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충격적인 기사를 다들 보셨는지 모르겠다.
바로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하는 기념비적 판례, '로 대 웨이드'를 뒤집기로 하는 내용의 다수의견 판결 초안이 유출되었다는 내용이다.
아래 기사 링크
https://www.yna.co.kr/view/AKR20220503104851009?input=1195m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임신중단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제인 로우(Jane Roe)라는 여성은 남편과 이혼 후 세 번째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텍사스 법률은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에 의한 임신, 임부의 건강이 위협을 받는 이례적인 경우 외에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로우는 (...) 그러한 위헌적인 법률 집행을 금지해 달라며 당시 댈러스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53쪽)
이 책에서 요약해 준 판결 내용에 따르면, 다수의견은 "헌법이 사생활의 권리를 명쾌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정헌법 제14조에 담긴 개인의 자유 및 개인의 삶에 대한 정부 간섭의 제한, 그리고 제9조에 담긴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 등의 개념은 여성의 임신 중절 문제를 포함할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규정된 것"(54, 55쪽)이나,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건강에 관한 공공의 이해관계가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타당하고 적절한 행위"(55쪽)라고 하면서, 그 개입시점은 "임신 초기 3개월 이후"(56쪽)라고 판단했다.
1973년의 이 판결은 임신중단의 권리를 사생활의 문제로 축소했고 3개월이라는 시한을 두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처음으로 권리 자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낙태 허용 시점을 임신 15주로 좁혀서 문제된 미시시피주 법률에 대해 심리 중인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 초안이 '낙태 전면 금지'라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대체 이 인간들은 여성의 인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화가 나서 팔짝 뛰겠다.
베트남전쟁 이후의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미국의 개신교 우파는 여성 평등권과 임신중지, 동성애 반대를 중심으로 혼란기의 도덕적, 정치적 지도자로 나서고자 했다. 특히 이들은 (...)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맞서 임신중지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데 역량을 총동원했다. 여성의 임신중지권이 헌법상 보호되는 사생활 권리라고 인정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가톨릭과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연합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고, 이들의 연합된 조직력은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레이건은 임신중지 금지를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었고, 부시 정부는 임기 내내 임신중지와 피임 문제를 위기 때마다 쟁점화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3년 만에 임신중지에 관한 연방 정부의 기금 사용을 금지하는 하이드 수정안이 통과되었고,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레이건 정부에 헌법상으로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인간 생명 수정안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 <배틀 그라운드> 중 나영,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인가 명령인가' 125, 127쪽
<배틀 그라운드>에는 낙태죄를 둘러싼 논의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낙태는, 임신중단은, 생명과 자유의 대립 문제가 아니다. 임신 5주만 지나도 초음파로 콩알만 하게 수정된 배아의 모습이 보이고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 심장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감동의 순간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강한 압박이 된다. 심장이 저렇게 쿵쿵 뛰고 있는 생명을, 네가 감히 없앤다고? 이 살인자! 문란한 여자!
이건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뒤집히는 이야기이고, 엄청난 불평등의 현장이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있어서 만큼 성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또 없다.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갈 아쉬운 생명들을 구하고 싶다면, 임신중단을 처벌할 게 아니다. 처벌은 임신한 여성들을 위험하고 불법적인 수술대로 향하게 하거나 원치 않는 출산 끝에 아기를 유기/영아살해 하거나 베이비박스에 버리게 하는 길로 이끌 뿐이다. 진짜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원치 않는 임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성교육, 제대로 된 피임 문화(노콘노섹), 제대로 된 양육 지원, 제대로 된 양육 분담....
이런 정책과 문화가 다 엉망인 상황에서 처벌은, 이 모든 걸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이 점에서 성매매 문제와 닮아 있다.
그러나 반성매매 운동이 사회복지 실천으로 한정되는 상황은 비판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성매매피해의 증거로 박제되어 잔여적 사회복지의 대상자로 단정되는 순간,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가 만들어지는 그 경험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매매 문제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다시금 개인의 문제가 된다. (...) 경험은 이미 해석인 동시에 해석될 필요가 잇기 때문에 언제나 경합적이며, 그러므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Scott, 1991). - <레이디 크레딧> 75쪽
오랜 세월 동안 사회가 우리 성매매된 여성들을 비난해왔고, 이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침묵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침묵 속에서 폐해는 커져만 갔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과 성매매의 존속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편견은 성매매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실제로 살아 있게끔 기여합니다. - <페이드 포> 20쪽
다락방님이 그토록 추천하셨던 <페이드 포>를 드디어 시작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놨는데도 이미 가슴이 아픈데,, <레이디 크레딧>과 함께 읽으니 좀더 알겠는 느낌.
부디 미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이 뒤집히기만을 빈다. 더 나아가진 못할지언정 73년 판결보다도 못한 결론을 내리는 꼴은 보이지 말아줬으면 한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라지만, 그 사이에서 희생될 수많은 여성의 삶은 어쩔 것인가? 우리나라는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 불합치결정 이후 3년이나 법률이 새로 제정되지 않고 공백상태인데, 미 연방대법원이 저런 판결을 내고, 대통령 바뀌면,, 와, 정말 가슴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