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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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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출판사의 뒷풀이 모임에 갔다가 한 시인을 만났다.
처음 들어보는, 그러니까 나에게는 무명의 시인이었던, 그는
아주 수줍어하는, 부산의 시인이었다.
철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하노라고, 또는
시 안으로 철학을 들여온다고 늘 야단맞는다며,
수줍게 웃는 그 시인은,
피가 더러운 것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공학과 출신의 공학도였던, 그는
피가 더러운 탓에,
과학철학과 과학사 공부에도 기웃거려 보았다가,
결국 시인이 되었는데,
힘드셨겠다고,
사실은 내가 아는 학생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몇 있다고,
그런데 그 학생들에게 차마 철학을 공부하라고 적극 권유할 수는 없었다고,
말하는 나에게,
수줍게 웃으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피가 더러운 것들은 어쩔 수 없다고.
그 피가 더러운 시인이 생각 나서,
마침 네루다의 시집을 집어든 김에, 역시
피가 더러운 족속인 네루다의 시를 한편 올려 본다.
더러운 이들이여, 번성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