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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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은 작가가 쓰긴 했으나 결국은 독자에게 닿아 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되듯이

한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비로소 완성된다.

그 완성에 이른 책은 이미 작가의 의도에서 많이 멀어졌다.

가끔  작가의 의도를 찰떡처럼 독자가 받아들여 일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특히나 이야기를 품은 책들은 독자 각각에 닿아 각각의 책으로 다시 완성된다.

 

내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내 딸이 읽은 최은영이 다르며 저기 전라도 누군가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경상도  한 쪽에서 맘졸이며 일은 누군가의 최은영이 다르다

분명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고 편집자들의 손질을 거치고 다시 몇번의 퇴고의 반복으로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았지만 그 소설은 독자들이 키워낸다.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감정에서 소설은 완성되었다

저마다의 개성과 정서와 읽는 순간의 환경에 의해 읽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어 존재한다.

많은 변주를 가진 저자는 행복할까?

아니면 자기와 일치하는 단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더 행복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식에 비유해본다면

내 자식이 어디에서든 그 자리에 딱 맞는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면 전자가 더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 놓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어떤 책의 표제처럼 마음이 소금밭이었다.

날은 뜨거웠고 내 문제가 아닌 것들도 발목을 잡았고  자고 삼시세끼를 챙기고 일정을 해내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다정하게 말을 걸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해버리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꾸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고 모든 건 내 탓이 아니고 니탓이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어깨를 흔들고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었다.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스마트 폰만 무기력하게 들여다 볼지라도 책에는 관심이 1도 가지 않았다.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많이 읽는다고 내가 달라지나? 세상이 달라지나

여전히 덥고 여전히 곤두서있고 여전히 악을 쓰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나이 먹어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면서도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동시에 내 나이가 되어 나를 원망하거나 이해하기를 강요당할지 모를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 맞다

다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도데체 그 입장을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다는게 더 힘들 때가 있다.

니가 무슨 마음인지 아니까 뭐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것도 아니고

그 때 그 순간 니 입장은 그럴지라도 지금 상처를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야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뒤엉키면서 차라리 이기적이고 단순하고 시야가 좁은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울 땐 그래도 소설이라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그 여름"을 두 번 읽었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이경과 수이의 마음을 따라갔다.

주로 서술하는 이는 이경이지만 이경의 눈에 비치는 수이를 보는게 좋았다.

수이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그이의 표정에서 행동에서 그리고 꾸역꾸역 말없이 견뎌내는 모습에 자꾸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어느 대목인지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마 이경이 이별을 이야기하고 수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듯 하다.

괜찮다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이를 보면서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수이의 마음이 읽혔다 아니 수이의 마음은 모른다. 그렇게 수이를 표현한 작가의 마음도 모른다

하지만 수이의 그 한마디한마디 꾹꾹 눌러서 내뱈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이없이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어디가 슬픈건지 아픈건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결국 허겁지겁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 숨 자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을 것이다.

 

다시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 뿐아니라 "고백"을 읽으며 주나와 미주가 추운날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싸우는 부분에서도  느닷없이 눈물이 났고 "지나가는 말"에서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던 주희를 모른 척 했던 윤희의 뒤늦은 후회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말이 눈물을 흘렸다는 거지 사실   꺼이꺼이 울었었다.

화자보다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 인물에게 마음이 가면서 그 속내가 드러나지도 못하고 그저 행동으로 말로 무언가를 절절하게 드러내보이고 싶어하는 인물에게 마음이 쓰였다.

화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상황을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어찌보면 주인공처럼 큰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그저 화자가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드러날 뿐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나?

주인공이 아니어서?

화자가 아니니 그저 남이 묘사하는대로 보여지는대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타인을 그저 보이는대로 내가 겪은 대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그 타인이 가족이거나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우리는 쉽게 내가 잘 안다고 해버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타인들은 그들의 지인인 타인들이 아는대로 판단한 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니까

그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무슨 생각으로  멀리 고개를 빼고 기다렸던 것인지

친구의 은밀하고 용기있는 고백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치열하게 축구를 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타인에게 무심하고 예의없이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모를 수 밖에 없다

자기를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외외로

 

다시 읽어보니 각각의 단편은 대단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때 사귀었던 친구와 가까워지고 더 할 수 없이 안타깝고 애절하다가 멀어지는 이야기

어린 시절 이웃 친구가 겪었던 차별과 모멸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아버리는 이야기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여동생을 시간이 흘러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

죽어버린 친구때문에 멀어져 버린 또다른 친구와 건널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상처를 가진 이들이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하찮아 하며 무시하던 이야기

사실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적인 어떤 꼭짓점은 갖진 못했지만 덤덤한 일상속에서 감정은 얼마나 널을 뛰었던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감정조차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제같고 오늘 같은 일상도 얼마나 다이나믹한 혼자만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던가

누구에게 내보일 수 없지만 나는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가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몸을 떨기도 했었으니까 한없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은 막막함에 아무리 악을 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은 두려움도 있고 사소한 한마디에 툭 치는 손길에 한없이 무너지며 처절하게 매달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보이는 건 그저 평온하고 일상적인 무색 무취였다.

누군가 이유없이 좋아지지만 지겨워지기도 하고

이유없이 미워지고 사라져주길 바라기도 한다.

내 곪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타인의 타박상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혼자 콩을 볶고 난리 부루스를 추고 미친년마냥 널을 뛰다가 널부러지는 일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각각의 이야기속에 있었다.

덤덤하고 평온한 인물들의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얼핏 보면 내게 무례한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내게 무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해한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어쩌면 관계가 없는 사람 상관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연결되길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럲게 널뛰는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이야기는 내게 와서 그렇게 맺음을 한다.

최은영이 어떤 마음으로 썼든지 인물들이 어떤 격랑을 겪었든지

이야기는 여기 푸른희망앞에서  마구 널뛰는 감정으로 읽혔다.

독서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여름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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