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소설이 가장 세계적인 소설일까. 만약 그렇다면, 한국 작가들에게 강장제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다. 타 언어권에 비해 비교적 한국 소설 출간이 활발한 프랑스에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이문열의 ‘시인’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래된 정원’은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운동을 담았고, ‘시인’은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가장 한국적 소재를 다룬 것이므로, 프랑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 불역본은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한국인의 심성과 정서를 가장 잘 형상화했다는 ‘토지’는 불어권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래도 가장 한국적인 소설이 가장 세계적인 소설일까.
한국 문학의 해외 번역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번역자 수준, 현지 출판사의 지명도와 홍보 능력에 좌우된다. ‘토지’의 경우, 원작의 높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번역·출판 조건 속에서 번역본을 냈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이 해외에서 손해를 보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연세대 유럽사회문화연구소가 ‘한국문학 해외 수요의 성공 사례’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프랑스어권의 사례를 발표한 오정숙 연세대 교수는 소설가 이문열씨의 작품 중 한국 근현대사를 비틀어 쓴 소설 ‘황제를 위하여’가 혹평을 받은 것을 꼽으면서 ‘토지’까지 거론했다. “박경리의 ‘토지’의 실패가 보여줬던 것처럼, 지나치게 한국적이어서 이 한국적인 인물의 상황, 관습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주를 달아야 하고, 등장인물이 헷갈릴 정도로 많은 경우 외국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반면 이문열의 ‘시인’과 ‘금시조’는 예술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전반적으로 현지 언론은 이문열 작품의 특징으로 선악 이원론에 휘둘리지 않는 모호성의 글쓰기, 방랑의 입문적 의미, 예술에 대한 탐구와 명상 등을 꼽는다.”
황석영의 성공은 작가의 문학 외적 경력에만 따른 것이 아니다. 작가의 현실 참여를 중시하는 프랑스 문학의 전통에 걸맞은 측면도 있지만, “현지 언론은 황석영 글의 장점을 힘 있는 서사, 생동감 넘치는 서사의 힘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승우, 김영하처럼 분단 시대 역사에서 직접 소재를 취하지 않지만,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현지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들과 동등한 차원에서 젊은 목소리를 내는 글쓰기를 한국 문학에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 작가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소중하다면, 이제 이를 어떻게 새롭게 포장할 것인가 고민할 때다. 영어권에서 최근 가장 성공한 한국 문학 작품은 현대 소설이 아니라 고전 ‘한중록’이다. 영문학자 한지희에 따르면 ?영미권 독자들이 좋아하는 ‘왕실’이란 공통의 문화적 기호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연상케 하는 비극 ?시·공간을 초월한 인생의 보편적 사실 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문학 속으로 웅비하려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곰곰이 만지작거릴 화두가 아닌가 싶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