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자기의 비법을 풀어낸다.

당연히 그 비법 역시 악착같고 치열하다

별 다른 것이 아니다.

꾸준히 쓰고 많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파고 또 파고 고치고 또 고치는 행위의 반복이다

문학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글에 대해 당당하고 단단하다.

 

음흉한 마음으로 그의 비법을 알아내겠다고 밑줄 칠 준비까지 단단히 하고 책을 펼쳐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 비법을 알아낸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비법이 아니다.

세상에 굴러다니는 많고 많은 법칙들 역시 비법이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

그 사이에 비법이 존재한다.

 

나는 단단하고 치열한 그의 책을 읽을 준비만 하기로 했다.

그녀의 비법들을  찾아내면서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괜찮은 독자라는 위치도 나쁘진 않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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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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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은 작가가 쓰긴 했으나 결국은 독자에게 닿아 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되듯이

한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비로소 완성된다.

그 완성에 이른 책은 이미 작가의 의도에서 많이 멀어졌다.

가끔  작가의 의도를 찰떡처럼 독자가 받아들여 일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특히나 이야기를 품은 책들은 독자 각각에 닿아 각각의 책으로 다시 완성된다.

 

내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내 딸이 읽은 최은영이 다르며 저기 전라도 누군가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경상도  한 쪽에서 맘졸이며 일은 누군가의 최은영이 다르다

분명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고 편집자들의 손질을 거치고 다시 몇번의 퇴고의 반복으로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았지만 그 소설은 독자들이 키워낸다.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감정에서 소설은 완성되었다

저마다의 개성과 정서와 읽는 순간의 환경에 의해 읽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어 존재한다.

많은 변주를 가진 저자는 행복할까?

아니면 자기와 일치하는 단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더 행복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식에 비유해본다면

내 자식이 어디에서든 그 자리에 딱 맞는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면 전자가 더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 놓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어떤 책의 표제처럼 마음이 소금밭이었다.

날은 뜨거웠고 내 문제가 아닌 것들도 발목을 잡았고  자고 삼시세끼를 챙기고 일정을 해내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다정하게 말을 걸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해버리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꾸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고 모든 건 내 탓이 아니고 니탓이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어깨를 흔들고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었다.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스마트 폰만 무기력하게 들여다 볼지라도 책에는 관심이 1도 가지 않았다.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많이 읽는다고 내가 달라지나? 세상이 달라지나

여전히 덥고 여전히 곤두서있고 여전히 악을 쓰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나이 먹어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면서도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동시에 내 나이가 되어 나를 원망하거나 이해하기를 강요당할지 모를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 맞다

다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도데체 그 입장을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다는게 더 힘들 때가 있다.

니가 무슨 마음인지 아니까 뭐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것도 아니고

그 때 그 순간 니 입장은 그럴지라도 지금 상처를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야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뒤엉키면서 차라리 이기적이고 단순하고 시야가 좁은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울 땐 그래도 소설이라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그 여름"을 두 번 읽었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이경과 수이의 마음을 따라갔다.

주로 서술하는 이는 이경이지만 이경의 눈에 비치는 수이를 보는게 좋았다.

수이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그이의 표정에서 행동에서 그리고 꾸역꾸역 말없이 견뎌내는 모습에 자꾸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어느 대목인지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마 이경이 이별을 이야기하고 수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듯 하다.

괜찮다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이를 보면서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수이의 마음이 읽혔다 아니 수이의 마음은 모른다. 그렇게 수이를 표현한 작가의 마음도 모른다

하지만 수이의 그 한마디한마디 꾹꾹 눌러서 내뱈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이없이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어디가 슬픈건지 아픈건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결국 허겁지겁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 숨 자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을 것이다.

 

다시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 뿐아니라 "고백"을 읽으며 주나와 미주가 추운날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싸우는 부분에서도  느닷없이 눈물이 났고 "지나가는 말"에서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던 주희를 모른 척 했던 윤희의 뒤늦은 후회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말이 눈물을 흘렸다는 거지 사실   꺼이꺼이 울었었다.

화자보다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 인물에게 마음이 가면서 그 속내가 드러나지도 못하고 그저 행동으로 말로 무언가를 절절하게 드러내보이고 싶어하는 인물에게 마음이 쓰였다.

화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상황을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어찌보면 주인공처럼 큰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그저 화자가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드러날 뿐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나?

주인공이 아니어서?

화자가 아니니 그저 남이 묘사하는대로 보여지는대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타인을 그저 보이는대로 내가 겪은 대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그 타인이 가족이거나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우리는 쉽게 내가 잘 안다고 해버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타인들은 그들의 지인인 타인들이 아는대로 판단한 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니까

그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무슨 생각으로  멀리 고개를 빼고 기다렸던 것인지

친구의 은밀하고 용기있는 고백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치열하게 축구를 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타인에게 무심하고 예의없이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모를 수 밖에 없다

자기를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외외로

 

다시 읽어보니 각각의 단편은 대단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때 사귀었던 친구와 가까워지고 더 할 수 없이 안타깝고 애절하다가 멀어지는 이야기

어린 시절 이웃 친구가 겪었던 차별과 모멸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아버리는 이야기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여동생을 시간이 흘러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

죽어버린 친구때문에 멀어져 버린 또다른 친구와 건널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상처를 가진 이들이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하찮아 하며 무시하던 이야기

사실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적인 어떤 꼭짓점은 갖진 못했지만 덤덤한 일상속에서 감정은 얼마나 널을 뛰었던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감정조차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제같고 오늘 같은 일상도 얼마나 다이나믹한 혼자만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던가

누구에게 내보일 수 없지만 나는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가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몸을 떨기도 했었으니까 한없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은 막막함에 아무리 악을 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은 두려움도 있고 사소한 한마디에 툭 치는 손길에 한없이 무너지며 처절하게 매달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보이는 건 그저 평온하고 일상적인 무색 무취였다.

누군가 이유없이 좋아지지만 지겨워지기도 하고

이유없이 미워지고 사라져주길 바라기도 한다.

내 곪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타인의 타박상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혼자 콩을 볶고 난리 부루스를 추고 미친년마냥 널을 뛰다가 널부러지는 일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각각의 이야기속에 있었다.

덤덤하고 평온한 인물들의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얼핏 보면 내게 무례한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내게 무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해한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어쩌면 관계가 없는 사람 상관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연결되길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럲게 널뛰는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이야기는 내게 와서 그렇게 맺음을 한다.

최은영이 어떤 마음으로 썼든지 인물들이 어떤 격랑을 겪었든지

이야기는 여기 푸른희망앞에서  마구 널뛰는 감정으로 읽혔다.

독서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여름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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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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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읽지 않아도... 팔로스버디스 반도를 여행하고 너무 좋아서 그 배경으로 이야기를 급조하셨을까? 지역 묘사는 세심한데 이야기는..그냥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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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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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렇게 끝이야?

내내 갑갑하고 불안하고 답답했다.

대단한 사건이 서스펜스 넘치는 전개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네 이웃의 이야기다.

네 가구의 이야기 그리고 바로 너! 너의 이웃의 이야기말이다.

어떤 통제되고 가공된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전작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이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이야기는 단순하고 무미건조하다.

다만 불편하고 답답해서 꼭 찜질방 안에서 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미련하게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단추를 풀고 싶은데 풀 수가 없는.. 차마 셔츠를 벗을 수도 없는 상황같았다.

그녀의 만년체는 여전하다.

어쩌면 비문도 몇개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내가 꼬여서 다시 읽은 문장이 몇 되지만 그게 비문인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답답한건지 상황이 답답한건지 아니면 인물들의 대처가 답답한 건지 모르겠다.

 

세자녀 출산을 약속하고 행복공동주택에 네 가구가 들어온다.

각각의 부부와 그들의 고만고만한 자녀들

임대주택에 들어온 만큼 모두의 사정도 고만고만하다

사정은 고만고만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잘 키우고 싶고 자기 일을 포기할 수도 없고 아직도 막연하게 꿈꾸고 희망하는 무언가를 다들 가지고 있다.

불안하지고 무겁지만 차마 놓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그들의 이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진과 은오

남편은 엎어진 시나리오밖에 남은게 없는 감독지망생 백수이고 아내는 약국의 보조 사무원이다.

그들은 경제적인 극단에 몰려서 앞뒤 재지 않고 공동주택을 신청했다

 

가장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재강과 단희

그들은 모두에게 친절하고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여러가지를 시도하지만 그들의 선의는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 친근한 농담은 치근덕거림이 되고 다 같이 잘 하자는 독려는 간섭이 되기도 한다.

 

출근하는 남편과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내 커플인 효내와 상낙

상낙은 바쁜 아내대신 이웃 모임에 참석하고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효내는 늘 전전긍긍 바쁘고 정신없다 사람좋은 남편이 모든 일에 응응 하고 동의해놓은 바람에 마음에도 없는 공동육아를 해야하고 사람들과 필요이상의 친분도 쌓아야 하는게 효내 입장에서는 마뜩치 않다.

 

그리고 교원과 요산이 있다.

누구보다 알뜰하고 억척스럽게 아끼고 동동거리며 살아온 교원은 어느 순간 염치도 없는 맘충이 되어버렸고 요산은 그런 아내의 뒤통수를 치며 자기 식구부터 챙겼다

 

어쩌면 너무나 다른 네 가족이 공동체로 묶여버렸다.

우스개 소리로 모임이 오래오래 잘 유지되는 조건은  적극적인 리더 한명과 아무 저항없이 잘 따르는 나머지 모두라고 했다. 누구든 이끄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그저 토달지 않고 리더가 하자는대로 따르고 그렇게 모임에 만족한다면 그 모임은 오래오래 지속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받아들이라는 조금은 서늘한 농담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어디든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고 한두명끼리 쑥덕이기도 하고 아닌 척 모르는 척 하기도 하면서 유지되는게 사회라는 테두리다

공동주택 이웃들도 서로 좋은 얼굴로 도와가며 일을 꾸려나가지만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함꼐 카풀을 하는 이웃 남자는 분위기 띄우는 농담이랍시고 불쾌한 말들을 하고 치근거리는데 딱 잘라서 뭐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예민한거 같고 그냥 넘기자니 불편하고 불쾌하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주택단지에서 서로가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함께 함께~를 강조하는 이웃때문에 개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불편해지는 이웃도 있다.

별거 아닌 일에 까다롭게 굴면서 튀기만 하고 매사 협조하지 않은 얄미운 이웃도 있고

그저 무탈할 줄 알았던 이웃이 한밤중에 고성과 폭력을 쓰며 죽일듯 싸우기도 한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고 덜거덕 거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모른 척하면 모두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견제라고 해야하나 배려라고 해야하나 그런 마음과 누군가 불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행복, 평화 안정, 공동의 선만을 생각하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마음이 부딪친다.

 

결국 예상대로 행복공동주택은 와해되었다

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 뒷마당의 넓은 식탁을 채워나가겠지만

건강한 집단이란 유기체와 같아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완숙되어서 어느 순간 소멸하는 것 그게 당연하지 않을까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라는게 사실 허상이고 징글징글한거 아닐까

 

아름다운 공동체의 유지는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지만 모른 척 하는 누군가의 희생과  강요로 유지될 뿐이다

화목하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동체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꿈을 꾼다고 함께 모여살면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해 비밀이 없이 공유하고 있다고 이루어질 수 없다.

누군가는 밥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보고 누군가는 뒺정리를 하고 내켜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를 다독이며 성질을 죽이고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지탱된다.

참 더럽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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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이 이야기에 공감할까?"

다 읽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이래서 여자들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거야"  "도데체 뭐가 문제라는거야? 예민하기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 내내 뭔가 툭툭 건드려지기는 하는데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뭔가 터지지는 않는다.

물론 말미에 깨어지는 가정도 나오지만 그 결과가 문제가 드러나고 터지고 해결되었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그냥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찜찜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는 사람은 안다.

도처에 숨은 많은 것들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문제화 되지 않고 그저 찜찜하고 불안하고 불쾌할 뿐이다. 그건 경험했다면  소설이 공감이 갈 수도 있지만  늘 적확하고 확실한 길을 걸어왔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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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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