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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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을 사면(또는 책을 손에 넣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띠지를 버리는 행위부터 시작한다. 어떤 분들은 이 띠지를 꼭 소장하지만 난 거의 대부분 버린다. 왜냐하면, 띠지에 쓰여 있는 문구들은 독자들을 현혹하는 문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왜 그런 문구를 적어야만 했을까 공감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허탈하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터넷 기사에서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제목들로 독자들의 클릭을 낚으려는 행위처럼 띠지의 역할 역시 유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등단 35년차 베테랑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란 문구가 눈에 띤다. 물론, 이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 이번(2020)이 처음이고 그렇기에 작가 등단 35주년인 건 맞다. 하지만, 이 소설은 2001년 작품이다. 시비 걸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는 말이다(“따지는 건 아니지만이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따지는 게 맞다.).

 

푸념부터 늘어놨는데, 이왕 한 것 또 하나 늘어놓는다. “당신이 몰랐던 새로운 히가시노 게이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문구가 띠지 앞면에서 튀어 오른다. 그렇다. 이 소개는 어느 면에선 맞다. 여태 읽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어쩐지 허무개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 이 소설집을 접한 솔직한 첫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정말 이 소설집이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때, 인기가 있었던 게 맞나? 혹시 작가의 이름 때문에 많이 팔렸던 건 아닐까? 어쩌면 거의 20년 가까이 국내에서 이 작품이 번역 출간 되지 않은 그 이면에 진실이 감춰져 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이 소설집의 작품을 읽으며 들었던 처음 감정들이다.

 

그런 감정은 소설집(그렇다. 이 책은 도합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이다. 모두 추리소설가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읽어가는 가운데 일정 부분 수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묘하게도 허무 개그와 같은 작품들에 빠져 들게 되고 이런 독특한 느낌에 매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결국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하는 동의를 일정 부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집을 덮으며 든 생각은 정말 여태 몰랐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은 배부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내 평가와 달리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분명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지 않을까 하는 것도 사실이고.

 

어쩌면 본인 스스로 소설가로서 그리고 추리소설가로서 소설가들의 세계, 출판계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과 자기비하, 풍자를 소설 속에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분명 일정 부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집을 읽는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당부는 단편 하나만 읽고 책을 덮지 말라는 것, 계속하여 한 단편 한 단편 계속하다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으니 말이다. 첫 단편의 느낌도 어느 샌가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이왕 책을 든 것 끝까지 읽으면 후회는 없을 게다(솔직히 자신할 순 없지만.). 어떤 측면이든 간에 출판사가 선전하는 것처럼, “당신이 몰랐던 새로운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판단은 결국 남이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하는 것임을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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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1-23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띠지를 버리는 편이라서 뭔가 반갑네요. 출판사의 홍보문구는 한귀로 흘리긴 하는데, 그런 이유보다는 띠지가 걸리적거려서 기냥 버려요. 그나저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꾸준하게 책을 내는군요. 최근작들도 과거작품들 만큼이나 재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중동이 2021-01-23 16: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책을 읽을 때, 띠지만큼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죠^^
요즘 신작도 재미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