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되면 떠들썩하고 사람들이 모이는게 싫었다,

   종가집이라 손님은 많았고 음식냄새는 내내 집안을 돌아다녔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은 무례했다, 와글거리며 모여든 친척은 꼼짝도 않고 티비를 보거나 떠들기만 하면서 음식이 나오면 입만 놀렸고 입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듯 굴었다,

이방저방 혼자 있을 공간이 없었다,

차례가 끝나고 밥상을 올렸다 물렸다가 몇번이 이어지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졌다,

그리고 늘어진 엄마  쌓여진 설겆이들

그렇게 명절이 갔다,

 

# 일을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보는 것도 오래되면 저절로 익혀지는 모양이다,

  해보진 않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빤하다,

명절 음식 자체가 빤하기도 하니까

 조용한 명절이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또 걸렸다,

  꽤 좋은 며느리도 아내도 엄마도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목구멍 가시처럼 걸렸다,

어릴 적 엄마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이것저것 해보지만 하면서도 속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당연하게 받는 거랑 당연하게 준비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일까?

세상에 이렇게 당연한 것들은 언제부터 당연한 것들이었을까

가족의 화목이나  일상의 평범한 즐거움이라지만 그게 전부일까

생각은 꼬리를 물지만 손은 습관처럼  움직이면서 음식은 하나둘씩 완성된다,

 

# 딱히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명절이면 더 자주 딴짓을 하게 된다,

인터넷 세상도 더 궁금해지고 텔리비젼에서는 더 재미있는게 많아지는 거 같다,

평소 안먹던 믹스커피도 더 달게 느껴지고  미뤄놓은 팟케스트도 들어야 할게 너무 많다,

사이사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댓글을 단다,

평소 그냥 그랬던 것들이 더 재미있고 더 궁금해진다,

청개구리같대도 어쩔 수 없다,

 

#  집을 가출하면 가는 곳이 늘 서점이었다,

  음 가출을 한 게 몇번 되지 않지만 막상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영화를 보러 가기엔 시간이 애매하거나 보고 싶은 게 없거나

  누군가를 만나기엔 갑작스럽고

  혼자 시간을 잘 보내기에 서점만한 곳이 없다,

  작은 동네서점은 불가능하지만 대형서점은 그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시간을 죽일 수도 있고 뭔가를 먹거나 앉아서 쉴 수도 있다,

  서점에서는 누구나 혼자다,

  함께 오더라도 책을 보는 동안은 혼자다,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을 공간 오히려 더 편안한 공간

  혼자서 몸을 숨기기에 외롭다는 마음이 들키지 않기에 딱 좋은 장소

  그래서 항상 서점으로 도망쳤고 책을 보고  조금은 가볍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사를 와서 가까이 도서관이 있게 되면서 또다른  도피처는 도서관도 포함되었다,

  적어도 서점에 비해 돈을 쓸 기회도 적고 도서관 역시 혼자라도 상관없는 공간이었으니까

 

# 어릴적부터 상가집이나 병문안을 가는 일이 싫었다,

  싫다기 보다는 두려웠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초등학교 때 아는 선생님이 부상으로 입원을 해서 함께 배우던 학생들이랑 엄마들이 병문안를 함께 갔었는데 나만 병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그냥 막연하게 환자랑 마주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아주 오래전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혼자 대기실에허 하염없이 기다리다 병문안을 마친 다른 일행과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냥 부끄러워서라고.. 엄마가 변명을 했던 기억도 난다,

부끄러움.. 뭐 그런 감정도 있었던 거 같지만 두려웠던 거 같다,

뭐가 두려웠을까

나이가 들면서 상가집에 가야할 일도 많이 생겼지만 늘 가기전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병환으로 오래 입원한 아버지 병문안을 가는 일도 힘들었다,

누군가 죽은 사람을 마주하는 일

가족이 죽어 남겨진 사람을 바라보고 위로하는 일

아픈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

좀 어떠냐고  상태를 묻고 괜찮아질거라고 위로하고 손을 잡아주고 하는 일들이 참 어려웠다,

그런데 막상 가면  이런 말은 뭣하지만 잘 했다,

상심한 표정으로 위로를 하고 뭔가 도와주려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말들 ... 아무렇지 않게 하고 편안하게 있다가 나온다,

나오면서 그 상황에서 행동하는 내가 참 낯설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나 병자를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진짜 나인지  천연덕스럽고 편안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 나인지 헷갈렸다, 내가 참 이중적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살아가는 방편이라고 스스로 여기기도 했었던 거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주 가지는 않지만 산소에 가는 일도 참 어렵다,

막상 가면 음식을 차리거나 절을 올리고 풀을 뽑고 뭐든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오지만

막상 가는 동안은 기회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 닥치기 전까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갈 수 있다면 갈 수 있는 곳까지 도망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막상 닥치면 그렇게 편하고 자연스럽게 할수가 없다,

꼭 그렇게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그리고 돌아오면서 중얼거린다,, 정말 싫었어..

정말 싫었던 것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나 자신인지

그렇게 마주치기 싫었던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이렇게 될 나 자신인지 모르겟지만

여전히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살고 있다,

 

#  황정은의 신작은 <아무도 아닌> 인데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인식된다,

    왜그럴까?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이라는 말이 더 입에 익숙하다,

   <아무도 아닌>이라고 하면 왠지 그 대상이 나인거 같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 부정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하면 그건 대상이 나는 아니다, 물론 나일 수도 있지만 주로 내가 아닌 타인 혹은 타자에 대한 지칭으로도 쓰인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탓하기 좋은 말

그래서 어쩌면 내가 아닌 타인에게 무언가를 돌리고 싶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말해버리는게 아닐까 ,

<아무도 아닌>이라고 하면 내탓인거 같고 내가 모든 책임을 줘야 하는 기분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르겠고

아직 책을 읽지 않아 작가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다,

 

# 모든 것이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순간은 시험을 앞둔 순간이고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가는 순간이 일이 쌓여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관성처럼 해야할 일을 해내기도 한다,

  그 일이라는 것이 단순 노동이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 머리로는 잡다한 생각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짦은 글을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펼친다,

 내일이 명절인데

  이젠 닥치는대로 뻔뻔해지고 오면 오는거지 하는 마음이 커졌다,

 

# 큰 일이라면 큰 일을 앞두고 자꾸 딴짓하고 싶어서 쓰는 페이퍼

  그냥 그런 걸 끄적이며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내일대로 잘 치뤄지겠지 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한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엔 떠날 사람은 떠나고 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쉬어야 할 사람은 그냥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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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 가독성 있는 글이어서 중독된듯 읽었네요. 저희집도 종가집이어서 어릴적엔 어떻게 그 코딱지만한 집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잘도 먹고 마시고 잤는지 돌이켜보면 불가사의하네요. 여성들에게 명절이란 참.
저희 세대부턴 없애야하지 않을까요?

푸른희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쭈니 2017-01-2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글을 참 맛있게 잘쓰십니다.
맛이 느껴지네요.

그저 건강이 최곱니다.
올해도 건강하십시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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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를 졸업하는 나는 어디에도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딱 한군데

무라이 건축선계 사무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용기를 내어 졸업작품으로 했던 휠체어가 들어가는 주택에 대한 포토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채용이 된다, 외외의 일이다,

알고 보내 국립현대도서관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인원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 사무소는 여름에는 여름별장으로 사무실을 옮긴다,

최소한의 직원만 도쿄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짐을 싸들고 기타아사마에 있는 통칭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여름별장으로 옮겨간다,

첫 출근한 나도 함께 여름별장에 옮겨가게 되고 그곳에서 모두가 제각각 맡은 일을 진행하는 동시에 국립현대도서관이라는 거 프로젝트 일에 참여한다,

 

건축뿐 아니라 요리 새 식물 등등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등장한다,

어떤 날선 대립이나 갈등은 없다,

모두가 힘을 모아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바라는 것

처음 입사한 내가 사람들속에 무리없이 섞여들어가고 다양하면서 동시에 비슷하기도 한 사무실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여름동안 펼쳐진다,

결국  이 책의 주인공은 여름이라는 계절과 숲속 여름별장이다

이야기가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집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이 서술되어서일까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시간과 인물들

그 모든것을 아우르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인공으로 도드라진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게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주인공의 사수이면서 여름별장에서 요리도 담당하는 우치다의 말이 훅하고 들어오는 건 공간에 대한 나의 생각과 비슷해서였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지 아름다워야 하는 공간은 아니다,

난 요리책이나 인테리어책을 보는 걸 좋아한다,

아름다운 공간을 보고 부럽기도 하고 멋지다고 감탄하는 데 사실 그 공간에 누군가가 살아가고 생활의 흔적을 묻힌다고 상상하면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보기엔 아름다운데 삶이 들어가도 과연 아름다울까?

식구끼리 밥을 먹고 냄새를 풍기고 조금은 느긋하게 며칠 청소를 안해서 먼지도 보이고 구석구석 묵은 떄도 보이는 것 그러다 마음먹고 팔을 걷어서 닦아낼때의 뿌듯함도 있지만 이정도로 지저분하다고 죽지는 않아 하는 마음에 모른 척 넘어가는 부분도 많은게 우리 살림 아닐까 (나만 ?)

그렇게 살고 자고 먹는 공간은 사실 아름답지는 않다,

한 번도 요리를 한 적없어 보이는 주방이나  울타리를 치고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붙여야 할것 같은 거실이나 침실보다는 흐트러지고 그저 늘어져도 편한 공간... 그게 내가 원하는 공간이다,

 

누구라도 알 수 있고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취급 설명서 따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위라고

 

 

우리 집같은 전통 화과자점은 십 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게 일이야 똑같다는 데 가치가 있어 새로운 작품을 몇 년에 한 번 어쩌다 만들어도 손님들이 신기해하는 잠깐 동안만 팔리고 손님들은 결국 늘 먹던 것을 원하더라고 장인기라고 하면 숙련이라든가 세련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인내력과 지구력이야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사실 아버지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부러울거야,

 

 

큰 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밝고 넓으며 공걱인 공간으로 하지 않은 것도 선생님이 만드시는 주택답다, 열린 곳은 마음껏 열고 닫을 곳은 닫는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 을 분담하는 게 좋다고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울르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중략)

설계 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이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끙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할 수 없어

 

주로 우치다나 선생님이 말들

어느 순간 요리가  집이 예술이 되어버렸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공간 누구에게 보여주는 멋진 플레이팅이 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결국 본질로 돌아가면 음식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고 집은 그 공간에서 안전하게 생활해야하는 곳이다,

아름다울수록 좋고 멋질 수록 좋지만 살아가는 일상에서 늘 잊기 쉬운게 살기 쉽고 만들기 쉬워서 누구나 편안해야한다는 것

알지만 잊고 있는 기본을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소설 내내 나오는 공간에 대한 서로의 토론이나 음식을 만드는 묘사 그리고 여름별장 주위의 사람들과 자연들을 보면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일 수 있겠구나 생각케한다,

 

 

소설은 몇년 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의 여담도 나오지만

주된 시간과 공간은 내가 입사하고 처음 맞은 그 여름   여름별장에서의 일들이다,

그 곳에서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연애를 시작했다,

모든 게 여륾이라는게 당연하다,

여름은 싱싱한 청춘의 계절이니까

 

여름은 지내는 동안은 더워서 습해서 미칠것 같아도 그 순간이 지나면 묘하게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렇게 더웠는데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몹시 그립다,

겨울을 혹독하게 보내고 봄이 오면 먀냥 오는 봄이 좋았지만

여름을 견딘 후에 가을이 오면 그 여름이 그리워진다,

왜 그럴까?

주인공에게도 그 여름은 그냥 지나가는 여느 다름 여름과 다르지 않ㅇ다,

첫 사회생활 첫 사랑이 있었던 여름이라는 의미는 되겠지만 대단한 다이나믹이 있던 것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래오래 그 여름이 그곳에 남아 있는 건

결국 여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누군가의 연애담을 보는 게 참 재미있다,

누구도 몰래 하는 사내연애.. 아주 짜릿하진 않아도 그렇게 마리코와 연애하는 여름날과

아직도 진행중인 선생님의 그녀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만나는 그 훔쳐보는 간질거림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결국 어떤 연애는 여름날의 추억일 뿐이고 어떤 연애는 긴시간 덤덤하지만  끈을 놓지 않고 이어기기도 하고 그렇다,

여름과 연애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그 삶의 배경들을 생각해본다,

찬은 없지만 여름 잘 지은 쌀밥을 물말아 오이지를 얹어 먹는 소박하고 덤덤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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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눈물이 났다,

처음 읽었을 때는 울지 않았다,

그동안 나이를 먹었을까? 뭐가 변했을까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싶어졌다,

누군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를 다독여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단편 <소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어쩌면 누구보다 나를 많이 생각했었다,

드러내지 않은 감정 그래서 나조차 알수 없었던 마음

유치하게 시기심을 느끼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던 순간들

그리고 또 다시  더 유치하게 내가 더 우월하다고 느꼈던 순간들

모두가 나에게 잘못하고 있다고믿었던 순간 그러면서 동시에 그 마음조차 미안하고  미안해서 더 엇나갔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너무 초라하고 너무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만 했다,

더 노력해야하고 더 힘써야하는데 나는 게으르고 나태하고 나는 능력도 없다고

스스로를 자꾸 아래로 아래로 밀어버리는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나라는게 너무 싫었고

주변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고 누구도 나를 몰라준다고 여기지만

그 깊은 마음속에는 주변 누군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제일 밉고 싫고 바꾸고 싶었던거였다,

그렇게 나는 무조건 못난 사람이고  더노력해야만 하는 사라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이고 미워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나를 미워하면 누가 나를 예뻐해줄까

누군가 나를 예뻐해도 그 진심이 들어오질 않는다,

모두가 위선이고 겉치레고 그저 지나가는 말이라고 치부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프고 못나고 힘들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또 아무도 모르는게 당연하다고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소득도 없을 노력만 강요하던 때

 

다른 누구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해도 괜찮다

그건 이기저인게 아닐것이다,

나도 참 많이 노력했구나 나도 많이 애쓰고 있구나

그런데 몰라주고 있었구나

내가 나를 몰라주는데 누가 나를 알아줄까

나에게 제일먼저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오래 모른 척 해서 미안하다고 자꾸 다그쳐서 미안하다고

자꾸 나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좁고 못난 내가

과연 누구를 다독이고 이뻐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세상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일이다,

만약 가장 어색하고 가장 어려운 상대가 나라면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라

미안하다고....

몰라서 미안하다고...

괜찮다고 여태 괜찮게 잘 살아온거라고...

그렇게 말해주라고

소설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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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나 자신에 향해 말걸고,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

이야기와 이야기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둘러싼 커다란 테두리(?)

사건이 일어나고 그 결과 한 사람은 어던 죄도 없이  댓가를 치러야 하고

알맞은 시간에 속죄를 하지 못했던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벌주면서 속죄를 한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커다란 속죄였음이 드러나는 반전 반전 또 반전

 

속죄 용서 이런 단어를 떠올리면 사라믈은 김창동의 영화  <밀양>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의 또다른 작품 <시>도 용서와 속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떠올리는 것은 이정향의 <오늘>이다,

용서를 해야히지만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피해자에게는

용서 이전에 반성이 있어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고  사죄하는 과정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용서는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사람들은 용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거룩한지를 말하지만 막상 사죄에 대해서는 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심인지 얼마나 댓가를 현실적으로 치렀는지는 넘어간다,

그저 용서만이 온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살기좋게 하고 옳은 것이라고만 말한다,

피해자는 제 상처를 추스르기도 전에 용서해야하는 압박속에 갖히고 만다,

용서 하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사죄는 권리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할 과제이다,

 

 

 

 

 

 

 

 

 

 

김애란의 <서른살>의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희도 자라면 내가 되겠지 고작 내가 되겠지"

 결국 자신처럼 되어버린 제자를 생각하며 주인공은 어쩌지를 못한다

 일껏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노량진에서 함께 생활했던 언니의 편지를 받고

지금의 "내"가 되기전 그 어리고 발랄했던 제자의 나이였던 "나"를 떠올리며

다시 내가 버리고 온 제자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죄책감이란 그런 것일까

기껏 떼어냈다고  돌아서서 휴우 한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그 놈은 내 등뒤에 짤싹 붙어 있다,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게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

그러나 내 등뒤의 무게에 혼자 휘청거리는 사람은 있다,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믿고 싶지만 그 무게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은 약하고 미미하고 보잘것없는게 그래서 그 무게를 어쩌지 못한다,

<서른살>의 주인공은 힘겨운 노량진에서의 재수생활끝에 미미한 대학에 진학하지만 취업은 또 아득하고 그렇게 학원가를 전전하면서 나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느낀다,

지독히도 공부를 안하고 희망도 없는 아이들이 순진하고 발랄하게 다가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다가섰던 그 순간은 희망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라는 유혹으로 시작한 다단계 생활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생활 관계속에서 마지막으로 아직 순수하고 발랄한 제자를 끌어넣는 순간까지 그는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제자의 문자를 씹고 전화를 거부하는 순간 그는 ..... 죄인이었다,

자기를 아직도 순수하게 기억하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부칠지 알 수도 없는 편지를 쓰면서

주인공은 그게 속죄라고 생각할까

이미 자기치럼 피폐해지고 자기정도의 어른밖에 되지 못한 제자를 졔속 밀어내면서도 그는 아마

오래오래 그 아이와 함께 할 것이다, 그게 그의 벌이다,

 

내가 읽은 책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인데

나는 자꾸 김애란의 <서른>이 떠올랐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속죄와 아직 살아있고 내곁을 계속 맴도는 사람에 대한 속죄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다는 회한이 남았지만

아직 살아있고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지 않냐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라리 죽어버려서 모든게 끝나버려서 가벼워질 수 있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자기기만일 수 밖에 없드라도) 것이 있다면 아직 현재진행형이어서 점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우유부단 회피 망설임의 덧대어지는 죄들이 있다,

누구의 죄가 더 클까

나는 신이 아닌데도 아무것도 아닌데도 자꾸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었다,

 

 

 

 

 

                

 

 

이차대전과 작가라는 소재에서는 두 책이 연상된다,

전쟁동안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게 되는 이야기와

전쟁을 겪으며 궁핍한 상태를 견디는 작가가 멀리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있는 서점주인과 교류하며 서로를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이 책도 다른 인물이지만 전쟁을 겪는 이야기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겹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남기고 싶은 것

그저 흩어지고 엷어져서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싶은 그 순간 그 감정 그 사람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잡고 싶은 그 마음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잡고 싶은 그것은 어떤 대상일 수 있지만 그것은 '나'를 그대로 박제하는 일이다,

브리오니는 자기의 죄를 반성하기 위해 그 순간을 기록하기로 하고

건지감저껍질 파이의 작가는 그 시대의 상황을 씀으로써 그 시대의 모습과 함께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대상인 동시에 자신이다,

그것이 반성이든 생계를 위한 것이든 어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든

그가 쓴 글에는 작가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너무  택도 없는 비유겠지만

어쩌면 이 서재에 글을 남기는 나도 내가 읽은 책들(대상)을 기록하는 일인 동시에 나를 드러내느 일이다, 내가 여기서 쓰는 글은 그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나라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쓴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브리오니가 자기가 들어가는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것은 그가 아직 어리고 유치하고 서툴러서가 아니라 그때부터 누구가 품고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주인공이가 자기가 겪어야 하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자기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if 란 있을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나 사실을 되돌릴 수 없는 것

역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그렇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다, 되돌리려고 하고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꿰맨 상처는 흉터로 남아버린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되돌리는 일은 없으며 원인에 대한 결과는 단 하나뿐이다,

소설은 그 역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결말을 바꾸고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혹은 일아나게 하는 일

그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은 지워버리고 해야만 했어야 하는 말을 삽입한다

신은 아니지만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기가 쓰는 작품안에서

브리오니가 그렇게 자기 작품속에서 세상을 바꿈으로써 속죄를 한다,

미안한 마음  그러나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 마음으로 몇번은 고치고 고쳐가며 소설을 썼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것이 모두 브리오니의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가 앞에서 언급했던  "소설에 없던 것은 내 삶에도 없었다"

부딘칠 수 없던 일들을 차마 쓸 수 없던 그는 드디어 직면해서 쓰기 시작했다,

지나버린 역사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만들어내면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리오니는 자기가 꼭 들어가야만 한다고 믿었던 유년시절의 미성숙한 의지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작가가 되었다,

 

 

브리오니는 결국 언니 세실리아에게도 그의 연인 로비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미처 그럴 틈도 없이 두 사람은 사망했고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브리오니는 그 커다란 속죄를 해피앤딩이 있는 소설로 대신한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연인을 소설속에서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내면서

스스로는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용서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스스로를 속죄하려고했다,

열세살의 브리오니는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이였고

이제 어른이 된다는 어쩌면 설레고 짜릿하면서 아찔한  그 순간이  얼마나 그릇되고 독선적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본 사실 내가 받아들이는 진실이 전부라고 믿는다,

이미 틀을 만들고 그 틀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틀이 어른의 틀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아이였다,

존중받고 관심을 끌고 싶고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를 실현해야하는 인물을 자기여야 한다고 믿는 아이 그 아이의 거짓말은 아니지만 잘못된 판단이 사람들을 끝으로 몰아갔다,

이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앞으로 밀고 나가려는 힘에 밀리고 만다,

그리고 후회는 언제나 때가 늦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속죄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를 아울러 속죄에 대해 죄책감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죄도 업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죄 이후가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직면하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잘못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잘못을 알지만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누구나 세가지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적거나 크거나,,,

 

그냥 이야기의 재미를 따라 읽다가

주인공에 따라 나를 생각하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전쟁과 역사에 대해 생각하다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속죄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결국 인간이란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그 이후가

속죄를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범으로 하는가 의 문제가 그 품격을 결정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도덕책에서는 가장 쉽게 서술되어있지만

삶속에서는 가장 어려운 행동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가져다 주는 이언 매큐언은 진정 작가라고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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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1-1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언 메큐언...미루고만 있었는데,
이동진 때도 안 읽던걸 펼쳐들고 싶게 만드셨습니다요~^^

푸른희망 2017-01-17 21:20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셔요. 김중혁도 추천했잖아요~~^^님의 리뷰 기대합니다

cyrus 2017-01-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글쓴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라는 생각, 푸른희망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글쓴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들은 완벽히 옳을 수가 없어요. 틀릴 수 있습니다. 생각이 틀리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은 자신의 리뷰가 비판받으면 불편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시인하면 뭐라 할 사람 없습니다. 다만 자꾸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서 고집 부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면 주변 사람들의 잡음이 더 많아집니다. 글은 글쓴이의 결함을 가리기 위한 옷이 아닙니다. 글은 글쓴이의 분신입니다.

푸른희망 2017-01-17 21:21   좋아요 1 | URL
그래서 가끔 서재에 글을 올리고 나면 너무 부끄러울 때가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계속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cyrus 2017-01-17 21:26   좋아요 0 | URL
2, 3년 전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워요. 그 당시 글을 쓰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비문이 보여요. 벌거벗은 아기 시절 모습이 찍힌 앨범사진을 보는 기분입니다. ^^
 
게스트 퓨처클래식 4
세라 워터스 지음, 김지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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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는데 느닷없이 이 책이 떠오르는 거다,

아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구입할까 말까를 망설이며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보관함으로 옮겼다가 다시 장바구니로 옮겼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비치된걸 알고 예약하고 기다리고.,...

보통 에약 2순위래도  4주 정도면 받을 수 있는데

이 책은 계속 연체에 걸렸는지 두달이 지나고 거의 잊을 무렵 내 손에 들어왔다,

핑거스미스의 두께를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했지만,,그 묵직함이라니,,,

그러도고 한동안 읽지 못했다,

두께에 그리고 미리 지레 겁을 먹고 있던 내용에 그냥 저냥 다른 책을 읽다가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뉴스에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화두로 떠올랐고

프랜시스와 릴리안의 사랑과 우정보다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애증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현실이 상상이상이라서였을까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사이 그리고 사랑이 자꾸 겉돌았다,

그래서 뭐?

그래 알았다니까 알았어, 니네들도 영혼의 반쪽이었구나

뭐 그렇다고 살인이 등장할 건 뭐람?

뭐 그렇게 반쯤은 딴데 넋이 빠져서 두 사람을 조금 소홀했고 그렇게 책장을 덮었다,

초반에 비해 조금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했던 후반이 가까스로 끝났구나 하고 잊었다,

 

그런데 어젯밤 문득 떠오르는 거였다,

이건 이렇게 지나가면 안되는거였구나

 

전쟁이 지나고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일상들

이미 세상은 전쟁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거리에는 상의군인 퇴역장교가 넘쳐나고 여자들의 사회활동은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그런 모습은 눈에 두드러지는 거였고 니네들은 우리덕에 전쟁에서도 편하게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증오가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상황

무언가 지루하고 갑갑한 현실이 바뀌기를 바랬지만 그건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란것과는 다르다,

변화가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몰락한 상류계급 

전사해버린 두 남자 형제

무기력하게 죽어버린 아버지

투자실패로 이어진 가난 가난

결국 아직 채 서른도 되기 전에 노처녀가 되어버린 프랜시스는 무능력한 상류 마나님이었던 어머니와 이제 여기저기 삐걱거리기만 하는 낡고 큰집을 유지하기 위해 하숙을 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프랜시스앞에 나타난 릴리안과  레너드

 

세간의 눈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들인 이층 세입자들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삶은 달라지고 틈이 생기고 균열한다,

세상은 조금씩 아니 퓍퓍 바뀌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걸 모른 척 하던 모녀에게 구체적인 변화의 증거가 나타난 셈이다,

어머니 이외 아무런 관계망이 없던 프랜시스에게 릴리안은 인간과 인간의관계를 다시 자극한다

함께 소풍을 나가고  찝적거리는 남자를 쫓아내고 함께 뒷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살림을 조언하면서 우정이 생기고 위안을 얻는다,

때로는 작은 관계가 급박한 삶에 작은 휴식이 된다,

어쩌면 두 사람의 동성애라는 거대한 담론보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관계가 이 책의 중심이 아니었을까 ,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프랜시즈

변화에 대해 느끼지 못하다가 프랜시스를 만나고  자기를 돌아보며 주저하다주저하다 변하기로 마음먹은 릴리안

그들이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디딘 새로운 세상은 그녀들에게 가혹했다,

살인이 일어나고 경찰의 조사가 이어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탐문과 수사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변하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냥 그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미 한발을 내디딘 후였다,

되돌아 가기엔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책이 끊이 나도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이젠 이전의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대로 발을 디딘 두 사람은 그렇게 앞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우리도 칼을 뽑았고 시작을 해버렸다,

파도파도 끝이없고 상상이상의 막장이 계속되어서

우리가 이런 치사하고 저급한 스캔들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지만

이미 발을 디뎠고 여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두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이제 우리도 발을 디뎠구나

되돌릴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고 그래서는 안되는 시점을 지나고 있다,

그녀들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그리고 우리 앞날에도  정의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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