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ors 살아남은 자들 2 - 숨어 있는 적 서바이벌스 Survivors 시리즈 2
에린 헌터 지음,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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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으르렁거림이 휩쓸고 간 도시에서 살아남은 럭키와 또 다른 개들의 판타지 생존기인 『살아남은 자들』 2권이 나왔네요.^^ 1권에서 고독한 도시의 개인 럭키는 홀로 생활하길 원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개들인 ‘줄에 묶인 개들’이 야생에서 홀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 숲속에 새로운 터전을 잡아주고, 그들 곁을 떠나 자신이 꿈꾸던 혼자만의 삶을 찾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무리’였던 이들 줄에 묶인 개들이 위기에 처한 소리를 듣고는 그들에게로 달려가며 끝이 났었죠.

 

이제 2권은 이렇게 도착한 그곳에서 야생의 무리들 앞에서 위기에 처한 자신의 무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늑대개가 이끄는 무리들 앞에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줄에 묶인 개들은 당하고 말죠. 이렇게 해서 야생의 무리들과 줄에 묶인 개들 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2편은 바로 이런 갈등구조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줄에 묶인 개들을 이끌고 있는 럭키의 동생 벨라는 럭키에게 야생의 무리에 들어가 그들의 상황 정보를 빼내주길 원합니다. 이에 럭키는 야생의 무리에 들어가고, 그곳 생활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차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는데, 과연 럭키는 나중 어느 편을 선택하게 될까요? 그리고 럭키는 어느 편에 속해 있는 걸까요?

 

2편 역시 개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줄에 묶인 개들은 야생에 적응해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과연 이들은 개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야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럭키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갖게 됩니다. 먼저, 자신이 어느 편인지에 대한 갈등과 혼란입니다. 줄에 묶인 개들을 자신의 ‘무리’로 생각하던 럭키는 야생의 무리들 속에 들어가 생활하며 점차 야생의 무리들의 생활에 매료됩니다. 처음 자신의 의도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 이들 야생의 무리를 자신의 무리로 여겨야 하는지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럭키의 모습을 2편은 잘 보여줍니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럭키의 선택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이런 소속의 갈등과 함께 럭키는 무엇보다 ‘고독한 개’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맞게 됩니다. 자신은 고독한 개라고 여겼는데, 무리 속에서 생활하며 점차 함께 함의 행복을 알게 된 거죠.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수많은 폭풍을 겪었던 올드 헌터가 말해 줬었지.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늘 번개의 공격을 받는다고.(65-6쪽)

 

맞아요.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늘 번개의 공격을 받게 마련이죠. 럭키 역시 이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고요. 함께 함의 행복, 어울림의 행복이 우리들에게, 특히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득하길 원합니다. 물론, 좋은 이들과의 함께 함이어야겠죠.

 

또 하나 생각해 보는 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럭키의 편인 줄에 묶인 개들과 이들을 쫓아내고 공격하는 야생의 무리들 간의 대립구도를 보입니다. 독자는 마땅히 야생의 무리들을 악당으로 분류하게 마련이죠.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가운데, 독자들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과연 어느 편이 악당인지 독자는 의아해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보고 알지 못한 상황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말입니다. 야생의 무리가 악당일 것 같았는데, 그 안에 들어가 이들의 삶을 알아가는 가운데 럭키는 자연스레 이들과 동화됩니다. 이들의 삶 속에는 치명적 행복을 주는 행위도 있고요. 바로 위대한 울부짖음입니다. 이것 역시 서로가 하나임을 드러내는 행위이기에 이 책에서는 이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물론 럭키는 야생의 무리 안에서 드러나는 계급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계급의 필요함을 깨닫긴 하지만, 여전히 거부감이 있죠. 그리고선 자신이 꿈꾸는 공동체에 대한 밑그림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만약 언젠가 자신만의 무리를 만들게 된다면, 자유롭고 편안하며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는 무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 누구도 잘난 체하지 않고 괴롭히거나 두목 행세를 하지 않는 무리. 럭키는 오메가가 마지막 남은 뼈다귀까지 허겁지겁 부수어 먹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148쪽)

 

럭키가 앞으로 과연 이런 공동체를 꿈꾸고 이루어가게 될지 기대되네요. 3편에서는 럭키 앞에 과연 또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 기대해 봅니다.

 

참, 2권의 제목은 「숨어 있는 적」이랍니다. 과연 이 숨어 있는 적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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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곤충술사 레오 3 : 나폴레옹 황제, 약속의 소환자가 되다! - 시공초월 세계문화유산 판타지! 마법곤충술사 레오 3
쿠시마 미치에 글, 오가와 타케토요 그림, 조은경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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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곤충술사 레오』는 시공초월 세계문화유산 판타지 동화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공을 넘나드는 판타지이며, 세계문화유산과 연계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화랍니다. 먼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 <도미터>, <몬스터> 이렇게 세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도미터는 마법의 힘을 사용하는 종족이며, 몬스터는 사악한 힘을 가진 종족입니다. 당연히 몬스터와 도미터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죠. 어느 날 인간계에 위대한 인간이 나타납니다. 바로 아서 왕인데요, 아서 왕은 당시 도미터의 수장과 협력하여 몬스터들을 다른 세상인 <이세계(알트몬드)>에 가두고 봉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갇힌 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봉인을 세계 각지에 분산시키는데, 이렇게 봉인된 곳이 바로 세계문화유산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트몬드에 갇혀 있던 몬스터들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봉인을 하나하나 파괴하여 세상을 파괴하려 합니다. 이에 이를 막기 위한 도미터가 바로 주인공 레오랍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레오는 도미터 중에서도 가장 낮은 등급인 <마법곤충술사>입니다. 마법곤충술사는 마법곤충을 불러내 그 힘을 사용하는 도미터인데, 이처럼 하급 도미터인 레오가 친구들인 마가렛, 에드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의 봉인을 지켜내는 이야기가 바로 『마법곤충술사 레오』입니다.

그 세 번째 이야기인 「나폴레옹 황제, 약속의 소환자가 되다!」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어느 날 커다란 거미괴물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사물이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곤충으로 변하는 것은 마법곤충술사만이 행할 수 있는 마법이랍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마법곤충사는 단 한명인 레오밖에 없고요. 이로 인해 레오는 도미터들에게 반역죄로 붙잡히게 되고,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과연 레오는 이 누명을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과연 이 일은 누가 행한 일일까요?

 

레오는 하급 도미터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강한 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감하게 대항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드는 저돌성을 보이는 아이랍니다. 이런 용기 때문일까요? 가장 약한 도미터 임에도 언제나 다른 강한 도미터 못지않은 큰 힘을 발휘하네요. 어쩌면 용기야말로 가장 큰 마법 아닐까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용기라는 마법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또한 레오의 친구 마가렛은 그저 평범한 인간 소녀에 불과합니다(물론 평범한 인간이 아닌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럼에도 레오가 문화유산 속에 감춰진 봉인을 찾는 데에는 가장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가렛의 도움이 없다면 레오는 봉인을 찾을 수 없죠. 왜냐하면, 마가렛에게는 뛰어난 머리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지혜 역시 마법일 수 있겠네요. 우리 안에 주어진 지혜라는 마법도 붙잡아 봅니다.

 

레오의 또 다른 절친 에드야말로 어쩌면 가장 평범한 소년에 불과합니다. 레오는 마법을 행하는 도미터고 마가렛은 부유한 가문의 공주 같은 존재이자, 뛰어난 천재소녀죠. 하지만, 에드에겐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또 하나의 마법이 아닐까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에도 친구들을 향한 우정과 믿음, 그리고 함께 하는 그 여정이 또 하나의 마법이 되어 엄청난 힘을 발휘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법은 언제나 우리 곁에 가득 한 것 같네요.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또 하나의 마법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놀라운 날이 되길 바래봅니다. 세계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도 쌓고, 재미난 판타지 이야기에도 빠지게 되는 판타지 동화, 『마법곤충술사 레오』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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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갈매나무 청소년문학 2
야나 프라이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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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새미에게 갑자기 여러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먼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다. 산부인과 의사라는데, 새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사실, 누구였든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런데, 그 애인과 결혼하겠단다. 사춘기를 겪는 새미의 인생에 갑자기 새아버지가 끼어든 것.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고민은 새미의 마음을 훔쳐간 소녀가 생겼다는 것이다. 바로 카를로타라는 빨간머리 소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미의 절친인 레안더와 카를로타가 커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카를로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레안더인데 말이다. 이에 새미는 레안더를 향한 미움을 키운다. 아니, 새미는 예전과 달라진 엄마에게도, 자신의 삶에 갑자기 끼어든 엄마의 애인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카를로타에게도, 미움의 마음을 키워간다. 이런 미움의 마음은 새로운 형태로 새미를 휘어잡게 된다. 바로 폭력이란 형태로 말이다.

 

새미는 덩치가 작은 녀석이다. 그런 새미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바로 라파엘이란 친구인데, 좋은 녀석이 아니다. 이 녀석을 통해, 새미는 점차 변해간다. 무엇보다 폭력이 주는 달콤한 권력의 힘을 알아가며, 점점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작은 악마가 되어 간다. 이런 새미의 모습은 불안 불안한 외줄타기를 보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과연 새미가 맛들인 폭력의 끝은 어디일까?

 

이 책,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는 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소년소설이다. 사실 폭력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해왔던 인간의 한 단면이다. 그만큼 폭력은 우리에게서 몰아내기가 쉽지 않은 한 본성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정당화 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우린 어떤 폭력도 배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폭력이란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새미와 그 일당들은 다른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피해자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그들은 타인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못된 녀석들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존엄성만이 빼앗겼을까? 그렇지 않다고 여겨진다. 폭력의 노예가 되어가는 가해자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인간성을 상실해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폭력의 가해자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미는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또한 폭력이라는 악마적 속성의 피해자이기도 한다.

 

이처럼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의 제목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 안에는 교차적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이 문장은 주인공 새미가 폭력을 행하며, 피해자들에게 윽박지르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은 폭력의 악마적 모습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의 제목에 담겨진 또 하나의 의미, 반어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그건 바로 새미의 폭력의 출발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어졌던 것이다. 새미가 폭력에 물들게 되는 그 시작은 대화의 단절에 있었다. 새미가 겪는 고민, 아픔, 그리고 외로운 심경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상황이 그 출발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해서, 대화의 창구가 닫혀 있다고 해서, 폭력을 그 탈출구로 삼음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미가 남몰래 아픔을 겪고 힘겨워할 때, 어느 누구도 새미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 입술을 열지 못했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란 이 문장은 새미가 점차적으로 폭력의 악마성에 물들어가고, 그 폭력이 부여하는 권력에 탐닉하게 되는 출발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내 아픔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은 극단적 결말을 낳을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이 소설은 폭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자꾸만 책장을 덮고만 싶은 소설이다. 어쩌면 읽고 싶지 않은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이런 아픔의 모습들을 직시함으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러한 소설을 통해, 깨닫고 이젠 누군가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기 위해 손을 내밀 것이 아니라, 힘겨워하는 친구를 위해 넘어진 친구를 위해 손을 내미는 인생들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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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친 소년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7
이꽃님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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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출신 용이는 여관에서 일을 하지만, 경성역 앞에서 어수룩한 자들의 가방을 노리곤 한다. 그런 용이의 레이더망에 든 한 청년이 있었으니, 비싼 옷을 입고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있는 그 모습에 타깃을 삼고 결국 가방을 훔치게 되지만, 상대가 그토록 달리기를 잘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용이의 결정적 실수. 이에 가방 주인 주학에게 붙들린 용은 그곳에서 가방을 건네는데, 가방은 주학의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아 아닌가. 게다가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권총 한 자루와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전단지 묶음이었으니.

 

이에 일본 순사들의 눈이 두려운 용은 가방을 숨기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주학은 용이 일하는 여관에 머물며, 뒤바뀐 가방의 행방을 찾게 되는데, 과연 가방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뒤바뀐 가방 안에 든 이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소설, 『이름을 훔친 소년』은 일제시절 창씨개명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국을 잃은 조선 백성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름조차 지키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이름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름을 지켜낸다는 것이 무엇을 지켜내는 것인지, 용이와 기영, 그리고 주찬의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있어 이름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용은 거지로서 살아갈 때, 다른 거지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자신의 이름만은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쳤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거지들에겐 버젓한 이름이 없지만, 용에게는 최용이란 이름이 있으며, 이것이 자신이 가진 전부이기에. 하지만, 거지로서 살아가며, 어느 순간 이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생존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일제의 이름을 바꾸라는 정책 앞에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없다. 그에게는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기에.

 

그만 좀 해. 형 이름이 뭐 그리 잘난 이름이라고 악착같이 버티겠다는 거야? 막말로 이름 좀 바꾼다고, 형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 조국이 우리한테 뭘 해 줬는데? 아니, 우리한테 조국이 있기나 해?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게 우리 같은 애들이 조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야.(100-1쪽)

 

어쩌면 이런 용의 입장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용과 같이 생존 자체가 일생일대의 과제인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지켜내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고, 이름을 지켜내는 것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시키는 대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용을 돌봐주던 형 기영은 말한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용아, 조국을 빼앗겼다고 이름까지 빼앗길 순 없어. 그럴 순 없는 거야. ...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야.(100-1쪽)

 

왜냐하면, 우린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 작가는 말한다. 즉 이름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 그 사람이 행한 업적, 그 사람과 만들어갔던 수많은 추억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기영은 그렇기에 이름이 전부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낸다. 이런 기영의 모습에 많은 조선 백성들이 자극을 받게 되고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기영과 같은 입장에서 기영의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은 너 자신이오. 그 자체다. 그러니 그걸 잃을 순 없지 않겠니. 무서운 건 길들여지는 게지. 가만히 있도록 길들여지고, 폭력에 길들여지고, 삶을 잃는 것에 길들여지는 거지.(156쪽)

 

용 역시, 처음엔 자신이 가진 단 하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지만,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에 점차 길들여지고, 이제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용과 주학, 그리고 거지들인 누렁이와 딱지는 이제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기영의 모습을 통해, 자각하게 되고, 기영의 이름을 지켜주며, 이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넷은 이제 친구가 되어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 소설, 『이름을 훔친 소년』은 일제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울분과 설움뿐 아니라, 비록 나라를 잃은 백성이지만, 이름을 지켜내려는 작은 몸부림을 통해, 진정한 자존심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열리게 되는지도 보여주며, 오늘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오늘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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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아이 바다로 간 달팽이 16
김미승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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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닮은 여자 아이 고례. 사내아이들보다 훨씬 큰 몸집과 엄청난 힘을 가진 고례는 태어날 때부터 괴기스러울 만큼 컸다. 그랬기에 불길한 징조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어졌고, 결국 관아에서 사람이 나와 이 아이를 본 후엔 13살이 되면 궁궐 액막이로 보내야 함을 통보받은 아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긴 커녕, 아이들의 멸시와 조롱의 놀잇감이 되어야 했던 아이.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자라기보다는 큰 덩치와 힘으로 인해 그저 노동력으로 취급받아야만 했던 아이.

 

이 아이, ‘고례’는 어느 날 한 도령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구해주게 된다. 이 도령은 바로 뒤처진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개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도련님이었다(물론 소설 속에서는 김옥윤으로 등장하지만, 갑신정변의 주동자인 김옥균을 가리킨다). 고례는 난생 처음 자신을 그저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봐준 이 젊은 도령에게 자신의 액막이로서의 운명을 막아 달라 부탁하기 위해 도령이 산다는 한양 북촌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되는데. 과연 ‘고례’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소설 『세상에 없는 아이』는 13세에 6척 장신인 거구의 소녀, ‘고례’가 자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을 딛고 세상을 향해 용기 내어 발을 띄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전히 힘겨운 순간들이 있고, 세상의 편견의 시선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세상을 향해 나아감으로 전설의 고대수라 불리게 된 고례. 고례는 갑신정변에 가담한 유일한 여성 혁명가인 궁녀 고대수를 소설 속에 투영한 인물이다.

 

작가는 갑신정변에 얽힌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갑신정변이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목적하기보다는 ‘고례’의 용기 있는 도전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편견과 남들과 다른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용기 내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꿈꾸며 나아간 고례의 그 용기를 오늘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다르게 생긴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151쪽)”라고 말이다.

 

또한 청나라 상인들의 마차에 치어 죽은 덕이, 그 사건을 대하는 양반 민대감의 반응을 통해, 개화건, 쇄국이건, 중도건 간에 진정한 정치의 기본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고례는 민 대감 댁 솟을대문을 뚫어져라 쏘아 보았다. 이건 아니었다. 뭔가 잘못 되었다. 나랏일을 하는 양반이 제 나라 죄 없는 백성에겐 곤장을 치면서 죄 지은 남의 나라 사람을 비호하다니. 아, 이런 세상은 싫다.(104쪽)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덕이와 같은 희생자를 여전히 만들고 있는 세상은 아닌지.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 이제는 더 이상 결코, ‘아, 이런 세상은 싫다.’라는 고백을 끌어내지 않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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