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크기 무슨 일이예요.. 책 가볍고 작다가 좋아했는데 열어보고 기함 ㅋㅋ 어떡해~~ 추천자는 책임지시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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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8-0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보다 실제는 훨씬 더 작게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5-08-06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추천자가 돋보기 사서 돌리기 어때요? 그러고보니 추천자가 독서괭님? ㅎㅎ

독서괭 2025-08-06 23:07   좋아요 0 | URL
땡~ 저 아닙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5-08-06 23:12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하지만 하자고 글 올린건 괭님이니까 그럼 두분이서 나눠 구입? 하여튼 돋보기요. ㅎㅎ

망고 2025-08-07 07:0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어서 나와서 책임을 지십시오ㅋㅋㅋ

독서괭 2025-08-19 18:14   좋아요 1 | URL
제가 너무 늦었네요ㅠ 다락방님 맞습니다 ㅋㅋ 근데 멀리 가셔서 책임을 못 지실 듯.. ㅠㅠ

단발머리 2025-08-0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일이 자주 있기는 하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책 사이즈를.... 확인하곤 합니다.
책을 이틀 동안 찾아보니 책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알라딘이랑 교보 구매내역 찾아봤는데 제가 아직 이 책을 안 샀더라구요.
저는 여러분이 알려주신 것을 참고로 하드커버로 구입할게요. 어쩌죠~~~

독서괭 2025-08-19 18:15   좋아요 1 | URL
제가 늦었네요 ㅠㅠ 단발님, 하드커버 구입하셨어요? 근데, 글자크기만 문제가 아니라 문장도 어렵더라구요 ㅋㅋ 이제 좀 적응되긴 했는데 하우스메이드에 비해 확실히 어려워요. 특히 이메일 내용이.. ㅠ 그래도 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다락방님에게 묻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바쁘셔서 제가 올립니다.

8, 9월 영어원서 읽기는 샐리루니의 <Beautiful World, Where are you> 입니다.

샐리 루니는 처음인데 어떨지 두근두근하네요. 후훗 

함께 읽어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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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8-05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입한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 않아서요. 책 찾으러 갑니다.
감사해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5-08-05 18:13   좋아요 1 | URL
헤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한 사람이 거의 전 생애를 바쳐 특정 주제에 천착한다는 건, 때때로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다.

많은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사상의 탐구가 그렇게 이루어졌겠지. 

존 롤스 또한, 오로지 '정의'라는 주제를 파고든 '단일 주제의 철학자'라고 하니, 그의 업적은 그만큼의 노고가 쌓인 결과물인 것이다. 


황경식 교수가 쓴 <존 롤스 정의론>은 존 롤스가 생애를 바쳐 연구하여 정립한 정의론을 불과 155쪽에 압축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간명하게 이론의 핵심을 전달한다. 

롤스는 자유주의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이때 롤스가 가장 경계한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노예제조차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롤스는 오히려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는' 개인의 자유를 천명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원칙인데, 제2원칙으로서 롤스가 주장하는 '차등의 원칙'이란, '최소 수혜자 최대 이득', '공정한 기회 균등'의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공정함을 시정하기 위한 방침으로, 현대 복지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거나 지향되고 있는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롤스의 이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개인이 가진 천부적 재능과 같이, 통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되는 불평등에 대해서까지 그것이 '정당한 근거가 없다'고 보아 정의를 위해 조정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정의론>의 핵심은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와 같이 우리가 직접 생산한 것이 아닌, 우리에게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주어진- 그래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다. 이 점이 노직과 같은 소유권적 정의론자와 차별화되는 분기점이 된다. 롤스에 따르면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것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정당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것이며, 정의는 그러한 우연적이고 운명적인 것을 인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롤스는 분배적 정의란 우리의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를 마치 공유 자산이나 집단 자산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가 곧바로 공유 자산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형이상학적 입장일 수 있겠지만 이를 기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 121쪽


찾아보니 존 롤스는 저명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안정적인 학업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이, '무지의 베일'(출신 배경, 가족 관계, 사회적 지위, 재산 상태 등 자신의 위치나 입장을 전혀 모르는 상태를 가정하기 위한 개념적 장치)을 쓰고 각자의 운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 될 각오 아래 선택한 것이 바로 정의의 원칙으로서 정당화된다(48쪽)고 하면서 '최소 수혜자 최대 이득'과 같은 주장을 펼치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타산적 합리성rationality'에 의거하지 않고 '도덕적 합리성reasonableness'에 의거해서 행동한 학자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평생의 연구과제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소명인 걸까? 

한때 '~~에 미쳐라' 시리즈가 쏟아져 나와 개그짤로 돌 만큼 현대의 우리는 무엇에 미치기가 쉽지 않다. 유해한 것에 중독되지 않으면 다행일 뿐... 수많은 영상물, 게임물, 유혹적인 유흥의 방해를 모두 뚫고 나아가야만 무언가에 미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마당에 소명이라니? 대부분은 이게 맞을까 저게 맞나 갈지자로 걷다가 똑바로 걸으라는 압박에 못 이겨 적당한 길을 선택하고 내내 두리번 거릴 뿐이 아닌가. 


카라바조가 그린 <성 마태오의 소명>을 보며 예수가 자신을 가리킨 것처럼 느꼈다는 야닉 에넬은 그의 저서 <고독한 카라바조>에서 카라바조의 그림 일부에서 시작되어 그를 이끌어 간 열렬한 탐닉의 과정을 기록했다.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이나 충격을 받는 일이야 있을 수 있겠으나 그림 속 여자에 대한 집요한 열망은 독특할 정도였는데(솔직히 좀 변태같았다), 무언가에 미치도록 빠져드는 것, 그것을 일생의 소명으로 느끼는 것은 부러웠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 


존 롤스의 정의론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개인의 성격이나 관심사는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정의는 그것들이 형성되는 방식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제도는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 현재의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까지도 대체로 규정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기 자신을 바라볼 것이며 현실적으로 가용한 수단과 기대를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 경제 체제는 기존 욕구나 포부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욕구와 포부를 형성하는 방식이요 모태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롤스는 개인의 지능이나 능력을 고정된 자연적 혜택으로만 볼 수 없으며 사회의 기본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물론 불가피한 유전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능력과 재능은 사회적 조건과 관련짓지 않고서는 그 잠재적 가능성이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실현된 능력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조차도 무한한 가능성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131쪽 



여기서 떠오른 것은 <계급횡단자들 혹 비-재생산>을 읽으며 알게 된 '재생산'의 개념이다. 나는 재생산, 하면 임신과 출산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재생산은 계급의 재생산, 말하자면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재생산을 말한다. 롤스가 지적한 사회 제도의 영향력은 정확히 계급의 재생산의 원인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천부적 재능'에 대해서도 정당 근거가 없다고 보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조차 사회의 기본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데, 축구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축구가 인기 많은 스포츠인 환경에서 재능을 키울 만한 뒷받침이 있지 않고서는 그 재능은 빛을 발할 수 없다. 영웅은 시대를 타고나야 하는 법. 


계급횡단자로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이 바로 아니 에르노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가정으로 대표되는 계급과 자신이 성장하여 얻어낸 계급 사이의 격차를 다룬 작품을 많이 썼는데, 어쩌면 그것이 아니 에르노의 소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갈라진 틈 사이를 헤매는 사람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 

한국에도 많은 '개천용'들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사회 전체적으로 격변이 일어났기 때문에 실제 계급 간 격차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뛰어넘기 어려운 크레바스가 되어가겠지. 개천용이 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갈수록, 계급횡단자들에 대한 주목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스토리가 무엇인가? 잘 나가던 사람의 몰락 아닌가? 그러나 계급의 골이 깊어갈수록, '넘사벽'의 체념이 깊어갈수록,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진 금수저의 몰락을 바라기보다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흙수저가 '감히' 금수저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그의 몰락을 내심 바라지 않겠는가. 계급횡단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경과 시기의 대상으로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갈 것이다. 


존 롤스는 '시기심'이 제거된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을 '무지의 베일'과 함께 정의의 원칙을 숙고하는 조건으로 삼고 있는데,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 시기심 없음!- 은 무지의 베일보다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의 오랜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정의로운 정의론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일까 생각하면... 


다시, 소명으로 돌아간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소명이었던 카라바조처럼 어둠을 마구 파헤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태어난 이상 그저 살아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다. 라캉의 'the Thing'(마리 루티의 책에서는 '큰사물'이라고 번역됨)도 같은 맥락 아니겠는가.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 걸음 자체가 뿌듯한 인생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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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8-04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의 글을 아주 진지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

이로부터 롤스는 분배적 정의란 우리의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를 마치 공유 자산이나 집단 자산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천부적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가 곧바로 공유 자산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형이상학적 입장일 수 있겠지만 이를 기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121쪽)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쉽게 그렇게 이해되지만, 천부적 재능에서도?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독서괭님의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 대한 문단을 읽고 나니 바로 이해가 되었구요.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뱃 속 10개월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런 문구를 보았는데, 그것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구요.
더운 여름 나기가 너무 고생스러우실 텐데, 진지한 독서로 진지한 페이퍼를 올려주심에 진지하게 감사드립니다^^

독서괭 2025-08-05 17:34   좋아요 1 | URL
항상 진지하게 읽어주시는 단발님, 감사합니다! (하트)
저도 천부적 재능에서도?? 하고 물음표가 있었는데 이해가 되었고, 그 부분이 다른 기존 이론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잘난 인간도 혼자 잘날 수는 없다.. 그런 거겠죠?
오늘 아침은 비교적 선선하더라고요. 러닝하기 좋았습니다. 그래도 9월까진 더울 것 같지만,, 잘 버텨보자구요!

바람돌이 2025-08-04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론 말고 고독한 카라바조와 계급황단을 읽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ㅎㅎ
그래도 촤소 수혜자 촤대 이득같은 개념은 눈에 확 들어오네요.

독서괭 2025-08-05 17:35   좋아요 1 | URL
제가 카라바조와 계급횡단자를 영업했군요. 뭐든 다행이니다 바람돌이님 ㅎㅎ
최소 수혜자 최대 이득, 저도 잘 기억해두려 합니다. 다만, 롤스는 ‘평준화‘를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새파랑 2025-08-05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너무 어려우신 책 읽으시는거 아닌가요? 왠지 다르게 보입니다....

독서괭 2025-08-05 17:35   좋아요 2 | URL
네?? 저를 그동안 어떻게 보셨기에.. ㅋㅋㅋㅋ

잠자냥 2025-08-06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좀 변태 같았다” 🤣🤣🤣🤣
나도 그랬어요…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8-06 13:51   좋아요 0 | URL
그쳐 ㅋㅋㅋㅋ 초반에 특히 ㅋㅋㅋㅋ
 
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 리더스 클래식
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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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철학 고전을 컴팩트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차등의 원칙을 통해 공정을 기하는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복지를 위한 좋은 철학적 기반이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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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8-02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요‘ 하고 싶지만 사실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읽을 수 있을까요?‘ 🤔

독서괭 2025-08-03 00: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물론 읽을 수 있습니다. 안 어려워요!! 얇고요!!
 

아, 제목을 적고 나니 떠오른다.

<죄와 벌>을 읽던 중2의 오후가... 

그 토할 것만 같던 지겨움이...

아니, 대체 왜 그때 <죄와 벌>을 집어 들었는지 모를 일인데,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것 같다. 

아니, 대체 왜 한 사람의 말이 두세 쪽에 걸쳐 주절주절 이어지는 것인지 열불을 토하며, 그래도 꾸역꾸역 완독했던 ... 나름 추억이구만. 

최소 10년 이상 지나 다시 읽은 <죄와 벌>은 기억보다 꽤나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책에도 다 때가 있는 법. 

아무튼 오늘 쓰려는 건 도스토옙스키의 그 죄와 벌은 아닙니다. 


죄는 무엇인가...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죄악이 있고, 인간들이 정한 사회적 규칙인 법률에 따라 규정된 죄도 있다. 어느 정도는 나라마다 엇비슷한 형벌 규정들이 있겠지만, 각국에서 정한 법에 따라, 이 나라에서는 죄가 되는 것이 저 나라에서는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임신중지가 그렇다. 

벌은 무엇인가... 역시 종교에서 말하는 천벌이나 사후세계의 지옥이 있고, 인간들의 법률에 따라 집행되는 처벌도 있다. 이 또한 당연히 나라마다 다르고, 그 차이는 형종에도 있겠고-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태형-, 형량에도 당연히 있다. 

그렇다면 어떤 죄에 대하여 어떤 벌이 합당한가에 정답은 없는 것이다. 


사적인 제재는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 피해자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가해자가 받는 처벌의 정도가 결정된다. 그렇기에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여 '받은 피해 수준에서만 벌하라'는 제약을 두었다. 

지금에 와서는 함무라비 법전이 법률에서 정한 처벌을 넘어서서 사적인 제재를 부르짖는, 혹은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인용된다는 점이, 얼마나 우리가 죄와 벌에 대해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죽여 마땅한' 인간은 분명히 있다, 극히 소수일 뿐. 

스릴러 소설, 범죄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그 지점은 상당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악당을 인간적으로 그려야 할까 완전한 악으로 그려야 할까?

악당에 대한 단죄는 적당한 선에서 해야 할까 아주 속이 시원할 만큼 끔찍해야 할까? 

악당이 저지르는 죄와 악당이 받는 처벌의 묘사는 어느 정도로 상세히 이루어져야 할까?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작가는 선택해야 한다. 독자에게 악당에 대한 연민의 가능성을 줄지 말지. 

그 선택에 따라 악당의 삶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어느 정도 들어갈지 결정될 테고, 소설의 전반적인 느낌 또한 매우 달라질 것이다. 


잭 리처의 <처단>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리 차일드는 악당은 그냥 악당이라고 말한다. 잭 리처가 목격하고 경험하는 그들의 행위가 중요하지, 그들이 어쩌다가 범죄에 빠져들었는지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에서 도려내야 할 싹이다. 

악당을 악당답게 만드는 설정으로, 잭 리처의 악당들은 보통 '조직적 범죄'를 저지르고, 그 조직적 범죄 자체가 마약이나 군수품 거래 등 반드시 막아야 하는 종류의 것일 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또는 그 범죄 자체가) 여성이나 아이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처단>에서도 리 차일드는, 잭 리처가 타겟으로 삼은 악당 두목 외에 문지기 역할을 하던 부하(이름 기억 안 남)가 저지르는 악행을 보여주면서, 단지 악당 두목의 꼬붕 역할을 하는 남자의 아내를 강제추행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범죄까지 살짝 끼워 넣는다. 그럼으로써 이 놈은 '죽여 마땅한 놈'이 된다. 


잭 리처의 행위에 '처단'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이유는, 놈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하여 똑같은 끔찍함으로 보복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가 선사하는 죽음은 짧고 확실하며, 불필요하게 고문하거나 잔인한 행위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범죄 조직 말단에 있는 조무래기들에겐 관심이 없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중심부를 파괴하여 다시는 조직적인 범죄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체한다. 그래서 잭 리처의 행위는 사적인 복수를 넘어서는 정당성을 띄게 되고, 읽는 독자로서도 찜찜함이 없다.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메이드> 시리즈는 결이 다르다. 

이 시리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악당을 처벌하는 역할을 잭 리처처럼 거구의 전직 헌병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음, 외모는 별로 안 평범. 예쁘다 - 20대 여성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우연에서 시작해서 정당방위로, 이어 다른 이들에 대한 도움으로 이어지는 행보는, 사실 잭 리처의 것과 다르게 한계가 명확하다. 그녀는 직업을 구하기조차 힘든 가난한 여자일 뿐이므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거나 다른 남자의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하는데, 설정 자체가 대단히 아슬아슬하다. 

평범한, 아니 뛰어난 미모의 20대-혹은 30대 가난한 여성이자 도무지 힘든 상황에 처한 여성을 두고 보지 못하는 희대의 오지라퍼 밀리의 인생은 사건사고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잭 리처처럼 치밀하지 못하고 무모해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잭 리처와 공통점이 있으니, 그렇게 악당을 처리하고 다녀도 딱히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잭 리처는 안 받은 거겠지만, 밀리는 못 받은 것일까. 어째서 그녀는 계속 가난한가... 


아무튼 밀리의 처벌 방식은 잭 리처에 비해 더 함무라비에 가까운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잭 리처는 기회만 잡으면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살인을 해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수습이 가능하지만, 밀리는 둘 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녀의 처단 방식은 보다 교묘해져야 한다. 


하우스메이드의 악당들은 각자의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렇다고 딱히 감정이입이 되는 인간상은 아니긴 한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가 꽤 고민했을 듯하다. 어디까지 이 자들의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독자들이 연민을 느끼게 해도 되나? 완벽한 괴물과 평범하게 나쁜 인간 사이에서의 줄타기. 

솔직히 나는 시리즈 1권 마지막에서 악당을 조금 동정하게 되었다. 이유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겠지만. 2권의 악당도 조금은. 이 악당들을 만들어 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잭 리처가 악당 조직을 뿌리 뽑듯 밀리가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결국 우리가 이런 류의 소설을 읽으며 처벌받는 악당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현실에서 악은 많은 경우 가려져 있고, 잘도 도피하면서, 잡히더라도 피해자가 입은 고통을 똑같이 받지 않기 때문이리라. (최소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정의관념에 들어맞는 결말을, 소설을 통해서라도 보고 싶은 게 아닐까. 

현실의 나는, 죄형법정주의가 옳다고 믿고, 사적 제재를 사이다라며 부추기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똑같은 고통의 무게란 없고, 범죄란 온전히 한 개인의 것이기보다는 사회적 책임도 있는 것이라 여겨서 사형제도에도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죽여 마땅한' 자들이 그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이야기를 때로 읽고 싶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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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5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요즘 넷플로 모범택시 보고 있어요. 여기서는 악당들이 죽지않고 각자의 방법으로 고통받게 하는게 사이다더라구요. ㅎㅎ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악당이 제대로 처벌 안 받는거 너무 많이 보짆아요. 아마 그래서 이런 소설들을 읽고 대리만족이라도 하는거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독서괭 2025-07-26 12:50   좋아요 1 | URL
모범택시? 그런 내용의 시리즈인가 보군요! 사회가 부정의할수록 사이다를 추구하는 스토리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하우스메이드의 밀리가 하는 거보면, 시원하긴 합니다. ㅋ

다락방 2025-07-26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잭 리처는 찜찜함이 없죠. 책장 덮고 나서 ‘그렇게까지 해야했나‘ 라는 것보다는 후훗 이 악당아 너는 이제 잭 리처한테 죽었다!! 막 이렇게 되지요. 그래서 잭 리처가 좋은가봅니다.

독서괭 2025-08-03 00:27   좋아요 0 | URL
네. 잭 리처의 특별한 면이 거기 있는 것 같아요. 다락방님이 유독 사랑하시는 이유도..^^ 물론 근육도 있지만..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7-27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
리뷰 내용이 심오합니다.
<어제 읽고 오늘 댓글 씀.^^>
권선징악이 옳다고 믿어 온 우리의 신념에 힘 입어 범죄를 범한 자들을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살아왔기에 이런 책들 읽으면서 저도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것 같긴합니다.
죽여 마땅한 자들이 죽는 걸 보면 음. 처리했군. 속 시원해하다가…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어? 저 사람 왜 벌 안 받지? 현타가 올 땐 노여움이 배가 되어 좀 허탈해질 때도 있더라구요.
현실 구분 잘 못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겠죠?ㅋㅋㅋ

독서괭 2025-08-03 00:29   좋아요 1 | URL
내용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글이긴 한데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는 독자와 시청자가 많다는 것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겠죠..? 서글프네요 ㅠㅠ
사실 현실에서는 진짜 죽여 마땅한 자들이 숨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보이스피싱만 해도 항상 조무래기들만 잡히니까요.. 잭 리처가 다 처리해주면 좋겠어요 ㅋㅋ

단발머리 2025-07-28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처와 밀리를 비교해주신 대목이 참 좋네요. 저는 <하우스메이드> 읽을 때는 핫가이에 홀랑 반해서는 ㅋㅋㅋㅋㅋㅋ 리처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악당을 조금 동정하게 되었다는 그 부분도요. 그 놈이 나쁜 사람인건 분명하지만, 더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을, 저는 1권 마지막을 읽으면서 하게 됐거든요. 자고로, 프리다 맥파든의 계절입니다. 헤헤헤.

독서괭 2025-08-03 00:30   좋아요 0 | URL
핫가이~ 핫 중요하죠 핫! ㅋㅋㅋ
그쵸, 1권 마지막 읽으면서 하셨다는 그 생각, 저랑 같으신 것 같습니다. 그 나쁜 사람의 어릴 적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그래요 ㅠㅠ
3권에서도 핫가이 나오신다고 했으니 단발님 믿고 3권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