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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평점 :
몇 년 전 <시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고, <증언들>을 사둔지 2년 정도 지났는데, 독서괭아,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니? 휴가에는 역시 장편소설이지, 하여 집어들었는데(책 선택에는 사실, 주제독서 '법률/재판/범죄심리'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작용했다..'증언'이니까. 흐흐.), 아주 만족스러웠다. 마거릿 언니, 이야기를 쫄깃하게 잘 쓰십니다.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인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와 배경이 동일하고, 등장인물이 일부 겹치며, 시녀 이야기의 뒷이야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녀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나서 읽기를 권한다.
<증언들>에는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거기에 '증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화자들이 살았던 길리어드 시대 이후 한참이 지나서 역사학자에 의해 발견된 자료라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자는 길리어드의 리디아 아주머니. '아르두아 홀 홀로그래프'라는 제목으로 몰래 작성한 기록이다.
두 번째 화자는 길리어드의 아그네스 제미마. 카일 사령관의 딸로서 길리어드에서 나고 자란 소녀다.
세 번째 화자는 캐나다의 데이지. 캐나다 소녀가 등장하는 이유는? (비밀)
세 화자의 기록- 리디아 아주머니의 자필 기록과 아그네스, 데이지의 녹취록이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세 명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시점이 어느 순간 오리라고 독자는 예측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상당히 쫄깃하게 진행해 나간다.
스포일 하면 안 되는 이야기이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 '길리어드'라는 설정은 다시 봐도 섬뜩하다.
미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길리어드'라는 나라가 세워지는데, 그 진행 과정을 보다 보면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오싹해진다.
<시녀 이야기>에서 이미 보았던, 여성에 대한 계좌 정지. 여성의 모든 재산은 가장 가까운 남성 친척에게 귀속된다는 법률 공포는 이 책에도 등장한다.
여기 <증언들>의 주인공인 리디아 아주머니는 판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빈곤층에서 태어나 두뇌와 집념으로 이 자리까지 온 리디아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낸다. 리디아 아주머니의 엄청난 포쓰가 아주 매력적이었고, 이 인물 덕에 우리는 대반전을 맞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화자 중 한 명은 성경공부를 하게 되는데(길리어드에서는 여성이 글을 배울 수 없으므로- 간판도 다 그림으로 되어 있음..웩 -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사기 19장~21장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에스테 아주머니가 우리한테 들려준 설명도 기억하고 있었어요. 첩이 살해당한 이유는 불복종을 저지른 게 미안해서, 사악한 베냐민 부족에게 주인이 능욕을 당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자기가 희생한 거라고 했죠. 에스테 아주머니는 그 첩이 용감하고 고결하다고 말했어요.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요.
그러나 이제 전체 이야기를 읽게 된 거예요. 나는 용기와 고결이 나오는 부분을, 선택이 나오는 부분을 찾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 여자는 그냥 문밖으로 내쳐져서 죽도록 강간을 당하고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시장에서 산 가축처럼 취급한 남자의 손에 의해 암소처럼 열두 조각으로 잘렸어요. - 432,433쪽
도망갔다가 잡혀온 첩을 데리고 여행을 갔다가 어느 집에 묵었는데, 베냐민 부족이 찾아와 남자를 내놓으라고 했더니, 남자가 대신에 첩을 내던졌고, 강간을 당하고 죽었으며, 남자는 그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잘라 평화의 뜻으로 부족들에게 보냈다는 이야기. 이거 전에 어디에서 보고 충격받았는데.. <가부장제의 창조>였나?
이 대목 읽으며 의문이 들었던 것이, 길리어드는 왜- 소수의 선택된 '아주머니' 또는 예비 아주머니 격인 '탄원자', '진주소녀'들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 여성에게 그들이 그동안 가르쳐왔던 내용과 다른, 성경 원본을 읽도록 허락했을까? 이들은 여성을 취급하는 이런 끔찍한 내용에 대해 여성들이 아무 의문을 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읽고 나서도 길리어드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지 시험해 보는 절차였을까?
위 성경 내용을 읽은 소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길리어드의 손에 무엇이 변화되고, 무엇이 덧붙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았을 때는, 자칫 믿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 거예요.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가는 느낌이에요.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는 느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느낌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추방당한 느낌이에요. - 433쪽
그렇다. 철저하게 교육받아 세뇌된 그동안의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존재를 뿌리 채 부정당하는 느낌일 것이므로, 버리고 반항할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또한 여기까지 와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원치 않는 결혼 등을 피해 구원을 받아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다가, 몇 년 동안 더욱 엄격하게 믿음을 갈고 닦아왔기에 더 그러할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특권을 보전하고 여성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데 힘쓸 수도 있다. 길리어드는 여성을 결혼을 통해('아내') 또는 출산을 통해('시녀') 남성에게 종속시키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들은 고위계급의 집에 '하녀'로 보내어 종속시키거나, '아주머니'라는 특권계급에 속하게 한다. 이런 제도는 결국 여성들 사이에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고 이들을 분열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장벽을 뚫고 여성들은 연대할지니... 길리어드는 영원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힘냅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