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임진왜란 - 성장소설로 다시 태어난 쇄미록
황혜영 지음, 장선환 그림 / 아울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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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영 작가의 신작 역사동화 열두 살의 임진왜란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12살 여린 소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쇄미록>이란 역사기록에서 시작됩니다. 그전에 미처 몰랐던 <쇄미록>이란 기록에 대해 동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쇄미록>은 조선 중기의 선비 오희문의 일기라고 합니다.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곳저곳으로 피난을 다니며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역사자료입니다(그러니 오희문의 난중일기인 겁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는 뜻을 가진 <쇄미록>이지만, 그 역사적 의의는 결코 보잘것없지 않습니다. 당시 전쟁 중에 겪는 민중들의 고난과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쇄미록>을 기반으로 창작한 역사 동화 열두 살의 임진왜란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열두 살 담이는 엄마가 정성껏 만든 혼례복을 양반 댁에 전하기 위해 심부름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만 그 사이 왜군이 마을에 쳐들어오게 되었고, 담이의 고향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버립니다. 고향마을이 왜군의 공격에 풍비박산 나게 되고, 부모님들 역시 죽고 맙니다. 오빠는 생사를 알 수 없고, 고모 댁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담이는 우여곡절 끝에 동생을 만나지만, 동생은 결국 전쟁의 혹독함 속에서 죽고 맙니다. 담이 역시 죽음 직전에 찾아가게 된 마을에서 어느 양반 댁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과연 담이처럼 여리기만 한 열두 살 여아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세상에 홀로 던져진 담이에게 혹 남은 혈육이 존재할까요? 혹 누군가 남아 있다면 서로 만날 수 있을까요?

 

동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물씬 느끼게 해줍니다. 아울러 그 끔찍함 속에서 작가는 여성의 고단한 삶을 그려내기도 하고, 신분제도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아울러 양반은 벼슬을 위한 학문을 해야만 하는지 아님 삶에 실제적 도움을 주는 학문을 해도 좋은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게 됩니다.

 

동화를 통해 무엇보다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 되며, 아울러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록의 중요성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쇄미록>은 현재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쇄미록>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동화를 읽고 아이들과 함께 국립진주박물관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침 내년(2021) 3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쇄미록>을 특별전시하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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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2 - 사라진 발명품 탐정 클럽 2
페니 워너 지음, 효고노스케 그림,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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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클럽 시리즈>의 작가 페니 워너가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탐정클럽의 두 번째 책을 만났습니다. 이번 책은 사라진 발명품이란 제목입니다.

 

2년 전 실종된 엄마에 대한 작은 단서를 얻었던 쌍둥이 남매 라일라와 제이크는 엄마 실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나갑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들 학교의 과학 선생님이었던 피니어스 판스워스 박사 역시 같은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두 사람, 게다가 같은 과학자라는 공통점, 이렇게 둘에 대한 조사를 하는 가운데 두 아이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과학 선생님과 자신들 엄마는 서로 잘 알던 사이, 아니 심지어 같은 연구를 하던 동료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엄마와 피니어스 판스워스 박사는 놀라운 3D 프린터를 발명 중이었대요. 일반 3D 프린터와 다른 특별한 프린터로 말 그대로 뭐든 뚝딱 만들 수 있는 환상적인 발명품을 말입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둘은 지금은 남매의 친구가 된 마술사 왈도와도 잘 알고 있었대요. 게다가 왈도 역시 같은 발명품을 발명 중이었고요(왈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죽임을 당했답니다.).

 

이렇게 단서들을 발견해 낸 남매는 이번엔 집 다락방에서 엄마가 남긴 암호문을 발견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피니어스 판스워스 박사를 찾아가라는 암호문을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판스워스 박사를 찾아가게 된답니다.

 

그런 아이들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집니다. 자신을 감추고 은거중인 판스워스 박사는 그동안 연구한 노트를 잊어버렸답니다. 그리고 마술사 왈도의 유령은 그전에 만들어놓았던 발명품을 도난당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 두 사건은 연관이 있는 걸까요? 같은 도둑이라면 그 정체는 누구일까요?

 

마술과 과학, 그리고 추리가 결합된 추리동화인 탐정클럽, 이번 이야기 역시 재미납니다. 무엇보다 사라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 엄마의 흔적들을 좇아가는 아이들의 노력이 애틋하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중간중간 마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것 역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요. 게다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엄마의 메모에서 발견된 암호문을 푸는 문제를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암호클럽>의 등장인물인 코디 존스가 등장하여 도와준답니다. 이렇게 <암호클럽>의 코디 존스를 <탐정클럽>에서 만나는 것 역시 반가웠답니다.

 

범인에 의해 붙잡혀 묶여 있는 상황, 그리고 범인이 지른 불로 인한 연기, 그 속에서 천식을 앓는 제이크로 인한 위기 상황은 아찔하면서도 긴박감이 넘쳤답니다. 아찔한 재미를 느낄 만큼 말입니다.

 

두 아이들은 과연 실종된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선 얼마나 더 엄마의 실종 사건에 다가가게 될지, 그리고 둘 앞에는 또 어떤 아찔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함을 품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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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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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데쓰야를 처음 만난 것은 <레이코 형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인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통해서였다. 소설을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힘겨웠던 것은 소설을 통해 만나는 너무나도 잔혹한 인간성 때문이었다. 가히 짐승이라 부를만한,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범죄의 모습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너무나도 잔혹하고 사실적인 범행 묘사, 그리고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 그럼에도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좋아 그 매력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혼다 데쓰야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결국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여럿 찾아 읽게 되었다.

 

내가 만난 혼다 데쓰야의 작품 가운데 최고이자 최악의 작품은 다름 아닌 짐승의 성이었다. 악마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는다면 악마를 만날 수 있는 작품, 그래서 최악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미스터리소설로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작품이었다(특히, 그 반전이란...). 이런 작품들을 읽으며, 혼다 데쓰야의 작품들은 모두 그런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 건 마스야마 초능력사 사무소란 작품이었다.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연작 소설이었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 작품에 같은 작가인가 싶을 정도였던 기억이다. 이제 또 다른 분위기의 감동미스터리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란 작품인데, “플라주란 이름의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입주자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여행자 직원으로 수년을 일했지만, 딱히 보람도 없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아니 도리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다소 무능한 영업직원 다카오, 그는 단 한 번의 탈선으로 약을 접하게 되고 이 일로 집행유예 전과자가 된다. 이렇게 직장마저 잃은 그는 그나마 있던 숙소마저 화재가 남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 그런 그를 받아준 곳이 바로 플라주란 셰어하우스다. 각 방마다 문이 없이 커튼으로 가려진 독특한 분위기의 셰어하우스, 아래층 1층은 같은 이름의 카페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엔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장소다.

 

이곳 플라주란 곳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전과자다. 그 가운데는 누군가를 죽인 전과자 역시 여럿 있다. 모두가 알고 보면 상처 하나씩 가지고 있는 플라주. 전과라는 흔적이 인생에 너무 깊이 상처를 내어 회복이 힘겨운 이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에서 다카오는 세상에서 얻지 못한 위로와 평안, 참 안식처를 누리게 된다. 과연 그곳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소설은 전과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악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한순간의 실수나 한순간의 잘못으로 전과자가 되고, 이 전과자라는 낙인이 그들의 갱생의지를 꺾어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잡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보려 하지만,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전과자들, 그들에게 플라주라는 셰어하우스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아니 그곳은 그들을 품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자궁과 같다. 플라주라는 엄마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아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그곳 플라주를 세운 여인 역시 상처가 있다.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상처, 그로 인해 법의 처벌을 받았지만, 그 뒤로도 낙인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혀 결국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내몰려 자살이란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아버지를 둔 딸, 그 딸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자들을 보듬어 안아주려는 공간이 바로 플라주다.

 

아버지는 분명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 나라는 법치국가다. 설령 죄를 저질렀어도 제대로 벌을 받으면 용서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그 사람이 제대로 갱생했는지 어떤지, 재범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그건 또 다른 문제일 터다.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는 재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 정도는 사회가 보장해주어도 좋지 않은가(346).

 

사실 소설은 어쩐지 미스터리 같지 않다. 그럼에도 미스터리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곳 플라주에 위장 잠입한 프리랜스 기자의 존재다. 그는 플라주에 입주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일까? 기자의 입장에서 서술할 때는 라는 존재로 나오지만, 그 나는 입주자 중 누구일까? 그리고 그가 위장 잠입하여 살인자 A라는 자의 살인을 입증하려 하는데, 정말 그것이 목적일까? A는 플라주 입주자 중 누구일까? 그리고 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러한 점들이 미스터리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둔다. 여기에 전과자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사회파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전해주는 것은 이곳 플라주에서 발산되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제목인 플라주는 해변이란 뜻의 불어라고 한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읽는 가운데,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주변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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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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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이란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의 책장을 열어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독특한 제목에 있었다. ‘침묵 박물관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지, 무엇을 전시하는 공간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침묵이 도리어 어떤 소리보다 더 크게 손짓했던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작가가 다름 아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라는 점 역시 소설을 펼쳐보게 된 이유였다.

 

이제 갓 겨울이 봄에 자리를 넘겨주던 시기에 한 젊은 박물관 기사(‘’)가 면접을 보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의 어느 저택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를 기다리던 이는 나이를 갸름하기 힘들 정도로 늙은 괴팍한 성향의 노파였다. 그 첫 만남의 느낌에 이번 면접은 틀렸구나 싶었는데 나는 그 괴팍한 노파와 함께 노파가 구상하는 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 일하게 된다. 노파가 모아놓은 물건들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물들. 노파는 소녀 시절 자신의 집 정원사(현재 정원사의 할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된 후, 뭔가에 끌린 듯 정원사의 전지가위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그 뒤로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 할 만 한 물건들 하나를 모으게 된다. 마치 자신의 사명인양.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인지. 추억 같은 감상적인 감정과는 관계없어. 물론 금전적인 가치 따윈 논외고.”(47)

 

이렇게 유물들이 모아진다. 수십 년 전 마을의 유일한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어느 창녀의 유골에서 발견된 피임링, 그리고 미라 개, 피부암으로 죽은 노인의 의안, 109세 전직 외과의사의 죽음 이후, ‘에 의해 수집된 수술 메스, 등등, 이런 식으로 전혀 일관성 없는 여러 유품들이 모아지게 된다. 나는 그 각각의 유품들에 얽힌 사연을 노파로부터 전해 듣게 되고,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침묵 박물관의 개관을 준비하게 된다. 괴팍한 노인, 그리고 상큼한 소녀인 노파의 수양딸, 가정부와 정원사 부부, 이렇게 이들이 한 마음으로 침묵 박물관을 만들어 간다.

 

는 이미 모여진 유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할뿐더러, 여전히 진행되는 누군가의 죽음 그곳을 찾아 그의 삶의 기억하게 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물건은 대부분 몰래 훔쳐오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 착실히 일을 하던 가운데, 마을에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한적한 마을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들. 폭발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유사한 살인 사건이 다시 연달아 벌어지게 된다. 유두가 잘린 채 희생된 여성들의 연쇄살인사건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사실 소설은 범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범인이 누구인지는 궁금하다. 특히, ‘가 형사들에 의해 용의자로 의심되기 때문에 더욱. 그래서 어쩐지 묘한 미스터리 소설의 느낌이 없지 않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묘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은 는 형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곤 한다. 이제 곧 조카를 낳게 된다는 형수의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담아. 그런데,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과연 무슨 이유인 걸까?

 

소설은 참 묘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누군가의 죽음, 그 흔적을 모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애도한다는 면에서 어쩐지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이다(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잊힌 마을에서 결코 누군가의 삶을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소설을 통해 만나게 된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유물, 그 흔적과 기억이 중요할 뿐.

 

정원사가 노파를 등에 업고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파의 힘겨운 숨소리가 끊어질 듯 약하게 들려왔다. 창문이 황혼으로 물들고, 눈은 더 선명한 그림자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 소리는 닿지 않았고, 멀찍이 물러나 앉은 얼어붙은 숲 너머에는 발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망자들을 애도하는 순례였다. 노파의 거친 숨소리는 그 애가였다.(332)

 

이 특별한 애도와 애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무명의 인물들을 통해 이미 이들 역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기에, 혹 등장인물의 이름이 헷갈려 일본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전혀 그런 문제가 없다는 것 역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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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방정식 살인방정식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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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이라면 많은 분들이 < 관 시리즈 >를 떠올리게 마련일 게다. 나 역시 그렇다. 처음 한 작품(십각관의 살인)을 읽고 금세 그 매력에 빠져 < 관 시리즈 >를 모두 찾아본 기억이다(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암흑관의 살인은 읽지 못했다. 이 책 참 구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빗쿠리관의 살인역시 읽진 못했고.). 아무튼 < 관 시리즈 >를 지나 그의 작품을 몇 권 더 읽었는데, 금번 그의 또 다른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살인방정식을 만났다.

 

제법 성공한(?) 신흥종교의 여교주가 살해당함으로 사건은 시작한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는 안다. 바로 교주의 남편이 범인이다. 물론, 교주남편이 교주를 죽인 후, 그 시체가 철로에서 이차 사고(?)를 당함으로 자살로 결론이 나게 되는데, 아내를 죽인 남편은 그 시신을 철로로 옮기지 않았다. 그래서 당혹해 한다. 교주 남편도, 독자도. 이를 통해, 여교주가 혹 안 죽었었나? 아님 누군가 그 시신을 옮긴 또 다른 범인이 존재하는가? 궁리하게 된다. 심지어 여교주가 죽지 않고, 다른 시체를 데려다 놓은 후, 복수극을 벌이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들을 해보며 책을 읽게 된다. 물론 어쩌면 이것 역시 작가가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잘 나가던 여교주가 죽은 후, 얼마 후 새롭게 교주가 된 남편 역시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가 신흥종교 본부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레지던스 K라는 주거건물에서 발견되는데, 목이 잘려 있고, 한쪽 팔이 잘려 있다. 그런데, 정작 잘린 목은 바로 그곳 레지던스 K의 다른 층에서 손쉽게 발견된다. 범인은 누구일까? 그 범인은 왜 시신을 절단함으로 훼손했을까? 흔히 시신을 훼손하는 의도는 피해자의 신분을 감추려는 것인데, 그렇게 절단한 다른 부위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범행 도구 역시 너무 쉽게 발견이 된다. 바로 교주 부부의 아들이 그 범인이다. 정확하게는 여교주의 아들인데, 그 아들의 집이 바로 레지던스 K였으며 의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너무 뻔하기에 의심스럽다. 게다가 의부가 살해당한 그 날, 아들은 의부와 만나기로 약속했었다는 점. 무엇보다 당시 레지던스 K는 다른 사건으로 인해 공안 형사 둘이 밤새도록 감시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이 아들이 용의자로 굳혀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그곳 레지던스 K에 시체를 가지고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이 아들밖에 없으니까. 무엇보다 결정적 근거는 아들의 차 안에서 범행 도구들이 발견된다. 이렇게 교주를 죽인 범인은 아들임이 밝혀지는데, 정말 그럴까?

 

이런 너무나도 뻔한 결과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사건을 담당한 젊은 형사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형사의 쌍둥이 형이다. 그가 갑자기 튀어나와 본격추리소설에 필요한 탐정역할을 맡게 된다. 이 캐릭터, 참 매력적이다. 어째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로 작가는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아님, 만들었나?).

 

결혼을 위해 형사가 된 쌍둥이 동생(형사임에도 여전히 시체에 적응하지 못한다.)과는 달리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하던 쌍둥이 형, 뭔가에 빠지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의 쌍둥이 형은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과연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무엇보다 작가는 레지던스 K를 둘러싼 불가능의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범인이 아들이 아니라면, 또 다른 진범이 있다면 과연 진범은 어떻게 해서 고조(피해자인 교주)의 시체를 레지던스 K로 들여왔는가? 무엇보다 그날 밤, 공안 형사 둘이 다른 사건으로 레지던스 K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레지던스 K는 들어갈 수 없는 밀실과 다름없는데, 과연 어떤 트릭을 통해 시체를 옮겼을까? 그리고 혈흔을 생각한다면 범행은 다른 곳에서 벌어져 시신이 옮겨진 것인데, 시신을 굳이 이곳 레지던스 K로 옮겨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이 이유가 대단히 중요하다.) 범인은 남편 교주(고조)를 어디에서 죽였을까? 여교주를 죽인 것은 고조가 맞다. 그런데, 고조는 교주를 철로로 옮기지 않았다. 그럼 여교주의 시신을 옮긴 사람은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형사의 쌍둥이 형은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물리공식까지 등장시키며 말이다. 이 소설, 살인방정식은 범인이 갑자기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설득력이 없진 않다(게다사 범인은 처음부터 계속 있었기에 작가가 독자들을 향해 반칙을 한 것도 아니다.). 탐정역할 역시 갑자기 튀어나오긴 하는데, 그럼 갑툭튀 소설? 하지만, 짜임새가 너무 탄탄하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허투루 사용되지 않고, 결국엔 잘 맞물려서 사건을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이 본격추리소설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실 작가의 < 관 시리즈 >가 재미나긴 하지만, 트릭을 해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독특한 건물에 감춰진 비밀통로를 통해 너무나도 손쉽게 해결해 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 소설, 살인방정식은 그렇지 않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얼렁뚱땅 해결해 버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본격추리 소설 느낌이 가장 강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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