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저작권료 15배 덥석…물먹고 물먹이는 출판사 [06/02/10]
신간 중 번역물 30%…에이전시 10년새 10배
경매방식 진행 출판사 사활걸고 매달려
‘물건’되면 값 부풀려지기 일쑤
독일 출판사 국내 맹점 악용 몇배 챙겨
제시액 비공개 원칙 지켜 ‘남좋은 일’은 그만

댄 브라운의 소설 <솔로몬 키>가 최근 100만달러가 넘는 파격적인 가격에 저작권 계약이 성사됐다. 전작 3권을 낸 대교베텔스만이 물을 먹고 랜덤하우스중앙한테 돌아갔다. 저작권 중개사는 에릭양 에이전시로 알려졌다. 출판계 ㄱ씨는 금액과 출판사 선정 모두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10여년 전 경험을 털어놨다. 안또니오 네그리의 새책 저작권이 그의 책을 꾸준히 내온 이학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적정가 1000달러의 15배인 15000달러를 제시했기 때문. 이때도 한 에이전시의 활약이 컸다는 뒷말이다.

에이전시는 어떤 곳?=번역서의 앞쪽을 펼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OO에이전시를 통해 OOO사와의 독점계약으로 (해당책을 발행한) OOOO출판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는 보호를 받은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란 문구가 있다. 에이전시는 국외 저작권자와 한국 출판사 사이에서 저작권 계약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로, 인세 계약을 하고 통상 5년 동안 재고보고 및 로열티 송금까지 책임진다. 보통 저작권자한테서 선인세의 10%를, 국내 출판사한테서는 수수료 20만원 정도를 받는다.

2004년 7월2일 현재 ‘저작권 대리·중개업체’(에이전시)로 등록한 곳은 379곳으로, 지금(2005년)은 4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1994년 44곳이었으니 10년새 10배로 늘어난 셈이다. 연도별 증가세를 보면 1995년 7곳, 1996년 13곳, 1997년 19곳, 1998년 25곳, 1999년 17곳, 2000년 20곳, 2001년 32곳, 2002년 44곳, 2003년 66곳, 2004년 45곳(추정)이 늘었다. 출판시장 개방 전해인 1998년 25곳이 늘어 증가세 1차 피크를 이루고 2003년 66곳이 늘어나 2차 피크를 이룬다.

이처럼 에이전시가 많은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 한국 출판시장에서 번역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다. 2003년 기준 신간도서 3만5071종 가운데 1만294종이 번역도서. 국내 콘텐츠 공급이 달리는 만큼 번역물의 수요가 엄청나고 출판사는 저작권 계약에 목을 매는 형편.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400여곳 중 ‘빅4’ 80~90% 다뤄

에이전시 업계에서는 KCC, 신원, 임프리마, 에릭양이 ‘빅4’로 불린다. 이들은 1994년 이전에 설립돼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여기에 베스툰코리아, 북코스모스가 다크호스로 등장해 주목된다. 이들 메이저급은 10인 이상의 직원을 두고 영, 프, 독, 일 등 주요 언어권을 커버한다. 이들은 주로 서적, 사진, 미술 등의 저작권을 취급한다. 사진과 미술 저작권은 서적에 포함된 것들이 별도의 계약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에이전시는 20~30곳. 하지만 선두 4~5곳이 중개물량의 80~90%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10~20%를 나누는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잡음 = 저작권 계약은 일종의 경매방식으로 진행된다. 원칙적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출판사한테 번역 저작권이 넘어간다. 출판사, 에이전시가 여럿이 관련되고 ‘물건’이 크면 인세와 수익금 역시 크므로 희비가 엇갈린다. 돈이 오가는 곳에 뒷말은 따르기 마련이다.

출판사의 불만은 에이전시에서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다는 것. ㄷ출판사 관계자는 “입찰액수를 공개하거나 부풀려 불필요한 경쟁을 불러 값을 올림으로써 자기들의 이익을 올리고 결과적으로 달러를 국외로 유출시킨다”고 주장한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짙다는 하소연이다.

로열티 떼먹고 잠적 불신 사기도

ㄱ에이전시 관계자는 “평등한 관계여야 할 에이전시-출판사 관계가 변질된 측면이 있다. 큰 에이전시나 큰 출판사들이 계약서 상의 ‘갑’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전시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고 증언했다. 또 책의 장단점을 모두 얘기하고 적정액 제시를 안내해야 하는데도 팔고보자는 욕심에 출판사를 현혹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역으로 출판사가 에이전시를 부추기기도 한다. 경쟁사의 제시금액을 알려주기를 강요하고 어떻게든 자사한테 낙찰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일부에 국한된 얘기지만 여파는 심각해 서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한다. 일부 출판사는 에이전시를 수족 부리듯 하고 때로 구미에 맞지 않으면 폭언을 퍼부어 불신을 부추긴다. ㄴ에이전시 관계자는 “최저가라는 저작권자와 최고가라는 출판사의 제시가격 차를 중재하다 보면 양쪽의 불만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부작용은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미쳐 한국출판사를 봉으로 만든다. 독일의 한 출판사는 국내 출판사의 과당경쟁 및 불신풍토를 악용해 제시금액을 공개하는 메일을 출판사마다 보내 처음보다 3배 넘게 저작권료를 챙긴 일이 있다. 국내 출판사들이 대외신용을 잃는 것도 큰 문제. 특히 중소 출판사들이 계약대로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책을 먼저 내고 부도를 낸 채 잠적하거나 인세 안주고 버티다 쌓이면 다른 에이전트로 옮겨가는 행태를 되풀이하는 곳도 있다고 전한다. 타격은 고스란히 에이전시한테 돌아간다. 신뢰도 하락은 물론 독점계약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이를 눈치챈 일부 외국 에이전시들이 터무니없는 계약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더사카이에이전시는 금액제시 단계서 돈을 받는다. 한국 에이전시들 역시 중소 출판사와의 거래를 꺼리고 보증금을 받는다. 이로 인해 출판계의 빈익빈부익부라는 악순환에 일조한다.

문제는 풀어야 한다 = 이런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미우니 고우니 해도 공생관계인 까닭이다. ㄱ에이전시 관계자는 “‘원칙과 소신’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열린계약’의 경우 제시금액 비공개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 독점관계의 경우 제시금액을 국외 에이전시에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출판사들도 눈치볼 것 없이 소신껏 제시금액을 넣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상호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에이전트들이 출판을 잘 안다고는 하지만 출판인회의의 서울북 인스티튜드 교육 등을 통해 지금보다 더 소상하고 정확한 실태를 파악한다면 자신들이 정해놓은 하한선을 무리하게 고집하거나 출판사한데 지레 높은 값을 유도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또 그는 “에이전시들은 통상 선인세+로얄티 등 금액으로만 금액제시를 하는데, 출판사 입장에 서서 영업계획을 만들어 국외 에이전시에 제공하면 좋은 조건에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신뢰만 구축되면 상생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했다.

ㄴ에이전시 관계자는 에이전트를 출판계 외부인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같은 길을 가는 출판기획자로 봐달라는 주문이다.

에이전트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빛도 보지 못하지만 해외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첨병의 역할을 한다. 국외 도서전이나 에이전트 또는 리서치를 통해 좋은 책을 국내에 소개한다. ㄷ에이전시 실장은 “출판계의 파이가 적은 만큼 박봉이지만 ‘문화대사’라는 보람으로 산다”고 한다. 그는 “제대로 된 에이전트는 외국어 실력과 정보는 물론 책임감이 투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 한 에이전트는 “거간꾼으로 지칭당했을 때 맥이 탁 풀려버린다”고 했다. 자신은 중개자의 마인드로 실적에 집중하기보다는 출판기획자의 마인드로 책을 기획하자는 생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날개를 달기 위해 =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에이전시의 몫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입 일변도의 한국 지재권 시장에 수출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한류열풍에 힘입어 <겨울연가>, <가을동화>, <대장금>이 제값을 받고 동남아에 수출되었다. 이와 다르게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꽃> 저작권이 미국 프랑스에 각각 수출된 것은 고무적인 일. 한류에 힘입은 것도 아니고 정부나 문단의 지원없이 순수하게 상업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해온 이구용 임프리마 상무는 “이런 속도라면 3~5년 뒤에는 한국문학 수출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재권 ‘수출 마은드’ 키워야

아직은 소수이지만 적극적인 에이전트의 활동상은 무척 희망적이다. 이 상무는 “해외에서 먹히려면 어느 나라의 독자가 보더라도 그들의 일상적인 정서를 압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정보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작가들의 세계를 지향한 마인드 변화에 에이전트의 노력이 합쳐지면 한국 문학작품의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훈을 소개해온 대니홍 에이전시의 홍대규씨는 “한류열풍은 반쪽짜리”라고 평가하고, 유능한 한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10월쯤 국외 도서전에 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개의 폭을 넓히려면 에이전트 및 출판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ㄷ에이전시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국내인세와 해외인세를 구별해서는 안되고 인세를 아까워해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언제까지 수입 마인드에 머물 것이냐는 반문이다. 그는 “더 유능한 인재들이 들어와 국내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해외문화를 소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주요 언어권 외 스웨덴, 아랍, 터키, 타이, 말레이시아, 이탈리아, 포르투갈 전공자들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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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튼 하는 짓들이 참 가관입니다 ㅠ.ㅠ

하늘바람 2006-02-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아주 치열하지요. 외국과의 경쟁도 아니고 우리끼리 책값을 높이고 있으니

모1 2006-02-1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 월드컵등의 중계권료도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서로 경쟁해서 값을 많이 올린다죠? 외국 영화도요. 오늘 신문 보니까..마시멜로이야기 있더군요. 판권료를 어마어마하게 줬다나 뭐라나...확실한 것은 책값이 참 많이 올랐다..싶어요. 경제학 콘서트 샀는데...책 내용도 있으니 좀 그렇긴 하지만 다른 책보다 더 비쌀 모습은 아니더군요.

하늘바람 2006-02-1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면서 책 안사본다하고는, 하지만 출판사 입장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팔리는 책 한구너 갖고 싶은거 정말 목숨걸어야 할 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