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그들이 뛴다] (4) 출판―조영희 에코의서재 대표 [06/01/06]
지나간 2005년을 그녀처럼 동동거리며 보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조영희(36) 에코의서재 대표. 국내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위즈덤하우스 편집장 자리를 던지고 지난해 1월 창업에 뛰어들었다. 혼자서 출판사를 차리고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냈다. 다행히 독자들은 그녀의 독립을 격려했다. 조씨는 “앞으로 10권을 만들 여유가 생겼다”며 크게 웃었다.

서울경찰청 옆의 한 오피스텔에서 조씨의 1인 출판사가 시작됐다. ‘에코의서재’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지성 움베르트 에코애서 따왔다. 에코의서재에서 태어난 첫 책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조씨 혼자서 꼬박 6개월을 작업했다.

“첫 책이 나올 때는 거의 ‘패닉(공황)’ 상태였어요. 제목에서 디자인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없고,독자들에게 조롱이나 받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예전에 수없이 해왔던 일인데도 혼자 하려고 하니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아득하더라구요.”

책을 만드는 것은 그래도 해본 일이었다. 홍보나 영업은 생판 처음 부딪히는 일. 서점들이 책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나,책을 납품하면 대금은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무명 출판사라고 언론에서 무시하지 않을까,식은땀을 흘리며 한 달을 뛰어 다녔다. 첫 달 판매부수 5000부. 집계를 확인한 조씨는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거울을 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조영희,너 잘 했어.”

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큰 사무실은 이제 없다. 부엌과 화장실이 달린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이 그녀의 사무실이다. 예전에는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여직원 한 명 뿐이다. 매일매일이 고독한 선택의 시간이다. 조씨는 “그래도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제가 만들고 싶은 책과 회사가 요구하는 책이 달라요. 그래서 갈등이 많았고 갈증도 심했죠. 편집자로서 경력을 쌓다 보면 좀 더 인문적이고 깊이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데,대형 출판사에서는 그런 욕구를 실현시킬 수가 없어요. 책의 내용보다 판매 부수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조씨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기쁨을 “내고 싶은 책을 즐기면서 만든다”는 말로 요약했다. 조씨처럼 ‘자기만의 책’을 찾아 나선 편집자들이 꾸려가는 소형 출판사들이 최근 2∼3년 사이 크게 늘었다. ‘빈익빈 부익부’와 ‘규모의 경제’가 어김없이 작용하는 출판시장에서 이들의 존재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의 도전이야말로 양서의 터전이 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대형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 만들기에만 치중하는 사이,좋은 책들은 종종 묻히고 만다. 여기에 작은 출판사들의 존재 의미가 있다. 마케팅비,인건비,건물임대료 등 관리비를 최소화한 작은 출판사들은 2000부 내외만 팔아도 손익계산을 맞출 수 있다. 조씨는 “기대하는 판매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가치있는 책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현재 출판은 오랜 ‘독자 계몽의 시대’를 건너 ‘독자 니즈의 시대’로 이동하는 중이다. 실용서,자기계발서,경제·경영서 등이 붐을 이루는 것은 이런 변화를 대변한다. 조씨는 이 새로운 흐름의 최선두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창업 첫 해의 혹독한 생존 시험을 통과한 이유이기도 하다.

푸른숲 출판사에서 시작된 그녀의 편집 경력은 올해로 13년째.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잭 켄필드 외),‘바람의 딸,우리 땅에 서다’(한비야),지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등을 기획한 그녀는 대중의 요구와 취향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편집자로 정평이 나 있다. 독립한 후에 만든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심리학 열풍을 타고 지금까지 2만부가량 팔렸으며,연간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은숙 마음산책 사장은 조씨에 대해 “독자의 니즈를 읽는 눈이 뛰어나다”며 “그가 무슨 책을 만들지 늘 궁금하다”고 말했다.

조씨의 출판 철학은 “책만은 충동구매가 없다”와 “필요해야 산다”는 두 마디에 집약되어 있다.

“대중들은 이 책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따져요. 예전에는 이 책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졌지요. 또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경향도 존재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수요가 거의 없어요. 나에게 필요한가,도움이 되는가가 책을 사는 기준입니다.”

조씨는 올해 6∼7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몇 달 전에 직원을 한 명 충원했기 때문에 출간 종수를 늘려 잡았다. 이 달에 심리동화집 ‘루비 레드’가 나오고,다음 달에 ‘불만족의 심리학’이 나온다. 심리학 서적은 조씨가 독립을 통해 꼭 만들고 싶었던 ‘자기만의 책’이었던 셈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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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0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책들 역시, 기대됩니다. ^^

Kitty 2006-01-0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스키너를 낸 출판사군요. 전 번역서도 아니고 원서를 그것도 도서관에서 빌려읽었기 때문에 출판사 발전에는 한푼도 보탬이 안 되었겠지만;;; 응원할래요~ ^^

하늘바람 2006-01-0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키티님 대단하셔요